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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박근혜 새정부, 알권리 암흑기 계속될까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나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의 말을 조금 믿었었다.(그렇다고 찍기까지 한 건 아니다.) 그녀가 첫 공약으로 낸 정부3.0을 보며, 적어도 우리나라가 정부1.0까지는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망상이었다. 내가 내 발등을 찍고 있는 도끼를 믿는 바보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당선인이 된 그녀는 소통은커녕 입을 닫고, 밀실로 들어가 버렸다.

계속되는 인수위의 불통행보

인수위가 출범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인수위의 불통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윤창중, 이동흡, 김용준으로 이어지는 잇단 밀봉인사를 비롯해 전례 없던 밀실 브리핑, 인수위원들에게 떨어진 함구령과 “말하지 않겠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대변인까지.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는 혼자서만 생각하고, 혼자서만 결정한다. 도무지 소통의 자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인수위는 새 정부의 예고편이다. 우리는 인수위 모습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모습을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인수위로 봤을 때 소통이나 알권리 측면에서는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행히도 지난 정부는 알권리와 소통의 측면에서 낙제점이었다.

이명박 정권 들어 후퇴한 알권리 정책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알권리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정보공개와 기록관리제도가 크게 위축되었다. 첫 번째로 알권리 정책의 컨트롤타워 격인 위원회들의 위상과 권위를 하락시켰다. 알권리 정책을 관장하는 정부위원회인 정보공개위원회는 대통령 소속에서 행안부 소속으로 위상이 격하되었다. 게다가 2010년과 2011년에는 회의조차도 한두 번에 그치는 등 식물위원회와 다름없었다. 이밖에도 국가기록관리위원회는 외부위원 중에 기록관리제도 정립시기인 참여정부 당시 정부혁신위원회 등에 참여했던 외부 민간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2007년에 설립되어 내용의 특성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대통령 기록관리위원회 역시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서 유사기능을 하는 중복위원회라면서 폐지하고 국가기록관리위원회의 소속 전문위원회로 위상을 격하시켰다.

두 번째로 정보공개의 근간이 되는 것이자 정부의 책임성과 신뢰성을 담보하는 기록관리 체계가 흔들릴 위기에도 처했다. 2009년, 2010년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는 기록관리를 규제개혁 대상으로 선정하여 한시기록물에 대한 폐기절차를 간소화했다. 각급 기관의 기록물관리를 효율화하고,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현실화를 골자로 한 ‘기록관리 선진화’를 추진했다. 이는 기록 무단폐기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말로는 선진화 방안이지만, 알권리 측면에서는 크게 후퇴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제도개선이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2007년 행정자치부와 국정홍보처, 5개 시민사회단체 및 언론은 정보공개법을 개정초안을 만들어 개정합의를 이끌어냈다. 당시 개정 법률안에는 ▲정보공개위원회 행정심판 기능부여 ▲정보공개심의회 활성화 ▲비공개대상정보 축소화 ▲정당한 정보공개에 대한 신분상 불이익 금지 ▲정보를 위조․변조하거나 허위로 공개한 경우 등에 대한 벌칙 규정 신설 등 정보공개강화 및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는 내용들이 대폭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도 개정에 동의한 이 법안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렇듯 지난 5년 동안 정부의 불소통은 계속됐고, 그만큼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는 축소되었다. 정책과 제도가 흔들리니 정보공개와 기록관리 실무 측면에서도 크게 위축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중앙행정기관의 정보공개비율은 10% 이상 감소했고, 청와대의 경우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전부공개율이 20%대에 불과했다. 통계 이외에도 정부가 정보공개에 불응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등한시한 사례는 수도 없이 열거할 수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천안함 침몰, 4대강 사업, 구제역 파동,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영향,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 등 지난 5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정보공개를 하지 않았다. 나열한 사안들과 관련해 숱한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많은 기관들이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로 청구인의 정보공개요청을 거부하거나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공개를 회피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국민들이 저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는 유언비어 유포라며 직접적으로 억압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들에게 해가 될 기록은 남기지 않거나, 과감히 없애버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 청와대는 용산참사 사건을 군포 연쇄살인사건으로 무마하라는 업무지시를 공식적인 방법이 아닌 개인 이메일로 했고, 심지어 민간인 사찰 기록은 무단으로 폐기하기도 했다.

정보공개청구에 ‘묻지마’로 일관하는 인수위

문제는 이런 모습이 박근혜 인수위에서도 비슷하게 목격된다는 것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인수위 활동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이를 우회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중앙부처에도 청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관이 비공개로 일관했다. 인수위는 왜 비공개인지, 근거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불복에 대한 절차도 안내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묻지마’ 비공개다. 공개라고 보낸 자료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중앙부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46개 중앙부처에 인수위로부터 수신한 문서목록을 청구했는데, 제대로 공개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기관이 비공개하거나 일부의 내용만 공개했다. 문서목록과 업무담당자의 이름은 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는 공개사항인데도 말이다. 비밀성역 인수위를 지키기 위해 온 부처가 나서서 호위를 서는 모양새다. 이게 앞으로의 박근혜 정부의 모습일까 싶어 앞이 깜깜하다.

크게 양보해서 인수위 활동이 지금 당장 공개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기록으로 제대로 남겨진다면 이후에라도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기록은 그 성격상 대통령 기록에 준하는 것으로 반드시 법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수위의 기록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인수위는 국가기록원의 협조를 얻어 인수위 기록을 관리하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기사를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인수위에 파견된 국가기록원 직원은 1월 말까지 한 명도 없다.


공약으로 내건 정부3.0, 제대로 이해는 하나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정부3.0”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었다.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형태의 정부1.0과 정부-시민 간의 양방향의 정보소통형태인 정부2.0을 뛰어넘는 개개인 맞춤형 거버넌스 플랫폼인 정부3.0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업무효율을 높이고, 적극적인 정보공개와 소통으로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며 정보공개 장풍을 쏘고, 소통의 돌려차기를 하는 후보자의 모습을 만화로 그려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행보를 보면 정부3.0을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정보의 소통과 공유가 화두가 된 것은 2009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이후부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열린 정부를 선언하면서 GOV2.0 정책을 펼쳤다. 이에 미국 연방정부 데이터통합저장소를 설치했고(www.data.gov), 이 사이트를 통해 원본(비가공)자료를 뜻하는 정부의 각종 로데이터(Raw-Data)를 공개하고 있다. 이외에 영국도 정부 2.0 정책을 펼쳐 예산의 목적 및 금액 확인이 가능한 회계자료 원본을 바로 공개하고 있다. 모두 문서 또는 정보의 공개만이 아닌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데이터 자체를 공개하고 그것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제공해 정부데이터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형태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말한 정부3.0은 이것을 뛰어넘어 개개인별 맞춤형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맞춤형으로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들이 정부데이터를 가지고 창업도 하고, 기술개발도 해서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정부3.0 정책의 주요 골자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행정정보는 국민의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의 상황은 아직도 관 위주의 일방적 정보공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보가 시민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정부2.0이라며 만든 국가공유자원포털(www.data.go.kr)의 부실한 정보제공 현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보공개에서도 시민들이 자료를 가공할까봐 공개할 때 문서 형태를 수정이 불가한 csd파일이나, pdf 파일로 바꾸는 처지인데 시민들이 마음껏 가공할 수 있는 데이터와 플랫폼의 공개를 어떻게 할까 싶다.

이렇게 부족한 정보공유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부3.0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우선적으로 정보와 데이터의 공개와 공유 업무를 전담할 조직개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전체의 정보공개정책을 담당하는 직원은 행정안전부의 한 개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에서는 정부3.0을 관장할 주체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래서는 정부3.0은 고사하고 정부1.0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의 수준을 답습할 것이 자명하다.

비밀주의-그 자체로 독재의 무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이라는 닐스 보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독재의 최고 무기가 비밀이라면 민주주의의 최고 무기는 솔직성이어야 한다.” 과학도인 박근혜 당선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린다. 독재가 회귀할 것을,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을 우려한다. 한 달 남짓 인수위 활동을 비추어볼 때 박근혜 정부는 역시나 우려스럽다.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려스럽고, 지난 5년과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알권리의 암흑기가 우려스럽다.
덧붙임

정진임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