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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위성 정당, ‘꼼수’가 아니라 퇴행이다

- 선거제 개혁의 의의를 살리는 총선을 만들자

2019년 국회를 뒤흔들었던 패스트트랙 정국 끝에 선거제도가 개정된 후 첫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4월 15일, 제 21대 총선이다. 정권 중간에 열리는 선거인만큼 정권 심판론도 야당 견제론도 낯설지 않지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은 정당투표에 따른 비례 의석인 것처럼 보인다. 작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30개의 의석이 정당 투표율과 연동되어 배분될 예정인데, 국회의원 전체 300석 중 10%인 바로 이 30석을 위해서 미래통합당은 별도의 정당을 만들어버렸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비례의석용 정당을 고민 중이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다양한 정당들이 각 당의 정책으로 경쟁하리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정책은 사라지고 이합집산에 따른 의석 수 계산만 더 복잡해진 형국이 되었다.

 

20대 국회가 훼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회 300석 중 지역구 의석은 253석, 비례 의석은 47석이다. 국회가 지역구 의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1등만 당선되는 지역구 투표에서 당선되지 않는 후보에게 던져진 표는 흔히 ‘사표’라고 불리며 국회 구성에 반영되지 않는다. 소위 될 만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사표 방지론’이 등장한 이유이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의 과정은 이미 세력을 가진 기성 정당에게 유리하기에, 신생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다수의 지지를 받는 국회의원만 당선될 때, 1등에게 투표하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정치를 대의하는 국회의원이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1963년 비례대표 제도가, 2004년 정당명부 투표가 실시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구에서 많은 의원을 배출할 경우 비례대표 의원은 당선시키지 않는 식으로 실제 정당투표율을 국회 구성에 최대한 반영하자는 구상이다. 그러나 2019년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며 애초의 제안은 원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었다. 국회의 비례 의석을 늘리자는 주장은 기존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으며, 정당투표 연동률은 50%로 깎였고 그것도 30석에만 적용된다. 득표율에 연동하는 국회를 구성함으로써 시민의 정치 참여를 높이자는 제안, 소수자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이 원내로 진입하기를 바랐던 바람은 그렇게 힘을 잃었다.

 

거대 양당 구도는 여전하다

그런데 그 30석마저 거대 양당이 가져가려 시도하고 있다. 장외 집회와 육탄전까지 불사하며 선거제도 개혁을 가로막아온 미래통합당은, 최근 정당투표용 위성 정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일정 수 이상 지역구 당선자를 낼 경우 연동형 비례 30석은 가져갈 수 없으니, 지역구 선거를 치르는 미래통합당과 별도로 비례대표를 당선시키는 새로운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통합당의 꼼수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도 정당투표용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그렇게까지 노골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선거연합정당이나 플랫폼 정당, 혹은 전략투표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제안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미래통합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이다. 앞서 제안된 방법들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미래통합당이라는 ‘최악’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는, 어딘지 익숙한 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그 동안 서로를 자양분삼아, 서로가 서로의 대립각으로 위치하며 자신들의 덩치를 키워왔다. 그 결과 거대 양당 구도가 고착되고, 의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한나라당을 막기 위해서 민주당을 찍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저지하기 위해서 새누리당을 찍는” 기묘한 공조 관계는 선거 제도가 바뀐 2020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바로 이 공조 아래에서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그 의사만큼의 다양성이 발현되는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꼼수’나 ‘맞수’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미래한국당 응징’을 이유로 삼아 의원 총회와 당원 투표를 거쳐 선거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정의당은 선거연합정당 불참을 공식화했고, 녹색당은 명분 없는 선거연합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득표율에 부합하는 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시민의 정치 참여도를 높이려 했던 선거제 개혁의 의의를 기억할 때, 더욱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심판론’은 그 모든 가능성을 다시 양당 간의 세력 다툼으로 축소시킨다. 진보 정당이 나름대로 선전하는 일이 곧 미래통합당에 대한 견제일 수도 있는데, 그런 가능성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은 채 ‘민주당으로 대동단결’만 고려되는 문제적 상황이 반복된다.

최악을 막기 위한 선거에서는 늘 그렇듯 정책이나 공약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 21대 총선은 유독 노골적이다. 거대 양당은 정당의 방향성, 정책의 내용, 공약의 신뢰도, 그 어느 것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야당 견제’와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만 외치고 있다. 선거 기간은 다양한 정당이 자신들의 지향과 목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시기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거를 축제라고 부른다. 21대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동물권 정당, 여성 정당, 플랫폼 혁신 정당 등 다양한 신생 정당의 등장 예고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대 양당 간의 세력 다툼에 이목이 집중되며 소수 정당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선거제도 개정을 통해 다원화된 국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는 이렇게 힘을 잃었다. 미래한국당과 선거연합정당의 등장은 ‘꼼수’나 ‘맞수’가 아니라 선거제 개혁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다른 선거를 만들기 위한 시작

선거가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발현하는 장이라면, 미래한국당과 선거연합정당의 등장은 선거의 의미를 양당 간의 세력 다툼으로 축소시킨다. 거대 양당의 위성 정당이 훼손하는 것은 선거제 개혁과 이를 통해 꾀했던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이다. 이에 맞서는 방법은, 저들의 행태에 가려진 소수 정당의 이야기를 찾아 듣고 각자가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일이다. 선거 과정에서 ‘그나마 나은 후보와 정당’이 아니라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21대 총선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일단 이번에는 급한 불을 끄고 다음 선거를 기약하자는 말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당장 급하다는 이유로 변화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면, 변화는 절대로 시작될 수 없다.

미래통합당도 아니고 선거연합정당도 아닌, 나의 정치적 지향과 내가 바라는 세상을 위한 선거를 만들자. 당장 내 마음 같은 후보와 정당이 없다면, 그러한 후보와 정당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으로써 선거를 상상하자. 이는 제 정당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선거가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과정이라면, 실제 의사가 반영되는 선거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최악을 막기 위한 선거’라는 오랜 관습을 넘어서야 한다. 21대 총선은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