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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국가가 빼앗은 밀양주민의 삶과 미래

밀양송전탑 건설과정에서의 인권침해

“판사님 저희 늙은이를 제발 살려 주십시오. 큰 욕심 안 부리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 땅에서 농사짓고 그렇게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만약, 그것이 꼭 안 된다면, 송전선을 내 땅위에 꼭 건설 하여야 한다면 나라에서라도 우리 부부를 먹여 살리도록 해주십시오.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밥만 굶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무식해서 잘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나라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한 주민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 마을에 살았고, 30여 년간 가파른 산을 일구어 밤밭을 만들고 거기서 나는 800여만 원의 수입으로 한 해를 살아간다. 그에게 마을은 어릴 때부터 서로 도우며 함께 지내온 이웃들과의 오랜 공동체이고, 땅은 자신이 흘린 땀방울의 역사가 오롯이 쌓인 공간이자 현재 자신의 생계와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데 그는 정부가 자신의 땅에 송전탑을 지으려 한다는 것을 사업이 결정된 5년 뒤에야 알았다. 그러한 변화가 자신의 생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만 정부와 한국전력은 공익을 내세워 ‘법대로만’ 형식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그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 6월에 구성된 인권침해조사단이 맞닥뜨린 주민들이 모습이 그러하다.

여러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인권침해조사단이 한 달 동안 조사해보니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 진행 과정은 ‘공익’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폭력이자, 주민의 삶의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협의 없는 ‘협의’, 묵살된 주민의 결정권

0.6%. 한전이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을 주민들에게 처음 알린 2005년 8월에 있었던 환경영향평가 설명회 때 참석한 주민 비율이다. 정부와 한전은 2000년부터 이번 송전탑 사업을 준비하면서 주민에게는 5년 뒤에나 알렸고, 그것도 몇몇 이장과, 무엇을 위한 설명회인지도 모르고 이장을 따라간 단 0.6%만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정부와 한전은 사업 계획단계부터 부지 선정, 주민 협의의 전 과정에서 형식적인 절차를 밟았을 뿐 ‘협의’는 진행하지 않았다. 이후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갈등조정위원회, 제도개선추진위원회 등 협의체가 구성되기도 하였지만 정작 한전은 논의에 충실히 참여하기보다 협의체 기간에도 밀양 시장을 고발하는 등 공사를 재개하고 강행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협의 없는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청구하고 형사상 고소·고발을 함으로써 주민의 입을 막으려 하였다. 나아가 한전은 공사 강행을 위해 용역을 무리하게 투입하여 주민 한 분이 삶의 터전이 망가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마지막 저항의 방법으로 분신자살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하였다. 결국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은 자기가 살던 땅에서 살던 방식대로 살고, 죽고자 하는 주민들의 욕구가 전혀 보장되지 못한 주민 배제의 과정이었다.

2012년 2월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는 농민 권리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선언은 ‘농민은 자신들의 땅과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프로젝트, 프로그램 또는 정책에 대해서도 정책 구상, 의사결정, 이행과 모니터링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굳이 이런 선언을 들먹이지 않아도 내가 사는 삶의 터전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이를 통해 삶의 변화를 예측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주민들의 의사결정권을 보장하기보다 ‘공익’을 내세우고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에 ‘님비' 딱지를 붙여대며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공익을 위한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인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음은 이미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진정 공익을 위한 사업이라면 그 공익의 또 다른 수혜자여야 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그러나 다른 국책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에서도 실질적인 주민 의견 수렴 미비, 정보의 미공개와 왜곡, 정부의 갈등 상황 방치 등의 문제가 심각하였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과정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주민들이 증언을 하고 있는 모습

▲ 밀양 송전탑 건설과정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주민들이 증언을 하고 있는 모습


땅의 가치를 폄하한 보상의 비현실성

주민 협의를 무시한 정부와 한전은 일방적으로 주민들에게 보상액 혹은 사용액을 공지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반발하자 정부와 한전은 더 많은 직·간접적 보상을 내세웠다. 언론에서도 갈등의 초점을 보상으로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밀양 주민들은 ‘보상은 필요 없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자신의 원하는 방식으로 그대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애초에 보상 문제가 갈등의 핵심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한전이 제시한 보상책에서 주민의 안전과 생존 그리고 ‘삶’에 대한 배려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밀양 주민에게 ‘땅’은 삶의 터전이자 수십 년간 일궈온 삶의 역사가 오롯이 축적된 공간이다. 나아가 자신들이 지금의 생존권과 미래의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보루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전 측은 이를 단순히 ‘공시지가’ 기준으로 환산해버리고 있다. 그러나 지가라고 하는 것은 해당 지역이 얼마나 개발 가능성이 있는지, 수요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 개발 위주의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다. 농촌 지역이 도시 지역보다 땅값이 싼 것은 그 땅의 ‘개발 가치’가 작은 것이지, 사람들의 삶의 공간으로서 ‘땅의 가치’가 평가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한전의 보상은 농민들의 ‘땅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한전은 자신들의 삶의 영역을 일방적으로 훼손한 것에 분노하는 주민의 저항을 ‘보상을 더 받기 위한 행동’으로 치부해 주민들을 모욕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피해는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송전탑 건설이 알려지며 마을 주민들의 땅은 ‘대출 불가’ 딱지가 붙었고, 주민들이 가꾼 작물들은 ‘전자파의 영향을 받은 농산물’로 헐값에 치부될 위험에 놓여있다.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노후를 위해 정착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고 있다. 그러한 모든 피해를 반영하기에 한전의 보상은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한전, 시공사, 경찰의 폭력과 조롱, 괴롭힘

주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 한전은 2009년부터 공사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면서 현장에서 주민과 계속 충돌하였다. 공사 구간이 대부분 산악 지대이고, 고령의 주민들이 많기에 안전사고의 위험이 늘 있었지만 한전과 시공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의적으로 위험한 작업환경을 조성하면서 주민들을 위협하였다. 나아가 주민들을 더 분노하게 한 것은 욕설 등 언어적인 폭력이다. 나아가 한전과 시공사 직원들은 나이가 드신 주민들을 조롱하고 협박, 모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갈등하는 양측의 중재자가 되기는커녕, 위협적 상황에서 보호를 요청하는 주민들을 외면해왔다. 심지어 이치우 님 분신 자결 사건 당시 경찰은 성급하게 단순 과실사로 사건을 처리하려 하는 등 일방적으로 한전 측의 입장에 섰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월 20일 이후 처음 공사 현장에 대규모로 투입된 경찰들도 주민의 안전은 외면한 채 주민을 밀치거나 주민과 굴착기를 연결한 줄을 칼로 그냥 잘라버렸고, 욕설을 하는 등 스스로 인권침해 가해자가 되었다. 공권력 과잉 금지의 원칙, 공정성은 밀양 현장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공정하고 엄격하게 제한된 범위에서 법집행을 하지 않은 경찰에게 큰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을 공동체와 관계의 파괴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사업이 밀양 지역에 끼친 큰 피해 중 하나는 마을 공동체의 파괴이다. 밀양 지역은 집성촌이 있었고, 주민들도 수십 년간 같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서로 품앗이를 하는 등 오랜 기간 협력하는 공동체 관계를 맺어 왔다. ‘옆집에 수저가 몇 개’인지 안다는 그런 농촌 마을이다.

그러나 한전은 주민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주민들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방법을 동원하였다. 한전은 전체 주민들을 대상으로 차분히 설득해 내기보다 ‘지원금’을 명분으로 특정 몇몇 주민과 접촉함으로써 주민들을 이간질하여 관계를 파괴하였다. 특히 한전이 이장이나 대책위원장 등 주민들이 세운 공동체 대표에게 회유 작업을 집중하여, 주민들이 수차례 마을 대표자가 변경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였다. 또한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주변 마을부터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전체 주민의 의사인 양 홍보하여 마을 간에도 원수지간을 만들었다.
한전의 이러한 방식은 결국 형님, 동생하며 지내던 한 마을을 파괴시켰고, 주민들에게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한 고통을 안겼다. 어머니와 아들이, 사촌이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갈려 등을 지고 만나지 않게 되었고, 유언비어 유포와 고소, 고발로 인한 고통은 평화롭게 살아왔던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전쟁보다 깊은 상처

인권침해 조사과정 중 보건의료단체연합이 실시한 건강권 조사 결과 밀양 송전탑 부지 주민의 69.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에 속하였다. 이는 전쟁, 해고 및 농성 진압 과정을 겪은 후에 조사한 비율보다 더 높은 수치로, 전쟁보다 깊은 상처가 밀양 주민들에게 남겨진 것이다. 밀양 주민들은 살던 땅을 잃을 위협과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안타까움, 나아가 한전이나 시공사, 용역, 경찰들에게 당한 위협적이며 무례한 행동에 상처를 받고 있었다.

주민의 의사가 반영된 사업 재검토와 국책 사업에 대한 재고가 필요해

지난 7월 8일은 5월 29일 국회, 한전, 마을 주민이 합의하여 구성한 전문가 협의체가 송전탑 건설 방식에 대해 40일 간 ‘협의’한 결과를 내놓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미 40일 간의 협의 과정에서 한전은 무성의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여당 및 한전 위원들은 한전의 기존 자료를 그대로 베껴 써서 내는 등 협의의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9년간의 일방 통행식 사업 진행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으며 주민들의 아픔, 상처 또한 치유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민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여 밀양 송전탑 사업을 전면 재검토 하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사업은 수도권으로 전기를 전달한다는 것이 초기 목적이었지만 이미 그 목적이 바뀌었다. 또한 밀양 송전탑을 필요로 했던 신고리 3, 4호기는 실질적으로 정해진 기간에 가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9년간 주민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번 사업으로 일상적인 삶과 생존에 영향을 받는 밀양 주민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진정한 ‘협의’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한전의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 혹은 방관하였던 정부는 이 과정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국책 사업의 진행으로 생긴 밀양 주민, 그리고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여야 한다.

나아가 모두가 사용하는 전기라는 미명의 ‘공익’을 내세워,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묵살하고 외면해오고 있는 국책사업 진행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는 대규모 국책사업 시행 시 발생되는 주민과의 갈등을 예방하고,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입법화하여야 한다. 정부는 위와 같은 국회의 입법을 위하여 필요한 협조를 다하여야 하고, 입법이 마련되기 전에도 위와 같은 취지에 부합하게 국책사업을 시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제반의 절차가 마련되기 전까지 밀양의 문제, ‘공익’을 내세운 국가 폭력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6월 5일부터 한 달여 간 진행된 밀양 765kV 송전탑 인권침해조사단 조사 활동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이자 밀양765kV송전탑건설 인권침해조사단으로 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