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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인권과 환경에 관한 원칙 초안(Draft Principles on Human Rights and the Environment - The Ksentini Principles, 1994년 유엔인권위원회)

오랜만에 명동성당에 다녀왔다. 4대강 사업을 멈추기 위한 천주교 사제들의 단식농성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첫날 비가 심하게 퍼부었다. 처마 밑에 침낭을 깔고 누운 늙고 젊은 사제들에 아랑곳없이 비는 밤새 퍼부었다.

사무실을 찾은 대학생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지금 인권이 얼마나 후퇴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정말 많이 후퇴했다’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 증거로 사제단 농성을 들었다. 우리에겐 수많은 인권의 원칙과 그 원칙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논의의 장이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도무지 작동하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인권침해를 위해 동원되고 왜곡되고 있다. 언론, 국회, 법집행기구, 국가인권위 등이 제 역할 대로 작동하지 않기에 사제단, 승려, 목사들까지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것만큼 위기의 신호가 더 클 수가 있을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앞둔 지금, 인권과 환경에 너무도 중요한 핵심쟁점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게 하니, 밥을 굶으며 거리의 정치에 나서게 된 것 아닌가?



‘인권은 환경, 평화와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적’이라는 말이 백번 맞다는 생각이 든다. 표현의 자유가 억눌리고, 악법들이 무정차 통과되고, 비판과 저항에는 법집행이 남발되고, 전쟁선동에 부끄럼을 잃은 인간의 현실과 포클레인에 유린되는 뭍 생명들의 위기가 동시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애도는 사람간의 관계에서 너무나 귀하고 근본적인 감정이자 의무이다. 5.18 영령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애도조차도 제대로 할 수없는 지금, 강들에 대한 애도, 강과 함께 죽어가는 뭍 생명들에 대한 애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인권과 환경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환경운동을 하다 초국적기업과 군부정권의 음모로 사형당한 나이지리아의 활동가 켄 사로 위와는 “환경은 인류의 첫 번째 권리다”란 말을 남겼다. 이 첫 번째 권리에 대한 의무는 당연히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할 의무”이다. 이런 당연함을 정리한 것이 1994년 유엔의 ‘인권과 환경에 관한 원칙’이다.

1994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특별보고관 Fatma Ksentini가 유엔인권최고대표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생태계의 보존과 유지가 인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Ksentini는 보고서 끝에 ‘인권과 환경에 관한 원칙 초안’을 제시했다. 그녀의 이름을 따서 이 원칙은 Ksentini 원칙이라고도 불린다. ‘초안’이라는 말에서 보여 지듯 정식규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이 초안은 환경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유엔 최초의 문서이다. 이 초안 이후 기존의 인권 항목들을 환경과 연관 지어 구체적,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흐름이 이어져왔다.

‘환경권’은 오늘날 낯설지 않은 말이 됐다. 하지만 환경권의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이 원칙에서는 개인적으로나 타인들과 결사해서나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나서는 것을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개인의 웰빙만을 강조할 뿐, 생태계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지 않는 환경권 같은 건 말장난이지 절대 성립할 수가 없다. 또한 환경을 얘기할 때 인간을 위한 인간의 대상으로만 말하면, 그것은 온전한 환경일 수가 없다. 환경은 인간을 포함하여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를 아우를 때 환경일 수 있다. 이 원칙에서는 사람만이 아니라 공기, 토양, 물, 빙하, 식물군, 동물군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강의 이름을 절절히 부를 때, 거기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담겨 있는 것이다. 강을 얘기하는 것은 곧 인간을 얘기하는 것이고, 인간의 표현의 권리를 말하는 것은 곧 생태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의무도 함께 말하는 것이다.

인권과 환경에 관한 원칙 초안(Draft Principles on Human Rights and the Environment - The Ksentini Principles, 1994년 유엔인권위원회)

전문(생략)

I

1. 인권, 생태적으로 건강한 환경, 지속가능한 발전, 그리고 평화는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적이다.

2. 모든 사람은 안전하고, 건강하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와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및 사회적 권리를 포함한 여타 인권은 보편적이고 상호의존적이며 불가분적이다.

3. 모든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결정에 관하여 어떤 형태의 차별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4. 모든 사람은 현세대의 필요를 평등하게 충족시키기에 적절하고, 미래 세대의 필요를 평등하게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적절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II

5. 모든 사람은 국경 내에서나 밖에서나 오염, 환경 파괴, 그리고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며 생명, 건강, 생계, 복지 또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협하는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갖는다.

6. 모든 사람은 공기, 토양, 물, 빙하, 식물군과 동물군, 그리고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과정과 영역을 보호하고 보존할 권리를 갖는다.

7. 모든 사람은 환경침해로부터 자유로운, 도달 가능한 최상의 건강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8.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안녕에 적합한 안전하고 건강한 식량과 물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9. 모든 사람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작동하는 환경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10. 모든 사람은 안전하고 건강하며 생태적으로 건강한 환경에서 적절한 주거, 토지보유, 생활 조건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11. (a) 모든 사람은 비상시, 또는 전체로서의 사회에 이로운 목적을 수행하고 다른 수단에 의해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 또는 행위의 목적을 위해서나 그 결과에 의해서나, 자신의 집 또는 토지에서 퇴거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b) 모든 사람은 퇴거에 관하여, 그리고 만약 퇴거된다면 시기적절한 배상, 보상, 적절하고 충분한 거처 또는 토지에 대한 권리에 관하여 효과적으로 결정에 참여하고 협의할 권리를 갖는다.

12. 모든 사람은 자연 재해 또는 기술적 재해 또는 기타 인간이 야기한 재해의 경우에 시기적절한 원조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13. 모든 사람은 문화적, 생태적, 교육적 목적, 건강, 생계, 여가, 정신적 및 기타 목적을 위하여, 자연과 자연자원을 보존하고 지속가능하게 이용하여 평등하게 혜택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여기에는 생태적으로 건전한 자연에 대한 접근이 포함된다.

모든 사람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또는 집단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일치되는 유일무이한 장소를 보존할 권리를 갖는다.

14. 원주민족들은 자신들의 토지, 지역, 자연자원을 통제할 권리, 전통적 생활양식을 유지할 권리를 갖는다. 여기에는 생존수단의 향유에서 안전할 권리가 포함된다.

원주민족들은 땅, 공기, 물, 빙하, 야생생물 또는 기타 자원을 포함하여 그들의 지역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어떠한 행위 또는 행동과정으로부터도 보호받을 권리를 갖는다.

III

15. 모든 사람은 환경에 관한 정보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여기에는 어떤 식으로 수집돼든간에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 또는 행위과정에 대한 정보, 환경에 관한 의사결정에 효과적인 대중의 참여를 용이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정보가 포함된다. 정보는 시기적절하고, 분명하며, 이해가능하고, 정보 청구자에게 부당한 재정적 부담 없이 이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16. 모든 사람은 환경에 관하여 의견을 갖고 표현하며 사상과 정보를 배포할 권리를 갖는다.

17. 모든 사람은 환경과 인권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18. 모든 사람은 환경과 발전에 영향을 끼치는 계획과 의사결정활동과 과정에 능동적이며 자유롭고 의미 있는 참여를 할 권리를 갖는다. 여기에는 제안된 계획의 환경적, 발전적, 인권적 결과를 사전에 평가할 권리가 포함된다.

19. 모든 사람은 환경 보호 또는 환경 파괴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타인들과 자유롭고 평화적으로 결사할 권리를 갖는다.

20. 모든 사람은 환경 피해 또는 그러한 피해의 위협에 대하여 행정 및 사법 절차에서 효과적인 구제와 보상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IV

21. 모든 사람은 개인적으로든 타인들과 결사해서든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할 의무를 갖는다.

22. 모든 국가는 안전하고, 건강하며 생태적으로 건전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해야만 한다. 따라서 모든 국가들은 이 선언의 권리들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행정적, 입법적 및 기타의 조치들을 채택해야만 한다.
(이하 생략)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