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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대학생이 말하는 차별 이야기

[기획: 대학생이 말하는 차별이야기] 학벌 차별, 여러 개의 목소리로

학벌의 중심에서 차별을 외치다

[편집인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은 <대차별: 대학생의 차별이야기>라는 주제로 릴레이 강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총 네 번에 걸쳐 각각 다른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기획은 그 동안 대학 사회에 존재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던 혹은 잘 드러낼 수 없었던 차별 이야기를 대학생들이 솔직하게 직접 꺼내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각 강연회가 끝난 후 강연회를 기획한 대학생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보내주었다. 대학생이 말하는 대학생의 차별이야기, 사회가 함께 귀 기울여야 할 우리 사회의 차별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학벌차별의 양상은 ‘명문대’ 출신 사람이 비슷한 조건의 ‘비명문대’ 출신 사람에 비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학벌차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일까.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그로 인해 마냥 행복한 것일까. 어쩌면 그 ‘좋은 학벌’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일들이 있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마냥 학벌차별의 수혜자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명문대 출신 사람들이 학벌차별에 의해 피해를 받고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 내용은 어떠한 것일까. 명문대 학생이라 칭해지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의 답을 찾고자 ‘한국의 명문대 중의 명문대’라고 인식되는 서울대에서 이번 강연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명문대’라는 표현 자체가 학벌주의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크게 명문대와 비 명문대로 구분하고 있고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편의상 ‘명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점 양해를 구합니다.)


학벌주의의 중심에서 어떻게 학벌차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서울대 안에서 어떻게 학벌차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이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 확실히 서울대 내에서 학벌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울대 학생들이 그저 학벌차별의 수혜자라면 그 수혜를 받는 당사자들이 직접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학생들이 학벌차별로 인한 피해나 아픔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알아보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마무리 지어야 할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학벌사회의 피해자’임을 확인하고는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저 명문대 학생들의 배부른 고민일 뿐이라는 이야기만을 듣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학벌주의라는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고 누군가가 배제되는 구조적인 차별 현실 안에서는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모두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조금은 식상한 방향으로 논의의 틀을 잡아보았다.

이번 강연회는 연사를 모시고 강연을 듣는 방식이 아니라 학벌차별 문제에 관심이 있는 여러 패널들을 모시고 참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강연회보다는 좌담회라고 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번에 준비한 좌담회 패널로는 학벌없는사회 이철호 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박석진 씨, 서울대 교육저널 문수현 씨가 함께 했다.

일단 이번 좌담회를 준비한 우리는 좌담회 참가 학생들의 발언을 보다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도록 질문지를 준비했는데, 함께 이야기했으면 하는 내용들을 질문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학벌차별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학벌차별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첫 번째 질문이었다. 다음으로 자신이 겪었던 또는 목격했던 학벌차별의 피해 사례와 수혜 사례가 있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대응책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학벌차별의 정당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나오는 말들 중 하나는 자신이 차별로 인해 얻는 수혜는 자신의 노력의 대가이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생각일까. 이러한 생각의 문제점은 학벌과 능력을 동일시한다는 데에 있다. 물론 개인의 능력을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하고 그에 따른 대우를 해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개개인의 다양한 능력들을 무시한 채, 학벌만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 지금의 대학 입시 방식이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입시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겠지만,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었고 실제로 이야기했던 것은 ‘노력의 대가’라는 이유만으로는 학벌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박석진 씨는, 현재의 대입 제도가 ‘입시 공부에 대한 능력’만을 평가할 뿐 다양한 능력을 평가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능력중심주의라는 변명으로 학벌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학벌차별, 수혜자와 피해자로 명확히 나눌 수 있을까?

보통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차별 사례에는 명확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벌차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문대 출신이 수혜자, 비 명문대 출신이 피해자로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명문대 출신의 사람들이 받는 수혜는 꽤 가시적이다. 과외를 구할 때에도, 일자리를 구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수월하다. 이러한 사실은 취업 시장 역시 학벌주의가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례로 좌담회에 참가했던 학생 중 한 명은, 과외를 구할 때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학교 이름만 말해도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고는 하지만 좋지 않은 학교로 인식되는 곳을 다니는 친구의 경우 아무리 과외를 하고 싶어도 자신의 학교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이를 듣고 참여한 학생들의 대부분이 공감하며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이를 통해 위와 같은 사례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명문대 학생이 아닌 수많은 대다수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학벌차별의 부정적 결과이자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서울대 학생들도 학벌차별의 피해자?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이 학벌차별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학벌차별의 사례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명문대 학생들이 겪은 학벌차별의 피해 사례들을 몇 가지 들어볼 수 있었다. 일례로, 한 참가 학생은 원래 대학에 진학하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강요로 인해 ‘더 좋은’ 학교의 다른 학과에 진학하게 된 경험을 말했다. 그 학생은 그 과정에서 큰 좌절감을 경험했고, 현재 전공에 여전히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어 학교 다니는 것에 의미를 못 느껴 힘들다고 하면서 결국 자신도 학벌주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또 다른 예는, 패널로 참석한 문수현 씨가 교육저널의 구성원들과 함께 ‘이십대 전반전’이라는 책을 출판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고민들을 글로 엮어 출판한 것이다. 현재의 많은 대학생들이 느끼고, 고민하고 있는 내용들이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학생들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명문대 학생들의 배부른 고민’이라며 평가절하를 당했던 것이다.

이처럼 학벌주의라는 차별적인 사회 구조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짚어보며 차별의 사회적인 특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았다. 상황에 따라 모두가 피해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분명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는 있더라도 모두가 똑같은 상황 하에 놓여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명문대 학생들은 과외나 취업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리한 입장에 있게 된다. 이에 비해 비 명문대 학생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학벌차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문대 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학벌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무시되기도 하고, 그들이 하는 진실된 고민들조차 가진 자의 배부른 고민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모두가 학벌차별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지만 그 내용이 같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는 것이 학벌차별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과정의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학벌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학벌차별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앞서 말했듯이, 학벌차별의 양상은 가시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비가시적인 차별의 피해자들 중에는 자신이 차별당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무슨 차별이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학벌 차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당사자들에게 차별로 인식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것이 그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지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현재의 무한 경쟁체제 안에서 학벌이라는 잘못된 기준에 의해 개인의 다양한 능력이 무시되는 것이 학벌차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을 이해하고, 단순히 개인 차원의 고민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한다.

대학생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분명 대학생들이 겪는 학벌차별의 지점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비 명문대-지방대 학생들이 겪는 학벌차별과 지독한 취업난, 그리고 남들은 이해해주지 않는, ‘배부른 소리’라고만 할 뿐인 명문대 학생들의 고민들. 이 모든 것 역시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대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을 공유하고자하는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연대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필요하다. 학교 안에서만의 연대가 아닌 학교의 틀을 넘어서는 연대가.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또는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힘든 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학교 안에서 자신들만의 고민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교의 사람을 만나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늘려가는 것이 학벌차별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차별: 대학생의 차별 이야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에서 준비한 릴레이 강연회는 다음 네 번의 주제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강연회는 <가족, 애정과 투쟁 사이>라는 제목으로 정상가족 신화의 모순을 꼬집고 대학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족을 상상하는 시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5/18). 두 번째 강연회 <The LGBTQ word(엘지비티큐 워드)>는 다양한 인권활동가들이 대학생들과 함께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퀘스처닝 등 다양한 성소수자 정체성과 차별에 대해 토크쇼를 벌입니다(5/24). 세 번째 강연회는 <학벌의 중심에서 차별을 외치다>라는 제목으로 학벌차별의 전체 구조를 통해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 대학생들은 학벌차별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5/26). 마지막으로 네 번째 강연회 <한국에 인종주의는 이제 없다?!>는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를 깊이 성찰하며 대학 내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 영어중심주의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5/31).

덧붙임

박성일 님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은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동아리, 단체)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