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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의 인권이야기] 변신을 허용하지 않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자유

13자리 숫자 틀에 나를 집어넣지 마


"넌 누구니?"
"난……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알아듣게 설명을 해!"
"설명할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내가 아닌걸요."


루이스 캐럴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루이스 캐럴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넌 누구니?"라고 묻는 쐐기벌레와 앨리스.

루이스 캐럴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부분. 앨리스가 이상한 약물을 먹고 커졌다 작아졌다가를 반복하다가 버섯 위에 앉아 있는 쐐기벌레를 만나 나눈 대화의 일부야. 앨리스는 왜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걸까? 넌 누구냐는 질문을 “나는 누구인가?”로 바꿔봐. 이건 정체성이나 본질을 묻는 질문 같지 않아? 사전을 찾아보면 정체성이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되어있어. 영어로는 “identity”, 동일성, 본질, 신원, 독자성을 의미하지. 정리해보면 너는 누구냐는 것은 다른 사물들 혹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으로 구별되는 독자적인 존재로서의 너를 밝히라는 질문이야. 그건 “변하지 않는” “본질”, 그리고 자기“동일성”을 전제하지. 그러니 불과 몇 시간 사이에 키가 몇 미터가 되었다가 몇 십 센티미터가 되는 변화/변신의 경험을 한 앨리스는 불변하는 자신, 자기 동일성을 확신할 자신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습관적인 질문과 대답 - 너는 누구냐

우리는 앨리스보다 좀 더 나가서,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을 넘어서 그것이 확실한 정보인지까지 확인할 것을 요구받고는 하지. 만약 다시 쐐기벌레 씨가 “네가 누군지 증명해”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이 질문은 “신분증명”을 하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지. 신분(身分)이라는 말은 한자 뜻 그대로 보자면 몸을 구별한다는 뜻이니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자성 정체성을 요구하는 거야.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의미잖아. 이쯤해서 우리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혹은 학생증 혹은 여권을 내보이고 있지 않을까? “이것 봐요. 여기 제 이름이 이렇게 쓰여 있잖아요? 제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신분증이에요. 제 지문도 이렇게 찍혀 있답니다.”

아, 이건 앨리스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한 끝에 내놓은 저 대답에 비하면 얼마나 비루한지! 그렇지만, 이건 정말 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강제당하는”, 정해진 우리의 대답이야.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것은 국가/시스템이 도맡아서 해주고 있거든. 나와 당신은 끼어들 틈이 도무지 없어.

국가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정보화해서 일련의 번호로 번역한 후 국가/시스템에 등록하지. 이 과정은 나의 정보가 국가/시스템에 단순 등록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국가/시스템이 허용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어떤 한 자리의 데이터 공간에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해. 등록의 순간 그때서야 나는 존재하게 되는 거야. 국가/시스템 안에 말이지. 국가/시스템에는 외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등록되지 않은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삶이 불가능해. 나의 자율성, 자립성은 이 시스템에서 이미 파괴되어있어. 내가 내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등록되고 유통되고 처분되는지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할 수 없고 개입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내가 대답하기 전에 국가/시스템은 대답을 준비해놓았어

그리고 이 사회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국가/시스템를 소환해오지. 그리고 국가/시스템에게 물어. 이 자가 국가에 등록된 자입니까? 뭐라고 등록된 자죠? 그 대답은 번호로 나타나기도 하고 플라스틱 카드로 나타나기도 하지. 그리고는 죽을 때 까지 바꿀 수 없는 “불변의 정보”, 나의 고유성이자 정체성이라고 등록된 숫자를 확인해줘. “네, K씨는 *01*1*-2****** 랍니다”라고. 이 번호는 친절하게도 다른 누군가와 겹치는 일 없이 나에게만 부여된 번호고 그래서 다른 사람과 나를 확실히 구분해주지. 어머나, 나의 독자성이 이렇게 이미 ‘부여’되어 있었네. *0년 1*월 1*일생, 성별 2, 처음 등록한 지역은 **으로 검증되었음. 내가 구성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틀/기준”에 의해 수치화된 정보 그것이 내 정체성이 되고 나는 거기 서류철에 숫자로 고정 되는 거지. 정보(information) 즉, “in-form-ation”은 어떤 틀에 집어넣어 형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정보는 이미 있는 것의 기록이 아니라, 그 존재 외적으로 주어진 형식 속에서 매개되고 정리되는 내용이라고 얘기되기도 해. 내 정체성은 국가/시스템이 선택한 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거지.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11월 21일 발급된 제1호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보고 있다.

▲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11월 21일 발급된 제1호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는 앨리스처럼 생각해 볼 기회도 없이, 나만의 독자성, 정체성이라는 것을 부여 받았어. 유일무이한 번호로. 역시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한 번호가 아니었어! 나의 독자성을 이렇게 쉽게 증명해주다니! 나와 너를 이렇게 쉽게 구분해주다니! 근데 이상하지 않아? 우리 모두 번호라는 게. 결국 모두 똑같아지는 거 아닌가? 무수한 번호들. 번호들 사이의 차이를 발견했어? 나이의 차이? 성별의 차이? 국가가 만들어준 정체성의 형식은 동일해. 13자리 숫자 그 안의 값의 미세한 차이가 존재할 뿐이야. 그것은 차이가 아니지. 동일성이라고 불러야 마땅해. 우리는 모두 똑같아져 버렸어. 무수한 차이들은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지. 그 자리를 그냥 다른 번호/존재가 대체해도 아무런 상관없지. 고유하고 유일한 번호들로 우리는 좀 더 획일화되고 통제되고 있는 것 아닐까?

‘살아있음’은 플라스틱 카드의 숫자로 굳어버렸어

그 정체성이라는 것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아. 내 신체 정보들은 태어나자마자 고정되어 버렸어. 성별 정보는 끔찍하게 폭력적이야. 나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혹은 다른 무엇일까. 나를 탐구해 볼 시간도 없이, 변화/변신할 가능성도 배제당한 채 다수의 기준인 여/남의 구분법 안으로 집어넣어졌어. 정보의 형틀 안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나. 표준이 아닌 것들은 탈락되거나 그냥 그 안으로 우겨 넣어짐으로써 죽은 것이 되어버려. 차이들이 사멸되거나 고정되는 거지. 그것이 바로 통제의 핵심인 것 같아. 보편적인 기준 안으로 들이거나 내치거나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정보들과 나와의 개연성을 좀 더 부여하기 위해서 이 국가/시스템은 지문정보까지 채집했어. 관념적 정보가 아니라 구체적 물질성까지 획득한 거야. 종신고유번호 - 물질적/육체적 고유 정보의 결합으로 완성도 높은 낙인이 되었지. 나는 국가/시스템 안에 종속된 무엇, 그리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무엇으로 내 존재와 분리 되어버렸어.

주민등록번호가 대량으로 유출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량으로 자신의 살아있음을 잃어버린 게 문제 아닐까. 국가가 발행한 플라스틱 카드에 박힌 13개의 숫자 앞에서 나의 구체성들, 존재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려. 시스템이 누구냐고 물을 때 그것은 내 삶의 구체적인 서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특정 기준에서 결함 없는 존재인가 혹은 결함 있는 존재인가를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일 뿐이야. 즉 그는 표준이라는 것에 어긋나는 사람인가 부합하는 사람인가, 혹은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위험인물인가 아닌가, 혹은 미래에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를 추적하기 위한 값을 받아 놓는 것뿐이잖아.

시스템 밖을 상상해야 할 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존재하면서부터-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힘을 국가 혹은 시스템에게 빼앗겼어. 변화/변신을 전제하지 않는 존재론 그 자체에 기반을 둔 것이 신분증명이 아닐까? 시스템 밖에서 살 수 있는 삶, 다른 삶을 구성할 힘은 태어남과 동시에 시스템에 속박되어버렸어. 이미 프로그래밍 된 삶의 틀 속에 있는 거지. 신분증명의 문제는 시스템의 핵심에 닿아있어.

옥션 해킹 사고로 이 나라 인구의 4분의 1인 1081만 명의 주민등록정보가 유출 되었다고 해. 주민등록번호는 유일한, 죽을 때까지 안 바뀌는 종신형!이라 한번 유출된 정보는 평생 공개된 것으로 봐야지. 그렇지만 국가/시스템은 이 문제의 핵심인 주민등록번호/주민등록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비껴나가고 있어. 주민등록번호가 대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다시 나오고 있는데 말이야. 주민등록번호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문제인지 그들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

이 문제는 시스템의 붕괴, 적어도 시스템 밖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우리에게 돌려줄 자그마한 힌트가 되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봐. 물론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는데도 침묵하고 자신의 존재를 구출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붕괴는 헛된 망상이겠지만 말이야.

덧붙임

달군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