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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故 우동민 활동가를 보내며

네가 해내려 했던 그 꿈을 함께 이루려 하마.

<편집인주>

2011년 1월 2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던 장애인권활동가 우동민 활동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작년 12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사퇴촉구 농성을 하다 감기에 걸렸고 폐렴 증세로 응급차에 실려 입원했다. 그 뒤 병세가 잠시 좋아졌으나, 12월 8일 한나라당의 장애인활동지원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국회 앞 기자회견과 도로점거 투쟁에 참가한 뒤 다시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상계백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다 결국 운명했다. 1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인권활동가 우동민 동지 장애해방열사장’을 치렀다. 열사장에서 낭독되었던 추도사 두 개를 싣는다. 고인이 부디 편안히 잠드시길, 다음 생애에는 차별 없는 세상에서 만나기를 바란다.

동/민/아!

내 동생 같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부르던 그 이름인데,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할 수가 없는 곳에 있구나. 동/민/아.

이제 내 목소리로 네 이름을 아무리 크게 불러도 넌 대답할 수가 없지. 이 누나인 나는 널 생각하면 한 가지 영상이 떠올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책상에 앉아 공부하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모니터를 아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더랬지. 그 여름에 말이다. 더운 여름에 너를 부를 때면 너는 늘 그렇듯이 고개를 돌려서 크게 입 벌려 웃으며 “왜요? 누나.”하며 벙글거렸더랬지.

이 누나가 말은 못했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 참 부질없는 얘기겠지만… 이 누나는 네 그런 모습이 몹시도 좋았더랬다. 나는 네 웃음에서 희망을 보았던 거야. 우리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엄청난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맞서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던 거야. 그래 동민아.

어제는 크게 웃는 네 모습을 영안실 한 켠 사진으로만 한참을 보다가 왔었어. 그리고 생각했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던 네 모습을 왜 이제는 볼 수가 없는 거지? 하고 말이다. 또 함께 갔던 우리는 이렇게 영안실에서 멍하니 사진 속 너만 바라보고만 있는지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렇게 말이다.

이 누나는 말이다. 순식간에 가슴이 타올랐단다. 너를 바라보던 눈과 가슴이 활활 타올라서 내 몸뚱이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단다. 네가 없는 것이, 이제는 너를 볼 수 없는 것이 나를 이렇게 가슴 아프게 하는구나.

동민아.
나는 네가 원망스럽구나. 미처 어떤 얘기도 할 수 없게 아무 생각도 못하게 그렇게 쉽게 세상의 손을 놓은 것이 말이다. 아니다. 그뿐이 아니야. 2007년 활동보조인제도화 투쟁의 현장에서, 2008년 탈시설 권리찾기의 곳곳에서 2009년 네가 나서고 움직였던 빈곤의 거리를 기억한다. 바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010년 기초법 투쟁에서도 너는 몸을 사리지 않았지. 그 빈곤의 거리에서 길거리로 내몬 이 사회가 원망스러웠어.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함께 일하는 활동가로, 너만이 아니라 내가 함께여야 했던, 내가 더 힘을 내지 못해서 그래서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그 많은 시간이 원망스럽구나.

언제까지나 그럴 줄 알았어. 이 누나는. 넌 언제나 그랬잖니?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모습, 화를 낼 줄도 모르고 욕심도 없고 우직했고 그리고 당당했지 나는, 이 누나는 그런 네가 자랑스러웠단다. 동민아. 넌 몸 좀 살펴가며 일하라는 내 말에도 네가 필요한 자리라면 어디든 쫓아 다녔더랬지. 집회현장에서도 그랬고, 우리 센터 내에서도 마찬가지였어.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장애인 인터넷 신문, 비마이너>

▲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장애인 인터넷 신문, 비마이너>


또 기억한다. 동민아.
스스로 비전을 찾아보라는 소장님 말씀을 듣고는 묵묵하게 실무를 익혀가던 모습을 말이다. 자신이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되면 아랫사람의 충고에도 묵묵히 듣고 고치려 했던 네 모습을 기억한다. 그 더웠던 여름에는 한글 공부까지 함께하느라 곁에 있는 우리까지도 아주 죽을 맛이었지. 늘 그랬어. 넌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으리라고 말이다.

동민아. 이 누나는 또 잊을 수 없는 현실을 기억한다.
시력이 나빠졌는데도 검사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해 안경도 해볼 생각 못했던 현실을 기억한다. 얼마 안 되는 활동비를 꼬박꼬박 모으며 나중에 장사라도 하면서 결혼해서 살아보겠다던 네 소박한 바람을 이룰 수 없었던 현실을 기억한다.

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 소박함이 너무나 절실해서 이 누나는 기억한다. 세상을 함께 살면서 사람이기 이전에 장애인으로 차별받아야만 했던 우리의 현실을 기억한다. 그래 반/드/시 기억하고 이 세상을 살아내면서 네가 해내려 했던 그 꿈을 이 누나가 함께 이루려 하마. 잊지 않을게.

동민아!
이 세상 너무나 불편해서 절절했던 이 세상 이제 다 털어버리고 가거라. 네가 간 곳은 언어장애라는 단어조차 없는 그 세상일 거야. 푸른 하늘 위로 흰나비가 날아오르듯이 말이다. 나의 마지막 선물로 남편을 잃었던 시인 신달자 님처럼 동생을 잃은 내가 너에게 시 한 편 들려줄게.


푸른 하늘 위로

흰 나비가 날아오른다.
생전에 단 한 번도 날아오르지 못한
그 남자가
그의 삶이 뼈까지 으깨어져서야
드디어
광막한 하늘 위로
수천의 나비 떼로
날아오른다.

봐요.
당신도 이렇게 날아오르는 때가 오네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때요.
당신이 있던
그 어둡고 춥던 땅
조금은 따뜻하게 보이나요.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휠훨훨 거칠 것 없는 탁 트인 하늘을
주머니 없는 천사 옷을 입고
유유히 날아오른다.


----------- 2011년 1월 4일 우동민 너의 이름을 기억하며 기정이 누나가…


2011년 1월 4일 인권위 앞에서 열린 인권위 앞에서 열린 '장애인인권활동가 우동민동지 장애해방열사장', 사진 출처 <장애인 인터넷 신문, 비마이너>

▲ 2011년 1월 4일 인권위 앞에서 열린 인권위 앞에서 열린 '장애인인권활동가 우동민동지 장애해방열사장', 사진 출처 <장애인 인터넷 신문, 비마이너>



언제나 웃음으로 힘을 주었던 친구, 우동민 활동가를 보내며


2009년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 추웠습니다.
영하의 날씨만이 추운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차별받은 사회적 약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차가운 현실이기에 추웠습니다. 차가운 현실에 사회적 약자의 버팀목이 되고, 가난한 자의 벗이 되어야하는 국가인권위마저 등을 돌려버렸기에, 손발이 얼고 사지가 마비될 정도로 추웠습니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차갑고 꽁꽁 언 그늘진 곳을 보려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만을 보며 인권의 기준과 가치를 그에 맞게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우동민, 그가 이곳 인권위에 머무르며 농성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복지 포플리즘'이 사회를 망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러합니까! 정부여당, 한나라당이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예산을 비롯한 서민예산, 복지예산을 외면하고 빼버린 채, 4대강을 죽이는 예산을 날치기 통과시키던 그날, 왜 우동민 활동가가 폐렴을 앓고도 '장애인 예산, 복지예산, 서민예산'을 외면하는 규탄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들은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도 왜 그 자리에 섰는지 아직 모르는가봅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봅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믿고 싶습니다. 그늘진 곳의 우리들, 장애인, 빈민, 성소수자,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우동민 활동가가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행동하고, 주변을 따스하게 바라보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속합니다. 죽음에서 생명이 자라나듯, 남은 우리가 장애인 차별 없는 세상, 어떠한 이유로도 모두가 차별 없이 대우받고 평화롭게,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동민 활동가가 남긴 글에서, 그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립생활을 시도하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 가진 자들은 이윤만을 최고로 여기며 '탐욕의 감옥'에 갇혀 세상을 더럽히고 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으로 '탐욕의 감옥', '차별의 창살'을 없애겠습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며 싸움의 최전선에 섰던 우동민 활동가,
잘 가세요. 편안히 잠드세요.

---------------------------함께 농성하던 모습을 기억하며 명숙 드림
덧붙임

*김기정 님은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입니다.
*명숙 님은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