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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두의 인권이야기] ‘외부세력’으로 구분 짓고 ‘종북’ 딱지 붙이는 기이한 코스

전국에 많은 투쟁사업장, 인권침해 현장들에 가는 인권단체를 비롯한 연대단위들, 혹은 개인들은 그곳에 ‘연대하러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연대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은 이런 연대단위들을 곧잘 ‘외부세력’이라고 칭한다. 한술 더 떠, 그 외부세력을 다짜고짜 ‘종북세력’이라고 몰아가는 것도 다반사다. 힘에 부쳐하는 이웃과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을 외부세력이라 구분 짓고 종북이라고까지 억지를 부리는 것이 이제는 무슨 코스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그 코스가 밀양송전탑 싸움에까지 적용될 줄은 몰랐다.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장이 마음 아프지만, 특히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은 주로 밀양의 깊은 산골마을들에서 대부분 노인들이 외롭고 힘들게 싸워온 상황이라서 많은 이들이 더 마음 아파한다. 그런 마음으로 연대하러 가는 이들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느닷없이 종북세력, 민폐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밀양 공사현장에 종북세력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진보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이 가세해서 갈등이 더 격해졌다. 이들은 제주 강정마을과 한진 중공업 사태, 쌍용 자동차 문제 등 때만 되면 나타나서 개입해왔다.” 이것이 밀양 송전탑 갈등을 바라보는 여당 원내대표의 시선이고 수준이다.

덮어놓고 밀양에도 써보려 했던 절대반지 ‘종북’

한전의 여론 호도는 다소 유치한 지경이다. 밀양 송전탑을 세워야만 블랙 아웃과 같은 정전사태를 막을 수 있고, 마치 밀양을 포함해 온 국민에게 필요한 전기공급을 밀양주민이 이기적으로 막고 있는 것처럼 왜곡해왔다. 기업들에게 원가보다 싼 값으로 전기를 퍼주는 정부와 한전의 잘못된 에너지 수급정책과 전기 수요관리 실패, 그리고 그 위에 잘못 설정된 채 강행만 고집하는 비뚤어진 국책사업. 이것이 밀양 갈등의 본질이다. 그런데 여기에마저 덮어놓고 종북딱지를 붙여보려는 이들을 보며 참 뜨악했다. 종북딱지를 절대반지쯤으로 여기는 걸까. 분단된 나라여서 가능한 일인가 싶어 씁쓸하다.

시골 노인들을 욕보이는 국가에 대한 절망감

앞서 TV조선과 뉴시스 등 일부 언론에서 밀양의 공사현장에 주민들이 공사반대의 결의를 표현하고자 파놓은 무덤자리와 올가미 밧줄, 휘발유 등을 보도하면서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그 무덤을 파주고 주민들의 시위를 유도했다는 악의적인 보도가 있었다. 실제 그 무덤에 들어가 앉아있는 할머니들을 보고 있자면 섬뜩하다. 과격한 시위방식에 대한 거부감에 섬뜩한 게 아니라, 노인들을 벼랑으로 기어이 내몰고 한전과 경찰을 앞세워 시골의 노인들을 욕보이는 국가에 대한 절망감이다.

무덤과 올가미는 과격한 결기가 아니라 주민들이 힘이 없음을 보여주는 역설. <사진 출처>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감시단<br />

▲ 무덤과 올가미는 과격한 결기가 아니라 주민들이 힘이 없음을 보여주는 역설. <사진 출처>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감시단


무덤과 올가미, 휘발유는 과격한 결기가 아니라 거꾸로 주민들이 힘이 없음을 보여주는 역설(逆說)이다. 수적으로, 물리적으로 경찰과 한전에 상대가 되지 않는 힘없는 노인들이 택한 시위방식이다. 왜 그렇게 무서운 방법으로 과격하게 싸우냐고 하기 전에, 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들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언론들은 듣지 않고 자극적인 장면만을 찍어다 날랐다. 필자가 인권침해감시단으로 밀양에 가있던 날은 그 무덤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 보도가 나갔던 다음 날이었다. 또 많은 언론들이 주민들을 찾아왔고 그 날의 첫 질문은 대부분 “무덤을 누가 파줬는가?”였다. 주민들은 “내가 팠지, 누가 팠느냐!”며 질색을 했다. 주민들이 불쾌해하는 것 중 하나가 주민을 주체적인 의견을 가진 이들로 보지 않고 외부세력에 의해 세뇌되어 움직이는 것으로 치부하는 점이다. 또 언론의 취재나 인터뷰에 기껏 응했는데 왜곡해서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겪으면서 주민들은 언론에 대해서도 깊은 상처와 불신을 갖게 되었다.

무덤과 올가미는 과격한 결기가 아니라 주민들이 힘이 없음을 보여주는 역설

밀양송전탑은 그동안 신고리 원전을 빨리 가동하기 위해 서둘러 추진되어왔다. 한전이 해외에 수출한 원전이 아직 사용되지 않은 모델이고, 해외 착공 전에 한국에서 가동해봐야만 위약금을 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험 가동이 신고리 원전이고 신고리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북경남 변전소로 수송하는 것이 밀양 초고압 송전탑이다. 해외 수출 원전을 위해 국민을 상대로 노후 원전을 시험가동 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원전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신고리 3, 4호기 부품 테스트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원전 가동은 무한정 미뤄진 상태이다. 한전이 밀양송전탑 공사 강행의 근거로 내세웠던 것이 이처럼 엉망이 되었는데도 한전은 강행을 고집하고 있다.

핵 발전 자체의 위험은 지역을 떠나 전 세계가 걱정하고 있다. 세계는 후쿠시마 핵사고로 다시 한 번 핵의 재앙을 몸소 겪었다. 후쿠시마의 영향으로 제주도 갈치와 부산 고등어가 아프리카 세네갈 갈치 값보다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온다. 당장 제주 어민들까지 피해를 보고, 멀리 미국 시민들도 해류를 타고 올 방사능을 걱정한다. 그런데 후쿠시마 현민 외에 다른 지역, 다른 나라 사람들이 후쿠시마 일을 걱정하고 이야기하면 외부세력인 건가. 핵사고는 후쿠시마에서 일어났지만 전 세계의 일이 되어버렸다.

후쿠시마를 걱정하고 이야기하면 그 또한 외부세력인가

밀양송전탑 갈등은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에너지 수급문제,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인한 장기간의 사회적 갈등비용. 이런 것들이 어떻게 밀양이라는 한 지역만의 일인가. 그럼에도 엄용수 밀양시장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밀양에서 외부세력을 당장 추방해야 한다”, “밀양송전탑 건설을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들의 논리대로 말한다면, 외부세력이 개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부디 내부세력이 알아서 잘 해줬으면 좋겠다. 밀양송전탑 건설이 그들 주장대로 정말 필요한 사업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어야할 국책사업이 맞다면 직선거리, 최단거리로써 송전선로는 일부 경북지역도 지나야한다. 밀양시장이고 경남도지사라면 중앙정부, 경상북도, 한전과 그런 협의를 해보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밀양과 경남을 대표하는 이들이 감투가 요구하는 역할은 하지 않고 누구의 ‘대승’을 위한다는 것일까. 시장과 도지사는 시민과 도민의 대표자로서 주민들이 계속해서 주장해온 송전탑 건설 백지화와 송전선로 지중화에 귀 기울이고 이를 모색해야 함이 마땅하다.

나눔. sharing, 또는 division

언제부터 누가 이렇게 내부와 외부로 나누고 장벽을 치고자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방인을 배척하는 오랜 문화에서 비롯됐을까. 아마도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람살이가 파편화되어 ‘가르기’가 심화되면서인 것 같다. 공동체 안에서는 함께 공유하던 많은 것들을 내 것, 내 지역, 내 일로 가르면서 거꾸로 실제 가지고 누리는 건 적어지고, 각자가 가진 것들을 지키느라 나와 너로 구획이 나뉘어졌다. 품앗이가 없이는 살 수 없고, 네 일이 내 일이던 공동체 안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적이었다. 공동체와 함께 인간성도 위협받는 시대는 이제 자기 일 외에 우리 일을 돌보려는 이들을 외부세력이라고 칭하고, 인간과 인간을 더 분리하고자 한다.

마음과 시간을 기꺼이 이웃과 나누는 선한 사마리아인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이 직접 만들어 나누어주던 유인물<br />

▲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이 직접 만들어 나누어주던 유인물


지난 10월 중순, 민가협 목요집회에서 뵌 한 할아버지께서 직접 만들었다며 유인물 두 장을 주셨다. 밀양 송전탑 건설이 중단되어야 함을 호소하는 짤막한 문구들과 그림,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인이 신문 등에서 문구와 그림을 모아 오려붙여서 복사했다고 하셨다. 유인물을 건네주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해봤어…….”라고 하셨다. 할 수 있는 한 이웃과 함께 하려는 이들,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것이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는 이들이 성경 속 착한 사마리아인이고 지금 시대의 외부세력이다.
덧붙임

강은주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