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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석진의 인권이야기] 경찰폭력 인권침해 감시단, "아펙을 부탁해"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21조 1항)

#1. "아니, 왜 못 나가게 하는 겁니까?"

촛불집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한 쪽에선 또 실랑이가 일었다. 시커먼 옷을 입은 진압경찰이 집회 참가자의 통행을 막고 있었다. 집회에 참가했다가 부득이하게 중간에 가야할 일이 생겨 집회장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경찰이 막무가내로 막고 있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막는 것도 문제인데 그것도 아니라 집회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막으려 하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촛불을 끄지 않으면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가시려면 촛불을 끄고 나가십시오"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들고 있던 촛불을 꺼야만 집회장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피식…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었단 말씀.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이동의 자유를 경찰이 임의로 제한할 수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평화로운 집회를 왜 경찰이 두 겹, 세 겹으로 둘러싸 봉쇄해야 하는 건데?

#2. "방패 모서리로 사람을 찍는 건 위법입니다. 게다가 방패 모서리를 둘러싼 고무테두리를 제거한 것도 불법이고요"

인권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된 '경찰폭력 인권침해 감시단'의 한 감시원이 진압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이미 경찰들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한바탕 충돌이 있은 후였다. 무슨무슨 집회에서처럼 '죽창'이 나온 것도 아니고 돌이 날아든 것도 아니었다.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들 사이에 약간 몸싸움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경찰들은 칼날 같은 방패 모서리로 집회 참가자들을 찍으며 밀어붙이고 있었다.

"방금 경찰의 행위는 불법행위였다는 거 알고 있죠? 불법 경찰장구의 위법한 사용이었습니다. 소속과 이름을 밝혀주십시오. 책임자는 누굽니까?"

그런데도 경찰은 마냥 묵묵부답이다. 경찰력의 과도한 집행은 인권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법학자들은 법의 기본원칙으로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과잉금지의 원칙에 의해서 경찰력의 '대항폭력' 개념은 인정되지 않는다. 즉 집회 참가자들이 위법행위를 한다고 할 때 경찰력이 이를 제지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위법행위를 '제지'하는 것 이상의 행위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자체로 '과잉진압'으로 규정되어 불법적인 경찰력 사용이 된다. 그런데도 경찰은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떳떳하게 "당신들도 조심하라"며 "안 그러면 다친다"고 눈을 부라리며 위협했다. 경찰이 스스로 '인권경찰'을 선언한 지가 언젠데, 왜 집회 현장의 인권침해에는 이리도 떳떳한 건데?

몇몇 집회에서 경찰폭력 인권침해 감시단 활동을 해오면서 이내 감시활동에 대한 '회의론'에 빠져버렸다. 집회 현장에서 감시활동을 하면서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경찰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아무리 항의를 하고 시정을 요청해도 이건 마치 '쇠귀에 경 읽기'와 다름없다. 경찰 책임자마저도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기에만 급급하다. 심지어 지난 7월 평택 평화대행진에서는 현장을 지휘하던 경찰 간부가 다수의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섞여있는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밀어붙여", "훈련한대로 하체를 치란 말이야" 등의 '폭언'들을 쏟아내며 경찰력의 폭력 진압을 '선동'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경찰 폭력이 발생한 후에라도 재발을 막고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 폭력을 구조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경찰 관련 법령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경찰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법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경찰 관련 법령들은 '경찰은 ~을 할 수 있다'라는 조항만을 두고 있을 뿐 '경찰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은 충분히 두고 있지 않다. 예상되는 경찰의 불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처벌 조항도 '없다'. 경찰에게 '집회'란 '표현의 자유'와 함께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이 아니라, 여전히도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것' 혹은 '민주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시민들의 일탈 행위일 뿐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아펙 관련한 경찰의 대응에 있어서 역시 구태의연한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경찰은 '아펙 반대 부시 반대 부산시민행동'이 신고한 237곳의 집회 신고를 모두 '불허'하는가 하면, '테러 예방'이라는 명분으로 노숙인들이 의지하고 있는 사물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그 안에 있던 물품들을 모두 압수해 노숙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게다가 서울과 부산 등의 지하철역에는 현역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집회 현장 경찰폭력 감시 활동에 대한 '회의론'을 미처 떨쳐버리지 못했음에도, 이번에 부산에서 진행될 '아펙 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감시활동을 또다시 지지할 수밖에 없다. 부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부산은 거의 '준전시 상황'이라고 한다. 어찌 국제회의 하나로 전쟁에 준하는 엄중한 상황이 올 수 있는지 한편으론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준전시 상황'이라도 하더라도, 게다가 정부가 '테러 위협'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적 근거를 통해 국민들을 납득시키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모든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

더 이상 정부와 경찰의 구차한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기본적 인권은 양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종횡무진 활동할 '인권단체 경찰폭력 인권침해 감시단'의 활동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 본다.
덧붙임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