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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활동가 겸 수인의, 국가인권위원회 실망기

병역거부로 감옥 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40여 일을 서울구치소에서 보낸 뒤 여주교도소로 이사를 했다. 여주교도소에 오고 2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나 냈다. 여주교도소에서 장갑, 내의, 침낭 등등 이른바 ‘겨울용품’들을, 겨울철이 아닐 때는 금지한다며 모두 영치시키거나 폐기하라고 하고, 강력하게 단속・처벌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진정이었다.

사실 처음 왔을 때부터 여주교도소 분위기가 심상치 않긴 했다. 잠을 잘 때 머리를 두는 방향까지 정해두고 이를 어기면 ‘옐로카드’를 주겠다고 하는 걸 듣곤 어이가 없었다. 그 밖에도 창틀에 컵이든 옷이든 물건을 올려뒀다가 눈에 띄어도 처벌이라는 둥, 다른 교도소에선 찾아보기 힘든 규제들이 있었다. 그중에 ‘휴대물품 줄이기’를 위해서라며 벌어지는 겨울용품 단속은 여주교도소 수용자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표하는 문제였다. 비록 법무부 지침엔 침낭이나 장갑 같은 경우는 그 허가를 “동절기에 한” 한다고 나와 있어도, 대부분의 구치소・교도소들에서는 이를 ‘금지’시키거나 ‘단속’하는 일이 거의 없다. 가장 문제가 됐던 침낭의 경우, 모포나 담요에 비해 먼지가 덜 발생하면서도 푹신해서 많은 수용자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까는 이불로 써왔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히 문제될 것도 없었기에 구치소・교도소들도 침낭이든 내의든 단속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갑자기 여주교도소만 이를 단속하기 시작하니, 수용자들의 불만이 클 만도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국가인권위 진정서를 썼다. 나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침낭도 장갑도 가진 건 없었지만, 내년 여름이나 가을까진 여기 살 테니 남의 문제가 아니었고, 또 시설 질서나 보안과 별 관련도 없는 걸 갖고 검방을 두 번 세 번 하며 이불과 사물함을 죄다 뒤집어 놓고, 수용자들에게 겁을 주고 으름장을 놓는 꼴에도 부아가 났다. 진정서에는 교도소의 적극적 단속・처벌이 과도한 것이며, ‘휴대물품 줄이기’라는 내세운 목적에도 적합한 수단이 아니며,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동절기에 한”해 장갑, 침낭 등을 허가한다는 법무부 지침 역시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같이 진정 대상으로 삼았다. 보관 공간이나 부피가 문제라면 이미 각 물건들의 수량을 1개나 몇 개씩으로 제한한 것으로 충분하고, 방이 겨울엔 넓어지고 다른 땐 좁아질 리도 없으며, 물건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될 경우엔 따로 지시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6월 25일에 써서 부친 진정은, 약 1달 만에 ‘각하’ 당했다. 사유는 “이유 없음”이었다. 솔직히, 진정을 내면서 기각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법무부나 교도소 측이 보관 공간이 어쩌구 방 넓이가 저쩌구 하며 자기들 관리 편의상 제한해야 한다고 하면, 지금까지 국가인권위 패턴을 볼 때 넙죽 일리가 있다고 기각할 가능성이, 반은 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각도 아닌 각하였다. “이유 없음”. 그러니까, 국가인권위 조사관이 자기 생각엔 이건 인권 문제도 아니라고 잘라버린 거였다. 조사하고 다룰 가치도 없는 사안이라고 각하시킨 것이었다. 이 감옥 안의 사람들에겐 지난 한 달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던 것이, 자기가 공식 구입했거나 반입한 자기 물건이 갑자기 ‘금지물품’이 되고 뺏기고 처벌받는 상황이, 알아보고 이야길 들어볼 가치도 없는 하찮은 문제 취급을 당했다. 화가 났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에 대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주르륵 떠올랐다.

과거의 실망의 역사

[사진: 지난 4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던 청소년들에 대한 선관위 및 경찰의 탄압 관련 인권위 진정 접수]

▲ [사진: 지난 4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던 청소년들에 대한 선관위 및 경찰의 탄압 관련 인권위 진정 접수]


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2005년부터 국가인권위는 내 앞에 이상하고 어중간한 존재로 등장했었다. 2005년 국가인권위는 두발자유가 기본권임을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 그 자체는 환영해 마땅했다. 그런데 그 뒤가 이상했다. 국가인권위는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두발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앞뒤가 맞질 않았다. 두발자유가 기본권이라면, 당연히 기본권 제한에 필요한 여러 요건과 절차를 충족시킬 때만 예외적으로 제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기본권인 두발자유를 매우 모호한 “교육목적상 필요”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고 했고, 그 경우가 어떤 건지 구체적 설명도 하지 않았다. 분명 이상한 결정이었다.

2007년에는 더 황당한 결정까지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를 포함하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 상임위 회의장 앞에 쳐들어가 항의 피켓팅을 했을 정도로 황당한 결정이었다. 당시 우리는 2006년 하반기, 학교의 일방적 두발 규정 개악에 반발하여 수원 청명고 학생들이 학내시위를 하려다가 학교의 감시와 제재, 위협 및 처벌로 시위를 못한 사건에 대해 진정을 냈었다. 내용은 당연히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및 집회의 자유 침해가 주였고, 학교가 시위를 막는 과정에서 자행한 소지품 검사 등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 침해 문제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해 정작 집회・시위 침해 문제는 언급도 없이 두발규정 개정 시 학생 의견을 들으라는 권고를 냈다. 진정인인 우리나 피해자인 학생들의 얘긴 듣지도 않고 나온 동문서답 결정이었다. 우리가 진정한 내용이 뭔지 제대로 읽어보고 이해하지도 않은 게 분명했다. 항의 방문한 자리에선 학생들의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자체에 부정적이며 반인권적인 막말까지 인권위 조사관의 입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일제고사와 관련해서도 어이없는 일이 많았다. 일제고사 자체가 인권 침해라고 청소년들이 집단진정을 낸 적이 있다. 물론 침해 진정은 성립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정책 권고를 내라는 압박을 가하기 위해 낸 것이었다. 국가인권위는 그때 정책 권고를 검토해보겠다고 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소식이 없다. 그동안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직접 일제고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재검토하라는 권고까지 낸 판인데 국가인권위는 침묵 중이다. 일제고사 해직교사들이 있는 학교에서 학교 측이 학생들을 해직교사와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또 해직교사를 지지하는 학생들을 탄압하려고 자행했던 인권침해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을 했을 때도 가관이었다. 긴급구제였는데도 국가인권위는 거의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연락해선 이제 학교가 방학했으니 긴급구제가 아닌 일반 진정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또 한 달이 지난 후 연락을 하여 그제야 증언을 할 학생들을 찾았다. 초등 6학년이던 학생들의 졸업을 한 그때야 비로소 말이다. 그 결정은 1년여 지난 후에야 나왔는데, 교장이 학교 현관에 철문을 폐쇄하고 학생들을 감금한 등의 문제는 교장의 합당한 권한이었다고 기각하고, 오직 학생들의 해직교사 응원 피켓을 뺏은 사건 등만 인권침해로 인정했다. 그 일 이후에도 일제고사와 관련하여 학교의 폭력, 차별 사건들을 모아 기획 진정을 냈는데, 그때도 몇 개월 지난 뒤의 늑장 조사, 부실 조사, 그리고 여러 문제로 제대로 결론도 못 낸 사건들이 수두룩했다.

가장 최근에는 ‘삼각산중학교 학생회 신문 사건’이 있었다. 삼각산중학교의 학생회에서 임원들이 자체 기획한 신문을 학생회에서 모은 예산으로 발간하려 했으나, 신문에 학교 내 체벌 문제를 지적한 기사가 있단 이유로 교장이 못하게 막은 사건이었다. 학교 내 언론・표현의 자유의 시금석이 될 만한 사건이었고,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하던 단체에서 삼각산중학교 학생회장과 같이 국가인권위 진정을 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는 진정을 내고 1년이 지난 뒤에야 연락이 왔다. 그 조사관은 자기가 인사이동으로 이 사건을 새로 맡게 되었다고 하면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 학생회장 등도 졸업했기에 구제 실익이 없어 각하될 위험이 있다고 걱정을 표했다. 결국, 각하되는 걸 피해서 진정을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우리와 여러 사업 등으로 안면이 있던 그 직원은 정말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너무나 어이없는 국가인권위였다. 실로 ‘국가인권기구’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은, 또는 어쩌면 ‘국가기관’에 걸맞은, 괴악한 일처리와 인권의식이었다.

이처럼 차곡차곡 쌓여온 국가인권위에 대한 내 실망의 역사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현병철 위원장 때문에 국가인권위가 망가졌다는 식의 평가는 동의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는 현병철 위원장 이전부터도 문제가 많았고, 몇몇 위원들과 직원들이 있어 그나마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국가인권위 직원들이 활동가들보다도 인권 기준이나 조약・법 등에 무지하고, 보급용 세계인권선언 번역을 엉터리로 하고, 진정 사건 조사도 제대로 못하고, 인권의식은 너무나 부족한 꼴을 자주 보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슈가 됐던 광주 인화학교 사건에서 국가인권위의 역할이나, 그 외에도 우리 사회 인권의식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던 국가인권위의 활동들과 공들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가 현병철 위원장 이전이든 이후이든, 불만족스럽고 제 몫을 못했다는 게 내 경험에 근거한 평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부족했던 국가인권위이기 때문에 더 발전시키고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야 했는데, 그런 발전은 고사하고 무자격 위원장 하나 연임하네 마네 하며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더 슬프다.

‘감옥인권’과 '인권위 제자리 찾기‘

병역거부로 수감되기 전, 정해둔 것이 있다. 하나는 같이 사는 여러 수용자들과는 되도록 원만하게 지내되, 교도소 측이 부당한 대우를 할 땐 내가 항의할 수 있는 건 항의하겠단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감옥 안에서 ‘운동’을 하진 않겠지만, 법적으로 내게 보장된, 그리고 내가 부담이나 위험 없이 할 수 있는 ‘권리구제’는 충분히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단식 투쟁을 하거나 선전물을 뿌리진 않겠지만, 국가인권위 진정 같은 건 낼 건 내겠단 것이다.

감옥에 와보고 느낀 건, 난 별생각 없이 ‘권리 구제’로 한 것도 이곳 직원들은 무슨 큰 ‘운동’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 체감 정도의 격차였다. 나는 국가인권위에 각하 당할 그 소위 겨울용품 진정 하나를 내려 계장 면담도 거쳐야 했고, 주임으로부터는 “개인적으로” 하는 말이라며 진정 취하를 권유받기도 했다. 직원들은 진정이나 청원을 내는 것 자체를 심각한 도전이나 문제 상황으로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로선 이 또한 당황스러웠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의아했다. 그래도 난 앞으로도 ‘권리구제’는 특별히 꺼리지 않을 셈이다. 아니, 더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도 싹트고 있다. 국가인권위가 감옥에 있는 나를 또 한 번 실망시킨 마당이니, 그럼 국가인권위를 압박하고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라도 계속 국가인권위에 인권 문제에 대한 조사와 판단을 요구해야겠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운동’에 내 나름대로 참여하는 방법이랄까? 물론 감옥인권에 대한 권리구제 신청인 게 1차적인 목적이지만 말이다. 우선은, 서울구치소에서 교육・학습용 만화가 아닌 모든 만화책을 반입 금지시켰던 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 진정을 내는 것을 준비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번엔 날 좀 덜 실망시키길 바란다.
덧붙임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이고, 병역거부로 현재 여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입니다. (지지와 응원 편지를 보내실 분은_ 경기도 여주군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407번 유윤종 / cafe.daum.net/gong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