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일반

촛불의 길을 묻다 (좌담 전문)

[인권오름-민중언론참세상 공동기획 좌담 (1)] -김현진, 노정태, 미류, 완군, 한윤형

16일 진행한 인권오름과 민중언론참세상 공동기획 좌담(1) 전문을 게재한다. 좌담은 크게 두 개의 주제를 다뤘지만, 특히 6월 10일 촛불집회 현장을 풀이하고, 비폭력, 민주주의 등의 소재를 두고 패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다. 당일 좌담 내용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녹취 전체를 살렸으며, 중간 제목과 관련 사진도 뽑지 않았다. - [편집자 주]

[인권오름-민중언론참세상 공동기획 좌담(1)] - '촛불의 길을 묻다' 전문

- 일시 : 6월 19일(월) 20:00-22:30
- 장소 : 인권운동사랑방
- 패널
미류(blog.jinbo.net/aumilieu. 인권오름 편집인. 사회 겸)
완군(blog.naver.com/ssamwan. 공공미디어연구소)
노정태(basil83.blogspot.com. Frie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한윤형(yhhan.tistory.com 블로거)
김현진(에세이스트)

- 기획안

광우병 쇠고기의 문제를 계기로 대의민주주의에 갇히지 않는 시민들의 욕망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6월 10일 ‘명박산성’ 앞에 스티로폼을 쌓느냐 마느냐를 놓고 진행된 장시간 토론은 그동안 촛불에 내재되어있던 비폭력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고민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것이 직접민주주의의 정신이라면 이것은 하나의 지향일 뿐만 아니라 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지향과 과정에서 ‘비폭력’은 주요한 열쇠말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스티로폼 논쟁을 좌담에서 다룰 ‘사건’으로 놓고 이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나 소회를 시작으로 좌담을 열어볼까 합니다.


1) 촛불이 거리로 나온 이후 ‘비폭력’은 꾸준히 외쳐진 구호였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거리행진에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위대를 스스로 통제하는 담론이 되어 촛불의 분출하는 열망을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또한 ‘비폭력’ 구호 안에는 다양한 쟁점들이 복합적으로 담겨있기도 합니다. 한편, 폭력/비폭력 논쟁은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의 시위에 대한 찬반 논란과 겹치기도 하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다양한 행동들이 가능해질수록 다양한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축제’의 분위기는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행위들이 흩어지기만 하고 모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려를 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거리에서의 폭력/비폭력 논쟁의 의의와 한계를 되짚어보면서 앞으로 어떤 기획이 필요할 지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 ‘비폭력’ 구호가 나온 배경과 지니는 의미에 대해
- 폭력/비폭력의 대립구도는 어떻게 지양? 해소? 승화? 되어야 할까요
- 촛불집회의 양상들 속에서 작동하는 ‘배제’의 논리들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으며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요


2) 거리에서 폭력/비폭력 논쟁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은 결국 지금의 촛불의 힘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그 배경일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이나 각종 공공재/공공서비스의 사유화 반대, 조중동 등 언론권력의 재구성, 대운하 반대 등이 거리에서 ‘구호’로 터져나오고 있지만 이 ‘구호’들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힘으로 전화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한편, 이 각각의 요구나 의제의 확장을 넘어 국민소환제, 국민투표 등의 차원으로 흐름을 모아가자는 주장도 곧잘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대해 느끼는 시민들의 불만은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한계를 폭로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바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요즘, 촛불의 흐름이 ‘지향’해야 할 직접민주주의의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지, 그 목표를 향해 가는 흐름은 어떻게 조직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 ‘민주주의’라는 대의가 촛불을 관통하게 된 배경과 의미에 대해
- 현재의 요구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 형식으로 수렴될 수 있을지, 정당정치의 강화, 국민소환제, 국민발의제 등의 주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촛불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좌파’ 또는 ‘진보진영’ 의 역할에 대한 의견들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소위 ‘운동권’(?)은 어떤 역할들을 고민해야 할까요

미류(사회 겸) :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비폭력 직접행동을 고민하게 됐다. 하지만 거리에서 외쳐지는 비폭력 구호는 같은 말이지만 다른 의미가 있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6월 10일 스티로폼을 쌓는 과정에서 논란도 됐었다.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직접행동이 무얼까 하는 고민도 있고, 결국 촛불의 흐름이 어디로 가야 할까도 고민이다. 이후와 관련해 국민소환제라든가 진보진영 연석회의 주장 등도 있는 듯한데 재기발랄하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내봤으면 한다.

완군 : 안 나올까 생각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5월 이후 상황은 운동권이 나서면 손해보는 게임이라는 느낌이 있어서다. 또 하나는 정말 잘 모르겠어서다. 생각이 바뀐다. 처음 청계광장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 촛불을 들 때 몇 번 가봤고, 물대포 맞은 날도 현장에 있었고 6.10 때도 있었는데 일관된 뭔가가 짚이지 않는다. 옆에서 코멘트를 다는 건 내일이면 다시 아무 것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석하게 된 건 지금이 진짜 어떤 상황인지를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서다.

6월 10일 스티로폼 논쟁이 폭력/비폭력 구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다음날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발표한 성명도 협의의 폭력/비폭력 구도에 갇혀 있었다. 여기 와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다. 내가 보기에는 노는 것 같다. 놀이하는 사람들이다. 놀이는 규칙이 없다. 놀이를 하는데 노는 사람 말고는 누가 어떻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거다. 다방구도 동네마다 룰이 다르니까. 놀이기 때문에 또 언제 그만 놀자고 할지도 모르는 거다. 이걸 지나치게 놀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노정태 : 패널 구성에서 비폭력 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촛불시위가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가 살아나야 하고, 발전을 찾아야 하고, 비폭력이라는 굴레 하에 촛불의 발전을 억누르지 말자는 합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일단 구성이 좀 아쉽다.

김현진 : 24일 이후 매일 나갔다. 나는 조직에 속하지 않고, 철저히 혼자 나간다. 집이 가깝다 보니 혼자 오토바이 끌고 갔다 온다. 6월 1일의 경우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집에 들러 옷가지를 가져와 나눠주는 등 개인 플레이를 했다. 스티로폼 논쟁을 하는 날에는 없었는데, 대규모 집회를 하는 날은 일찍 들어가곤 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집회에 사람이 별로 없겠군, 나라도 나와야지 하면서 일찍 들어간다.

6.10 논쟁이 폭력/비폭력 때문은 아닌 거 같다. 깝치지 마라, 왜 나보다 먼저 깝치냐, 나대지 마라, 이런 거부감이 없지 않다. 확성녀나 봉고차가 그랬다. 저게 뭔데 먼저 나대냐 그런 거다. 누가 먼저 나서는 건 싫지만 자기가 나서서 큰 책임을 지는 것도 싫고 그런 거다. 사람들이 어정쩡하다. 기타치고 노는 건 좋은데, 맞는 건 싫고, 물대포는 차갑고. 5일 새문안교회에서는 열나 싸우는데 뒤에서는 노래가 혁명이야 하고 있고 기분이 참 묘했다. 그날 분열된 양상이 많았다.

여자들이 예비군은 보호하지 말라고 이야기 많이 하는데 이건 다른 쟁점이다. 나도 페미니스트인데 평등하게 맞아봐라 그런 말 나오나. 보호/비보호 문제가 아니라 누가 쌓아 누가 올라갈 거냐의 문제였다. 비폭력이라고 얘기하는 게 쉽고 평등하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폭력/비폭력은 어정쩡하다. 5일날 연장을 많이 챙겨갔다. 손전등, 망치, 드라이버, 식용유… 폭력/비폭력 구분이 뭐냐. 닭장차 바퀴에 식용유 바른 거, 밧줄 묶을 때 손전등 비춘 거는 폭력 아니냐. 결론이 도출 안 된다. 무전기를 뺐자고 하니까 비폭력을 주장하는데, 버스 다 부셔놓고 그러는 건 일관성이 없다. 사람들이 비폭력을 외치는 기분에 들뜬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독립만세 춤발 날리는데 비폭력 그러면 공정무역 하는 느낌도 들고.

사람들이 현실 인식을 똑바로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친척 중에 장로, 권사 서너 분 계시고 진짜 빡빡한 보수교단이다. 친척들이 촛불집회 다닌다고 나한테 사탄이라고 막 뭐라 한다. 고/소/영 이런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너무나 잘 알 거 같다. 왜 앉아서 기타치고 그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냐면, 그걸로는 이명박이 꼼짝도 안하기 때문이다. 개뿔도 신경 안 쓴다. 아침 6시면 어차피 다 해산할 텐데 니들 맘대로 하라는 거다. 그 사람은 자기가 틀릴 수 있다는 의심이 없다. 이명박 정말 무서운데, 절대자가 자기 편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이스라엘인이고 그 중에서도 레위파이기 때문에, 천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우리가 노래부르는 거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대책회의가 불쌍하고도 나이브한 게 뭐나면, ‘지금 우리의 함성 들려줍시다’ ‘여기 온 것만으로도 이명박은 간담이 서늘할 거다’라고 그럴 때마다 진짜 눈물이 핑 돈다. 이명박은 피도 눈물도 없는 거지. 골수 기독교인이 얼마나 독한데. 생각보다 훨씬 비열한 사람이거든. 보통 하는 걸로는 안 돼요. 주민소환제든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겠다 싶고, 생활의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해서 6월 1일 지나고 바로 진보신당에 가입했다. 진보신당 사람들은 저한테 초짜 운동가라 그러는데 자기 구 의원 압박하거나 그런 거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좀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비폭력 외치면서 간디가 된 기분 들고, 전경한테 꽃 꽂아주고 그런다고 좋아지는 거 하나도 없는데.

미류 - <인권오름> 편집인

▲ 미류 - <인권오름> 편집인

미류 : 지금 비폭력 구호에는 수많은 쟁점들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사실 비폭력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조중동에 빌미 주는 걸 걱정 하는 거, 다치는 걸 걱정하는 거 등의 논리들이 작동하는데, 지금 비폭력 뒤에 뭐가 있다고 봐야 할까.

완군 : 6월 10일 두 개가 재미있었다. 하나는 조선일보 카피가 ‘비폭력 비폭력’이었다는 거다. 굉장히 상징적이다. 7, 8일부터 조선일보가 쓰레기에 묻히기 시작했는데 아마 데스크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거다. 스티로폼 보면서, 누가 계산해서 이걸 카피로 했다면 굉장한 정치적 판단이고, 그래서 조선일보가 해먹는 거구나 싶었다. 그날 비폭력은 시민들이 스스로 그은 선이었다. 조중동을 쓰레기라고 하지만 가장 큰 심리적 가상의 적, 그러니까 버츄얼 에너미가 조중동이다. 적이 공격할 빌미를 주면 안 된다는 것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당한다는 게 작동한다.

하나는 아까 현진 씨가 깝치지 말라고 얘기한 게 핵심이다. 운동권 사회에서 고루한 사람들한테 조끼라고 하잖아. 그날 인권활동가들이 조끼를 입은 건 굉장한 실책이었다. ‘민주주의는 차벽을 넘는다’는 슬로건도 너무 비장했다. 자기 스스로 혁명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는 첫사랑같은 집회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읽혔을 거다. 그럼 저걸 안 넘으면 민주주의가 아니야? 나는 저들보다 아래야? 이런 심리적인 저항 내지 반감을 불러일으킨 거다. 운동권은 그날 완전히 고립됐다. 다른 운동권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운동권한테 저 앞에 좀 가보라고, 자유발언도 좀 하라고 해도 이런 집회에서 뭘 그러냐는 반응이었다. 조선일보 카피가 물리적 행위에 대한 비폭력을 강조한 건데, 사실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이길 수 없다. 이미 버스도 밧줄로 당기고 다 해봤는데, 갑자기 이 놀이의 규칙을 어겨 정치의 규칙으로 넘어오면서 몇 가지 심리적인 저항선이 생기게 된 거다.

한윤형 : 조중동 프레임 이야기는 맞는 부분이 있다. 조선일보가 시위대 3~40만을 두고 분열시킨 건 대단한 측면인데, 또 다른 측면에서 시위 규모가 몇 십만이 되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는 시민들 반응도 있다. 기타치고 그러는 거 보면서 아버지도 한 번 가볼까 그러시더라.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보고 안도한다. 이명박 꼼짝 안 한다는 걸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그게 초점이 아니라 스스로 정당성을 획득하고 싶어하는 거다. 조선일보는 그걸 아는 거다.

노정태 : 구리스가 발화점이 낮다. 정말 위험했던 순간은 낮에 태극기 붙어있을 때였다. 다른 문제가 있다. 조끼에 차벽을 넘는다고 써있는데 스티로폼 앞으로 가니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뭔가 액션이 시작됐다. 새벽 두 시쯤 눈이 번쩍했다. 조끼에는 차벽 넘는다고 써있는데 차벽은 안 넘고 연단을 쌓아 자유발언을 한다니. 무기력한 비폭력과 창의적인 비폭력 대결로 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좀더 정치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차벽을 넘겠다고 주체성을 명확히 밝히고 여기 비폭력을 주장하는 시민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니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면서 그 사람들 끌어올려 이야기를 들었으면 앞뒤가 안 맞을 거고, 그 사람들이 자연스레 욕을 먹게 되는 구조였는데 괜히 유탄을 맞았다.

미류 : 그날 인권단체연석회의 잘했다 못했다 이야기 보다는, 그날 뭔가 넘어서려는 잠재적 욕망이 존재했는데, 그게 과연 뭐였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분출돼야 할까를 얘기해보자.

완군 : 대중행동은 발화점이 있어야 불이 붙는다. 대중행동은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차벽을 넘자는 사람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그 자리 대중들은 스티로폼 쌓는 걸 물리적으로 막은 거지. 스티로폼 불이 붙냐 아니냐는 상관없는 논쟁이었다. 그런 행위를 찾는 것이 중요한 토론인데, 인권단체연석회의도 폭력/비폭력으로 설명을 하니까 사람들이 비폭력 요구로 된 거지, 사람들은 비폭력을 요구한 게 아니다. 여기까지 사람들이 합의하고 있는 게 있는데, 너희들이 뭔데 여기 와서 이 규칙을 어기자고 하는 거야, 그런 거다.

미류 : 그날 논쟁을 폭력/비폭력으로 보지 않는다는 지적은 동의하는데, 현장에서 강한 비폭력 선동이 먼저 작용하고 있었다.

한윤형 : 전경을 때리면 안 되죠. 대열에서 이탈했을 때는. 밀고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지만. 폭력 시위로 전환하면 비난할 수 있냐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가령 6월 7일 새벽에 닭장차 바리케이트를 한 번 넘었다. 전경도 나오면 무서워한다. 덜덜 떨더라. 때리려는 사람들도 있고. 한 번은 전경 다섯 명이 대열에서 이탈하는데 얘들이 패잔병으로 이탈해서 오는 건지, 시위대를 향해 오는 건지 모르겠어서 나도 애매했다. 전경도 무서워한다. 인격이 아니고 물리적으로 놓여 있는 바리케이트는 상황이 다르다. 폭력/비폭력 개념 정의를 다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

노정태 : 5월 31일도 비폭력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전경 네 줄을 힘으로 뚫었다. 이후 기조로 보면 폭력이다. 안국동 진출하고 물대포 맞고 새벽에 두들겨 맞은 거, 사람들은 이것만 보고 순결한 환상을 전체에 대비하는데, 시위대 중에 누군가는 전경을 돌파할 여지를 계속 찾고 있었다. 그날 경찰 전술이 실패한 거고 그래서 10일 컨테이너박스가 동원된 거다. 그날만 놓고서 우리가 당한 폭력에 비폭력으로 갚아준다는 민주투사의 환타지가 자가발전 해나가고, 전경한테 꽃 꽂아주며 87년 6월항쟁의 재현을 상상하더라. 그 이면의 근본은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거다. 6월 1일 맞았다는 걸 강조하지만 사실은 31일날 뚫은 거였다.

완군 : 운동권과 비폭력을 바라보는 지점에서 차이가 있는 거 같다. 평택에서는 가장 전달력 있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뭐냐, 가장 도덕적으로 정의를 지키고 소수의 사람으로 이걸 어떻게 전달할 거냐는 폭력에 대항하는 전술로서의 비폭력이 있었던 거다. 노동자 100만이 거리로 나오면 폭력/비폭력 의미가 없어진다. 집회에 많이 참석하는 사람들의 감수성인 거 같다. 지금 구호로 외쳐지는 비폭력은 프레임의 문제가 있고 한편으로 자신감이 있는 거다. 민주투사 이미지를 투영하면서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는 거, 비폭력을 외치면서 자신감을 갖는 게 있다. 또 하나는 대항성의 문제가 있다. 집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한테는 비폭력을 바라보는 차이들이 있는 거다.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건데, 경찰이 아침에 사람을 때렸다는 건데 이게 생뚱맞을 수 있는 거거든. 비폭력이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적인 것들을 반영하는데, 거기서 심리적, 문화적 차이를 열외로 놓고 딱 직접민주주의나 행동 측면만으로 이야기하면 안 맞는 거지.

미류 : 자신감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초기와 지금의 비폭력의 함의가 다르게 들린다. 처음 뻗어나갈 때는 자신감이 있었다. 풍자, 해학, 조롱은 우리가 위에 있다고 느낄 때 가능한 거다. 당하기만 하는 사람한테는 그런 여유가 없다. 비폭력도 내일은 두 배 세 배 될 거라는 자신감인데, 그런데 지금은 비폭력이 뭔가 강박관념도 있고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비폭력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신감이 허물어지는 징조가 아닐까. 완군 이야기처럼 조중동의 전략인지, 촛불 흐름의 변화일지는 모르나, 그런 만큼 더욱 강력한 비폭력, 제대로 박는 비폭력이 기획되어야 하지 않을까.

노정태 - Forie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노정태 - Forie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노정태 : 투쟁 방식으로서의 비폭력은 상대방의 폭력이 유발될 걸 알고 하는 거다. 사람들은 운동권은 폭력 시위를 한다, 나는 운동권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택에서 비폭력 시위를 하고, 맞는다. 국가폭력이 이렇게 있으니 무기력하게 말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항거하자고 하면, 너는 비폭력 시위하면서 왜 맞냐, 비폭력이 아니니까 너가 맞는다고 대꾸할 거다. 뭔가 어설프지만 순환 논증이 있다. 맞으면 운동권이고 맞지 않으면 운동권이 아니다. 그 범주를 넘는 게 서울대 음대생, 여고생이고. 사회적으로 보호해야할 사회적 약자 같은 프레임이 중첩되지 않는 한 ‘앉아서 빠지지 않으면 일반시민이 아니다’ 라는 게 잔존하는 거다. 이게 사람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정부에서 어쩔 수 없는 폭력을 동원하거나 항복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를 항복시키지 않는 비폭력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은 시위를 하고 있지 않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완군 :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더 나아가고 싶지 않은 거다. 결국 어떤 정치적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거나 혹은 더 나가야 한다는 건 운동권의 생각이다. 20일 날 정권 퇴진을 한다 하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굉장히 수사적인 건데 지금 그런 수사적 레토릭을 구사할 판이 아닌데 자꾸 운동권 식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가 아니라 사람들은 그 벽을 넘고 싶지 않은 거다. 정치적 행위로서 청와대로 가겠다고 했다면, 그 열기가 있었다면 과연 컨테이너 12개로 막을 수 있었겠나. 그 자리에 모인 대중들의 합의는 거길 끝내 넘고 싶어하지 않은 거 같다. 그래서 그걸 넘는 것은 폭력이라고 해버리고 선을 그은 거다. 저건 폭력이 아닌데 라고 생각한 사람도 저기를 갈 거냐, 저 행위를 할 거냐를 놓고 심리적인 선이 있었던 거다.

한윤형 : 논점을 바꿀 필요가 있는데, 지지율이 떨어지면 뭔가 바뀌어야 정상인데 선거도 없고 할 게 없다. (김현진 : 교육감 선거!) 물가상승률 7%, 경제성장률 4%, 지지율 7%, 그래서 747이라고도 한다. (노정태 : 7.4% 지지율을 7월 안에 달성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쯤 되면 방도가 있어야 하는데 청와대만 막겠다, 나머지는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현진 : 세종로 니네 가져 이런 거지.) 그렇다고 혁명을 할 정국도 아니니 사람들한테 뭔가 요구하기도 그렇다. 제도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그래서 직접민주주의 이야기하는데, 근데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 모르겠다. (현진 :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굉장히 아련한. (정태 : 꿈 속에 있는) 평생의 이상형 같은. 누군지 모르겠고, 걔가 쌍꺼풀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련한. 대의민주주의가 안 굴러간다고 이야기하는 건 맞는데 어떻게 보완할까를 이야기해야.

김현진 : 스티로폼 쌓는 걸로 몇 시간을 싸웠다 하니 스티로폼이 무슨 폭력이라고, 돌을 쌓는 것도 아닌데 얘들이 장난치나 했다. 비폭력이란 세 글자에는 나대지 말자, 너무 튀지 말자, 너무 가지 말자, 너무 심하게 하지 말자는 한국적인 정서가 함축되어 있다. 책 잡히지 말자, 너무 그러지 말자, 적당히 하자 그런 거. 근데 적당히 해서 바뀔 정국이 아니라는 건데, 그리고 언론도 그렇다. 사람들이 무기력하고 의지가 없어서 길에 앉아 있는 것이지, 60년대 히피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윤형 : 거리에서 술을 마시더라도 징집증을 불태우면서 술을 마신다거나.) (정태 : 마리화나 하고 그러는 거도 아니고. 딱 편의점에서 파는 것만 먹으면서.) 어찌할 바 없어 길에 앉아 있는데 평화 이야기하는 그런 낭만적인 자세가 우리의 적이 아닐까.

미류 : 완군 님이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거냐. 나가고 싶은데 막막하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노정태 : 오마이뉴스가 자발적 시청료를 걷은 다음 차량을 대절해와서 멀티 화면을 틀어줬다. 오마이뉴스는 사람들이 87년의 환상을 느끼고 싶어하는 거에 맞춰 시위의 일부만 스크린으로 떼어와서 팔기 시작했다. 일종의 진보상업주의지. 6월 항쟁을 이야기하지만 789월 노동자 투쟁 이야기하지 않은 거와 같은 건데. 사람들이 일부만을, 말하자면 페티쉬, 강력한 페티쉬를 느끼는 거고, 요걸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다수가 있는 거다. 이명박에게 화가 나고 이명박이라는 적을 상정하고 거꾸러트릴 목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해메는 거지. 좌충우돌하고. 그래서 지금 시위대가 갈라져 있는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는 긍정적이다. 환상을 깨면 너희는 운동권이라는 비난이 돌아올 텐데 어쩔 수 없다. 이제 소수가 남았는데 뭘 할까를 전략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한윤형 : 지금 파업 정국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87년만 바라보는데 어떤 점에서는 79년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 87년에는 경제적인 이슈보다 정치적 이슈였지만, 79년은 오일쇼크 때문에 상황이 안 좋았고, 와이에이치 농성할 때 김영삼이 유신 반대로 전환시켰다. 지금 화물연대 파업에 지지 분위기인데, 유가가 오르고 생활이 힘들고 먹고 살기 힘든 국면 자체는 87년보다 79년 상황과 비슷하다. 그런데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인식이 아닌 듯하다. 혼재된 상황에서 서민경제가 어려워진 책임을 어디에 돌릴 거냐, 어떻게 대안을 가져갈 거냐, 막연하게 이명박이 나빠서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김현진 : 길에 나온 사람들, 놀러오는 사람들 말고, 자유발언하는 아저씨들 이야기 들어봐도 거대한 고해성사 같다는 느낌이다. 이명박은 속물의 아이콘이다. 어떤 욕심도 다 투영되어 있다. 아파트 한 채, 우리 아이 자립형 사립고, 신혼부부 집, 우리 애 유치원 때부터 영어... 대선 때 ‘잘 살게 해 줄게요’ 뻥치고 다니고 아무 대책 없이 환상을 심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이명박이 한 명 있어서 이명박과 공명을 했기에, 우리 아빠처럼 연결고리 없는 사람도 이명박과 연결되고 있었던 거다. 속물은 절대로 진영이 없다. 속물은 자기 편, 내 새끼 편, 내 마누라 편일 뿐, 어느 누구 편도 아니다. 이명박이 자기 편이 아니라는 거 이제 속았다는 걸 알기 시작한 거다. 근데 사람들은 지금 내가 속물이라서 쟤를 뽑았네 이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내가 창피 당하기보다 이명박이 쥐새끼라고 이야기하는 게 편한 거다. 그래서 고해성사가 나오는 거다. 이명박 끌어내리면 무슨 소용 있나. 쥐 한 마리 잡으면 생쥐 100마리가 나올 텐데 그걸 박멸 안 하고 어떡하나.

사람들이 비폭력 말하는 게 진짜 평화를 사랑해서일까. 한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평화를 사랑했다고. 사람들이 나와 있으니까 이글이글한 에너지가 있는 건데 그 에너지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 대책회의 집회에서 지금 자유발언 하는 거 듣기 싫은데, ‘울산에서 올라온 고3 여학생입니다’ ‘나 60살 노인이야’ 말은 똑같은데 사람만 바뀌고 로테이션 되니까. 에너지는 과잉되고 풀 데는 없고, 푼다는 게 누가 뭘 하면 반대하는 걸로 몰리는데, 스티로품 안 돼로. 아저씨들은 폴리스라인을 부수며 에너지 발산하고. 이 에너지가 어디로 가야 할까가 문제다.

완군 : 비폭력 직접민주주의 구조로 접근하면 안 풀릴 거다. 에너지가 있는데 이 에너지의 이유가 뭐냐. 6.10 이후 놓고 정치학자나 운동권이 누구 입장이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다. 직접민주주의로 갈 거냐, 국민소환제냐, 대의민주주의냐 이야기하지만 이 에너지가 과연 형질 전환되는 에너지일까. 지금 필요한 건 광장에 남는 기획이 아닐까. 최근 국면에서 제일 신기했던 게 13일 KBS로 간 거였다. 그 전에 스티로폼 논쟁을 그렇게 했는데 그 맥락에서 보면 그 시간에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시간에 여의도로 가자고 한 건 정면에서 배치된다. 엄청나게 위험한 건데, 비폭력 논리라면 절대 못 가는 건데 갔단 말이다. 그게 현진 씨가 이야기하는 에너지다. 왔으니 뭔가 해야 하는데 컨테이너를 넘는 건 아니고, 다른 거 하자고 해서 간 거다. 지금 필요한 광장의 기획이란 건 그런 광장의 구체성이다.

광장에는 스스로가 광장의 아버지 혹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태 : 맞아요. 되게 많아. 그리고 대개 취해 있죠. 하하.) (현진 : 그래서 자식들이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말리고.) 젊은 아이들 데리고 어디로 갈 거냐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접민주주의냐 대의제 얼마나 위기냐 이런 논쟁을 할 게 아니라, 실제로 필요한 건 광장에 어떻게 남을 것인가 인거다.

미류 : 나는 내가 뭘 원하고 있는가 고민이 든다. 이 부분이 아버지의 고민과 닿아 있을 수 있는데, 촛불 어디로 가는 게 좋겠냐가 아니라 촛불에서 뭘 하고 싶은지 이게 고민되고 헷갈리는 거다. 구체성의 정치라고 하면 내가 느끼는 불만들을 어떻게 이 흐름 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건데 잘 안 풀린다. 이런 게 한편으로는 소환제나 약간은 민주제 형식과 관련한 논의로 전환되는 갭 같은 것이 있는 거 같다. 그 부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완군 : 컨테이너박스를 넘는 게 폭력이라면 거기서 출발해야지 생각하고 물리적으로 넘지 않으면서 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가령 패러글라이더 같은.. 그래서 아고라에 청원했는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구나, 이 사람들이, 뭔가 다른 에너지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누가 깐 판이 아니다. 누가 깔아놓은 판에 사람들 와서 불어난 게 아니라 스스로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러면 정답은 ‘하다보니 하고 있는 것’을 진짜로 하게 만드는 거다. 최소한의 그 정도의 강제. 광장에 남는 거다. 가령 지금 미디어 관련된 사람들은 누구든 안티조선에 붙어야 한다. 그 시계를 앞당길 수 있는 기획 같은 거. 사람들 KBS로 가면서 ‘공영방송을 지키자’ ‘국민의 KBS를 지키자’ 그러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KBS 나타나면 ‘카메라 끄라’고 그랬다.

공영방송 지키자는 건 예상 못한 의제인데 이렇게 된 것처럼, 대운하도 어떤 발화점을 만들 거냐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아고라에서 민영화는 팽팽하다. 공무원을 굉장히 싫어하는 게 많아서. 광장에 남아서 민영화 뭐냐 얘기해야 한다. 5대 의제를 한다고 하는데 광장의 의견이 하나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러면 안 되고, 수위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부동산 문제도 그렇고, 미디어의 의제가 아니라 광장의 의제로 만드는 기획이 필요하다. 급식조례할 때 민노당 조끼 입고 있으면 아줌마들이 서명 안 한다. 생활정치라는 게 이렇게 작은 차이로 갈리는데 운동권과 전문가들은 슬로건을 먼저 들이민다.

한윤형 : 주민소환제도 애매한데 지금 하는 게 타당한 지는 잘 모르겠다. (정태 : 탄력 받을 지가 문제지.) 오세훈이 이명박과 친하잖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겠지. 다른 방법이 없으니.

노정태 : 에너지를 광장에서 활용하는 방식을 찾아야겠는데, 가투로는 뭘 얻을 수 없고, 주민소환제로 한나라당을 흔든다는 발상인데 사람들은 광장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지 이 사람들이 오세훈을 소환해서 짜르자고 그렇게 결의가 모아질까. 정치의 실력이 필요한 건데 지금 가능한 후보가 없다. FTA 반대 함부로 내놓으면 노무현 찬성론자들로부터 그렇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물타기 하자니 민주당은 주저앉는 거고. 진보신당은 의석도 없다보니 운동단체 취급받잖아. 진보신당은 진중권당이 됐지.

지금 비전이 없다. 유가 뛰고 있고, 유류세 인하 이야기하지만, 전혀 해결 안 되는 거다. 디젤을 바이오디젤로 바꾸고 고유가 시달리지 않도록 하겠다, 일자리 창출 같은 이런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이걸 못한다. 시청자이자 소비자는 스스로 유권자로 생각하는데, 유권자로서의 정치적 소비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거다. 최장집 교수 이야기처럼 한국 대의제가 너무 대통령 집중제이고 위임민주주의인 건 맞지만 제도를 굴릴 수 있는 인간의 문제를 제도 자체로 화해서 어설프게 개헌 이야기로 가는 건 위험한 거다.

완군 : 87년 6월과의 비교는 좋은 방식은 아니다. 87년 6월은 시스템 문제, 즉 직선제가 있어서 직선제로 바꿀 수 있었던 거지만 지금은 그런 합의를 끌어낼 수도 없고 합의가 없다. 지도부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2006년 말기 시스템과 지금 시스템이 다른가이다. 아니다. 2006년의 분노는 지금과 같지 않았는데 지금은 시스템의 위기인 것처럼 착각하고 제도를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굉장히 약소하고 후퇴적인 거 같지만 100일 전을 생각해보자. 100일 전만 해도 정말 아무도 답이 없었다. 이 광장을 통해서 쇠고기 막고 한미FTA 브레이크 걸고, 공기업 민영화 문제 각인시키고, 6.10 이후는 구체적인 것을 지키는 기획이면 되는 거지, 이걸 정치제도나 민주주의 전체 문제로 끌고갈 하등의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그리로 안 가고 싶어한다. 스티로폼 쌓는 거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에서도 그런 정서적인 맥락이 있는 거다.

미류 : 사회권과 관련한 활동하다보니 사회권의 정치, 사회권에서의 민주주의 고민한다. 물, 건강, 전기, 교육 등을 경제사회적 권리라고 하는데 이 영역에서는 한 번도 민주주의가 달성되어 본 적이 없다. 이런 것들은 지금까지 정책의 문제였지 정치의 문제였던 적이 없다. 이게 정치의 장으로 나온 거다. 이를테면 100명이 사는 마을에서 50명은 주인이고 50명은 세입자다. 그런데 동네 어떻게 할 지는 집주인만 결정한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여기에서 필요한 게 민주주의다. 전기, 물 사용하고, 쇠고기 먹고, 교육받는 사람들에 의해 정치가 만들어진 적이 없다. 지금의 요구들이 전통적인 시민정치적 권리라는 맥락에서의 민주주의 형식으로 수렴되기보다는 여기에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완군 :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대중 행동이나 심리를 봐야 한다. 한 친구가 0교시 반대하고 교육 미쳤다고 제안했다 하자. 그러면 그 친구가 서울대 가는 걸 꿈꾸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다른 욕망이다. 이걸, 그 아이는 교육의 주체이고 청소년이고,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시사회 이렇게 가야 한다고 정리해버리면 중간이 다 비어버리는 거다.

노정태 : 제도적인 차원보다 기술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데, 민의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나와가지고 슬그머니, 사립대 50% 재정을 정부가 감당하니까 대학을 공영화하자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안 한다. 대중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자신이 무사할 수 있을 만한 정치적 동력을 누가 실어줄 수 없다. 지금 이렇게 막연한 변화의 에너지가 있을 때, 잘 체계화된 사민주의적인 구상이든 어떤 거든 총체적인 것이 주어지고 수렴되어야 하는데 그런 정도로 교활한 인간이 아무도 없다. 없다고 한탄만 하고 끝날 수 없는 게, 실제로 없으니까 이게 큰 문제다. 광장에 시민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지치지 않고 버티는 거. 버티면서 쇠고기 반대에 나온 사람한테 민영화 문제, 철도 문제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 광장에 천막 치고 있는 사람과 동대문 상인들 이야기를 일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 같다. 비정규직 유인물 나눠준다. 작은 변화 꾀하는 거다. 이게 중요하다.

김현진 : 나는 그런 거 좋더라고. 비정규직 노동자 와서 이야기하고 그런 거 좋더라.

한윤형 : 거리의 정치를 계속 해야 하는데 거리에 있으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거, 기대 혹은 할 수 있는 바가 아닐까.

노정태 : 한국사회에서 시민성이라는 말은 상당히 중산층 적인데, 그 범주를 넘어서 노동계급과 노동조합과 그 노조도 못 만드는 비정규직과 그런 문제를, 구시대 말로는 지식인들의 이야기겠지만 지금 시민이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시민들이 지식인적 세계 파악과 계급적 인식과 작게나마 행동해야 한다는 그런 걸 각인하는 게 중요하다.

한윤형 : 그런 윤리를 이야기하면 나를 가르치려고 하냐. 너가 뭔 지식인에 들어가냐 할 텐데.

완군 : 이 집회를 여기까지 끌고 온 상징적인 쓰리 칼라를 꼽으라면 교복과 유모차와 군복이다. 예비군 나오자마자 보호, 마초, 같은 인식론적 틀이 있었다. 이거 끝까지 싸워야 한다. 예비군의 실재가 뭔지, 실체가 뭔지 끝까지 싸워야 하는데 지금 보면 예비군의 유령을 놓고 싸우는 거 같다. 광장에 남을 거라면, 민주주의 문제를 이야기할 거면 그 사람들과 끝까지 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예비군복을 입고 나온 거는 충정이 대단한 거다. 군인은 저들 편인데 시위에 참여했다는 상징적인 효과도 있다. 아고라의 특권도 있다. 다함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맥락을 아고라는 몇 번의 집회에서 파악했는데, 지금 국면에서 아고라는 말하자면 이 집회의 진짜 액기스다.

한윤형 - 블로거

▲ 한윤형 - 블로거

한윤형 : 아고라와 예비군이 양대 전위인 건 맞는데, 예비군이 보호하겠다고 해서 나오는 데는 아무 불만이 없다. 사수대를 하겠다는 것도. 보호 받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앞에 있으면 되는 거고. 전경과 대치하다 보면 여자들이 ‘남자들 앞으로’ 그러면 뒤에 있다가 안 갈 수 없는데, 어쨌든 근력의 차이가 있으니 그러게 된다. 구설수가 많았던 건 예비역에 대한 편견 컨셉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엔 사람들 정말 좋아했다. 막 박수 쳐주고. 너무 신나게 뛰어다녀서 반전이 된 건지, 프락치가 있었던 건지.

노정태 : 실제 도움이 안 되기도 했다. 뚫어야 할 상황인데 비폭력을 외치며 인간방패를 했다. 밀면 밀리는데 그냥 버티자고 하면서 버티고만 있다. 사람들의 욕망이 넘치는 상황에서 그걸 가로막는 역할을 했던 거다. 정작 야경의 역할을 맡고 싶었다면 광화문 네 거리 교통통제 하는 낮은 곳으로 향했어야 한다. 차를 막아주고 미아 찾아주는, 아무도 안 하는 공공서비스를 한다는 마인드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신나니까 집회 일선에서 비폭력을 외치고 약자 보호로 가니 사람들이 참을 수 없게 된 거다.

김현진 : 예비군 비판하지만 ‘그래도 저희는 갑니다’ 이런 글을 아고라에 올린다. 농담으로 이야기하지만 이제 누구라도 예비군복을 벗길 수 없을 거다. ‘오빠 멋있다’ 이런 말 들은 애들 죽을 때까지, 숨이 붙을 때까지 군복 입고 나올 텐데 그걸 어떻게 벗기나.

완군 : 2002년에 월드컵 반대 했다. 폐해가 심각하다 생각했다. 빨간 옷을 입은 군인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 줄을 맞추고, 몇 십만이 모였는데 버스 위로 몇 명 올라간 걸로 난리가 났다. 몇 십만이 모이면 어찌될지 모르는 건데 이런 장면을 보면서 ‘이게 다 군인이구나’ 그런 농담을 한 기억이 난다. 이번에 보면 많이 변하는 거 같다. 이제는 군복 입은 애들의 통제 찬반 논쟁까지 온 거다. 여기 붙어야 한다. 평화적 감수성 문제, 이런 걸 붙어야지 민주주의 논쟁이 발전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1세대적인데 군복 입은 애들도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김현진 : 군복 입은 남자애들이 비폭력을 외치는 건 마치 퀘이커교도 애들이 총을 들고 행진하는 것처럼 웃기는 거다. 비폭력 예비군 꺼져라 하는 거는 니가 뭔데 지랄이냐 하는 거다. 기술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걸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나마 근접한 게 진중권이다. ‘왜 때려요’ 그런 거니까. 그래서 지랄한다 이런 말이 안 나오는 거다.

노정태 : 확실히 군사적 색체가 많이 빠지긴 했다. 근데 이 시위가 불거진 세 가지의 옷들이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 의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여대생, 여고생, 노골적인 사회적 약자나 성적 대상이 아니면 공감하지 않는다. 미선, 효순 양도 마찬가지다. 유모차 끌고나온 아줌마들 외치는 거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그러며 지나가는데 이거 너무 노골적이잖아. 뒤집으면 내 아이 때문에 나왔다, 이게 아니면 나올 이유가 없다는 은유가 있는 거다.

완군 : 유모차 시위 자세히 보면 굉장히 질서정연하고, 손 구호나 이런 거 굉장히 조직화된 행동을 한다. 예비군들이 손잡는 거는 처음 집회 나와 하는 행동인데, 행동 통제 강도만 놓고 보면 유모차 부대가 훨씬 강하다. 유모차 부대가 집회 나온 거 보고 굉장히 자유롭다고들 하는데, 행동의 통제나 의식, 폭력성이나 억압성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혐의를 두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제약하고 있는 행동의 질서를 공평하게 봐줄 필요가 있다. 예비군이 하는 방식이 질서를 통제하는 거냐, 오히려 연단이 질서를 통제하는 것일 수 있다. 예비군과 연단을 놓고 봐도 빨리 비판해야 할 거는 연단이다. 질서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나 놓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해야 한다.

노정태 : 그나마 희망적인 건 굉장히 빨리 변한다는 거. ‘아이들이 무슨 죄냐 어른들이 지켜주자’ 라는 걸 본 청소년들이 짜증나서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 이렇게 쓰고 나왔다. 이건 거 도외시 할 수 없다. 매순간 변화하고 진화한다. 행동방식 찾아나가면서, 추동력 가진 사람들 분명히 있고, 조금 더 많은 걸 해보고 어디론가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보인다.

미류 : 민주주의 한없이 좋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 헌법제1조 이야기하고 주권 이야기하는 게 사실 경계를 설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이 지키기 위해 내가 권리의 주체라고 하는 선언이고, 누구는 누구의 보호를 받는 존재이고, ‘일반 시민’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경계가 거리에서 흔들리고 있다. 경계를 어떻게 허물 거냐도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비튼 방식처럼 여성이든 소수자든 혹은 노숙인이든 이 경계를 비틀고 광장에 함께 있는 게 중요할 듯하다.

노정태 : 참여 폭의 확대가, 숫자가 많아지면서 다양성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5월 31일 뚫었을 때 전동 휠체어가 굉장히 많았는데, 여태 봤던 지체장애인보다 훨씬 많은 지체장애인들이 그 길을 활보했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과격시위자만 있었고 그런 식으로 해방구가 열렸던 건데, 민주화 운동의 판타지를 누리고 싶었던 사람들이 대규모 광장을 만들어버리니까 그런 장면이 나오지 못했다. 나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낄 수 없었던 거다.

김현진 - 에세이스트

▲ 김현진 - 에세이스트

김현진 : 청소년들 참여하는데 ‘촛불소녀 희망이다’라고 하는 게 사실 386이 지 새끼들 이쁘다는 건데 그걸 왜 공적으로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다. 그냥 지 새끼 이쁘다고 하면 되지. 이건 청소년에게 똑같이 폭력일 수 있다. 니들이 희망이라며 촛불소녀라는 게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는 거기도 하다. 과연 0교시 없애줄 거냐, 교복 폐지 두발 자유화 개뿔도 관심도 없으면서 ‘촛불소녀 희망이다’ 이러는 거는 청소년 애들한테 ‘입 닥치고 공부나 해’라는 폭력과 똑같은 거다. 그 다음에 애들이 20대가 되면 그 공황 상태는 어떻게 할 건가. 또다른 386이나 20대는 또다른 10대를 만들고. 웹3.0이 되면 애들은 더 충격 받고, 1등이 잘나가고 대학 다니는 애들이 더 잘나가는 현실이 안 바뀌었을 때, 여기 나왔다가 좋은 대학 못가는 애들 어떡할 거냐. 속았다고 생각하면서 훨씬 강력한 작은 이명박이 될 수 있는 거다. 애들 정신적인 지지를 해줄 생각은 안 하고 ‘교복 입고 나오는 거 이뻐’, ‘풋풋한 목소리 이뻐’ 이런 건 무책임한 거다. 한 대씩 쥐어박아주고 싶다. 촛불소녀 그림도 이용하는 거 같아 화난다. 애들 판을 만들어주면 모를까 10대 순수성 어쩌고, 사실 10대가 순수한 것도 아니다. 그런 게 다 미신이다. 촛불소년 이야기는 왜 안 해.

대의제 작동이 안되는 게 문제인데 이걸 바꾸면 잘 될 거라는 미신, 이명박도 그랬다. 뽑으면 잘 살게 될 거라는 미신, 청와대 넘어가면 이명박이 석고대죄를 할 거 같다는 미신, 대기업 가고 공무원 되면 인생 펼 거 같다는 미신 이런 게 그대로 다 있는 거다. 문제를 작게 봐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명박을 성가시게 할 거냐 생각해야 한다. 왜냐면 이사람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어떤 개념적이거나 사상적으로 공격하고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거는 개뿔도 도움 안 된다. 현충일 날 헬기 타고 갔는데 기름 빼서 못 가게 한다거나, 음식에 설사약을 탄다거나 온갖 방법으로 실용적으로 성가시게 귀찮게 공격해야 한다.

노정태 : 원내 정치에서 답이 안 나오니까 꾸준히 자기 집단의 이해를 목소리내는 거다. 최근 대책회의가 욕먹는 게, 사람들이 막연하게 이명박 싫고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욕망을 주체화한 적이 없어 순수한 마음 때문에 선을 그으려고 하는 거다. 대중의 기회라기보다 운동권의 기회다.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잘 관찰해서 향후 4년 동안 노조, 사회단체들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처음 패닉에서 많이 벗어났다. 시민들은 아무도 돌도 안 던지고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딜까 싶을 거다. 조직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적이 된다는 인식의 충격 기간이 있었는데, 이 정체성을 넘어가는 방법이 중요한 일이다.

김현진 : 대중들이 지금 당장은 청와대를 향해 주먹질을 하지만, 이명박 유탄으로 아파트 값 두 배로 뛰면 순식간에 분노가 사그라들 수 있다는 거.

미류 : 오늘 어쩌다보니 ‘운동권은 들어라’ 라는 좌담이 된 거 같은데.

한윤형 : 흔히 정치적인 조직이라고 상상해왔던 조직들이 무능해진 상태에서 전혀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조직이라 할 수도 없는 커뮤니티가 튀어나왔다. 여중생 여고생 커뮤니티도 그렇고. 다른 식으로 정치를 하는 집단이 없으니 그 사람들이 나온 거다. 이 상태로만은 안 되는데, 운동권 조직처럼 진화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진화하는 상황에서 에너지를 끌고 갈 수 있도록 호흡을 같이 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

완군 : ‘놀이하는 인간들에게 습격’이 있는데, 놀이에 포인트를 찍을 수 있고 습격에 찍을 수도 있다. 놀이와 습격은 한 문장이지만 너무 멀리 있다. 습격을 해서 카운터 한 방 때렸는데 한 방에 안 넘어간다. 습격했으니 이 섬을 다 먹자 하면 못 논다. 놀 수가 없다. 또 노는 거니 한 번 지켜보고 두고 보자 하면 사라지는 거다. 어떤 입장이나 관점을 가질 거냐, 어떻게 해야 되냐, 이게 어려운 질문인데 한 방으로 끝나는 거 아니라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불가항력의 사건이 일어났지만 비폭력에 대한 획기적 성찰과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개선을 할 수 없는 거다. 집회 양상이나 참여 경험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체험하게 한 거다. 2002년 월드컵 핵심 구호가 대한민국이었다. 민족주의, 우린 할 수 있어. 황우석 때 디워 때도 마찬가지다. 이번 행동과 구호가 민주주의인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그런 강제력을 가질 거다. ‘어떤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작동 장치가 되지 않을까. 그런 낙관이 필요하지 않나.

노정태 : 운동권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지금 대중행동에 어떤 걸 강제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조직화된 사람들은 촛불시위의 방향성이 없다, 목적성이 없다 그런다. 여기서 어떻게 방향성 심어줄까 하면 답이 없다. 서로 엮여가면서 망 같은 것을 만들고, 학습장이 되었으면 싶다. 대중과 직접 대면하고 소통하고 기획을. ‘다함께’ 한테도 기회다. 대중들에게 이렇게 직접적인 욕을 먹어본 적도 없었던 거고.

김현진 : 운동하는 애들이 왜 여호와의 증인 같을까 깜짝 놀랐다.

완군 : 비폭력이나 민주주의를 행위하는 시절은 끝난 거 같다. 스티로폼 때 답답했는데, 다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다구리를 당할 행위를 하는 게 아닌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역풍을 받은 건데, 행위 자체로 이야기 할 때는 지난 듯. (정태 : 자기 성찰이 필요한데 운동권을 비판하면서 정작 스티로폼을 쌓아놓으니 깃발이 제일 먼저 올라가더군.) (현진 : 다들 혈기가 넘쳐서.) 연단 쌓는 거 새벽에 못 봤는데, 만약 거기서 태극기가 흔들리지 않고 ‘선영아모여라’ 깃발을 흔들었으면 해외토픽에 나왔을지 모른다. 국가주의 감성이 무서운 게 그렇다.

노정태 : 그런 거까지 국가주의 이야기할 건 아니고 어쨌든 상징성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고라가 욕을 먹어야 하는데, 아고라 깃발 올라간 걸 누가 바라겠나. 자기들이 비판하는 운동권과 똑같이 하려고 하는 게 지금 아고라다.

완군 : 문화예술인들은 9시에 퍼포먼스를 한다고 밧줄을 갔고왔더라. 밧줄을 갖고 왔으면 땡기든가 어쩌든가. 근데 밧줄 그냥 놓고 갔다. 내가 왜 놓고 가냐고 물어보니 그 판단을 시민 한테 맡긴다고 하고 그냥 가더라고.

한윤형 : 디시음식갤러리가 도시락 1,000개 갖다놓고 시민한테 먹을 거 맡기는 거하고 같은 이야기네.

노정태 : 스티로폼 출처도 그렇다. 준비자가 책임지고 앞장서서 당신과 상대한다는 운동권이 되어야지. 이글루스의 한 블로거가 동화면세점 앞에 쌓여있는 걸 갖다 놨다 하는데, 연석회의가 왜 그렇게 몸 사리는지 모르겠더라. 6월 10일은 조금만 더 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아쉬움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미류 : 올라가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었으면, 비장하게 깃발을 흔들 게 아니라 춤을 추거나 기타를 치거나 하며 싱겁게 만들어버렸으면 힘이 더 뻗어나가지 않았을까.

완군 : 언론이 쇠파이프가 나왔다며 운동권을 놓고 폭력/비폭력 구도를 만들었는데,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연단을 쌓는 것 자체가 폭력이 아니라 사람들은 운동권이 와서 행위를 하는 것 자체를 폭력으로 받아들인 거다. 그런 프레임이 있는 거다. 더 세심하게 기획 나올 거다. 몇 십만을 컨테이너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을 거다. 그 분노가 그걸 넘어가지 못한 이유는 사실 그런 구도에서 기획으로 돌파하는데 실패한 측면이 있는 거다. 상징적으로 비폭력으로 그 집회를 치렀다는 승리감 같은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관리되는 분노다.

노정태 : 왜 모욕을 안 느끼는지 놀라웠다. 사람들이 컨테이너 앞에서 격심한 모욕을 느껴야 하는데 평화가 찾아왔다 이런다. 이런 거는 두들겨 맞아야 할 모욕인데, 절대 모욕으로 느끼지 않았다.

김현진 : 화가 나서 망치 들고 부수고 싶었다. 정말 불가사의 하다. 그 앞에서 노래가 나와?

노정태 : 호주산 소처럼 방목하고 있는 거다.
덧붙임

유영주 님은 민중언론참세상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