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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차별의 퀼트를 짜볼까?

각자의 문제로 조각난 차별 이어붙이기

“차별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나와는 상관없는 소수의 문제다.”, “동성애자가 차별받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동성애자와 엮이는 건 싫다.” 인권교육에서 차별 문제를 다루다 보면, 이런 태도를 자주 접하곤 한다. 소수자의 문제가 결코 소수의 문제가 아님을, 섞임을 저어하는 것이야말로 차별의 가장 깊은 내면일 수 있음을 나누고 싶지만, 마음만 앞서다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한 번의 교육으로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치더라도, 각자의 문제로 조각난 차별들 사이의 '상관있음', '연결되어 있음'이라도 감지하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고민은 시작됐다.

날개 달기 - 문제를 달리 내면 답도 달라지지~

"동성애자, 장애인, 청소년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을 찾아보세요.", "동성애자, 장애인, 청소년 등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찾아봅시다." 지금까지 인권교육에서는 이와 같은 과제를 내어주고, 정체성으로 구분된 '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왔다. 물론 각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 혹은 각각의 소수성이 구성되고 유지되는 맥락에 대해 하나하나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말하면 할수록, 의도치 않게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그들'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각각의 소수성에 대해 살피기 전에 먼저 '우리와 그들'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작업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그런 고민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바로 초대장 목록을 뽑아보는 프로그램이다.

먼저 차별의 현주소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나이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 한국인다움과 남자다움이라는 폭력적 구분의 잣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노동하고 있어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보도록 했다. 한 모둠 안에서 찾아낸 목록이 한정적일 수 있기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지를 옆 모둠으로 돌려 목록을 추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위키백과'가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수정을 거쳐 하나의 개념 사전을 완성해가는 방식에 착안한 것인데, 여백이 많았던 전지가 새로운 모둠을 만날수록 빼곡해졌다.


더불어 날갯짓 - '그들'과 '우리'가 한 우산 아래 모이다

먼저 '나이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청소년에서부터 일할 능력도 동기도 충분한데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노인까지 연령적 소수자는 물론이고, 클럽에 가고 싶은 40대, 노처녀․노총각 등 이른바 '생애주기'에 따른 연령다움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초대장을 받았다. 연령차별이라고 하면 청소년이나 노인만을 떠올리거나 연령이 낮을수록 더 많이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사실상 나이에 따른 위계나 생애주기를 둘러싼 고정관념으로 인해 차별받는 이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짚어졌다.

'한국인임을 끊임없이 의심받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응원하지 않는 사람, 국방․납세의 의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사람을 비롯하여, 다문화가정 2세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 김치 못 먹는 사람 등 전형적인 신체․문화적 특성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초대장을 받았다. 관습과 법률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관습과 법률이 일방적으로 정한 방식대로는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국인임을 의심받고 차별의 위험 아래 놓인다는 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자주 우는 남자, 여성들과 말이 잘 통하는 남자, 게이처럼 전형적 남성성에서 벗어난 이들, 그리고 백수나 전업주부처럼 사회가 남성에게 부여한 의무나 성역할에서 벗어난 이들이 초대장을 받았다. 초대장 목록을 살펴보다 보면, 사회가 규정한 남성다움을 충족시키는 남성이 오히려 소수임을 알게 된다. 또한 '그들'의 문제로 생각했던 자리에 학생다움, 아이다움, 어른다움, 여성다움 등 수많은 '~다움'의 폭력 앞에 놓인 '우리'가 등장한다.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시설 거주 장애인과 청소년, 노인을 비롯하여 여관, 고시원, 무허가주택, 차량 등 집다운 집이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처럼 집이 감옥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초대받았다. 주거빈곤층과 시설 거주자, 폭력 피해자의 삶이 하나의 우산 아래 모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집다운 집'의 물리적․자연적․문화적․정서적 요건들도 정리된다. 마찬가지로 '가짜노동자대회'에는 가짜 사장의 허울을 뒤집어쓴 채 노동권을 박탈당한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비롯해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학생, 무급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주부, 구직노동을 수행하는 실직자, 봉사와 신앙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는 종교시설 노동자, '나눔노동'을 수행함으로써 생계를 연명할 수밖에 없는 걸인 등이 초대장을 받았다. 앙상하기 짝이 없던 노동권의 보호 지대로부터 밀려난 사람들과 아예 노동하고 있어도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짜 노동자라는 우산 아래 함께 모인 것이다. 둥지를 잃은 이들과 가짜 노동자라는 멍에를 짊어진 이들의 존재는 가장 값싼 방식으로 이 사회를 유지하면서 이득을 챙기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다시금 하나의 우산 아래 모인다.

머리를 맞대어 - 차별의 그물망에 함께 갇혀 있다는 발견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포스터

▲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포스터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을 잃은 깡통, 용기 잃은 사자는 어쩌면 차별이 굳건한 삶의 질서로 자리 잡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차별의 그물망에 갇혀 있는 건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이기도 함을 꿰뚫어보는 지혜, 차별의 그물망에 갇힌 이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 차별을 자연화․정당화하는 구조에 맞설 용기는 아쉽게도 마법사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 허수아비와 깡통, 사자가 모험을 통해 원래 자기 안에 있던 힘을 발견해냈듯이, 인권교육도 참여자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힘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그 시작이 차별의 그물망에 갇혀있는 이들의 존재를 이어 붙여 나와 '상관있음', '연결되어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하도록 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덧붙임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