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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내 말 좀 들어봐

‘광우병 정국’에 보내는 중딩의 쓴소리

[내 말 좀 들어봐] 난 너무 걱정되는데 주변 사람들은 무감각해

‘광우병. 보통 30개월 이상 된 소에게서 발견되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몸속에 들어오면 우리 몸에서 만드는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을 비정상적 프리온 단백질로 변형을 시킨다. 이 비정상적 단백질은 세포들에게 연쇄반응을 일으켜 뇌를 파괴시킨다.’

휴……. 저렇게 무서운 병에 걸린 소들을 우리나라에 들여온다니 정말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친 것 같다. 며칠 전에 고시 발표까지 하니까 ‘이제 우린 정말 죽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너무 걱정되는데 주변사람들은 무감각해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너무 걱정돼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난 원래 소고기 정말 좋아했었는데 소고기도 못 먹고 소로 만든 젤리, 라면, 그리고 온갖 소로 만든 음식들을 다 못 먹고 있다. 라면은 안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아서 몇 그릇 먹긴 했다. 그리고 학교 오면 자료도 뒤져보고 온갖 쇼를 다하는데, 정작 내 주변사람들(나는 강남에 살고 있다)은 너무 광우병에 대해서 무감각한 것 같다.

도대체 왜? 일 하느라 바빠서? 노느라 정신없어서?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일에 무관심해서? 많이 생각해 봤는데 내 생각엔 주변사람들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부모님들. 강남 엄마들, 참 무식하다! 오직 자식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공부뿐이다. 그 사람들 눈에는 자기 아들딸 내신, 학원, 공인 시험 점수뿐인 것 같다. 자기네들끼리 모여서도 자기 아들자랑, 학원 얘기 같은 것밖에 안한다. 자기 아이들이 커서 돈만 많이 벌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들, 전국이 비상사태든 말든 뭔 상관일까. 선생님들도 똑같다. 대충 진도만 빼는데 바쁘고 광우병에 관한 것은 하나도 말해주지 않는다. 청소년들도 공부하는 애들은 공부에만, 노는 애들은 놀기에만 바쁘다. 그 일이 자기 몸에 와 닿지 않아서인지 잘 헤아릴 줄 모른다.

내가 광우병 신자라고?

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소식을 학원 친구한테 처음 들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정말 충격을 먹었다. ‘정부가 드디어 미칠 대로 미쳤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무서워서 음식하나 제대로 못 먹는 나라? 그런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게다가 내가 만약에 광우병에 걸린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내가 광우병에 걸려서 가족들은 괴로워하는데 치매에 걸린 듯이 아무렇지도 않고, 자다 벌떡 일어나서 소리 지르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울거나 웃고, 나중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걷지도 못해 누워서 울다가 죽는 것을 상상하니까 정말 울컥했다. 그 친구랑은 학원 끝나고 새벽1시까지 광우병 얘기만 한 적도 있었다. “광우병이 나돌면 시골 촌구석으로 생필품 다 싸가지고 가서 난리가 끝날 때까지 숨어있자!”라는 터무니없는 말부터 “우리도 촛불 집회 나갈래?”라는 이야기까지.

얘기하는 것에만 그칠 수 없을 것 같아서 학교 급식에서 쇠고기가 나온 날, 이거 광우병 걸려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얘기를 줄줄 늘어놨더니 애들이 ‘광우병 신자’라면서 별 헛소리를 해댔다. 솔직히 우리 학교 애들은 개념이 없다. 강남 애들도 게임이랑, 텔레비전에만 관심 갖지 말고 지금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콧방귀만 뀌지 말고!

경찰도 연행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

촛불집회에 나가는 다른 학생들은 무슨 생각으로 나갈까? 그들은 생각을 많이 할 줄 아는 학생들일 것이다. 문제의식이 뚜렷한……. 촛불집회에 나가는 학부모들도 자기 아이 학교 급식, 군대 간 아들 급식이 걱정되어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나와 자기 가족만 광우병에 안 걸리면 된다는 논리가 아니라 지금 이 시위를 해서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에 불타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의감을 가진 사람은 경찰도, 연행도 무섭지 않다. 사람은 근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기 가치관이 한번 생기고 나면 평소엔 아무리 나약해 보여도 그때는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국민 말이 파리 앵앵 소리만도 못하나?

촛불집회 참가 인원을 보면 3만 명이 넘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물대포 쏘고 난리가 아니었나 보다. 사회책에서나 읽었던 5공화국 같은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이제는 광우병만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말을 지나가는 파리가 앵앵거리는 소리만도 못하게 여기는 정부를 응징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 같다.

요즘은 아예 정부가 대놓고 국민 말을 무시하니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이렇게 민심을 무시하면 독재정권 시대 때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싸워서 겨우 얻어낸 민주주의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우리의 목숨만 앗아갈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일궈내면서 희생당한 분들까지 죽이는 것이다. 이제 그만 시민들 앞에 버티고 앉아 있지만 말고 우리 시민들이 바라는 대로 해주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참, 시민들을 혼란시키는 불법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다 처벌하겠다느니 하는 소리나 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해 죽겠다. 하긴 민주화가 되고 나서 한 번도 시민의 센 압력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다시 예방접종을 하는 것도 적절한 시기일 듯하다.

광우병 잠복기간이 짧으면 5년, 길면 15년이라는데……. 10년 뒤에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대신에 ‘여러분, 광우병 조심하세요!’로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끄덕끄덕 맞장구]

현석 님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함성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청소년인가 봅니다. 광우병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고 있고,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 귀를 닫고 폭력으로 짓누르고 있는 정부가 저지르는 잘못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꿰뚫어 주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주변사람들이 더더욱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요. 물론 강남사람이라고 다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현석 님 글을 읽고 나니, 지금 거리에서 넘쳐나는 엄청난 함성을 만들어낸 첫 불씨를 현석 님과 같은 10대들이 지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릅니다. 지금 거리 집회의 중심이 10대가 아니고, 예전보다 참여하는 10대들의 숫자가 줄었다고도 하지만, 그 저항의 거리에 10대들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장관 고시가 있었던 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지요. 그 중에는 교복을 입은 10대 여학생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직접 만든 피켓을 나란히 들고 서 있었어요. 그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지요. “우리가 무섭지 않느냐”고. 현석 님 얘기처럼, 국민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당당히 저항의 촛불을 든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우리’는 현석 님과 같은 10대이기도 할 것입니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견디며 귀를 막고 있는 정부를 향해 안전한 삶과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이들 중에는 어린이도, 청소년들도 있으니까요. 그이들도 지금의 이 순간들을 똑똑히 목격하고 기억하면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을 순간을 벼르고 있을 테니까요. 현석 님의 글을 읽는 이 순간, 제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유입니다. [배경내]

덧붙임

현석 님은 강남에 살고 중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