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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두 가지 프로그램을 융합해 새로운 프로그램 만들기

인권교육을 업으로 삼은 지 어느 덧 5년째. 일주일에 대략 두세 번 정도 교육을 진행한다. 매 교육마다 기획을 새로이 하긴 하지만, 비슷한 조건과 목표를 가진 교육의 경우 유사한 프로그램을 가져가게 된다. 인권교육가도 노동자이며, 사람인지라 같은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노동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아, 뭔가 지겨운데, 다른 프로그램은 없을까?’를 늘 고민하지만, 또 막상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안정성을 검증받은 프로그램을 완전히 버리기도 뭣하다.

지난 6월, 부천의 한 청소년수련관에서 인권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앞두고도 비슷한 고민에 휩싸였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다 스친 생각! 자주 활용했던 2가지 프로그램의 장점을 살려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금부터 소개할 ‘이 권리를 필요로 하는 청소년, 여기 여기 붙어라~’이다. 인권교육센터 ‘들’ 창립 초기부터 줄곧 활용한 권리 그림 카드와 지난 제350호 <인권 오름>에서 소개한 초대장 목록 뽑기 프로그램([인권교육, 날다] 차별의 퀼트를 짜볼까? - 각자의 문제로 조각난 차별 이어붙이기)을 융합해 기획했다.

날개 달기- 권리도 상상하고, 함께 할 사람도 찾고


여는 강연으로 인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나누며 청소년인권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현실을 간략히 짚은 후, 본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권리그림 상단에 있는 권리 이름들은 나중에 공개한 것이고, 처음에는 권리 그림만을 보여주고 이 그림과 어울리는 권리의 목록들을 자유롭게 상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권리 목록을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러한 권리를 빼앗긴 존재들, 잘 누리고 있지 못한 존재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교육에 참여하신 분들이 앞으로 인권 모니터링 활동을 하게 될 분들이기 때문에 권리 목록을 아는 것과 함께 내 주변의 ‘사람’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도 필요했다. 권리 목록에 대해 참여자 전체와 함께 충분히 이야기한 후, 모둠 활동으로, 다음과 같은 권리 목록이 꼭 필요한 청소년을 각각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장애 청소년, 다문화 청소년’ 등 소수자 정체성을 그저 꼽지 않도록 주의해서 안내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직접 마주했던, 어떠한 구체적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찾자고 예를 들어주는 것도 좋다. 이를 테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존중 받을 권리’ 카드는 ‘교사에게 의견을 제시하는데 말대꾸한다고 벌점을 받은 청소년’에게 꼭 필요할 것이다. 한두 가지 예시를 나누고 나니, 모둠별로 권리 카드를 중심에 놓고 빼곡하게 여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날갯짓- 경쟁이 있으면, 성적이 낮아도 괴롭고 높아도 괴롭다!

초대장 목록 뽑기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권리 카드 아래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이 모였다. 그저 학교를 다니고, 수업 시간에 앉아 있다 해서 공부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공부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공포 없이 내 삶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재미나게 공부할 권리’가 필요하다. 참여자들이 꼼꼼하게 찾아준 존재들을 함께 살펴보니,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이 ‘재미나게 공부할 권리’ 아래 함께 모였다. 이유를 물으니, “공부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수업시간이 괴롭고, 공부를 잘해도 늘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하고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하게 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성적에 따라 줄 세우고, 학생들을 경쟁시키지 말라는 주장을 마치 ‘노력은 다하지 않고, 공부하기 싫어 떼쓰는, 성적 낮은 학생들’의 자기합리화 인양 비꼬는 사람들을 향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그밖에도, 일상에서 마주했던 여러 친구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찾았다. ‘수업시간에 늘 엎드려 있는 아이’, ‘자신감이 없어 토론 수업 때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친구들’, ‘부모님이 마음대로 학원에 등록시켜 억지로 학원을 다녀야 하는 친구’도 등장했고, 심지어는 본인의 이름을 써놓은 참여자도 있어 다 같이 웃으며, 그 분의 기나긴 사연을 듣기도 했다.


‘차별/모욕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아래도 여러 구체적 존재들이 모였다. 학교의 제도나 교사에 의한 차별도 등장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의 차별 이야기도 쏟아져 나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처럼 특정 취미를 가진 학생이 교실 안에서 따돌림이나 차별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메이커만 입는 애’, ‘유행에 뒤떨어진 옷을 입는 애’와 같이 ‘적당히 모두에게 묻어가고, 맞출 수 있는’ 기준에서 벗어난 ‘남다른(튀는)’ 청소년들이 겪게 되는 차별도 있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학교의 문화는 학생들 사이의 문화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왕따를 당하는 애들은 뭔가 좀 독특하고,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한 참여자의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럴 때, “같은 반이면 모두가 친구니까, 따돌림 없이 다 같이 친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언사는 아무런 울림을 낳지 못한다. 왜 학교 안에서는 서로의 차이가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는지, 서로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한데 왜 ‘모두와 친하게 지내라’는 불가능한 기획을 학생들에게 계속 강요하는지, 결국 어렵지만 중요한 건 관계 맺기의 적절한 거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지 이야기 나누는 사이 어느새 교육 시간은 후반부로 나아가고 있었다.

머리를 맞대어-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 권리

권리는 구체적인 존재를 만나 생명력을 얻는다. 존재를 만난 권리는 행동을 낳고, 실천을 낳는다. 나의 힘듦과 상처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발견하고, 나의 상처가 나만의 상처가 아님을 확인하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고, 갈증을 느끼는 참여자들을 마주한다. 앞의 프로그램에 덧붙여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학교를 바꾸기 위해 실천한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들을 소개한다. 그렇다고 해서, 곧장 어떠한 용기 있는 실천들이 터져 나오진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권교육이라는 짧지만, 자유로웠던 시간 밖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고, 아마도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또다시 ‘문제집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험이 수면 아래로 켜켜이 흐르다 어느 시점에선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어쩌면 자족일지 모를;) 믿음을 갖고 교육을 마무리한다. 인권 모니터링을 진행하면서, 더 궁금하고 만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면 다시 보기로 약조했으니, 그 시점은 더 빨라질 수도 있으리라.
덧붙임

한낱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