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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차별금지법-여섯 가지 이유 있는 걱정

[기획 : 차별금지법-여섯 가지 이유 있는 걱정②] 혐오하는 것도 차별인가요?

정치인으로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괜찮지만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싫다
- 다큐멘터리 <레즈비언정치도전기>, 최현숙 씨의 국회의원 출마에 대한 한 남성의 인터뷰

한 사내의 손이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아래위로 갖춰입은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후세인이 돌아보자 그가 외쳤다. “더러워, 너 더러워. 이 개××야!” 그의 손가락이 연방 후세인을 향했다. 후세인은 놀란 눈으로 그저 그를 바라봤다.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
- 한겨레21 제773호. 2009. 08. 14. “냄새나는 한국의 인종차별”

자신의 애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연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2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 박씨는 경찰에서 "3년 전부터 만나온 애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화가나 이런 짓을 저지른 것 같다"고 진술했다.
- 노컷뉴스. 2010. 05. 28. “"내 여친이 트랜스젠더?" 연인 목졸라 살해 ”

최근 인종이나 성적지향, 젠더, 장애 등에 대한 혐오가 동기가 되어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이 큰 이슈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 간간히 해외뉴스란을 장식하던 ‘혐오범죄’ 혹은 ‘증오범죄’가 더 이상 우리에게도 낯설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차별 혹은 범죄는 우리에게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맥락에서 특정한 차별현상을 ‘혐오범죄’라는 틀로 바라보고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지난 7월 22일 반차별공동행동의 주최로 열린 두 번째 쟁점포럼 <차별금지에서 혐오범죄가 갖는 의미>는 이러한 차별의 원인 혹인 결과로서 ‘혐오’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인식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차별금지법이라는 제도와의 관계를 고민하기 위한 자리로 기획되었다.

왜 ‘혐오범죄’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최근 등장한 사례들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혐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타자에 대한 폭력과 분노, 기피와 반감의 감정을 관통하는 ‘집단(정체)성’과 ‘역사성’, ‘연속성’이다.

지난 7월 22일 진행된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포럼②> ‘차별금지에서 혐오범죄가 갖는 의미’

▲ 지난 7월 22일 진행된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포럼②> ‘차별금지에서 혐오범죄가 갖는 의미’


한국에도 ‘인종차별’이 명확하게 존재할 뿐 아니라 인종차별적인 발언 역시 심각한 차별이자 폭력이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킨 보노짓 후세인 씨의 고소 사건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한국인 남성과 피해자인 보노짓 후세인 씨는 이 사건에서 특정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개인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인종적 정체성을 가진 타인/타문화에 대한 ‘더럽다’, ‘냄새 난다’는 표현은 ‘단일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해온 한국의 역사 속에서 인종/민족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혐오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징표’이기도 하다.

이렇게 혐오는 어떤 개인이 개별적으로 우연히 가지게 되는 단선적인 상태나 어떤 대상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라기보다, 오히려 특정한 집단이나 정체성을 열등한 것으로 취급해서 배제하거나 억압해온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맥락 속에서 가지게 되는, 특정한 가치판단이 전제된 태도와 감정을 드러낸다.

이와 관련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오가람 씨는 혐오범죄의 중요한 특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지게 되는 ‘상징적인 지위’를 꼽았다. 한 사람으로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이라고 할지라도, 그 피해자는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지위’에 있고 그 집단의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혐오범죄의 피해자는 대체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그 개인이 속한 “표적 집단”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만약 혐오의 이런 중요한 특징들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혐오로 인한 차별을 방지하거나 해소하는 방식은 개인적인 감정 차원에서 불쾌함이나 반감을 느끼게 되는 타인의 존재 혹은 정체성을 참거나, 용인하거나, 포용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고, 혐오감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분노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행위를 잘 이해하고 해소하기 위해서 혐오범죄를 이야기 할 때, 혐오가 표출되는 배경, 혐오의 감정을 ‘누가’ ‘누구에게’ 갖게 되는가를 조건 짓는 권력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론 시간 중 몇몇 참가자들이 중요하게 지적했듯이, 이성애중심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갖게 되는 ‘혐오’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마초들에게 드러내는 ‘혐오’가 모두 ‘혐오’라는 이름으로 동등한 것처럼 다루어지게 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혐오’는 ‘범죄’인가?

그런데 어떤 차별적인 행위를 ‘혐오범죄’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혐오적인 표현이나 행위는 ‘범죄’로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차별과 관련된 국제규약은 (특히 인종차별과 관련해서) 증오를 고취시키거나 차별, 폭력을 조장하는 혐오발언 및 행위에 대해 예방, 교육, 보호를 위한 규범이나 정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시민적 ‧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인종차별에 관한 ‘더반선언문’,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 등이 그렇다.

하지만 혐오범죄(Hate Crime)와 혐오발언(Hate Speech) 처벌에 대한 격렬한 해외의 논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차별금지법이라는 제도 내에서 차별행위로서의 혐오를 어떻게 규정하고 처벌, 구제할 것인가, 국가의 책무를 어느 수준까지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실제 국가의 차별금지 관련 법안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최근 ‘매튜 셰퍼드 법’으로 불리는 혐오범죄방지법이 통과된 미국의 경우, 신체적 상해를 입힌 경우에 한정해 연방 차원의 기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영국의 인종관계법은 일종의 ‘괴롭힘’으로 혐오행위를 규정하며 차별을 규제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기존의 ‘인종차별법’의 보호범위를 확장해 ‘인종혐오법’을 추가 제정함으로써, ‘모든 상황에서 그 개인 또는 그룹을 불쾌하게 하고 모욕하고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위협할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경우’ 기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혐오가 표출되는 양상을 ‘범죄’로서 명명하는 것의 의도는 우선적으로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처벌과 구제의 필요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오가람 씨는 혐오범죄의 제도화는 형법상의 처벌에 관한 규정과 기준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혐오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형벌적 접근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지만, 처벌조항이나 가중처벌조항을 신설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혐오범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뿐 아니라 교육, 다양한 인권을 위한 실천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족협회 정혜실 씨 또한 차별과 피해에 대해 즉각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법률이 제정될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사회적인 인권 감수성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더했다.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해 자녀를 두고 있는 정혜실 씨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할머니가 외국인처럼 보이는 자신의 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을 때’ 딸이 느꼈던 불쾌함과 모욕감, 그리고 그 할머니가 가진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해소’ 혹은 ‘규제’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제도화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실천과 다양한 영역에서의 반차별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쟁점포럼에서 토론이 한창 진행 중인 모습

▲ 쟁점포럼에서 토론이 한창 진행 중인 모습


우선,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인식과 책무

차별금지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혐오범죄’를 규정하고 규제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논의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날 쟁점포럼에 참가한 발제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강조한 지점은 바로 ‘혐오범죄에 대한 국가의 인식과 책무’가 1차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스웨덴의 혐오방지 대책을 연구해 온 박정준 씨는 스웨덴의 사례가 우리에게 혐오범죄를 제도 내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권선진국’으로 불릴만한 스웨덴의 중요한 혐오방지 대책과 특징을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는데, (1) 혐오범죄의 원인과 실태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그것을 보고서로 제작하여 실제로 해결을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는 점, (2) 차별감시기구로서 ‘옴부즈맨’(ombudsmannen) 제도 운영을 통해 성정지향에 기반한 차별 및 폭력을 접수받고 관계당국에 수사를 요구함으로써 혐오범죄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데 주력한다는 점, (3) 실제 혐오범죄 수사 과정에서 경찰들이 피해자의 관점에서 피해자를 돕고 신뢰하고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도록 고무시키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혐오범죄를 막는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경찰의 인식수준과 역할, 책임은 한국 사회와 비교했을 때 놀라운 수준이다.

스웨덴의 경험이 증명하듯이, 혐오범죄의 제도화를 고민할 때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타자의 다름에 대해 차별하지 말고 혐오하지 말아야 한다는 막연한 수준에서 그치는 언설이 아니라, 혐오로 인한 실제적인 피해를 줄이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식과 정책들을 다각도로 마련하는 것이다. 경찰이나 법원 등 국가기관이 어떻게 ‘차별상황’을 인식하고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가에 따라 실제 혐오범죄의 예방과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앞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시 차별금지법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 법 조항이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가져야 하는지, 차별시정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가 주요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 쟁점포럼인 <차별과 표현의 자유의 경계>는 8월 12일(목) 7시에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 세 번째 쟁점포럼인 <차별과 표현의 자유의 경계>는 8월 12일(목) 7시에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덧붙임

몽MONG 님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