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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15일 희망순례를 다녀와서

부산 한진, 평택 쌍차, 아산 유성 농성장에 다녀온 밀양 어린이 경석 군의 포토에세이

며칠 전, 수요 촛불문화제가 열렸을 때, 1월 14~15일 1박 2일간 희망순례를 간다는 소식을 듣고 방학숙제 겸 사진을 찍기 위해 희망순례를 가겠다고 자청을 했습니다. 1월 14일 아침 6시, 방학 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시간에 일어나 엄마와 가방을 쌌습니다. 약속장소인 밀양강 둔치에 가니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배웅 나온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고속버스에 엄마와 함께 탔습니다. 맨 앞에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 친구 홍범이도 와있었습니다. 자리에 앉고 곧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을 가다

첫 번째 희망순례지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이었습니다. 사측의 158억 손배소 철회, 민주노조 사수를 요구하며 작년 12월 노조 사무실에서 목을 맨 최강서 아저씨의 분향소에 갔습니다.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복직시켜 준대서 회사에 갔는데 3시간 만에 무기한 휴업 명령이 떨어졌답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살짜리 꼬맹이 사탕 뺏어 먹기랑 뭐가 다를까요?

(좌)밀양 주민들께서 분향하시는 모습 (우)천막 농성장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 밀양 분들

▲ (좌)밀양 주민들께서 분향하시는 모습 (우)천막 농성장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 밀양 분들


분향을 하고 나와서 한진 정문을 뒤돌아 봤습니다. 침을 뱉고 싶었습니다. 정말 처음 순례지부터 왜 이리도 슬픈 건지요...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마저 밟아버리는 이런 잔인한 일을 벌이는 나라가 진짜 내가 살아가야 하는 나라인가 싶었습니다. 어른들은 정말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서울 삼성동 한전본사에 가다

영도 한진중공업을 떠나서 간 곳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였습니다. 번듯한 건물 앞 정문에는 경찰 아저씨들이 문을 막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드시라고 온수기에 물을 한가득 담아놓고 커피와 녹차티백을 놔뒀더군요. 그런 기만한 태도에 저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습니다.
한전 앞에서 약식집회를 했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아주 추웠습니다. 저는 서울까지 올라와서 무슨 고생인가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얼마나 더 추웠을까요?

(좌)한전 서문 앞을 가로막은 청원경찰들 (우)서문 앞 약식집회 모습

▲ (좌)한전 서문 앞을 가로막은 청원경찰들 (우)서문 앞 약식집회 모습


여러 주민분께서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실무단 대표단이 한전 전무를 만나기 위해 들어간 뒤 한옥순 할머니와 곽정섭 할머니께서 경찰아저씨들을 향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야, 이 개XX들아. 느그가 그라고도 인간이가?”, “느그는 한전놈들 X닦아주나.”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욕이어서 그렇겠죠?) 한전 전무 아저씨를 만나러 가셨던 실무자 대표단이 나오고 바로 대한문 앞으로 향했습니다.

항의하는 한옥순 할머니와 곽정섭 할머니

▲ 항의하는 한옥순 할머니와 곽정섭 할머니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과 함께 미사와 집회를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에 도착했습니다. 뒤편 부대찌개 집에서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맛있던 부대찌개

▲ 맛있던 부대찌개


그리고 ‘함께살자! 농성촌’ 미사에 함께 하고 그 뒤 바로 집회를 이어서 했습니다. (그날 100명 정도 왔는데 어린이는 저와 홍범이 둘 뿐이었습니다.) 가수 이지상, 밀양 노래패 ‘통’이 노래를, 그리고 사회운동단체 분들이 발언을 하셨습니다.

(좌)함께살자 농성촌 용산추모미사 (우)함께살자 농성촌 집회

▲ (좌)함께살자 농성촌 용산추모미사 (우)함께살자 농성촌 집회


(좌)가수 이지상 공연 (우)노래패 ‘통’ 공연

▲ (좌)가수 이지상 공연 (우)노래패 ‘통’ 공연


집회가 끝나고 숙소인 한남동 여선교회관으로 갔습니다. 저는 기사님과 홍범이와 같이 잠을 잤습니다. 희망순례 첫날이 끝났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14일 하루가 지나갑니다.

평택 쌍용차 철탑농성장에 가다

(좌)쌍차 철탑농성장에서 농성하시는 세 분 (우)철탑농성장 전경

▲ (좌)쌍차 철탑농성장에서 농성하시는 세 분 (우)철탑농성장 전경


이튿날인 1월 15일 아침, 평택에 있는 쌍용차 철탑농성장에 갔습니다. 15만 4천 볼트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 사람이 있다니... 그분들이 철탑 위로 올라갈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올라가셨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있게 될 줄 알았다면 저라도 올라가지 않았을 겁니다. 참 높은 곳에서 고생하시는 것을 보니 코끝이 찡했습니다. 단장면의 송루시아 아주머니와 부북면의 이금자 할머니 두 분께서 발언을 해 주셨는데 발언하는 내내 눈물바람이셨습니다. 저도 또한 눈물을 조금 흘렸지요. 이렇게 추울 때 그 높은 송전탑에 올라 힘겹게 싸우시는 것을 보니 그분들이 요구하는 것을 헛되이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외면과 단장면에서 선물을 증정하는 모습

▲ 산외면과 단장면에서 선물을 증정하는 모습


4개면 주민들께서 손수 기른 농산물과 맛있는 먹을거리를 가져와 선물했습니다.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곧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떠났습니다.

유성기업 농성장과 밀양 도착


(좌)굴다리 위에 있는 홍종인 지회장 (우)굴다리 밑 농성장 모습  <br />

▲ (좌)굴다리 위에 있는 홍종인 지회장 (우)굴다리 밑 농성장 모습


쌍용차 철탑농성장을 떠나고 간 곳은 마지막 순례지인 유성기업 굴다리 농성장이었습니다. 유성기업이 뭐 만드는 공장인지 궁금해 버스 안에서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니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2011년 그곳에서는 끔찍한, 어디 영화에서나 볼 듯한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회사에서 고용한 수백 명의 용역 깡패 아저씨들이 유성기업 노동조합 아저씨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어용노조를 설립했고 민주노조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은 결국 40명도 채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유성기업 농성장에 도착했습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국도 변 굴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위에까지 올라가실 생각을 하셨을까요?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러셨을까요? 안에서 농성하시는 홍종인 아저씨는 키가 185센티미터라고 하셨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시는 것이 얼마나 힘드실까요? 그런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또 가슴 아픈 것은 목에 매고 있는 밧줄이었습니다. 경찰이나 용역 아저씨들이 들어오면 죽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원래 노조 지회장 아저씨라고 하면 우락부락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참 얼굴이 잘생기셨더군요.(ㅅㅅ)
곽정섭 할머니와 단장면에 계시는 어느 수녀님의 발언을 듣고 밀양에서 가져온 선물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희망순례지를 뒤로 하고 다시 밀양을 향해 떠났습니다. 1박 2일간의 여정이 드디어 끝나니 뭔가 뿌듯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문득 나는 특별한 애라고 느껴졌습니다. 왜냐고요? 방학 중에 희망을 주러 갔다 왔으니까요. 방학숙제보다 더 보람찬 일을 한 셈이니까요.

어제의 출발지였던 밀양강 둔치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다들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겠지요. 누구는 산으로, 누구는 집으로, 또 누구는 어딘가로... 이제 모두들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다시 하겠지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이야기를 끝낼까 합니다. 끝으로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덧붙임

박경석 님은 밀양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입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뿐만 아니라 곳곳의 투쟁들이 빨리 잘 끝나길 바라면서 자신의 카메라 가방에 직접 '함께 살자'를 바느질해서 새겨넣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