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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길을 묻다

[인권오름-민중언론참세상 공동기획 좌담 (1)] -김현진, 노정태, 미류, 완군, 한윤형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장벽과 장벽을 넘기 위해 등장한 스티로폼은 2008년 6월 10일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컨테이너는 닭장차보다 통행을 막기 용이한 단순한 장애물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방식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민주주의 실천이 넘어야 할 험난한 과제로 인식되기도 했다.

촛불집회의 키워드는 ‘비폭력’, 촛불집회에서 ‘비폭력’은 때로는 어지간한 공권력도 한방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강력한 무기로, 때로는 민주주의와 정치 욕구를 가로막는 방어 기제로 작동하기도 했다. 하나의 단어에 이처럼 많은 현실을 함축적으로 담았던 예가 있을까. 더군다나 ‘비폭력’은 현실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진행형의 단어인지라 하나로 단정해 정의하기 어렵다. 당장 오늘 그리고 내일도 ‘비폭력’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또 다른 얼굴로 촛불시위 현장 곳곳을 누빌 것이기 때문이다.

6월 10일 밤 ‘민주주의는 장벽을 넘는다’는 의지로 시민과 함께 한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들은 컨테이너 앞에서 6월 10일의 ‘비폭력’과 조우했다. 예상치 못한 어색한 만남, 모두에게 생소하기 짝이 없는 긴장의 시공간을 연출했다. 그렇다면 이날 컨테이너 장벽을 넘은 걸까, 넘지 않은 걸까. 넘지 못한 걸까.

인권오름과 민중언론참세상은 이날 ‘컨테이너 - 촛불 - 스티로폼’으로 구성된 현장을 두고 뒷담화 자리를 가져보기로 했다.

좌담 패널로 미류(blog.jinbo.net/aumilieu. 인권오름 편집인) 님이 사회를 겸하고,
완군(blog.naver.com/ssamwan. 공공미디어연구소),
노정태(basil83.blogspot.com. FOR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한윤형(yhhan.tistory.com 블로거),
김현진(에세이스트) 님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좌담은 16일(월) 저녁 시간,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왼쪽부터 좌담 패널로 참석한 김현진, 한윤형, 노정태, 미류 님

▲ 왼쪽부터 좌담 패널로 참석한 김현진, 한윤형, 노정태, 미류 님


패널들은 주어진 주제에 특별한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서로 대립해서 논쟁을 벌일 일이 없었다. 다만 주어진 쟁점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했고, 재기발랄함과 깊이있는 안목이 잘 어울렸다고나 할까.

우선 당일 현장을 풀이했다.

완군 님은 6월 10일 현장에 있던 대중들이 “그 벽을 넘고 싶지 않은 거다. 정치적 행위로서 청와대로 가겠다고 했다면, 그 열기가 있었다면 과연 컨테이너 12개로 막을 수 있었겠나. 그 자리에 모인 대중들의 합의는 거길 끝내 넘고 싶어하지 않은 거 같다. 그래서 그걸 넘는 것은 폭력이라고 해버리고 선을 그은 거”라며, 폭/비폭 논쟁이 요점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현진 님 역시 폭/비폭이 쟁점이 아니라며 “깝치지 마라, 왜 나보다 먼저 깝치냐, 나대지 마라, 이런 거부감이 없지 않다. 확성녀나 봉고차가 그랬다. 저게 뭔데 먼저 나대냐 그런 거다. 누가 먼저 나서는 건 싫지만 자기가 나서서 큰 책임을 지는 것도 싫고 그런 거다. 사람들이 어정쩡하다. 기타치고 노는 건 좋은데, 맞는 건 싫고, 물대포는 차갑고”라며 대중의 생각을 읽었다.

노정태 님은 컨테이너 앞에 모인 대중에 대해 “왜 모욕을 안 느끼는지 놀라웠다. 사람들이 컨테이너 앞에서 격심한 모욕을 느껴야 하는데 평화가 찾아왔다 이런다. 이런 거는 두들겨 맞아야 할 모욕인데, 절대 모욕으로 느끼지 않았다”며 다소 불만 섞인 의견을 내놓았다.

‘직접민주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패널들은 가볍게 요리했다. 마치 대중들이 ‘비폭력’으로 닭장차를 휴짓조각으로 만든 것 같다고나 할까.

완군 님은 “비폭력이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적인 것들을 반영하는데, 거기서 심리적, 문화적 차이를 열외로 놓고 딱 직접민주주의나 행동 측면만으로 이야기하면 안 맞는 거지”라고 했다.

한윤형 님이 “그렇다고 혁명을 할 정국도 아니니 사람들한테 뭔가 요구하기도 그렇다. 제도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그래서 직접민주주의 이야기하는데, 근데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김현진 님이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고 맞장구를 쳤고, 노정태 님도 “꿈 속에 있는!”이라며 댓거리를 했다. 한윤형 님은 “평생의 이상형 같은, 누군지 모르겠고, 걔가 쌍꺼풀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련한...”이라며 말을 흐렸다.

패널들은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은 읽었지만,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접민주주의와 연결해 정의하는 것이 갖는 추상성은 거부했다.

미류 님은 “구체성의 정치라고 하면 내가 느끼는 불만들을 어떻게 이 흐름 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건데 잘 안 풀린다. 이런 게 한편으로는 소환제나 약간은 민주제 형식과 관련한 논의로 전환되는 갭 같은 것이 있는 거 같다. 그 부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라며 상사에 빠졌다.

김현진 님은 생활의 정치를 뭐라도 해야겠다며 진보신당에 가입했고, 구의원부터 어떻게 압력을 가하든가, 손에 잡히는 뭐든 해보고싶다고 했다.

한윤형 님은 “주민소환제도 애매한데 지금 하는 게 타당한 지는 잘 모르겠다. 오세훈이 이명박과 친하잖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겠지. 다른 방법이 없으니”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뭔가 바뀌어야 정상인데 선거도 없고 할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정태 님은 “시청자이자 소비자는 스스로 유권자로 생각하는데, 유권자로서의 정치적 소비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거다. 최장집 교수 이야기처럼 한국 대의제가 너무 대통령 집중제이고 위임민주주의인 건 맞지만 제도를 굴릴 수 있는 인간의 문제를 제도 자체로 화해서 어설프게 개헌 이야기로 가는 건 위험하다”며 제도가 아니라 정치 주체의 문제를 강조했다.

완군 님은 “87년 6월과의 비교는 좋은 방식은 아니다. 87년 6월은 시스템 문제, 즉 직선제가 있어서 직선제로 바꿀 수 있었던 거지만 지금은 그런 합의를 끌어낼 수도 없고 합의가 없다”고 말하고, “직접민주주의로 갈 거냐, 국민소환제냐, 대의민주주의냐 이야기하지만 이 에너지가 과연 형질 전환되는 에너지일까”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완군은 “지금 필요한 건 광장에 남는 기획”이라고 주장했다.

좌담 말미, 패널들은 운동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운동권을 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운동권도 함께 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노정태 님은 “대중의 기회라기보다 운동권의 기회다.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잘 관찰해서 향후 4년 동안 노조, 사회단체들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처음 패닉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말하고 “조직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적이 된다는 인식의 충격 기간이 있었는데, 이 정체성을 넘어가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윤형 님은 “흔히 정치적인 조직이라고 상상해왔던 조직들이 무능해진 상태에서 전혀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조직이라 할 수도 없는 커뮤니티가 튀어나왔다”며 그러나 “이 상태로만은 안 되는데, 운동권 조직처럼 진화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진화하는 상황에서 에너지를 끌고 갈 수 있도록 호흡을 같이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류 님은 “경계를 어떻게 허물 거냐도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비튼 방식처럼 여성이든 소수자든 혹은 노숙인이든 이 경계를 비틀고 광장에 함께 있는 게 중요할 듯하다”고 말했다.

완군 님은 “결국 어떤 정치적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거나 혹은 더 나가야 한다는 건 운동권의 생각”이라며, 대책회의가 20일 이후 정권 퇴진을 한다는 데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굉장히 수사적인 건데 지금 그런 수사적 레토릭을 구사할 판이 아닌데 자꾸 운동권 식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패널들은 풀이를 했지만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김현진 님은 이명박 대통령을 계속 성가시게 해야 한다는 책략을 이야기했다. 정치적 노선이나 도덕성 같은 걸로 공격해봤자 이스라엘 레위파인 이명박 한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거다. 대안 이야기를 하자면 늘상 정권 퇴진과 정당이나 제도 개선과 같은 고민으로 이어지곤 하는 관성에 스트레이트 한 방 날린 셈이다.
덧붙임

유영주 님은 민중언론 참세상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