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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폐지운동과 국제규범

[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⑥] 제5조 고문 금지 (2)


세계인권선언 제5조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고문폐지운동

1762년 ‘장 칼라스 사건’으로 프랑스는 발칵 뒤집혔다. 1762년은 루소가 “인간의 권리”라는 용어를 도입한 해이다. 칼라스라는 사람의 집안에서 어느 날 큰 아들이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당국은 자살이 아니라 아들의 개종을 막으려 한 살해라며 칼라스 가족을 체포해 갖은 고문을 가했고, 가장인 칼라스는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했다. 그런데 노구의 칼라스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당국이 원하는 실토를 하지 않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대표적인 사상가였던 볼테르는 부당하고 야만적인 재판과 형벌제도를 비난하는 수많은 글을 써댔고 칼라스가 처형된 지 3년이 지나 무죄와 복권 판결을 받아냈다. 칼라스 사건에 자극·고무된 볼테르의 저작들은 종교적 불관용에 대한 지적에서 출발하여 고문 반대로 발전해갔다.

또한 1764년 이태리의 세자르 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이란 역작을 내놓는다. 베카리아는 비인도적 형벌제도의 폐지를 사회계약론과 공리주의 관점에서 도출했다. 즉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처분 가능한 계약내용으로 제시할 리 없고, 자기보호본능에 위배되는 자백강요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잔혹한 형벌은 범죄예방에 오히려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다. 범죄와 형벌간의 적정한 균형을 설정하기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잔혹한 형벌과 사면은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군주의 특사는 강압적 형벌을 통해 지탱되는 폭정을 은폐하기 위한 가면이다. 따라서 잔혹한 형벌과 특사 사이를 왕복하기보다는 보다 관대한 형벌을 예외없이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근대형법의 토대가 되어, 공리성과 인도성의 조화가 달성될 수 있다고 봤다. 고문은 “강한 범죄자에게 무죄를 주고, 무고하지만 약한 사람을 유죄로 하는 확실한 방법”이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유효한 법률을 통하여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1787년 아메리카의 의사 벤쟈민 러쉬는 말한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범죄자라도 우리 친구들과 친척들의 영혼과 육체와 마찬가지의 물질로 구성된 영혼과 신체를 가졌다는 것을. 그들은 뼈 중의 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정부는 모든 형태의 사법적 고문을 금지하고, 1792년에는 길로틴(단두대)을 도입한다.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기억되지만, 단두대의 도입 목적은 사형을 단일하게 하고 가능한 한 고통 없이 집행 한다는 것이었다.

18세기 말 유럽을 휩쓴 인권운동의 결과로 18세기말 19세기 초에는 많은 점에서 향상이 있었다. 1874년 작가 빅토로 위고는 자랑스럽게 “고문은 존재를 멈추었다”고 선언했다. 불행히도 그런 성취는 오래가지 않아. 1·2차 대전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간이 잔인한 폭력에 호소할 준비가 돼있다는 걸 보였다.

고문에 대한 국제규범

독일의 나치체제에서 고문은 공포를 확산하는 수단이 됐다. 독일의 수용소만이 아니라 점령지의 다른 나라들에서 자행되는 대규모의 체계적인 고문은 당대의 규범이 됐다. 따라서 2차 대전 후에 고문에 대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인식은 광범위했다.

하지만 ‘고문 금지’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았다. 어떤 잔인한 행위들은 적절하게 정의하게 어렵기에 “잔인하고 통상적이지 않은 처벌”에 대한 규제, ‘인간의지에 반하는, 사람에 대한 의학적 또는 과학적 실험의 금지가 포함돼야 한다’는 제안 등이 있었다.

결국 세계인권선언 5조에서 채택된 것이 “고문이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이다.

선언을 이어받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7조는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특히 누구든지 자신의 자유로운 동의 없이 의학적 또는 과학적 실험을 받지 아니한다”이다. 이 조항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상사태시에도 절대로 위반해서는 안되는 몇 안되는 조항 중 하나라는 것이다. 즉, 고문금지는 절대적이고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유사한 조항이 유럽인권협약 3조, 미주인권협약 5조 2항, 아프리카 인간과 인민의 권리헌장 5조 등이다. 전쟁시에도 이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제네바 협약에서는 고문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인권위원회 1969년 결정은 “비인도적 처우”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보였다. ‘비인도적 처우’란 특정 상황에서 정신적 또는 신체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고의적으로 야기하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이다. ‘고문’이란 단어는 ‘비인도적 처우’를 묘사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데, 이는 정보나 자백의 취득 또는 처벌의 고통을 목적으로 하며, 일반적으로 비인도적 처우의 심화된 형태이다. ‘모욕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타인 앞에서 그 사람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거나 자신의 의지나 양심에 반해 행동하도록 몰아가는 것이다.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간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심각성의 정도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모욕적인 처우’는 다소 다른 특성의 개념이다. 처우를 모욕적으로 만드는 것은 피해자가 느끼는 굴욕감인데, 국제법으로 금지하려면 굴욕감이라는 것이 어떤 정도의 심각성을 가져야 한다.

관련된 문제들로는 구금된 자에 대한 처우(너무 혹독하거나 구금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와 추방의 문제(고문이나 사형에 처해질지도 모를 곳으로 추방하는 문제)가 있다.

유엔 총회는 아래와 같이 고문을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기준과 조치들을 채택했다.

* 1975년 ‘고문, 기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고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처한 모든 사람의 보호에 관한 선언’; 고문방지를 위해 공무원들을 지도‧훈련하며, 조사 방법을 심사하에 두며, 고문행위를 형사범죄화하고, 적절한 사건에서 조사와 기소를 진행하고 범죄자를 처벌할 것
* 1979년 ‘법집행공무원 행위규범’ 채택
* 1981년 고문피해자를 위한 자발적 기금(Voluntary Fund for Victims of Torture) 설립
* 1982년 ‘구금자를 고문과 기타 자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로부터 보호하는데 있어 의료요원, 특히 의사들의 역할에 관한 의료윤리원칙’ 채택
* 1984년 고문방지협약 채택
* 1985년 고문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임명
* 2002년 고문방지협약에 관한 선택의정서(2002년 12월 18일 채택, 2006년 6월 22일 발효, 2008년 1월 현재 당사국 34개국, 한국 미가입); 감옥 및 기타 구금시설에 대한 국제적 감시를 정한 의정서이다.

“그것(고문)을 받아들일 때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내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다.” (어느 고문 피해자의 말)

고문방지협약

고문방지협약 1조 1항은 아래와 같다.

이 협약의 목적상 ‘고문’이라 함은 공무원이나 그밖의 공무 수행자가 직접 또는 이러한 자의 교사·동의·묵인 아래, 어떤 개인이나 제3자로부터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가 실행하였거나 실행한 혐의가 있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를 협박·강요할 목적으로, 또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합법적 제재조치로부터 초래되거나, 이에 내재하거나 이에 부수되는 고통은 고문에 포함되지 아니한다.

고문방지협약의 주요소는 1) 고문방지를 위한 효과적 조치를 취할 의무, 고문을 심각한 형사 범죄로 할 것, 2) 고문 받을 위험이 있는 국가로의 사람의 추방이나 송환의 금지, 3) 고문범죄에 대해 보편적 관할권을 적용할 의무, 고문용의자가 당사국 영토에 오면 기소하거나 송환할 것, 4) 구금, 수사 등에 관련된 요원들의 훈련에 고문금지에 대한 교육과 정보를 포함할 의무, 5) 모든 의심되는 고문사건을 조사할 의무, 6) 고문 피해자에게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의 권리를 줄 의무, 7)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고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을 방지할 의무 등이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은 ‘보편적 관할권’ 문제와 ‘이행장치’에 관한 문제이다. 보편적 관할권을 적용하자는 것은 고문의 의심이 있는 사람이 제3국으로 달아남으로써 안전한 하늘을 찾을 수 없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이 이 원칙을 고문에 적용하는 것을 주저했다. 효과적인 ‘이행장치’에 대해서도 국제적 감시를 거부하고 국내문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여겼다. 이런 국가들의 반발로, 협약에 가입하는 국가들은 고문 진정과 조사 절차에 대한 조항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