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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증, 통제는 있고 자유는 없다 ②

경찰 채증의 인권 침해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인권대통령’을 표방하면서 최루탄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는 적극 보장하는 대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집회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기조는 노무현,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면서 더욱 확고하고 강력해졌다.

이후 경찰은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는 현행 집시법을 악용해 자신들이 불법집회라고 판단하는 사안에는 집회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장소를 사전에 통제하며, 불법집회로 규정된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사후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대규모로 사람들을 체포하지는 않지만 사후에 대규모 소환장을 보내거나 민사소송을 통해 참가자들을 옥죄고 있다.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던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폭력’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사실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위축’되고 있다. (물론 ‘시민’으로서 집회에 참여할 때 이야기다. 노동자, 농민, 철거민들의 투쟁과 집회현장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된다.) 이 과정에서 사후처벌의 강력한 수단으로 집회참가자 ‘채증’이 이용되고 있다.


불법집회? 합법집회?

경찰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덕분인지 언젠가부터 ‘불법집회’와 ‘합법집회’라는 구분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있다. 집회가 뉴스에 등장할 때는 언제나 불법 폭력집회에 대한 것뿐이며, 초점은 왜 집회를 하는지가 아니라 불법집회를 벌였다는 사실이다. 언론에게는 희망버스도 정리해고 문제가 초점이 아니라 합법집회냐, 경찰이나 보수단체와 충돌했느냐 여부가 관심사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 중에 기본권이다. 그런데 어떤 기본권은 불법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 흔히 이야기되는 것은 국가안전보장, 공공의 중대한 이익을 위해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대단히 상식적인 말일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무차별적인 폭력, 약탈행위와 같은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기본권의 본질은 침해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경찰 허가를 받기 위해서 집회 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집회시위의 원활한 진행과 참여자 보호를 위해 신고를 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 19조의 취지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집단의 중대한 이익’이 공공의 중대한 이익으로 둔갑한다. 반값 등록금 집회를 불허하는 게 공공의 중대한 이익인가? 부산과 서울에서 네 차례 치러진 희망버스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더기 소환장을 발부하는 것이 공공의 중대한 이익을 위해서인가, 조남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특정 장소에서 집회를 못하면 집회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구로구청 앞에서 반값등록금 집회를 하고, 울산 현대중공업 앞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외쳐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현재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는 집회들을 불허하는 경찰의 행태는 권력집단의 중대한 이익을 보호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졸지에 ‘미신고 불법 집회’ 참가자가 된 사람들은 법규를 위반한 범죄자들이므로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채증 활동은 아주 당연한 경찰의 고유 활동이 된다. 즉 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채증 활동 자체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부정할 때만 가능한 활동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효과적인 억압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불법 채증, 또 다른 문제는 없는가

지난 7월 19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경찰은 자신들이 합법으로 규정한 집회에서도 채증을 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경찰은 집회가 언제 불법집회로 변질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채증을 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런 식으로 2001년부터 집회 참가자들의 사진을 입력해 영상판독시스템을 구축했으며, 2005년부터 2010년까지 2만 4천여 명의 자료를 축적했다. 경찰은 채증 자료를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사진과 대조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한다. 이미 반값등록금 집회 참가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출석요구서가 무더기로 발송되었다.

경찰이 진행하고 있는 채증 자체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란 개인이 자신에 관한 정보의 수집, 보관, 공개와 유통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합법, 불법과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의 개인 정보인 ‘개인사진’을 ‘수집’하고 이 사진을 국가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목적과 용도의 정보와 교차 대조해 ‘활용’하고 있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정보가 악용되어 특정 개인에 대한 정치, 사회적 차별과 억압, 감시와 처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고, 정리해고를 철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외침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함께 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언론에서 사진을 찍고 취재하는 것을 반기지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사가 찍은 사진들을 경찰이 고스란히 입수한다면 똑같은 사진이 ‘전혀 다른 맥락’에 놓여 집회참가자를 탄압하는 수단이 된다. 사진은 어떤 맥락에 놓이는가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합법집회라고 경찰이 보호해주면서, 뒤에서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나도 모르게 위축된다. 특히 저 카메라 자료를 가지고 출석요구서를 무더기로 날린다는 사실을 안 이상,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자신이 떳떳하면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문제는 떳떳한 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정보를 쥐고 있는 경찰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된다.

바로 경찰이 노리는 효과가 ‘자기검열’이다. 범죄 예방적 경찰활동이라는 미명 하에 분명한 범죄 행위와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채증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내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으니 알아서 잘 행동하라’이다. 채증뿐만이 아니다. 유무선 통신기록이나 인터넷 상의 기록들 역시 분명한 범죄 사실 소명 없이 경찰의 자의적인 요구에 따라 수시로 경찰에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각종 ‘정보수집’ 경찰활동을 과거 용어로 번역하면 ‘학원 사찰, 민간인 사찰, 프락치 활동’이다. 경찰 정보수집 활동의 의도와 효과는 명확하다. 경찰의 정보수집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사회 비판 세력을 감시하기 위한 예방 활동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경찰 채증 활동을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 앞서 기사에서 확인했듯이 채증에 관한 입법의 공백이 크다. 채증 관련 법령을 뒤지고 자료를 살펴봐도 맞춰지지 않는 퍼즐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예방적 활동으로서의 정보수집 업무가 과연 경찰의 본질적인 영역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채증을 통제할 수 있는 입법과제도 조속히 마련해야 하고 정보수집에 관한 경찰 업무와 조직 개혁도 인권보장의 중요 열쇠이다.
덧붙임

오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