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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아빠, 그건 만들어지면 안 되는 거였어

아빠. 나야. 나 얼마 전에 밀양에 다녀왔어. 그리고 아빠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내가 아빠한테 했던 말이 나를 계속해서 힘들게 했거든. 우리 제주도 여행 갔을 때, 그 때는 내가 1차 밀양희망버스에 다녀 온 후였고 철도노조가 파업했을 때였어. 카페에 앉아 파업 이야기를 하면서 밀양 얘기도 나왔던 걸로 기억해. 아빠는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했어. 그들은 대화하려 하지도 않고 보상금만 많이 받으려고 한다고 말야. 덧붙여 전기가 부족하면 그 곳이 어디든, 언젠간 생겨야 하는거라고 했어. 그러면서 아빠 말이 틀렸냐고 물었잖아. 그래서 나는 순간 '만들어져야 하는건 맞는데!' 라며 말을 흐렸어. 아빠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봐!'라고 했고.

아빠. 그 말이 나를 아직도 힘들게 해. 내 입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건 맞다는 말이 나왔다는 게 밀양에 다녀온 후부터 지금까지 날 죄의식에 들게 해. 나는 그 때 밀양에 대해 잘 몰랐어. 그저 합의를 받아내려 애쓰는 한전,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내쫓으려는 경찰, 동조하는 밀양시청, 765kV의 송전탑은 사람과 동식물에게 유해하다는 단편적 지식이 내가 가진 밀양 이야기의 전부였으니까. 밀양으로 가는 희망버스에 탔을 때도 그저 연대가 필요한 투쟁지라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이번에 밀양에 가서 알았어. 그건 어디든 생기면 안 되는거 였다는 걸.

 

우리가 지키려는 건 존엄

아빠. 밀양엔 62개의 765kV송전탑 부지가 있어. 그 때, 4곳을 제외하곤 모두 완공되었거나 공사 진행 중이었고, 나는 4곳 중 평밭마을에 위치한 129번 송전탑 예정지로 갔어. 화악산 기슭을 차 타고 십여 분 올라가야 나오는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이야. 예정 부지엔 농성을 위한 움막이 있었고 거기 서면 밀양이 내다 보였어. 그리고 건너편 산에 이미 세워진 송전탑이 보였어. 민트색 페인트가 칠해진 거대한 철탑이고,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곳에 예정된 송전탑과 이어질 것 이었지. 처음엔 그냥 거대하다고만 생각했어. 왜냐면 끔찍한 상황을 단번에 받아들이기엔, 그 곳은 퍽이나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 밥을 나눠 먹고, 수다를 떨고, 마을 어르신 댁에 가서 앵두며 고사리를 따오고, 나는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기분이었어. 그러길 하루, 이틀, 사흘. 나는 점점 건너편 철탑을 보는 게 힘들어졌어. 즐거움에 휩싸이다가도 거대한 철탑을 보면 숨이 턱턱 막혔어. 그건 원초적 두려움이었고 공포였어. 내가 점점 정을 붙이는 곳이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그걸 실행할 공권력에 대한 공포였어. 그리고 생각했지. '밀양'이 지키려는 건 존엄이라고. 우두커니 세워져, 사람과, 또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을 짓밟아버릴, 거대한 철탑이 만들어 낼 공포와 두려움을 막으려고 다들 싸우는 거였어. 가볍던 내 마음에 묵직한 것이 들어찼고, 나는 행정대집행이 들어오는 그 날까지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어.

 

사람에게 절단기를 들이밀던 사람들

그리고 공포가 현실이 되던 날, 행정대집행이 공고된 6월 11일 새벽이었어. 여섯시 쯤 되었나. 경찰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고, 우리는 스크럼을 짜고 움막 뒷쪽에 쪼그려 앉았어. 점점 커지는 경찰의 발소리, 할머니들과 수녀님들의 울부짖음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지. 우리는 곧 둘러싸여, 하지 마세요! 채증하지 마세요! 할머니들 건드리지 마세요! 폭력경찰 물러가라! 와 같은 말들만 쏟아냈어. 목을 빼고 옆을 보니 할머니들이 들어가 계신 지하움막 위에 경찰이 서 있었고, 움막 지붕은 모두 벗겨지고 있더라고. 거기 사람이 있다, 건드리면 할머니들 다 죽는다, 는 외침에도, 경찰은 지체 없이 움막을 벗겨냈고 곧 할머니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어. 나중에 현장 동영상을 보고 알았어. 그들은 지하움막 앞을 막고 있는 수녀님들을 밟고, 우악스레 베일을 잡아 끌어냈다는 걸. 알몸이 되어 목에 쇠줄을 감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절단기를 들이댔다는 걸.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었고, 그들이 '밀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해주는 지표였어. 그런 아비규환이 몇 분이나 계속됐을까. 뒷편에 있던 우리도 끌려나기 시작했어. 언덕 아랫편에 우릴 내려놓았고, 거긴 수녀님들과 주민 분들이 계셨고, 경찰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어. 우리는 모두 울었어. 외침을 외면한 권력에 대한 분노였고 서로에 대한 위로였어. 하지만 괜찮다, 미안하다, 는 말이 오고가기가 무섭게 또 다시 경찰들은 우리를 하나하나 들어냈어. 점점 아래로, 움막과 최대한 먼 곳으로 우리를 옮기고 고착시켰어.

아빠. 나는 늘 개인은 나약해도 '우리'는 강하고, 고립 속에서 연대는 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며 지냈어. 그러나 이 연대를, 전국 곳곳에서 밀양과 밀양 어르신들을 지키고자 온 이 연대의 끈을 끊어버리는 공권력 앞에서 나는 분노하는 걸 제외하곤 할 수 있는 게 없어 너무나 슬프더라.

 

벽 너머로 보는 참혹의 풍경들

우리를 고립시킨 채, 한전에선 공사를 시작했어. 행정대집행이 시작된 지 두 시간이 안 되었을 때였어. 전선이 올라갔고, 덤프차량이 끊임없이 흙먼지를 날리며 우리 옆을 지나갔어. 차가 다닐 길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은 길 중간에서 오열하는 할머니들과 우리들을 길 가로 몰아넣어 벽을 만들었어. 그 때, 경찰 어깨 너머로 언덕 위를 봤어.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움막이 있었던 자리를 헬멧을 쓰고 노오란 잠바를 입은 한전 직원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더라. 머리가 아팠어. 사람들을 쫓아 낸 자리에 기다렸다는 듯 공사차량과 전선이 올라가고,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믿기지 않았어.

한참 뒤에, 움막에서 쓰던 짐들이 모조리 아래로 내려왔고 주민 분들과 같이 짐을 정리했어. 아린 마음 을 감춘 채 어머니 이거 안 가져가세요, 에이 그럼 내가 챙겨야지, 같은 대화를 나눴어. 그 때, 다른 쪽에선 경찰들이 브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밥을 먹고 있었어. 이게 현실인가, 나는 의문이 가시지 않더라.

 

만들어져선 안 되는 것

나는 그날 바로 서울에 갔어. 한전 앞에서 촛불집회를 했거든. 129번을 포함해 농성장 다섯 곳이 모두 철거된 것을 규탄하는 집회였어. 내내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어.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가 마치 몇 년 전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으니 말이야. 왁자지껄 술을 마시고 방에 들어가서야 나는 아까의 밀양이 생각났어. 그리고 불현듯 아빠한테 했던 말이 생각난 거야. 만들어져야 하는 건 맞는데, 맞는데. 말을 곱씹으며 나는 펑펑 울었어. 미안해서, 죄스러워서, 더 일찍 밀양에 가지 못해서, 내가 갔던 그 예쁜 마을, 씩씩한 어르신들, 불침번을 섰던 소나무숲, 앵두를 따 먹던 회장님 댁, 잠을 자고 밥 먹던 움막, 그 속에서 듣던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 어디서 오셨어요, 여기 참 예뻐요 그쵸 그리고 이어지던 침묵. 나에게도 소중해진 그 곳이, 주민들에겐 어떤 곳이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어.

아빠, 그건 생기면 안 되는 거였어. 그건, 어디든, 생기면 안 되는 거였어. 이런 방식으로는 더더욱.

 

밀양을 지키지 못 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지킬 수 없다고

아빠, 평화롭던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의 무서움을, 그리고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자의 무너지는 마음을 나는 몰랐어. 이번에야 알았어. 밀양에서 주민의 목에 절단기를 들이대는 그 무간지옥의 폭력을 경험한 뒤에야, 나는 그 마음을 이해했어. 끊임없는 부르짖음과 호소에, 돌아오는 답은 폭력뿐인 상황에서 말이야.

아빠, 나는 밀양에서 대추리를 봤고 강정을 봤어. 지역만 바뀌었을 뿐 이 나라 도처에서 기계로 찍어낸 듯 밀양과 같은 일들이 있어왔어. 대화도 없어. 대책도 없어. 명분도 없어. 현재 가장 큰 명분이던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 완공이 각종 비리로 중단됐어. 한전에서도 765kV송전탑의 불필요성을 인정하고 앞으론 건설하지 않겠다, 약속도 했지. 이처럼 명분과 이유가 실종된 공사 때문에 그동안 두 명의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남은 주민들도 계속해서 스트레스와 불면에 시달리고 있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 수시로 벌어지는 경찰과의 몸싸움, 돈으로 마을 사람들을 회유하는 자본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주민간의 불화, 이미 끊긴 부동산거래. 평생을 살아 온 마을에서 쫓겨나는 것도 모자라 수많은 것들이 주민들을 덮치고 있어. 이 모습은 대추리에서도 강정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일어났던 일이야.

있지 아빠, 밀양을 지켜내지 못 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지켜낼 수 없어. 그래서, 어렵겠지만, 아빠도, 이제는, 알았으면 좋겠어. 세상엔 나랏일보다도, 만인을 위한 것이라 포장 된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그걸 내가 밀양에서 봤다고,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