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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늑장대응이 부른 노숙인의 어이없는 죽음

5월 29일, 노숙인 한 분의 죽음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구의동 한 슈퍼마켓이었다. 노숙인이 소주 한 병을 훔치려는 것을 본 주인이 소주를 빼앗는 과정에서 술병이 깨졌다. 그 깨진 병조각 위로 노숙인이 넘어지면서 무릎 아래로 피가 강한 물살처럼 솟구쳤다. 결국 과다출혈로 인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안타까운 사건은 어이없는 것이기도 한데, 당시 출동한 경찰의 늑장 대응으로 노숙인의 과다출혈이 방치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늑장대응으로 인한 노숙인 사망사건

이 노숙인의 다리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쏟아졌고 주변에 있던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다. 하지만 도착한 경찰은 멈추지 않는 출혈로 점차 의식이 혼미해져간 그를 즉각 후송하기는커녕 10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더럽고 냄새가 나는 데다가” 피를 많이 흘려 순찰차의 시트에 깔 비닐을 찾는 데에 시간을 허비했고, 현장 사진을 찍고 구급대에 전화를 거는 등 촉각을 다투어야 할 시간을 다 허비하고 말았다.

지난 5월 29일의 노숙인 사망 방조 사건에 항의하는 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 지난 5월 29일의 노숙인 사망 방조 사건에 항의하는 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그제서야 경찰은 신문지와 비닐에 노숙인을 싸고 순찰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그 노숙인은 병원 도착 후 14분 만에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고인의 죽음은 ‘과다출혈’이라는 사인 이전에 노숙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경찰의 직무유기, 늑장대응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경찰들

노숙인들은 무주거, 실업, 가족해체의 현실 속에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최극단의 도시빈민들이다. 빈곤으로 인한 고통과 더불어 사회의 차별적 시선, 불안정한 식생활, 숙면 부족, 사생활 완전 노출과 같은 생활은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유발시킨다. 또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거리에서 살다보니 취객이나 폭력배와 같은 이들에게 폭행당하거나 범죄에 이용당하는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거리노숙인의 1/4이 명의도용 범죄 피해를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위장결혼, 장기매매, 과거부터 지속됐던 임금착취, 인신매매와 같은 노동착취 역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노숙인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여러 가지 범죄 피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과 이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대책마련은 전무한 상황이다. 오히려 경찰은 노숙인을 예비범죄자 혹은 폭력집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숙인들은 경찰의 행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숙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정말 하기 싫다.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봐 주면 좋겠다.”
“차별을 두지 않고 일반시민처럼 대우해주면 좋겠다. 외모만 보고 차별하지 말라. 경찰도 무조건 나이도 무시하고 반말하는 것은 시정해야 한다.”
“경찰들이 검문, 연행 할 때 사람들 눈을 피해 툭툭 치고 무릎을 발로 때렸다.”
“공공기관에서, 경찰이나 공안이나 노숙인을 범죄자로 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에서도 일반인과 노숙인 진료하는 과정에서 차별이 심하다.”
[노숙인 범죄피해 현실과 경찰 행정 실태 - 당사자 자유발언]


노숙인을 대상으로 절차 자체를 무시한 불법적이고 상습적인 불심검문이 실시되는가 하면 경찰이 오히려 각종 차별을 가하기 일쑤다. 노숙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경찰의 도움을 청했을 때 도움을 받기는커녕 경찰이 출동해도 도움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65%였을 뿐만 아니라 부당행위나 범죄피해의 가해자로 경찰과 공안을 높은 비율로 지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리에서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거리에서 달래는 추모제

▲ 거리에서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거리에서 달래는 추모제



더 이상 어이없는 죽음이 없도록

이번 사망사건을 계기로 그간 지속되었던 경찰의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직무 유기 관행들이 바로잡혀야 한다. 경찰관 직무규칙에도 분명하게 경찰 직무수행 시, 모든 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과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그 특성에 따른 세심한 배려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형식적일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노숙인도 사람이다. 노숙을 한다는 이유로 누구도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빈곤과 차별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 분명히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저지른 직무유기로 인한 피해, 죽음들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이에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을 비롯한 유관 사회단체들은 이번 노숙인 사망사건에 대한 경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다시금 이런 반차별적인 시선으로 인한 어이없는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들에게 노숙인과 같은 사회취약계층의 인권보호를 위한 업무지침을 더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에 의한 노숙인 차별과 인권침해 사례

● 촛불 시위 단순참가자 노숙인 윤 모 씨 구속
2008년 6월 8일,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노숙인 윤 모 씨가 연행되었다. 영장실질심사를 함께 받은 자영업자 전 씨에 대해서는 영장을 기각했으나 윤 씨에 대해서는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단순 시위참가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구속 조치했다.

● 수원 영아 살해 사체 유기 사건 무혐의 여성 구금
2007년 5월 31일, 경찰은 영아 살해 유기 사건 용의자로 18세 지적장애 노숙여성 조 모 씨를 연행했다. 국과수 조사 결과 조 씨의 DNA가 살해된 영아에서 발견된 흔적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경찰은 이후 14일 동안 조 씨를 계속 구금했다.

● 호송 중 노숙인 사망 사건
2006년 2월 3일,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김 씨의 건강상태를 염려한 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김 모 씨의 신원을 파악하고 벌금 140만 원을 미납한 사실을 발견했다. 경찰이 구치소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대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김 씨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별다른 조치 없이 구치소로 데려갔고 구치소에 도착했을 때 사망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 혐의로 부당 구금
2005년 1월 3일,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노숙자 차림”이라는 증언만 가지고 노숙인 윤 모 씨를 용의자로 지목하여 구금했다. 국과수로부터 물증이 없다는 답변을 받고 1월 5일 윤 씨를 석방했으나 경찰은 윤 씨를 모 쉼터에 입소시켜 밀착 감시를 풀지 않았다. 2월 16일, 윤 씨가 아닌 진범이 검거되었다.
덧붙임

조승화 님은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