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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만사결통? 만사웃통!

주기적으로 ‘비혼’이라는 단어로 뉴스 검색을 해보는데 그 와중에 며칠 전, 매우 식상하면서도 기가 차는 기사가 걸려들었다. 지난 10월 18일, 정부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내놓았는데 한국 사회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한 비혼과 만혼 탓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 주도로 미혼 남녀를 위한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만사결통(萬事結通·만사는 결혼에서 통한다)”. 광역지자체가 인구보건복지협회와 함께 추진하겠다는 단체 맞선 프로그램이다.[1]

얼른 몸담고 있는 생활밀착형비혼여성코러스 <아는언니들>에 기사를 공유하자, 사이다 같은 멘트가 돌아왔다.

“만사웃통(너희가 옷을 벗어야 만사가 해결된다)!”

하지만 속이 뚫리는 기분도 순간이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의 면면을 더 들여다보면 정말 ‘만사웃통’이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런 느낌을 주냐고? 전체 내용을 보면 ‘다 그런 기운이 온다.’

점입가경 헛다리짚기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여성의 결혼 시기에 따른 자녀 수"라는 통계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결혼 시기에 따른 평균 자녀 수는 25세 미만은 2.03명인데 반해 35세 이상은 0.84명으로 결혼을 빨리 하면 자녀를 많이 낳지만, 늦게 결혼할 경우 자녀의 수가 채 1명이 되지 않는다.”[2]는 것이다. 고로 결혼을 빨리 하게 만들어서 평균 자녀 수를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

통계상의 변수들은 ‘해석’을 요구한다. 단순히 결혼 시기를 x로 두고 출산율을 y로 두어서는 그 안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대책이 아니라 해석을 포기한 것이다. 비혼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결혼이라는 것이 삶의 대안이 되기 어려운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비혼 또한 현상이고 다른 변수들의 결과다.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과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 가사노동과 양육 부담의 불균등, 재생산 노동부담의 불균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압박받지 않는 노동시장, 주거불안 등 더 깊게 지적되어야 할 것들을 그대로 둔 순간, 해결책이라고는 “만사결통”이라는 돈 낭비 행사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정부의 해석의 게으름(애초에 해석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본계획(안) 발표 이후 새누리당과 정부의 당정협의에서는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입직 연령을 낮추기 위해 초·중등학교 입학을 2년가량 앞당기는 학제 개편을 검토키로 했다”고 하는데, 이는 “청년들의 입직 연령이 높아지는 것을 만혼과 저출산의 원인으로 보고, 빨리 학제를 마쳐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3] 19살에 졸업할 거 17살에 졸업하면 취직도 빨리 하고 결혼도 빨리하고 애도 빨리 낳을 거라는 이 초긍정적 마인드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제는 10대여도 직업이 있고 이성애 법률혼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출산을 적극 권장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어쨌든 애를 낳을 거면 학교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나서 해야 하니까 선심 써서 학교를 좀 일찍 졸업하게 해주겠다는 건가?

청년들이 졸업을 늦게 하는 이유는 졸업이 늦기 때문이다-라는 동어반복은 비혼을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는 논리구조와 동일하게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졸업이 늦다’라는 현상만을 교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출산과 육아, 양육 부담으로 인하여 시장노동과 비시장노동의 양립이 어려운 여성들의 현실을 고민하라고 했더니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것은 일과 가정이 양립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미혼직원 결혼현황표를 벽에 붙이도록 하고는 결혼을 독려하신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렇게나 (이성애) 결혼에 집착하고 결혼을 통한 출산과 양육만이 저출산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인 줄 아는 정부가 비혼•동거가족 차별금지법도 시행하겠다고 나섰다니 이런 언어도단이 없다. 사방팔방에 “결혼해라!”라는 말을 하면서 저출산 대책에 기혼 가정에 세제상 혜택을 더 주는 인센티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는 정부가 바로 비혼•동거가족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유체이탈도 이런 유체이탈이 없지만, 이왕 유체이탈한 김에 비혼•동거가족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출산과 양육에 있어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지원하고 차별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잘 살려서 부디 앞으로는 결혼 상태나 가족의 형태로 차별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 모든 분들이 만사웃통에 이르기를 바래본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와중에도 기대가 전혀 안 된다는 것이 슬프다.)
덧붙임

나기 님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