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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유혹] 밀양 평밭마을 한옥순 할머니께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밀양 할매 할배들 지음, 이계삼 기록, 한티재, 2015.

할머니, 안녕하세요. 현숙이에요. 이번에 새로 나온 책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할머니와,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이렇게 편지로 쓰게 되었어요. 책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심지어 다 읽고 책을 덮을 때는 심장이 덜컥 했어요. ‘이분들 또 일내셨구나. 이 책은 정말 길이길이 남을 엄청난 책이 되겠구나!’ 싶어서요. 하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다행이다’ 였어요. ‘아, 다행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제 밀양 할매 할배들의 매력을 알 수 있겠구나.’저는 개인적으로 “왜 밀양에 계속 가니?”, “밀양에 연대하게 된 계기가 뭐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밀양 할매 할배들의 매력’이라고 답해왔어요. 그러고는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 자랑을 하듯이 밀양 어르신들의 자랑을 쭉 늘어놓고는 했었죠. 제가 이렇게까지 자랑하고 다닌 밀양 할매 할배들의 매력은 뭐였냐면요, 바로 밀양 어르신들의 ‘진짜’이야기였어요.

철탑 때문에예, 우리 후손들이 설 곳 갈 곳도 없어예. 우리 당대에 저거들끼리 잘 묵고 살라꼬 정부하고 한전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 아입니꺼. 우리 밀양 할매들은 우리 밀양 후손들이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싸우는 겁니더. 제가 예 행정대집행 날 옷을 벗었습니다. 할매 열 명 앉아 있었는데, 소 잡는 칼 같은 걸 들고 와서 천막을 찢고. 아. 우리가 사람을 죽였나 칼을 들었나, 생존권 지키는 우리 할머니들을 그렇게 이 나라 현 정부가 그렇게 했습니다. (p.36)

이 구절을 보면서 평밭마을 129번 농성장에서 제가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스쳐지나갔어요. 책과 신문에서 많이 봤던 ‘생존권’, 평소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정의’, 이런 단어들이 밀양에서 할매 할배들 입에서 나왔을 때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동안 제가 알고 있었던 이 단어들이 갑자기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았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생존권’이라는 단어가 왜 필요한 건지, 이 단어가 왜 존재하는지 이런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 단어들이 실은 얼마나 무거운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밀양 할매 할배들의 이야기로 기록되었다는 점이 팬인 저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지요. 밀양 할매 할배들의 매력이 널리 퍼지겠구나~ 싶어서요.

한전 차장이 “철탑만 막으실 것이지, 여긴 원전은 아니잖아요?”라고 하는 말에 “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 원인이 전부 원전인데, 니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고. 니가 공부해서 대학 나와 갖고 전기회사 댕기는 것 맞나? 밥 팔아서 똥 사무라!” (p.21)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막 웃다가 이 말이 참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사회에서 성공했다고 불리는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할머니 말씀대로 나라가 이 꼴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진짜’이야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매 할배들의 2,900킬로미터 여정에 대한 이 기록이 참 값지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을 돌며 만난 다른 피해지역 주민들의 ‘진짜’목소리가 담겨져 있으니까요.

탈핵 탈송전탑 원정 중, 밀양과 똑같이 765kV 송전탑이 들어선 충남 당진에서 한옥순 할머니

▲ 탈핵 탈송전탑 원정 중, 밀양과 똑같이 765kV 송전탑이 들어선 충남 당진에서 한옥순 할머니


횡성주민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가 하락은 분명해요. 쳐다보지도 않아요. 땅 보러 왔다가 철탑 쳐다보고는 “에이~”하더니, 두말도 않고 돌아가요. 건강에도 영향을 줘요. 철탑 바로 아래에서 자면 한 대 맞은 것처럼 몸이 우리~한 게, 틀려요. 그래서 잠은 못자고 거기서 떨어진 집으로 옮겨서 자요. 우리 동네 김oo,신oo,조oo 다 암이고, 이 oo씨도 암이고, 선로 바로 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암이 오더라구요. 자고 일어나면 시원하지가 않아. 여름철에 번개만 번쩍 하면 코드를 다 뽑아야 해요. 그 밑에는 백 프로예요. 텔레비전, 컴퓨터 몇 개씩 날려먹었어요. 한전에 이야기해도 모른 척해요. 수리는 턱도 없구요.” (p.91)

횡성 뿐 아니라, 이 책에 담긴 당진, 예산, 아산, 서산, 영광, 횡성, 평창, 여주, 광주, 안성, 고리, 월성, 삼척, 울진, 영덕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밀양의 상황만 자세히 알고 있었던 제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많았습니다. 전국 곳곳 송전탑과 발전소 피해지역을 모아놓고 보니 어쩜 밀양에서 벌어진 일과 이렇게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한전이 주민들의 반대를 넘어가는 술수는 밀양과 너무 비슷했다. 100명이 피해를 본다면, 피해가 가장 큰 선하지 바로 곁에 사는 10여명을 꼬여서 합의를 먼저 보고, 버티는 19명을 주저앉히는 식이다.” (p.22) 이 부분을 보면서 한전과 한수원이 정말 얼마나 더러운 방식으로 송전탑을 세우고 발전소를 만드는지 다시 또 알 수 있었습니다. 왜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피해지역 분들은 다 나이가 많고, 농촌 분들인지... 마치 짜여진 각본인 듯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진행방법에 기가 찼습니다.

“밀양 분들 어떻게 당했는지, 사실 저희는 안 봐도 눈에 훤히 보입니다. 주민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p.154) 한참 답답한 마음으로 책을 보던 중에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기가 막히는 일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왜 진작 더 이분들의 이야기를 모을 수 없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고리1호기 지역주민 분의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로 나선 할매 할배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전국 송전탑, 발전소 피해지역을 찾아가보자던 이 기행의 출발점에 밀양 할매 할배들이 서계셨던 이유가 있었구나, 누구보다도 이 답답함과 억울함을 잘 알기에 누군가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를 듣고 전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값지게 생각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성장에서 할머니께서 저에게, 그리고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똑똑히 보고 기억해둬라. 한전 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경찰이 할매들을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해뒀다가 알려라.” 전국적으로 밀양 할매 할배들의 이야기가 알려졌던 것처럼 같은 상황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널리 알리기 위해 발걸음을 하셨던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밀양 할매 할배들이 발로 쓴 이 ‘기록’이 더없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또 이 책을 통해 제가 몰랐던 할머니의 또 다른 삶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막내딸 한옥순에서 밀양투사 한옥순 할머니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김영자 총무님이 상동면 고정에서 태어나 여수마을로 시집오셨다는 이야기. 밀양 주민 분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보면서 송전탑이라는 것이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큰 문제는 주변에 살고 있는 생명의 삶을, 시간들을 송두리째 뺏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할머니와 만나서 그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한전과 싸우면서 있었던 일들, 경찰이 했던 수많은 폭력들, 어떻게 하면 송전탑을 막을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송전탑은 들어섰고 한전과 경찰의 폭력은 하나도 처벌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조금 슬퍼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할머니와 만나게 될 다음을 다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나쁜 전기로 누군가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잘못된 에너지 정책을 바꿔서 송전탑을 꼭 캐내고, 전국 송전탑, 발전소 피해지역 주민 분들과 함께 모이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어요. 그날을 기대하면서 곧 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예전에 좋아하셨던 노래가 뭔지, 음식이 뭔지 이런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싶습니다. 조만간 밀양에 내려가면 젊은 시절 섬 생활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고요.

항상 제게 이렇게 큰 깨달음과 사랑을 안겨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려요. 할머니 곁에서 우리가 끝까지 함께 싸울 것이라는 기억해주세요. 저도 약속드려요. 곧 밀양에서, 햇살 가득한 밀양에서 뵈어요.

- 현숙 올림
덧붙임

현숙 님은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