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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유권자의 입을 막는 선거법 개정해야

민주주의의 꽃 ‘선거’와 표현의 자유


선거철이 다가온다. 내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이고 그에 앞서 10․26 재보궐 선거가 있다. 양대 선거와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은 뜨거워지고 있다. 정치판은 뜨거운데 평범한 한 명의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선거일에 기표하는 행위 외에는 없어 보이니 허리 굽힌 정치인들의 인사도 남 이야기 같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하는 행위로,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동시에 선거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선거의 공정이 담보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선거의 자유 또한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 금권선거, 관권선거와 같은 선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선거의 공정성을 기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이 필요하다. 선거법은 이 두 원칙, 선거의 자유와 공정 양 축이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은 양 축 중에서도 선거의 공정성에 과도하게 치중되어 있다. 유권자들을 그저 투표용지에 기표만 하는 ‘자동인형’에 비유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구시대적인 선거법이 평범한 시민들을 선거사범으로 내몰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 지나친 비유는 아닌 듯하다.

구시대적인 선거법과 성숙한 유권자 사이의 간극

한 패러디 작가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영화 포스터에 탄핵안 가결에 앞장선 야당 대표의 얼굴을 합성해서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하였다. 패러디는 소설이나 영화, 광고 등 여러 분야에서 유행하는 표현 기법이지만 선거법 93조 1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어느 대학생은 2007년 언론에 보도된 어느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기사와 사진, 만평 등을 엮어 유씨씨(UCC)를 제작해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모아둔 것이 무슨 큰 죄가 될까 싶지만 이 대학생 역시 선거법 93조 1항에 의해 벌금 80만원, 선고유예를 받았다.

최근에는 에스엔에스(SNS), 그 중에서도 트위터 단속이 심해졌다. 지난 8월, 한 트위터리안은 자신의 트위터에 낙선 대상 명단을 차례로 올렸다. 정치인에 대한 자유로운 선호 표현은 국민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권리다. 하지만 검찰은 해당 행위가 사전선거운동이라고 기소하여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런 사례들은 정치의식이 점차 성숙해지고 있는 유권자들이 낡고 오래된 선거법에 의해 수난 받은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2007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삭제를 요청한 인터넷 댓글과 유씨씨(UCC)가 9천여 개에 달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선관위의 단속이 온라인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정책을 비판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거나 전단지를 배포하는 행위도 선관위의 단속 대상이 되어왔다.

유권자들이 표현하고 싶은 갈망은 더해 가는 데 반해, 선거법은 ‘금권선거, 관권선거’가 판을 치던 과거에 머물러 ‘규제, 단속’만을 외치고 있다. 국제인권기준에 비추어 봐도 현행 선거법은 선거기간 전에 정치적 논의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 프랭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한국 표현의 자유 실태 조사 후 “선거 당일에 이르는 중요한 시기에 선거 및 후보자 관련 주요 사안에 관한 정보와 의견의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교류를 포함하여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전면 보장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했다.

유권자 자유 제약하는 선거법, 참여민주주의 실현 위해 개정해야

유권자의 말할 자유를 가로막는 대표적 선거법 조항은 93조 1항이다. 선거법 93조 1항은 누구든지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혹은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한 광고, 벽보, 문서․도화, 인쇄물 등 기타 유사한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하면 선거일 180일 전, 내년 총선에 적용해본다면 올해 10월 중순부터 유권자들은 그야말로 자신의 손발을 묶어두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에 대해, 후보자의 정책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러한 ‘상식’은 현행 선거법에서 통하지 않는다.

또한 앞서 소개한 피해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관위와 검찰은 유씨씨(UCC)를 93조 1항의 ‘기타 유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때 유씨씨(UCC)는 인터넷 토론방이나 게시판,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모든 컨텐츠를 포함하고 있어, 93조 1항은 사실상 온라인에서의 자유로운 정보 교환, 토론을 불가능하게 하고 더 나아가 누리꾼들 스스로 자기검열 하도록 하고 있다.

93조 1항 이외에도 ‘선거운동’을 너무 포괄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마저 ‘선거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옭아매고 있는 58조와 인터넷 언론사에 실명제를 강제하고 있는 82조의6, 선거 시기 연설회, 집회, 행렬, 서명 등 정책 캠페인의 주요 수단을 규제하는 101조, 103조 3항, 105조, 107조, ‘비방’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금지하고 있는 110조 등이 대표적인 선거법 독소조항이다.

따라서 현행 선거법은 근본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유권자가 단지 투표장에 가 기표만 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 참여민주주의를 위해 선거법 개정은 최소한 3가지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유권자는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위해서 언제라도 정당과 후보자를 지지․반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또한 유권자는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위해 모이고, 서명하고, 홍보할 권리가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유권자는 누구에게라도 투표를 권유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3가지 권리는 기본적인 유권자의 권리로서 선거법 개정의 기본 방향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58조의 포괄적인 ‘선거운동’ 정의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로 명확하게 바뀌어야 하며 특히 온라인상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규제해온 82조의6과 93조 1항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집회, 행렬, 서명 등을 금지하고 있는 101조, 103조 3항, 105조, 107조 또한 삭제되어 유권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서명할 수 있어야 한다.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금지해 온 110조 역시 삭제되어야 할 조항이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에는 현행 허위사실 유포죄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유권자의 표현으로서의 비판과 평가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개정 필요성 공감하는 유권자들 모여 유자넷 발족

선거법이 너무 포괄적으로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지적은 2000년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 때부터 계속 되었다. 그 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선거법 독소조항은 선거 시기마다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왔다. 유권자들의 공분은 이제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1일, 선거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시민사회단체, 네티즌, 시민들이 모여 ‘유권자자유네트워크 준비모임(아래 유자넷(준))을 발족했다. 유자넷은 선거법 93조 1항 폐지 등 선거법 독소조항에 대한 시민대안이 18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에 입법청원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유권자 표현의 자유 옹호를 위한 피해 시민․네티즌 법률지원단도 구성된다. 법률지원단은 애초, 내년 양대 선거의 선거법 피해 사건 대응을 위해 기획되었지만 오는 10․26 재보궐 선거,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선거법 피해 사례들이 다수 발생할 것으로 판단되어 10․26 재보궐 선거 시기부터 법률지원단을 구성하고 선거법 피해 신고 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더 이상 주권을 가진 국민들을 ‘피해자’라고 명명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서 올바른 후보와 정책이 선출될 수 있도록 선거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유권자들이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해 연대하는 지금, 정치권은 한 표를 위해 허리를 굽힐 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중심에 둔 진정한 정치개혁 의지를 보여야 할 때이다.
덧붙임

이선미 님은 참여연대, 유권자자유네트워크(준) 사무국 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