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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유혹] 0 번째 수신확인: 당신의 얼굴이 보이는 이야기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오월의봄, 2013.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는 2년 전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들이 다양한 정체성의 소수자들을 만나 그들의 생애사를 듣기 위한 기획으로, ‘그렇고 그런’(?) 인터뷰를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그렇고 그런 보고서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친다. 그건 바로, ‘너무 소중한 얘기들을 들어버렸다’ 는 것. 이 예기치 못한 수신은 새로운 시도로써 ‘이야기(민족지학적 허구)’를 불러들였고, 변두리스토리는 1차로 반차별 활동가들에게 ‘수신확인‘되었다.

2007년 차별금지법 7개 조항 삭제와 관련하여 시작된 대응활동, ‘반차별공동행동’에서 진행된 반차별 활동과 연구,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 그리고 지금의 출판에 이르기까지 반차별 운동의 지난 몇 년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반차별 운동에 은근 관심도 있었고 슬쩍 불만도 있었다. 2008년이었나. 우연히 딱 한 번 반차별공동행동 워크숍에 간 일이 있다. 그 때 받은 보라색 자료집 하나를 형광펜으로 밑줄 쳐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겁나게 어려워서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는데도 낑낑대며 읽었던 건, ‘차이’ 나 ‘복합차별’ 같은 모호한 개념들 너머에 있는 어떤 가능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이라는 말로 표현했었다. 이러한 모호한 느낌으로밖에 포착할 수 없었던 그, 가능성.

‘수신확인-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여러 겹의 수신을 중첩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진 최초의 발신과 수신, 변두리팀이 건넨 ‘이야기’와 반차별 활동가들의 수신확인. 그리고 이제는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의 수신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수신자들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보태질 것을 믿으며 여기, 0번째 수신확인을 부친다.


어떤 재현 - 도가니, 그리고 ‘수신확인’

실화 바탕의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장면 장면의 이야기에 마냥 빠져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 겨울 창문을 열면 찬바람이 피부에 와 닿듯 현실감이 다가올 때가 있다. 아, 저게 정말로 있었던 일이지. 아, 저 사람은 지금도 한국 땅 어딘가에 있겠지. 영화 ‘도가니’를 볼 때도 어김없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현실. 폭력의 재생. 도저히 화면을 볼 수가 없었다.

‘수신확인’ 을 읽다보면, 한 번씩 어딘가를 향해 시선이 오래도록 멈출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신…. 글 뒤에 서있는 당신이 보인다. 이름만 떠올려도 먹먹해지는 혜숙의 얼굴. 자신을 닮은 딸을 바라보는 수민의 눈빛. 승민, 이숙과 서윤, 불안과 배제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낸 사람들 특유의 단단한 표정. 내가 알 리가 얼굴들이 보이는 것만 같다. ‘수신확인’ 에도 정갈한 글씨들로 빼곡한 한 페이지의 면처럼 화면이 있다. 화면은 이야기를 매개로 해서 ‘당신’ 을 재현하는 창이고, 이 책은 창을 갖는다는 점에서 다른 픽션과 같다. 그리고 창은 물론 거울이 아니다. 혜숙, 수민, 이숙, 서윤, 명희들을 그대로 옮겨낼 수는 없다. 그러나 책에서 눈을 떼고 이야기 바깥의 세상을 본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무수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천천히 바라본다.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와 시장 한 구석에서 나물을 팔고 있는 등이 굽은 할머니. 혹은 친한 친구, 또는 매일 보고 사는 가족. 이야기가 현실에 대한 완전하지 않은 재현이라면, 사람은, 우리의 눈은 누군가를 그대로 볼 수 있는가? 당신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도가니’는 상업영화의 한계에 충실하고, 그 스토리텔링은 사회가 약자를 수용하는 보수적인 감성의 형식을 그대로 닮아있다. 특정 사건을 조명한 극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영화의 관심은 철저히 저 끔찍하게 불쌍한 아이들과 사건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데 집중된다. 실화에서 피해, 비극, 고통과 같은 극적인 요소만이 소환된다. ‘실제 그들은 어떤 사람들 이었는가‘를 물어볼 공간도 없이, 화면을 빽빽이 채우는 것은 강렬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가련한 이미지뿐이다. 상업영화는 팔리는 영화를 만든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든다. 아마도 다른 매체, 이를테면 신문 기사였다면 ‘수신확인’ 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 쉽사리 이런 식의 묘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한 이주여성, 공장의 노동착취 끝에 병사한 이주노동자, 가난과 차별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트랜스젠더. 이런 식의 요약은 무척 손쉽다. 대부분 이렇게 보고, 쓰고, 전한다. 소수성은 기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왜곡된 채 유통된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초점이 어긋난 안경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그 안경에는 소수자가 비춰지지 않는다.

삶을 전송하다

창은 거울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소수자를 그려내는 기존의 방식을 수용하느냐, 아니면 대안적인 형식을 새로이 만들어 내느냐 하는 정치적 선택의 차원일지도 모른다.

김일란 님이 쓴 ‘수신확인- 찰나의 풍경’ 은 책의 저자들이 글을 쓰며 했던 고민이 어떤 것들이었을지 짐작하게 해준다. 성소수자 다큐를 통해 찰나의 풍경을 담고 싶었던 감독은 ‘감정’ 으로서, 인터뷰가 아닌 ‘순간’의 이미지로, 선명하고 가시적인 차별이 아닌 찰나적이고 반복적인 차별로서 재현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고 말한다.

9편의 이야기는 시종 담담한 어조로 흐르는 물처럼 진행된다. 고통과 슬픔의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을 부러 부각시키지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병원 로비를 청소하며 ‘내 일’을 하다보면 다시 찾아올 ‘내일’처럼 생은 연속된다. 모든 순간, 모든 감정이 생의 일부다. 찰나의 풍경과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동시에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어느새 차별이라는 글자 대신 사람을 불러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민우는 계약직으로 사무직 일을 할 때 만났던 상사 같기도 하고, 서윤의 중학교 시절은 마찬가지로 한동안 혼자였던 내 고등학교 때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숙의 이야기는 도입부가 다른 20대 여성들의 얘기들처럼 하도 평범해서 이력서에서 장애 칸을 쓸까, 말까 하는 부분에 이르러서야 장애가 있었구나 하고 알았다. 내가 내 삶을 느끼는 평범한 감각으로 타인을 만난다는 건, ‘평범하지 않게’ 여겨지는 소수자들을 만날 때 특히 더 중요한 태도인 것 같다. 누구도 자신을 한 가지 정체성으로 제한해서 매일 같이 의식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장애인인데 왕따 당하지 않는 걸 감사해라‘고 한 이숙의 담임선생처럼 사회로부터 한 가지 정체성을 자신과 동일시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초점이 어긋난 안경을 쓰고 있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를 정하는 것은 상을 그려내는 사람들의 사이의 싸움인 것 같다. 사람의 특정 부분을 골라내어 이용하는 차별적 시선에 맞서려면, 대안적인 시선이 삶의 복합적인 면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성찰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시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리 떨어뜨리는 힘이 차별이라면

예전에 제주 강정에서 구럼비 발파 건으로 인터넷에서 난리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는 친구들 몇 명이 대뜸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갔다. SNS에 실시간으로 뜨는 사진을 보면 전경과 대치중인 사람들 틈에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난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 달음에 달려가는 그 친구들이 이상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왜. 왜, 그렇게까지. 어쨌든 상황이 위험해보여 노심초사 하면서 사무실에서 계속 상황을 전하는 기사를 검색했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사무실 다른 직원들은 뻔히 올라오는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도 감흥이 없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다고 얘기해줘도 ‘그러냐’ 할 뿐이었다. 무관심했다.

나와 너 사이, 마음의 거리는 이렇게나 멀다. 서울과 강정 사이의 물질적인 거리는 ‘너’를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한달음이 되기도 하고, 불가능한 거리가 되기도 한다. ‘내 일’과 ‘내 일이 아닌 것’ 을 구분하는 이 단절이 내게 전해 온 많은 수신을 쳐내고 있었음을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리 떨어뜨리는 힘이 차별이라면, 서로 이끌리는 힘은 차별에 맞서는 힘이다.‘ 이제는 나에게 도착한 누군가의 수신을 확인할 차례다.
덧붙임

엠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