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일반

나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노숙이 살인누명의 이유?


2007년 5월 수원의 한 고등학교 옆 화단에서 여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당시 지문을 감식하여 신원을 파악하려 했지만, 미성년자여서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공개해 언론과 아고라 등을 통해서 신원확인을 하고 가족을 찾아준 사건이 있었다. 집을 나와 친구들과 노숙을 하던 (당시) 15세 소녀는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증인이나 증거가 명확하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며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는 여론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범을 찾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범인으로 밝혀진 용의자는 현재까지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재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건의 이면에는 많은 인권적 문제가 내포되어 있으며,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빈곤과 차별의 양상을 마주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사전의 경과를 설명하면, 경찰은 당시 살해용의자로 검거된 노숙인(지적장애 2급) 정모 씨와 강모 씨에게 자백을 받아냈다. 이 중 정모씨는 사건의 위중함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1심 재판 징역 7년 선고를 받게 되었고, 징역선고 후 항소를 통해 무죄를 주장했으나 2심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역시 유죄를 인정, 징역 5년 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검찰이 받게 되어 재수사를 하는 과정에 10대 노숙청소년 4명을 다시 검거하였다. 노숙청소년들과 노숙인 정모 씨, 강모 씨는 또 다시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무죄를 주장했지만, 유죄 판결에 대한 위증의 혐의만 더 가해지게 되었다. 현재 정모 씨는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4년 6개월째 복역 중이고 공범으로 지목당한 10대 노숙청소년들과 강모 씨는 국선변호인의 도움으로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함께 기소된 바 있는 핵심증인인 강모 씨의 “정모 씨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라는 증언이 위증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단(선고일 2011. 11. 7)까지 내려졌음에도, 여전히 정모씨는 수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검·경의 편법 수사

노숙인이 많이 집결하는 곳이 역 주변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정보와 집단이 형성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중 서울역과 수원역에 특히 노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2007년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수원역 근처에서 영아유기사체가 발견되어 검·경이 지적장애 2급의 노숙 소녀(17세)를 용의자로 검거하여 수사한 사건이 있었다. 구강 DNA 채취 결과 용의자와 사망한 영아가 일치하지 않다는 결정이 국과수로부터 나왔지만 검·경은 지적장애 노숙 소녀를 통해 사건을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으로 범인이 아닌 용의자를 풀어주지 않고 14일간 강제구금하였다. 우연인지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과 이번 노숙인 살인 누명의 사건 담당 경찰은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건이 한 경찰의 인권의식 부족과 범죄해결 성과내기식의 배경만의 문제로 일어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용의자로 지목당한 피의자의 상황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숙인, 자기변호와 항변이 약한 지적장애인이라는 점이 일치한다. 최근 들어 사건 용의자가 확실치 않아 보이면 경찰이 제일 먼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이는 일이 잦다. 그리고 일단 사건발생 지점과 시기에 근처에 한 노숙인이 있었다는 진술이 확보되면 검거하여 짜맞추기식 수사를 진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사회에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노숙인과 장애인이 범인으로 오인을 받게 되고, 자신의 죄을 항변하는데도 이와 같은 내용들이 재판과정에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고 검찰과 경찰의 사건해결에 판단근거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이 사건의 중심에는 노숙인과 장애인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인식이 깊이 박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 말이다. 우리 헌법 제10조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한 가치가 있다고 나와 있지만 검·경의 사건수사진행의 과정에서는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노숙인과 장애인의 존엄성이 쉽게 무시된다. 경시해서는 안 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린 결과로 이와 같은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속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돈 없고, 힘없고, 지지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들을 검찰과 경찰은 더욱 괄시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낮은 인식이 무죄를 주장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2차 가해를 일으켜 사회적으로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자기불신에까지 이르게 만들고 있다.

검·경의 뻔뻔한 작태에 분노

“나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이번 사건에 무죄를 주장하는 정모 씨에게 자기 항변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모자라, 무죄가 밝혀진 마당에도 죄인 취급하는 검찰과 경찰의 작태를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엄청난 죄를 짓고도 휠체어를 타고 감옥을 나올 수 있지만 가진 것 없는 정모 씨와 같은 약자들은 죄를 짓지 않고도 수년 동안 감옥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런 불평등한 사실 이면에는 죄를 조작하고 범죄해결을 성과주의식 편의행정으로만 바라보는 검찰과 경찰의 행태가 있다.

지난 11월 8일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건을 통해 자행되는 검찰과 경찰의 불법과 부도덕함을 알리고 정모 씨의 형집행 정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또한 같은 날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하였으며 지역단체들은 앞으로 파렴치한 검·경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노숙인과 장애인의 변론권 마련을 위한 정책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은 가난해서 오히려 인권 침해에 취약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행태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선지영 님은 경기복지시민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