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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용기, 일상에서 겪는 부당함에 맞서는 시작

“엄마는 왜 경비아저씨한테 그렇게 화내?”
“아니 아파트관리비 꼬박꼬박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저렇게 제대로 안하면 화나지...!”
“학원에도 돈 내면서 지난번에 학원 선생님한테는 그렇게까지 안 했잖아?”
“......”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 중 한 가지씩 써보자고 제안하자 한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아파트 현관문에 문제가 생겨 경비실에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에 늦게 들어갔구요. 헐레벌떡 도착한 경비아저씨에게 엄마가 심하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더라구요. 학원 선생님한테 짜증내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그렇게 짜증을 내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학원 선생님과 경비노동자의 노동은 ‘돈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 노동’이라는 점에서 같은데 어떤 노동을 하는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 대우는 부당하다는 얘기였다. 이런 부당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이런 부당함을 읽어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일상의 부당함에 맞서는 힘 갖추기는 단시간 교육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부당함을 겪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그 일을 겪는 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인식까지 꽤 많은 학습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당함에 맞서는 힘 갖추기를 단시간 1회 교육 목표로 삼기는 매우 어렵다.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요청한 2시간짜리 1회성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앞둔 고등학생들은 나른하거나 지쳐 있기 마련이었다. 이 시기 시험과목에도 없는 인권교육을 진행할 때는 많은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 이 학교는 인권 담당 교사가 인권교육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인권동아리가 있는 혁신학교라 했다. 수능이 코앞에 있는 3학년이 아닌 1, 2학년 학급별 수업이니 중간은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만남을 준비했다.

인권의 감수성을 깨우고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고 부당함에 맞서보기까지... 최소한 담아야 할 내용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내용에 맞는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은 교육을 준비하면서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였다. 학생들과는 PPT를 중심으로 질문하면서 전체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모둠별 활동보다는 전체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적절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참여자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끌어내기 쉽도록 한 장짜리 학습지도 만들었다.

LOVE 혹은 HATE 혹은 NOTE


첫 시간은 준비한 PPT 자료를 보면서 질문을 던지고 전체가 함께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림과 장면들을 제시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입장에 따라 다르게 펼쳐지는 상황들을 살폈다.


“이 그림이 어떻게 보이세요?”
갸웃갸웃 하던 학생들이 앞다퉈 대답한다.
“LOVE요~”, “어? HATE 같은데?”, “어디어디?”, “에이~ NOTE 잖아~”, “ㅋㅋㅋㅋ”

같은 그림을 보면서 대답하는데 이렇게 다양했다. 그림은 하나지만 어디를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어떤 곳에 눈길이 먼저 가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글자로 읽힌다. 인권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인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혼자서 경비실을 지키며 동분서주했을 경비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느냐,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럼, 이 그림은요?”
“왼쪽 사람이 오른쪽 사람 찌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오른쪽 사람이 당하는 것 같아요.”, “영화 찍는 거 아니에요?”, “ㅎㅎㅎㅎ”

전체 그림을 보여주자 왼쪽 사람과 오른쪽 사람의 뒤바뀐 처지가 나타난다. 오히려 오른쪽 사람이 위협적으로 왼쪽 사람을 쫓고 있는 모습이다. 학생들 표정에 잠깐의 울림이 지나간다. 하나의 장면과 사건이지만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많은 경우 언론에서 보여주는 상자 속 이야기만이 전부이고 진실인 양 알고 지나게 된다. 왜곡된 그림이 전체로 각인되는 이유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지내지만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숨어 있는 진실이 읽히기도 하고 묻히기도 한다. 그리고 진실을 읽어내는 비판적 사고를 키워가는 것, 그것이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콜빈과 같은 용기가 있다면?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기 시작하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의문이 가기 시작했다. 가려져 있던 많은 사실 혹은 새롭게 읽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이 눈앞에 하나 둘 나타났다. 우리는 1955년 로자파크스의 흑인차별적인 버스정책에 대한 저항을 흑인인권 회복 운동의 시작으로 알고 있다. 15세 여성 클로뎃 콜빈의 저항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중 하나다. 나이 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쉽게 무시되거나 잊혀지는 이유는 누구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때문일까? 의문을 품어 보자고 했다.


버스 자리를 백인에게 양보하지 않고 당당하게 버스를 이용하겠다고 저항하다가 여러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던 콜빈. 만약 나에게도 콜빈과 같은 용기가 있다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것’ 또는 ‘꾹 참지 않고 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학습지에 붙여 놓은 포스트 잇에 적어달라고 했다. 학생들의 평소 생각과 고민에 대해 알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출신 대학에 따라 차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성적에 따라 대우가 다른 것은 못 참겠어요.”, “대학에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이 바뀌면 좋겠어요.”, “노동자도 8시간 일하는데 학생도 공부시간이 8시간이 안 넘어가면 좋겠어요.”, “1초만 늦어도 지각처리하고 벌점 받는 건 부당해요.”, “A코스 B코스 선택해서 먹는 급식이면 좋겠어요.” 등등. 입시제도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 교육제도와 학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과도한 학습량과 학습시간, 학교의 지나친 규율과 형편없는 급식의 변화를 주문하는 내용, 셧다운제 폐지 등 평소 학교나 가정을 포함 사회에서 겪었던 부당한 일들 중 바꾸고 싶은 것들을 쏟아냈다.

내가 꽂힌 교육 정책 골라 골라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두 번째 시간에는 포스트 잇에 적은 많은 이야기 중 교육정책과 관련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청소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이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시하였다고 가정하고, 후보자들이 내놓은 다음의 정책 예시 가운데 가장 꽂히는 내용과 그 이유를 간단하게 적어달라고 했다.


부당한 지시 거부권 & 까임 방지권 보장’혹은 ‘투표 연령 인하’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학생이‘학력에 따른 임금 차별 금지’, ‘대학까지 무상교육’정책을 지지했다. 진로고민=대학진학고민인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답이 당연했는데... 대학진학 압박에 하루하루가 답답한 학생들의 입장을 잠시 잊고 있었다. 정책에 따라 해결방향을 모색해 보고 가능한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훌쩍 갔다. 참여를 통해서도 변하지 않는 현실(반바지 여름 교복을 찬성하는 투표 결과에 대해 학교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논의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태도)에 냉소적이 되거나, 책임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급식의 경우 지자체와 교육청 등에서 예산 확보, 학교는 그 예산에 따라 집행하기 때문에 급식불만에 대해 학교는 예산탓만 하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 현실)포기하게 되었던 경험들을 쏟아내 실마리를 풀어봤다.

이렇게 많은 정책들이 청소년/학생인권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투표권 확보가 우선 아니겠느냐고 물어봤다. ‘투표는 부모님한테 내 생각대로 찍어달라고 하면 된다.’, ‘어차피 안 바뀔건데요 뭐...’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투표를 통한 참여나 직접 행동 등을 통해 변화를 일궈낸 경험이 없었던 걸까? 더 이야기를 나누려했지만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을 바꾸고 지지하는 정책들이 현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냉소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콜빈처럼 용기를 갖고 부당함에 맞서 보길 기대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반을 옮겨야 하거나 방학 전 단축시간에 맞춰야 하는 등 학교 교육에서 꼭 있는 이런 변수로 인해 충분한 시간확보는 늘 과제고 아쉬움이다.) 학생들이 교육을 마친 후에라도 꼭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내가 겪는 부당함에 맞설 용기를 갖는 것은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준비한 내용을 교육시간에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이들이 살면서 부당한 일을 겪을 때 이 말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서 유독 부당한 질문을 많이 받는 청소년의 입장 그리고 학생의 입장에서 말이다.

덧붙임

수정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