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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선(船)] 그/녀들이 사업장 담벼락을 넘은 방법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좌담회①

<편집인 주>

인권오름은 2013년 보수정권 6년차를 맞아, 우리 운동 내의 다양한 실천들을 갈무리하고 드러내며 운동에 더 힘을 주기 위해 [삐딱선(船)]이라는 꼭지를 기획하였습니다. 사람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는 소박한 염원은 ‘지금, 여기’에서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또는 만들어내는 다양한 실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삐딱한 사람들이 자본과 권력이 구획한 질서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바람으로 그러한 ‘지금, 여기’의 실천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것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실천을 해온 사람들과 좌담회를 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삐딱한 실천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엮임으로 모아보자는 취지에서 삐딱한 배를 의미하는 삐딱선(船)입니다.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오는 ‘홍반장’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들은 해결사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경찰이나 경비용역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몸으로 맞설 뿐이고, 연행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들의 얼굴은 고통으로만 가득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2년 함께 살자 농성촌과 함께 한 송년회에서는 웃음이 가득했고 노래도 곧잘 불렀더랬습니다. 무엇보다도 끈끈한 무엇인가가, 뜨거운 에너지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기에,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을 만나게 된 이유입니다. 2012년 7월에 만들어진 공투단은 그 이전에 희망뚜벅이, 희망광장을 거치며, 무수한 싸움들을 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노동자운동 내부의 자극을 주는 외부로서도 기능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또한 비정규직 사업장과 정규직 사업장이 섞여 있고, 정리해고 사업장과 파업 중인 사업장도, 사무직과 제조업도 섞여 있으면서 노동조합의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품앗이 연대와는 다른 ‘무엇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생각이, 경험이 궁금해졌습니다.


◊ 좌담회 참석자
최일배 ; 공투단장,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민주노총 화섬연맹) 위원장, 9년째 싸움 중
김경봉 : 콜트콜텍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정리해고 철회 6년째 싸움 중
고동민 : 쌍용자동차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정리해고 철회 5년째 싸움 중
김은석 : 베링거인겔하임노조(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부당해고 1년째 싸움 중
이수창 ; 골든브릿지투자증권노조(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수석부지부장, 1년째 파업 중
이근재 : 골든브릿지투자증권노조(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사무노조연맹 간부
기 선 : 인권활동가, 공투단 참여중
명 숙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윤 미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사진 촬영 및 녹취 정리)


명숙 : 공투단이 처음 만들어진 게 언제죠? 희망광장부터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뚜벅이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된 건지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최일배 : 뚜벅이가 작년 1월 달이었나? 작년 1월 달에 ‘희망뚜벅이’라고 해서 1월말에 한 달 가까이 수도권과 경기지역을 돌면서 일종의 공동투쟁이죠, 그러면서 투쟁사업장을 지지방문하고 그런 프로그램을 1월말에 했었고. 그게 끝나면서 평가할 때 함께 모여서 공동으로 싸우니까 정말 좋더라, 이것을 연중행사로 끝내지 말고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제안이 있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나온 게 ‘희망광장’이라고 해서 전국을 걸어서 돌아봤으니 이제는 시청광장에서 광장을 꽉 채우는 걸 만들어보자고 해서 야심찬 포부를 갖고 시청광장에 자리를 텄죠. 아시다시피 천막치고 농성하는 건 쉽지 않으니 이틀은 그냥 비닐로 지새고 그러다가 작은 개인 휴대용 텐트, 쌍용차가 예전에 쓰던 원터치가 있어서 그걸 갖고 그 안에서 잠을 자면서 희망광장을, 꽃이 아닌 희망광장이라고 해서 시청광장을 사람의 꽃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전면통제됐죠. 차단되고. 그래서 선거 국면에서 제대로 이슈가 되지도 못하고 정말 그 안에서 투쟁 사업장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그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동지적 연대와 정이 크게 드러났고 나타났고 그래서 희망광장, 희망 뚜벅이가 끝나고 나서 계속해서 연속성으로 만들어내자고 하는 얘기들이, 평가를 하면 늘 그런 얘기가 나와요. 너무 좋으니까.. 이 좋은 기류나 분위기를 이어나가자, 이렇게 해서 6월 달에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한테 제안한 것이 공동투쟁이죠. 그때 17개 사업장이 모여서 그렇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이는 건 가능할 것 같으니까,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해서 7월 4일 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그때부터 공동투쟁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명숙 : 쌍용차에서 제안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최일배 : 공투단 제안을 어느 단위가 국한돼서 누가 했다기보다는 전체가 모인 평가회의에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다보니까 이게 좋으니까 같이 해보자 이런 취지지 누가 제안했냐는 별로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애. 왜냐하면 이미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고동민 :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면 ‘희망뚜벅이’는 재능투쟁 1500일에서 쌍용차투쟁 1000일로 가는, 그래서 열 몇 개의 투쟁사업장들한테 응원하고 위로하고 함께 힘을 내서 싸우자는 의미에서 도보였고 그것들 평가를 기초해서(희망광장이 나왔어요)... 그때 4월 총선이 있었어요. 작년 4월 총선 때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탄압에 대한 문제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서 ‘희망광장’ 투쟁이 있었는데, 말한 대로 전혀 이슈 되지도 못했고 전혀 반향이 없었어요. 첫날부터 허클 베리핀과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는데 사람들이 모이질 않는 거예요. 그때는 희망버스 분위기가 있었던 때예요. 그러니까 그 해 전해에 희망버스했던 기획단 동지가 여기 포함돼 있잖아요. ‘희망광장’, ‘희망뚜벅이’도 희망버스기획단 동지들에게 제안해서 함께 한 거거든요 실제로. 한 개의 사업장 단위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를 위해서 함께 싸워야 된다는 걸 제안했었고 많은 투쟁사업장들이 동의했던 거죠. 그래서 반향은 없었지만 우리끼린 굉장히 재밌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닌, 부둥켜안은 경험들이 낳은 공투단

명숙 : 예를 들면 어떤 게 재밌었어요? 좋았다고 하는데.

고동민 : 추운 날 우리끼리 부둥켜안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으니까. 프로그램이 매일 뭘 했는데, 그 외 대여섯 명 더 있고, 다 우리 투쟁사업단이었거든요. 기자들도 안 오고. 우리끼리 시청광장에서 놀면 반기는 건 오로지 남대문경찰서밖에 없었어요. 남대문경찰서는 우리가 시청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면 연행을 해가고 해산명령 하고. 그리고 우리가 뭘 하기만 하면 다 트집 잡고. 운동회 같은 거였는데 화분이 좀 많았죠. 왜 갑자기 윤주형이 생각나냐... 갑자기....(잠시 눈을 감고 숨을 멈춤) 화분갖고 시청광장 운동회처럼 화분이어달리기를 하면 쟤들이 방패로 막아서 방패 찍고 오기 뭐 이런 것도 했고. 우리끼리 놀 수 있는 건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특히 공장 담벼락을 넘는 게, 사업장 담벼락을 넘는 게 되게 어려운 거예요. 무수하게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나 공동투쟁을 하지만 사실 잘 모르고 끝나거든요 서로. 술도 한 잔 잘 먹고 끝나는 게 대부분인데 원 없이 술 먹고 끼리끼리 몰려가서 낄낄대고 이게 저는 이후에 공투단이 태동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공투단 했을 때 뭘 더 해봐야지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거 무리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가 급한 사람은 다독거리고 약간 멀리 오는 사람은 조금 땡겨서, 아주 가느다랗게 평행선을 유지하면서 쭉 왔던 건데, 공투단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명숙: 경봉언니도 재밌었어요? 인천이면 멀잖아요 ‘희망광장’할 때. 공투단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김경봉 : 그때는 지회장이 참여를 했으니까 공투단의 의미를 몰랐었고. 그러면서 공투단이 있으니까 해보자 했는데 사실 콜텍은 대전에서 올라와서 인천에 둥지를 틀었잖아요. 콜트가 지역에서 많이 묻힌 상태에서 더구나 수도권이 아닌 인천이라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까 투쟁하는데 한계도 느끼고. 공동투쟁하면서 투쟁하는 사업장에 모든 것들, 사람을 알아가는 게 굉장히 좋았던 거죠. 우리의 투쟁만이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거고. 이것이 꼭 금속사업장에서 투쟁하면서 투쟁하는 사업장에 모든 것들, 사람을 알아가는 게 굉장히 좋았던 거죠. 우리의 투쟁만이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거고. 이것이 꼭 금속사업장에서 투쟁하면서 때려 부수는 투쟁이 아니라 문화적인 걸 가미하면서 서로 알아가면서 투쟁을 진행했다는 게 굉장히 기억에 남고 좋았던 거죠. 맨날 구호만 하고 이런 투쟁을 했었는데, 문화라고 해서 꼭 음악이 있고 이런 게 아니라 같이 놀이를 하고 재밌는 놀이를 해가면서 그리고 재밌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투쟁을 하는 게 좋았던 거죠.

기선 : 재밌다고도 말했지만 ‘희망뚜벅이 ’얘기는 완전 고생하면서 처음 만날 걸로 기억할거고 ‘희망광장’의 경우는 굉장히 혹독했어요. 광장에서 드나드는 걸 다 통제를 했으니까 일일이 다 얼굴을 보면서 한번 나가면 고착당한 상태로 한두 시간씩 있다오고 그랬었고 실제로 텐트가 있었다고 하지만 끝나는 날까지 굉장히 추웠어요. 첫날부터 설마 오늘 비오겠어 했는데, 눈 왔잖아요. 이러면서 실제로는 끊임없이 나가려고 하고 사람을 만나려고 했었는데, 물리적으로나 우리도 준비가 안됐거나 사람들도 날로 우리를 볼, 그러니까 이제 우리들이 되게 걱정했어요. 왜 사람들이 우릴 보러오지 않지? 우리가 보러 나가려고 하면 우리는 갇히는데. 그 당시에 단단해진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것도 기억나실까 모르겠는데 봉투를 뒤집어쓰고 나가서 왔다갔다 한 거죠. 실제로 말씀하신대로 공투단을 할 수 있었던 관계를 만들고 뭘 해야겠다라고 하는 걸 그때 세워둘 수 있던 게, 하루도 안 빼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거예요. 지금 여러 사업장에서 여러 투쟁 사업장에서 이것저것 함께 해주고 있는 분들이 그때 처음 만난 분들이에요. 누구는 춤을 출 수 있어서 우리와 함께 춤을 춰주고 뭘 만들고 뭘 모아다주고. 그리고 지금도 공투단이 움직이는 시간이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든지 오는 사람들이 그때 만나는 사람인 거죠. 단계로 보면 뚜벅이와 그리고 희망광장과 공투단이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사실 아까 동민이 울컥한 것처럼,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어떤 투쟁사업장이 결의 있게 마무리 짓거나 싸우기도 하는 과정이었다는 거죠. 돈독이라고 하면 느낄 수 있는 그냥 인간적인 관계와는 다르게, 뱃속 다 보이면서 다른 것 계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관계(인 거죠).

고동민 : 등을 맡겨놓을 수 있는 사이!

김경봉 : 그런 거죠. 그전 같았으면 “저기 투쟁하는 사업장이네”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같이 있으면 다른 사업장이 아닌 다 똑같은 내 친구도 내 사업장 같은 느낌. 그런 것들이 그동안 힘들게 겪어오면서 같이 부딪치고 한 대가가 아닐까.

명숙 : 논리적으로 민주노총이 잘 못하니까 우리가 바꾸자 우리가 하자,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볼 수 는 없는 거네요. 그 밑바닥에 쌓인 관계나 고민, 믿음이 생기고 나서 공투단이 시작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누가 제안서 줘서 하게 된 게 아니라.

최일배 : 차이가 두 가지 정도 있다고 보는데. 기존의 공동투쟁이라고 하는 건 몇 차례 했었죠. 그런데 그때는 한정돼 있었죠. 예를 들어 금속이면 금속사업장, 지역에 따라서 경북이면 경북지역. 지역이나 업종으로 제한돼 있었어요. 비정규직이면 비정규직. 그러다가 희망발걸음, 희망광장의 경우는 그 폭이 굉장히 확대된 거죠. 금속사업장, 비정규사업장, 정규사업장, 업종과 직종을 초월하고, 노동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까지도 참여를 하다보니까 에너지와 기운, 보통 1년에 한두 번씩 연례행사처럼 하는 공동투쟁이 있거든요 2박3일. 그 공동투쟁은 정말 흉내내기였거든. 그리고 가도 예상했던 대로 너무 딱딱하고 너무 지루하고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주체적인 의식을 갖기보다는 맥 빠지고 괜히 왔다고 힘이 빠졌는데, 희망발걸음은 정말 다양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보니까 평상시 공동투쟁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과 일정들은 투쟁단이 논의하고 토론해서 스스로 만들어내고 실천투쟁을 하다보니까 자기 자신의 문제와 직결되는 거죠. 그전의 공동투쟁은 수동적이었고 이후에 투쟁들은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면서 하다보니까 더 재밌는 거예요.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있었지만 일단 흐름 자체가 자기 자신이 주체라는 생각으로 몰입하다 보니까 재밌다는 느낌과 좋다는 느낌. 이렇게 되다보니까 구미 KEC 동지들의 경우도 ‘희망뚜벅이’가 끝난 다음에 ‘희망광장’을 한다고 하니까 이전에 참석했던 사람이 "정말 좋더라, 뭔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이 좋다는 느낌이 뭔지는 설명을 하기 어려우니 직접 참석을 해보면 느낄 거다” 이렇게 해서 ‘희망뚜벅이’에 참석했던 동지가 제안을 해서 ‘희망광장’에 새로운 동지가 합류를 하는, 그래서 거기에 참석했던 동지들도 이거였구나 하는 이 기운, 그래서 이후에도 공동투쟁을 할 때도 기꺼이 참석한다. ‘희망광장’, ‘희망뚜벅이’를 했던 동지들이 흔쾌히 공동투쟁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백프로 동의가 됐던 것도 그런 좋은 기운을 느낀 거죠.

명숙 : 골든브릿지도 공투단에 7월 4일부터 같이 한 건가요?

이근재 : 골든브릿지는 좀 달랐죠. 쌍용차 ‘함께 걷자’를 하고 그 다음에 대한문에서 문화제가 있은 다음에 그날 같이 투쟁하는 사업장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서울시청 쪽에 모여서 밤 열 시에 모여서 얘기하면서 동지들이 처음 접했던 거죠. 제가 김월식 부장에게 전했던 것은 공동투쟁을 제가 제안을 받아서 지부에 논의해서 지부장에게 얘기했던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리고 우리 투쟁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다’, 그렇게 골든 브릿지는 시작을 한 거죠.

공동투쟁, 서로를 알게 되고 사업장 벽을 뛰어넘다

명숙 : 어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나요? 골든브릿지는 조합원도 많고 파업 중인 상황인데....

이근재 : 우리가 4월 23일에 (파업을) 시작해서 만 4개월쯤 됐을 때니까, 일단은 우리 투쟁을 많이 알리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같이 투쟁하면서 제가 지부에 가장 많이 요청한 것이 연대투쟁을 하자 연대 투쟁 하게 되면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그 동지들이 우리와 함께 할 거다라며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쌍차였고 MBC, 그 당시 MBC가 가장 이슈화됐으니까. 결합해서 실제로 조합원들이 MBC문화제 하다가 지쳐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MBC에 많이 각인이 됐었고 그렇게 주고받은 게 경험이 돼서 공동투쟁단도 같이 모여서 뭔가를 하면 우리 투쟁도 많이 알릴 수 있고, 이 동지들도 우리와 함께 뭘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해서 투쟁을 폭넓게 보자고 해서 골든브릿지에 제안을 했고 동지들도 흔쾌히 같이 하게 된 거죠. 그래서 7월 4일 날 기자회견부터 같이 시작을 했죠.

기선 : 그렇게 해서 협력을 받자고 해서 왔는데 ,이 사람들이 어디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질 않나.(웃음)

고동민 : 나는 처음에 ‘저 사무직노조들이 뭘 할 수 있겠어, 금방 안 하겠지 같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근재 :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고동민 : 아 그래?
(모두 웃음)
이수창 : 우리도 쓰면 뱉으려고 그랬죠? (웃음) 왜냐하면 실장님의 초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던 거죠. 알린다는 것. 혼자 싸우는 것보다 같이 싸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최대한 우리는 힘을 받으려고 결합을 한 거죠. 도움 좀 달라고 무턱대고 갈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접근을 했는데 점점 발이 빠진 거죠. 처음엔 발가락을 넣었는데 무릎 빠지고 그 다음엔 몸이 완전히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죠.

명숙 : 그래서 제가 사전 인터뷰로 골든브릿지의 마재원 님과 이야기하면서, 뭐가 달라진거 같냐고 물었어요. 사실 공투단의 특성은 사업장, 업종의 벽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다 있는데 그런 곳 속에서 달라진 게 뭐가 있는 것 같냐고 물어봤더니, 예전엔 사무직의 성격도 그렇고, 골든의 성격도 그렇고 싸울 때 이리저리 재고 A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리고 경찰 보면 싫고 무서웠는데, 달라졌다고 하더라구요. JW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 봐요. 현상적으로 변한 건, 여성 조합원들이 경찰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고 전에는 경찰이 있으면 못 갔대요. 그리고 운동이란 게 역동성이 있어서 순간과 계기가 있잖아요. 그런 것 봤을 때 (투쟁계획을 세울 때), 재서 결과가 안 나오더라도 먼저 치고나가서 만들려고 하는 이런 것들. 기존엔 이런 걸 터부시 했다면 이젠 낯설음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겠구나 싶었어요.

고동민 :나는 사실 언제부터 골든브릿지를 신뢰했냐면, 왜냐하면 다른 사업장 동지들은 경험이 있어서 원만한 관계나 성향을 파악하는데 골든브릿지는 파악하기가 어렵잖아요. 늘 단아하고 점잖고 잘 안 나서려고 하고,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인식, 편견이 있는 거죠. 그런데 내가 언제 감동을 했느냐면, 콜트콜택 부평공장에서 경찰들이 온다고 했을 때...

기선 : 제일 먼저 달려왔죠

고동민 : 그렇지. 난 그때보고 놀랬어요. 잘못하면 연행되거든.

이근재 : 연행될지 모르고 간 거야(웃음)

고동민 : 잘못하면 연행돼요. 하니까 “괜찮아요” 그때, 지난 4월부터 ‘몸치탈출’(골든브릿지 몸짓패 이름) 같은 외형과는 다른 생동감 있는 노동자 같은 느낌이 들어서, 되게 느낌들이 바뀌었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기대기 시작한 거지 ,이 사람들한테. 좋아지고 훨씬 더. 나는 몸으로 안 보여주고 내 눈에 안 보여주면 잘 안 믿거든요.

이근재 : 처음에 우리가 7월 4일 날 기자회견을 하고, 아마 그 다음이 바로 서초에 JW 농성장에 가서 우리가 처음 첫인사를 했잖아. 조를 정해주고 각자 여기저기 들어가서 소개하는 시간을 주고 그것 끝나고 집회로 이동했는데, 동지들이 서로 방엘 안 들어가려고 하더라고. 그게 첫 얼굴을 마주대하는 건데. 우리가 한 조씩 갔는데, 다들 ‘내가 왜 이 조에 걸렸어’ 하는데, 내가 괜찮다고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옆에 있는 동지와 얘기해보면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 들여보냈는데, 나는 안도한 게 뭐냐면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달라진 거야. 들어갈 땐 주저하고 들어가기 싫어했던 사람들이 들어가서 각자 소개하고 이야기하니까, 뭐 별반 자기들과 다르지 않거든, 그러니까 거기에서 각자 서로 소개하고 나와서 JW투쟁 같이 가고 이런 과정들과 후에 JW 두세 번 가면서 펜스 같이 뚫고 들어가고. 물론 주저하는 동지들도 있지. 다 아닐 순 없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한발 한발 들어가는 과정들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점점 바뀌는 게 눈에 보이니까 걱정을 안 한 거죠.

아까 얘기한 콜트의 경우도, 지부 털렸다니까 아침에 가서 얘기해야지 했는데 지부에서도 고민을 하고 출정식 끝나자마자 차 두 대해서 출발하자고 내부에서도 얘기가 됐고, 그러면 오케이 콜 하고 간 거죠.

이수창 : 출근도 그쪽으로 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근재 : 다행히 동민 동지 말대로 우리가 일찍 갔으니까 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 못 들어갔으면 말 그대로 마음은 있으되 표현은 할 수 없지만 들어가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기선 : 두 번의 침탈 모두 골든브릿지가 가장 먼저 달려왔죠.

명숙 : 마재원 님에게 그러면 골든브릿지는 변화한 것 같은데 다른 사업장은 바뀐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그건 모르죠 하더라고요. 거기에 대해 여기 계신 분들이 얘기해 줘야할 것 같아요. 사업장이 다르잖아요. 금속 사업장이나.

김경봉 : 콜텍의 경우는 지금도 투쟁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경찰과 붙을 기회가 없었어요. 탄압은 하는데 경찰이나 용역이 콜텍엔 거의 안 왔어요. 본사에 가서 천막 농성하면서 그렇게 오래 있어도 용역 투입을 안했어요. 경찰들하고 싸움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밋밋하게 하다가 부평으로 가야겠다고 하고 와서 싸움을 한 건데, 그렇게 터지기 전에 공투단과 거리에 다니면서 선전전을 하니까 경찰들이 붙고. 그때도 경찰들과 싸워본 적이 없으니까 쉽게 달라붙어서 싸우는 것은 겁이 사실 나더라고요. 그리고 경찰들과 싸우고 들려나가고를 반복하다보니까 학습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그러니까 경찰들하고 싸우는데 자신감이 생기고 주위에 활동가들이 이런 건 이렇게 대응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배웠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내가 할 얘기가 생기고 그러니까 또 자신감 있게 싸우고 이런 것들이 공투단 하면서 굉장히 좋았어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명숙 : 쌍용차는 골든브릿지나 사무금융노동자랑 같이 활동해본 적이 공투단 외에는 없었을 거 아녜요?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고동민 : 저는 동물약품지부라는 곳도 처음이죠. 수의사랑 무슨 싸움을 해요. 제가 수의사랑 만날 일이 뭐가 있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저희가 싸움을 하면 항상 ‘완성사’사라는 게 있어요. 금속내부에서도 ‘완성4사’, 그때만 해도 ‘쌍용차, GM 대우, 현대차, 기아차’ 노동자들끼리 서로 잘났다고는 해도 뭔 일이 터졌을 때 서로 도와주거든요. 금전적이든 사람이든. 그런데 딱 쌍용차가 민주노총에서 떨어지고나선 이게 쉽지가 않아요. 그게 딱 떨어지니까 다들 데면데면하게 바라보는 거죠. 작년만 해도 금속노조에서 노조탄압 때문에 요건을 걸었잖아요. 현대차, GM 지부장들은 손잡고 있는 거죠. 지부장을 옆에서 보면 마음이 안 좋은 거죠. (그동안) ‘금속’의 틀을 깨는 게 저희한텐 어려웠어요. 특히 조합원틀한테도. 여성 사업장들을 만나도 결혼 안 하신 분들은 급호기심을 갖는데 그런 거 아니고서야 관심이 없어요. 원래 금속사업장 동지들을 보면 다른 사업장에 관심이 없어요. (* 현재 있는 쌍용차노조는 2009년 민주노총에서 탈퇴했다.)

이수창 : 우리보다 더했네요?

고동민 : 그렇죠. 저희는 평택에 거의 갇혀서 몇 년을 싸웠던 거고, (서울에 올라온 것도) 국정투쟁에 맞춰서 한 거라. 사실 갇혀 있던 거죠. 그걸 끄집어내준 게 처음엔 희망버스였어요. 희망버스. 한진동지들, 김진숙 지도위원, 함께 가는 희망들이 우리를 변화시켰던 것 같고. 그게 ‘희망뚜벅이’, ‘희망광장’을 거쳐 가면서 사실 대한문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저희들이 투쟁을 하면서 많이 변한 거죠. 아직까지 평택에만 계신 분들은 폐쇄적이에요. 인사도 안하고. 실제로 그래요. 대한문에 계셔서 두 달이라도 있던 분들은 사람이 전혀 달라지는 거죠.

그리고 무엇 때문에 달라지는지를 보면 케어나 위로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옆에서 어떻게 싸우는지가 보이잖아요 어떻게 변하는지도 보이고, 그러면 자기도 변할 수밖에 없어요. 공동투쟁의 가장 큰 의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보고 배운다는 거예요, 진짜로. 보고 느끼고. 그게 남의 것만 되는 게 아니라 내 것도 된다는 그 동류의식, 동질성. 그래서 저는 처음에 저 양반이 수의사라고 해서.. 처음엔 수의산지 몰랐어요. 베링거라고 하길래, 약품 회산줄 알았어. 수의사치고 저렇게 과격한 사람이 없어요 진짜. 근데 나중에 물어보니까 수의사라고 해서, 그냥 데면데면했는데 되게 전문의학 용어 얘기하고 하니까 달라 보이더라고요.

명숙 : 김은석 님 이야기가 나오네요. 어떠셨어요? 베링거잉겔하임은 혼자라 공투단에 함께 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김은석 : 혼자서 회사랑 싸우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16층 복도에 가서 앉아 있고...사무연대노조의 일상적인 활동에 결합하는데, 총무국장이 제안을 한 것 같은데, 투쟁사업장이 모인다는데, 베링거도 좀 알려야 할 거 아니냐고 해서요. 처음에는 정리해고랑 비정규직 얘기밖에 안 했어요. 나는 징계해고고, 난 정규직이고, 내가 무슨 얘길 하냐고 거기 가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16층에 가서 앉아 있는 것, 그렇다고 내가 혼자서 집회할 순 없잖아.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집회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내가 혼자 투쟁단 가서 뭔 도움이 될 거며, 다들 경험이 최하 경험이 3년 되는데 내가 가서 무슨 얘기를 하냐, 그래서 나는 처음엔 안 간다고 했어요. 그리고 여기 13층에 모여서 인사하면서, 나는 사무직이었고 해고된 지도 얼마 안 돼서 다양한 조끼도 처음 봤지 빨간 조끼(코오롱 정투위 조끼를 가르키며)를 거의 안 입는데 빨간 조끼가 들어오고. 그리고 맨 마지막에 ‘노조탄압’이라는 말을 하면서 거기는 ‘나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온 거예요. 저는 처음 와서 정리 해고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니고, 그러면서 같이 하게 된 거죠. 사실 옛날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20년 전이랑 지금은 많이 다르잖아요. 요구 사항은 비슷할지 몰라도. 연행해도 안 때리더라고. 그거 하나 되게 놀랬고.

고동민 : 때리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무서워하는구나.

김은석 : 그래서 연행되면서 카톡부터 지우는데도 폰도 안 뺏더라고. 그런 것도 느꼈고. 처음엔, 그래 일주일에 한번이니까 머릿수 아쉬울 때 도우자, 그때만 해도 200단위 됐거든요 골든브릿지도 있고. 그러면서 되게 스스로가 힘을 받는 거죠. 그러면서 바뀌었다고 하면 바뀐 거고. 또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투쟁사업장만 모인 게 아니라 인권운동 하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 있어서 조직적으로 배제되는 사람 없이 함께 하고 거기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엄청 나고. 노조에서 맨날 모여서 해봤자 집회 양식 똑같고. 그런데 굉장히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던 것도 놀랐고. 그러면서 조금씩 바뀌어가지 않았나.

민주노총의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한 공투단

고동민 : 전 민주노총이 다른 사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누구의 민조노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늘 하시잖아요. 근데 왜.. 저는 그런 의미가 되게 경계돼요. 경계해야 할 얘기다.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를 자꾸 잃어버리는 게 굉장히 우리한테 어려워지고 불편해지는 건데... 나는 공투단이 민주노총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한다는 건, 당연히 우리의 자부심이지만, 민주노총이 해야 할 역할들이나 하고 있는 일들이 있는 거거든요. 어쨌든 전 조금 불편해요.

최일배 : 이걸 그렇게 해석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도 사실은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 이유가, 집회를 하면 항상 그런 고민을 해요 아 뭔가 좀 다르게 해야하는데, 그런데 맨날 하던 사람들이 모이면 다른 게 안 나와. 똑같애. 달라질 수가 없더라고. 하지만 고민은 끊임없이 해. ‘달려져야 한다.’ 그런데 공투단과 함께 하면 다양한 확대된 사람이 있다 보니까, 프로그램, 투쟁 계획이나 전술이 다양하게 나온다는 거지. 그게 민주노총을 욕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민주노총이 너무 틀에 갇혀 있다는 얘길 많이 하는데, 좀 오픈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들을 많이 조언을 듣고 다양한 방식을 도전해보는 게 좋겠다는, 이런 취지로..(말하는 거지)

명숙 : 어떻게 보면 공투단이 민주노총 내부이기도 하고 외부이기도 하다고 생각을 해요. 외부인 건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추진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거라는 점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것이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을 바꿔낼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긍정적 힘이 야기한 건 새로운 주체가 아닐까요. 투쟁하는 주체들이 변화하는 것도 있고 변화하면서 실천하고 그게 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겠죠. 외부이기도 하면서 내부이기도 한 정치성이 가지는 특징일 텐데, 그런 긍정적 역할 외에 지금은 못하고 있지만 민주노총에서 이런 걸 좀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있으신지 꼭 민주노조가 아니더라도.

최일배 : 동민 동지가 얘기했듯이 우리 공투단이 가장 조심스러웠던 것도 우리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되든, 아니면 조직담당자에게 끊임없이 강조했던 게 “공투단이 절대 하나의 조직이 아니다. 별개의 정파나 세력을 가진 조직으로 보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민주노총이 투쟁하는 사업장 모아내기도 힘든 판에 이미 스스로가 모여 있는 단위들을 민주노총이 왜 힘 있게 끌고 가지 못하느냐 계속 언질을 하다보니까, 나중에 조직담당자들이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해요. 솔직히 공투단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돼 있었다. 하나의 조직이나 정파로. 왜냐하면 저들이 보는 건 투쟁 사업장이 아니고 그 공투단에 소속된 나머지 사람들을 하나의 색깔론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공투단이 거기에 휩쓸려 가는 것처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노동자들을 몇몇 정파들이 끌고 간다고 상층부는 바라보고 있던 거죠. 그런데 그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잘못됐다고 인정하면서 벽이 허물어졌죠. 그래서 우리 공투단이 얘기하고 싶던 것도 그거였어요. 민주노총이 딱 한정된 투쟁방식이 아닌 다양한 방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투쟁하는 것, 이런 게 결국은 나쁘구나, 왜곡되게 해석돼서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이후에도 전술적인 부분이든 투쟁 방식이든. 지금 민주노총이 제안한 것도 이후에 민주노총이 공동투쟁본부를 제안한 건데 그 제안한 내용에도 투쟁사업장만 회의에 참석하는 틀을 깨고, 현재 공투단에 참석해서 활동하는 있는 활동가 동지들도 이 회의 체계에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열린 구도의 회의를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해서 공투본을 제안했는데.... 들어보니까 며칠 전 민주노총 간부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언성이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아직까지도 오픈마인드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인드가 아직 안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면서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한계인 것 같아요.

명숙 : 지금 말씀하신 걸 들으면 공투단이 지금 노동운동에서 긍정적인 역할이라면, 사업장 단위나 정규직비정규직의 틀을 뛰어넘은 것 외에도 사실 노조운동에서의 폐쇄적인 조직운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그런 태도에 긍정적인 역할을 줬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최일배 :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죠. 이것이 금속이든 민주노총 상층부든 이런 방식으로 투쟁사업장을 운영했으면 하는. 왜냐하면 현장에서 다양한 요구들이 있거든요. 맨날 똑같은 방식 말고, 좀 다양한 방식의 전술을 요구는 하지만 그 요구에 충족을 시켜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민주노총도 그런 부분은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고 확대된 싸움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의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기 위해 회의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겠다,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이상하게 어떤 관습이라고 하나, 자기들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치부하는. 그래서 권위주위를 얘기하는 건데 아직 그런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근재 : 여기서 첨언을 하면, 저 같은 경우는 대중조직 활동가잖아요. 앞서 말한 비판의 대상인 연맹의 조직을 담당하는 사람인데. 제가 공동투쟁단 경험에서 가장 좋았던 건 흥국생명도 그렇고 알리안스도 그렇고.... 연맹의 파업 사업장엔 웬만해서 결합해서 지원을 했는데 공동투쟁단의 경험은 저희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고, 진짜 아쉬웠던 건 ‘희망뚜벅이’ 이전에 이 동지들과 함께 했으면 개인 휴가를 내서라도 희망 뚜벅이에 참가하지 않았을까? (물론) 알고는 있었죠. 그런데 제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으니까. 지금 공동투쟁단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예요. 열린 공간에서 각자 생각을 쏟아내고 그걸 하나로 모아가는 거예요. 공투단엔 누가 잘하고 못하는 게 없어요. 각자 생각을 다 존중해주고. 그런데 민주노총은 그런 게 아니잖아. 2박 3일 집중집회라고 하면 투쟁사업장들 다 모여, 그런데 계획도 중앙에서 다 짜. 투쟁의 주체들은 사업장들인데 계획은 왜 위에서 다 짜서... “이렇게 할 거니까 니들 이렇게 실천해”, 이 구조에서 크게 안 벗어나는 거죠.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그래서 실제로 한번 투쟁을 하려면 투쟁 사업장을 다 모아서 한번 논의해서 투쟁사업장이 뭘 요구하고 있는지, 같이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모아서 공동으로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면 되는데.....그게 공투단이 해오던 과정인 거죠. 거기에 하나 더 장점은, 진짜 같이 고민해주는 실력 있는 동지들이 있는데, 지금은 대중조직에 몇 년 동안 경직돼 있는 생각만 갖고 그 생각이 정답이라고 믿고 오는 사람이 다수니까, 열린 생각을 못하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런 시각으로 봐왔었고.

고동민 : 다 이해가 가는 말인데 핵심은, 투쟁하는 사람들이 조합원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경찰과 비슷하게. 정말. 그런 게 되게 불쾌감인데. 경찰이 여지를 많이 줘요. 이렇게 쇼당(협상)짓자고 해서 넘어가면 통제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신세가 편해지니까. 맨날 천막 안 부숴져도 되고. 잘 수도 있으니까 되게 유혹이 많거든요. 그런데 일단 (협상을) 물리치면 탄압이 또 들어와요. 또 옆에서 쇼당 들어오고..... 근데 큰 공동투쟁을 하면 그런 느낌이 있어요. 완장 들고 막 뛰는데, 뛰라 그래서 뛰는데 분명히 어디선가 통제가 될 거 같은. 그러니까 거기 있는 동지들이 투쟁에 나서는 게 아니라 활용되고 이용되는 느낌? 이런 게 굉장히 불쾌해요. 저번에 비상시국회의에서 집회를 을지로에 잡았잖아요. 저는 사진 찍히기를 좋아해서 늘 앞 선에 있는데 딱 멈추라는 거예요. 옆에 유성동지들이 있었어요. “동지들 조금 더 앞으로 갑시다”고 해서 로터리를 잡아버렸거든요. 난리가 난 거예요. 경찰이? 아니요. 우리쪽 상급간부들이요. 욕을 하고. 물론 저희한테 욕을 한 건 아니죠. 담당 조직팀에서. 그런 거죠. 그런 느낌이에요. 정말 싸울 마음이 없구나. 사람이 이렇게 죽어 가는데 진짜 싸울 마음이 없구나. 그런 게 정말 무기력해지고. 그런데 저는 그건 바뀔 수 있다고 봐요. 바뀔 수 있다고 보고. 바뀔 수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그들도 그렇게 쇼당치는 사람도 불편해요. 그거 좋아서 하는 사람 없거든요.

명숙 : 그럼 에너지를 주는 게 공투단의 역할이고 그게 외부성의 정치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힘들을 경험하게 되면 상급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결국 자기를 되돌아보게 될 거고 옛날얘기로 하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거고. 그런 자극을 주는 역할, 불편하게 찔러내는 활동, 실천을 만들어내는 게 공투단의 역할이 아닐까요. (다음 호에 계속)


* 공투단 좌담회가 길어서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에 실립니다.
** 바쁜 투쟁일정에도 긴 시간 함께 해주신 공투단 여러분,정말 고맙습니다.

덧붙임

명숙,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