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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유혹] 철거민이 되기 싫었던 소설가의 유쾌한 철거농성일지

『매력만점 철거 농성장』, 유채림, 실천문학사, 2012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스친 인연만으로 사정을 다 알기는 어렵다. 두리반 철거반대농성과 내가 맺은 인연이 그렇다. 531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각들이, 인연들이, 싸움들이 있었겠는가. 그 속내를 볼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바로 두리반 농성 철거민 남편이었다가 철거민이 되었던 소설가 유채림 씨가 두리반 농성일지를 책으로 엮어낸 『매력만점 철거 농성장』이다. 작년 말에 받았지만, 최근에야 읽었다. 정말 재밌고, 매력적인,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나란 존재의 이중성’, 그에 따른 갈등과 변화가 민낯 그대로, 그러나 재미있게 그려져서 밤새 읽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추천하는 도서 1위다. 어떻게 농성일기를 이렇게 재밌게 쓴단 말인가!

정작 내 일이 되니까 발뺌하고 싶은 마음

내가 이 책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단지 글 솜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른바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아니 소시민이 아니어도 누구나 갖고 있음직한 드러내지 않고 싶은 내면을, 그리고 그 마음의 변화를 아주 잘 그렸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벌어졌을 때, 회피하고픈 마음이 드는 사람은 그만이 아닐 테니까. 그렇게 철거민 남편이 되기 싫은 그의 솔직한 속내가 나를 끌어당겼다.

하루아침에 문 닫게 된 칼국수 집 “두리반은 잊어달라는 어마어마한 절벽 같은 펜스를 보고서” 통곡하는 아내 졸리나를 둔 그는 소설가이자 기독교출판협의회 출판 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찌할 줄 몰라 하던 그에게 출판사에서 일하는 후배 호가 펜스를 뜯고 두리반 옥상에서 농성하자고 했을 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잠시 갈등했다. “용산 참사 때 남일당 앞으로 달려가” 연대하기는 했지만, 철거민 남편이나 철거민이 되기는 싫었다. “정작 내일이 되니까 발뺌하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고, 어렸을 적 공원촌의 철거민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이중적 태도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그가 동네에서는 공원촌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이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던 태도는 철거민에 대한 좋지 않은 사회적 시선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인권침해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 자신의 문제로 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권침해를 당하고도 몇 개의 딱지가 붙는 세상에서, 당사자가 되어 싸우는 것보다는 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운 일일 수 있다.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저 지랄하는 게 아니냐.”, “ 구차하게 철거농성을 하느니 나라면 새 출발하겠다.”라는 시선 앞에서 오그라드는 느낌을 어찌 안 받겠는가. 특히 ‘먹물 먹은’ 사람, 아니 ‘개념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그건 자신의 위치성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고, 그래서 존재가 밑에서부터 흔들리고 삶이 흔들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침해받은 사람, 피해자라는 위치성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지 않은 위치에 서 있거나 그러한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에 다른 가능성을 지녔고 한발 나가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동정과 시혜는 줄지언정 왜 싸우는지는 잘 듣지 않으려는 현실에서 주춤거리거나 뒤로 돌아서 달리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새로운 형태의 농성, 연대

이 글의 또 다른 장점은 재밌고 게다가 생각할 여러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재밌는 글이 나오게 된 바탕은 아마도 두리반 농성에 워낙 젊은 청춘들이, 노래하는 인디밴드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디밴드가 왜 두리반과 그렇게 함께 했는지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는 것에 대해 그는 쉽게 설득 조의 말을 하려 하기보다 느끼기를 기대했다.

[출처: 작은용산 두리반 카페 http://cafe.daum.net/duriban]

▲ [출처: 작은용산 두리반 카페 http://cafe.daum.net/duriban]


“신촌을 아지트로 삼았던 뮤지션들이 왜 그곳을 떠나야 했는지, 압구정동으로 갔다가 이내 홍대 앞으로 오게 된 이유는 뭔지, 홍대 앞에서 또다시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이유는 뭔지. 그런 걸 말해주고 절로 고개를 끄덕일 때 두리반 농성은 새로운 형태의 농성을 꿈꿀 수 있게 되는 거였다.” 연대란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필요할 뿐”이라고...

하지만 그런 마음들이 오가더라도 계속 모이고 흘러넘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두리반은 오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머무르게 하는 마력도 부렸다. 그건 그가 ‘사람’을 알고,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두리반상회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도 알 수 있다.

“두리반상회는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장이다. 두리반상회는 회의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주는 면이 강하다. 그러니 숨겨서도 안 되고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 다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다. 처음 발길 하는 사람조차 편한 마음으로 한마디 거들만큼 분위기도 좋다”

구린내조차 매력적인 두리반의 사람들

농성에 함께한 수많은 매력적이고 “구린내 나는 인간의 살내음”이 책에서도 가득히 전해진다. 대원군, 공기, 주플린, 병주, 단편선, 류수사, 문신부, 토리, 괭이, 조약골, 정경섭, 윤성일, 멍구, 젤리, 성섭비, 알사탕, 한받, 엄보컬, 김선수... 모두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좌충우돌 갈등도 숨기지 않는다. ‘즐거운 연대는 어울림’이기에 피할 수 없는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성격의 차이, 배경의 차이, 문화의 차이, 나이의 차이 속에서 겪는 사건들이 유쾌하다. 그래서 그는 별명은 기억의 수단일 뿐 아니라 복잡한 관계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이어서 버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 경찰서에 불려 가 별명으로만 사건을 진술해서 경찰이 곤란함을 느낄지라도 말이다. 위계가 없는 친근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별칭 사용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한 살만 많아도 ‘언니, 오빠, 누나, 형’으로 위계를 만들어, 다가가기 어렵게 하는 현실, 그렇기에 이름 대신 별명을 사용하는 것은 관계의 평등함 뿐 아니라 끈끈함도 준다.

두리반이 이룬 것을 되짚어보다

두리반 농성은 이긴 싸움이어서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힐링이 된다. 대부분 지는 싸움을 하는 현실에서 이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치유효과가 난다. 그런데 두리반은 한 발 더 나갔다. 철거싸움에서 합의문을 비공개로 하던 관행을 깨고 공개합의문을 만들었다. 그건 그의 아내이자 철대위원장인 “따따부따 잘하는 졸리나”의 치열함, 4개월 만에 철거민이 된 그가 여러 철거싸움에 연대하면서 “막연히 품었던 희망사항”의 힘이 아닐까. 게다가 이렇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한국의 개발과 강제철거 역사의 한편을 차지한 두리반 투쟁사를 기록한 책까지 냈으니 정말 금상첨화다. 책 자체가 ‘야드바셈 박물관’이다. 그 외에도 개발의 문제점을 조근조근 써놓아 한국 철거민의 실태와 법의 허술함, 건설사의 폭력까지 알게 해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읽다 보니 두리반과 함께 했던 나의 작은 활동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마포구청에 찾아갔을 때 위협하는 구청직원들과 목청 높여 싸워 졸리나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던 일, 뻔하지만 필요했던 구청장과의 면담, 두리반 단전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권위에 항의했던 일, 그리고 광고게재 중단에 항의하러 경향신문사에 함께 찾아가 따지던 일, 두리반 농성장에서 맛본 즐거운 공연. 그리고 무엇보다 유채림과 안종녀의 참 서로 다른 모습. 하지만 그의 고민을 책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미안하다. 난 정말 연대를 잘한 거지 묻게 된다. “연대는 차가운 이성이 아닌 뜨거운 교감”이라는 데 난 그걸 잘하고 있는지, 잘했는지 말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