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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건의 인권이야기] 결혼 밖의 존재들이 ‘비혼’과 만났을 때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은 아직 결혼 적령기에 이르지 않았다. (대부분 10대~20대 초반이다.) 간단히 줄여 비(非)적령기라고 부르자. 주위 여자 친구들에게 결혼 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물어봤더니, 세 가지를 말해줬다. 화목한 가정, 출산, 그리고 무시무시한 명절. 최대한 나중의 일로 생각하고 싶을 법 했다. 모르긴 몰라도, 결혼에 대한 두려움 내지 거부감은 명절 무렵이면 핼쑥해지는 엄마를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살았을 테니.

‘아직’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뒤로 미루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먼 훗날일지라도 정해진 미래(예식장으로!)에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 적령기는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기가 아니라, 결혼에 대한 심적인 거리두기가 아직까진‘가능’한 시기일 뿐이다. 이 말인 즉, 언젠가 결혼해야만 하는 처지에 대해 도피하면서 지내는 유예기가 결혼 이전의 시기라는 걸 뜻한다. 이건 내 얘기다. 이런 구분은 적어도 성년이 넘은 20대부터 통한다. 결혼을 허용 받지 못한 10대에게 결혼은 도피하고 말고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부터 그들은 결혼제도 바깥에 있었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결혼이 비(非) 허가된 상태, 10대들의 비혼

만약 주위의 10대 두 명이 당장 결혼을 하겠다고 나설 때, ‘오, 축하해. 청첩장 나오면 꼭 주렴’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경제력도 법적 지위도 없으니 10대 둘만의 힘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설사 매일 일 해서 생활비를 번다 치더라도 성인 중심의 노동시장에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저임금 알바뿐이다. 이는 고스란히 10대가 철저히 배제된 사회경제적 구조를 보여준다. 부모가 있는 가정에 의존하는 길 외에 스스로 자립하고 생존할 길 자체를 극단적으로 차단당했다. 이런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10대는 ‘비혼‘이 그토록 거부하는 ‘결혼’을 애초부터 할 수조차 없었다네~ 같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10대들의 결혼이 허가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사회에서 10대의 결혼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뒤집어 보면 ‘이 사회의 지배질서가 그 속성 상 왜 결혼제도를 필요로 하는가?’ 와도 비슷한 얘기다.

결혼제도가 필요로 하는 것

필요한 건, ‘누구’와 ‘누구’의 결혼이었을까? 아마도 징글징글한 지배질서란 놈은 사랑이고 나발이고 “결혼은 노동자 남성과 임신 가능한 여자의 결합이면 돼!”라고 외치고 있지 않았을까. 예비 노동자일 뿐이고, 섹스 따위도 감히 하면 안 되는 불필요한 10대일랑 결혼 밖으로 뻥~ 뻥~ 차대면서. 중요한 건 산업사회를 뒷받침할 노동력과 일 하고 돌아온 남성에 대한 보살핌, 그리고 출산을 통한 재생산, 이 모든 게 가능한 안정적인 정상 가족의 유지라고 언젠가 본 책에서 그랬으니까. 10대의 결혼은 사회에 메리트가 되는 일이 아니라, 연령별로 분할된 통치시스템에 바이러스가 침입한 상황이다. 10대의 조건 상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더러, 있다 해도 사회적으로 그 존재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그건 ‘비정상’이고, 그 이질성은 제도에 균열을 만들기 때문이다.

결혼제도 자체는 필요에 따라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려 저출산 대책으로 그간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안중에도 없던) 10대 싱글맘 육아 지원이 급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모를 일이다. 성인 노동력이 갑자기 우르르 외계로 텔레포트(공간이동) 돼서, 그 대체 노동력으로 10대가 주목받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10대 결혼과 출산을 추진하고 나설지도. (상상해보니 좀 웃기다.)

결혼 밖의 존재가 안으로 진입하는 통로, 임신

2005년 중학생의 임신과 결혼을 다룬 영화 ‘제니주노’가 개봉했다. 청소년 임신 조장 영화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꽤나 말이 많았다. 연애 중인 두 사람이 섹스를 했는데 피임을 안 했는지 어쨌는지, 덜컥 임신을 했다. 맘고생을 많이 하긴 하지만, 둘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친구들한테 축복도 받으면서 해피엔딩을 맞는다. 결혼 밖의 존재인 10대가 그나마 결혼과 만나게 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는 임신(정확히는 출산까지 가야 확률이 높다)과 직결됐을 때다. 영화 제니주노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고서야 10대로써는 ‘결혼’을 내 현재의 선택지로 놓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 사회에서 성인 여성은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일 경우 결혼하지만, 10대 여성은 ‘비정상’일 경우 결혼한다. 얼마 전에 10대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기사를 접하게 된 덕이 크다. 이들의 결혼은 아마도 위에 말했듯 임신, 출산이 계기가 된 경우였을 가능성이 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존재해온 10대의 결혼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건, 억압된 10대의 성, 섹스, 임신, 포괄하여 섹슈얼리티에 관한 얘기다. 입구와 출구를 꽉 틀어막은 채 짓눌렀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빈곤’, ‘탈학교’, ‘탈가정(가출)’과 같은 가장 약한 틈새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틈새의 존재들, 바로 10대 비혼모, 요즘은 리틀맘·싱글맘 등으로 불리는 그녀들이다.

10대 여성의 비혼이 제기하는 것

10대 때 결혼은 아닌 것 같아요. (애는 키울 수 있어도?) 네. (애는 결혼 안 한 상태에서 키울 수 있다는 거지?) 네. 그렇게 결혼해서 애기를 키우다가 나이도 젊은데, 또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 것 아니에요. 일주일 사귀다 깨지고, 하루 사귀다 깨지고 하는 걸 보면 결혼은 무리인 것 같아요. 나중에 이혼해서 다시 이 사람이 새 아빠다, 그러면 애기도 싫을 테고.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동녘, 143p.)에 실린 어느 10대 여성의 인터뷰 글을 살짝 옮겨왔다. 아이는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이 10대 여성의 상황은 실제적인 비혼 상태에 해당하지만, 자발적 비혼과는 다른 맥락에 있다. 이들의 존재는 비혼 담론이 2,30대 결혼제도 안에 있는 존재들의 선택의 문제로 비춰지거나, 그런 인식이 주류화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처음부터 그 제도 ‘밖’에 있었다면, 비혼은 안에서 모색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아니라, 제도 밖에서 출발했기에 결혼 제도와도 불화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재- 현실을 뜻하게 되기도 한다.

10대 뿐만 아니라, 그 외 결혼 밖의 존재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언뜻 든다. 성인, 이성애자, 정규직 직장 같은 것들을 기본으로 따지는 결혼(가정)은 지배 질서가 유지하고자 하는 ‘중심성’들의 결합체 같다. 주변화 된 존재 자체인 10대에게는 자기 권력을 갖는 일이 곧 그런 중심성에 대한 저항일 것만 같다. 당사자가 아니게 되고나서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 사회의 배제, 억압, 그리고 어른들의 기만. 청소년이란 소수자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깔끔하게 지워져있는지는 좋아하는 다른 영역의 운동(들)에서도 10대에 대한 얘기는 당연한 듯 빠져있는 것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10대의 이야기는 여전히 너무 없다.
덧붙임

엠건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