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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내 말 좀 들어봐

[내 말 좀 들어봐] 낯선 자들의 방문

형사들이 간디학교를 헤집은 이유

마음이 편해지는 일요일, 밥을 먹으러 기숙사에서 학교로 내려오는 길이었어. 낯선 얼굴들이 파란색 상자를 손에 들고 그걸 캠코더로 찍으면서 교무실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어. 어림잡아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 누구지?

낯선 자들의 방문

가만히 보니 상자 겉에 ‘경찰’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더군. 사복형사구나. 그 중 하나가 담배를 입에 물고 피우고 있기에 학교 안에서는 금연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지. 그랬더니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도로 쪽으로 한 발자국만 옮긴 채 “이러면 되지”라며 담배를 계속 뻑뻑 피어대더군.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까지 일부러 나가 담배를 피우는데, 우리가 정해놓은 규칙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다니…. 쳇. 그나저나 사복형사들이 우리 학교 교무실엔 무슨 일이지?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일었어. 비리? 시험지 유출? 그런 건 아닐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 2월 24일, 내가 다니는 산청간디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야.

산청간디학교 홈페이지

▲ 산청간디학교 홈페이지


얼마 후에 진실을 알게 됐지. 우리 학교 최보경 역사 선생님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것이었어. 그날 보경쌤은 금강산에 계셨어. 내가 듣기론 경남도교육청에서 통일교육과 관련해서 보내준 거래. 그런데 바로 그날, 국가보안법이라는 뒷목 잡고 쓰러질 정도로 웃기는 법을 내세워 경찰이 학교를 뒤진 거야. 나중에 들으니 경찰에선 같은 날 선생님 집에도 찾아가 부당한 방법으로 압수수색을 했대. 통장을 함께 데려가 “통장입니다”라고 하면서 문을 열게 한 뒤 막무가내로 집안으로 치고 들어갔다는 거야. 그런 얍삽한 방법을 쓰다니 참….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 대부분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흥분했어. 어떤 아이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나중에 경찰이 가져갔다는 압수수색 물품 목록을 보게 됐는데 정말 폭소가 터지더군. 우리 수업에서 쓰는 책과 동영상 자료 등 별별 걸 다 가져갔더라고. 수행평가 자료는 물론이고 심지어 교육방송에서 방영되는 <지식채널 e> 시디까지. 그 바람에 우리 다음 수업에서 볼 영상과 음성 자료까지 보안수사대 형사들에게 죄다 빼앗겨버린 셈이야.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며칠이 흘러갔고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어. 보경쌤은 속으론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우리들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끔 평소처럼 수업을 진행하려고 애쓰고 계셔. 아직은 수사가 진행 중인 모양인지 아무 일도 없지만, 난 사실 굉장히 불안해. 혹시나 구속되시면 어쩌나. 유죄판결이 나면 어쩌나. 앞으로 이 수업을 못 듣게 되면 어쩌나. 아직 배우지 못한 게 너무나 많은데…….

처음 경험한 수업, 처음 알게 된 역사

난 지난해 보경쌤 수업을 처음 들었어. 보경쌤의 수업은 ‘역시 우리 학교다’, ‘간디스럽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수업 중 하나였어. 지금까지 받아왔던 역사 수업 중 최고였어. 중학교 때까지 받던 일방적이고 따분한 수업이 아니었거든.

선생님은 다양한 영상과 자료들을 준비해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셨어.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다양한 활동도 진행될 수 있게끔 애쓰셨고. 해방 직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군사독재시절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 주입식 교육 덕분에 이제껏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알게 되었고, 반공교육 때문에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북 사회도 이해하게 되었어.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함께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고. 정말 이제까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업이었어.

2004년 겨울,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에 함께했던 간디학교 학생들과 최보경 선생님  (출처: 간디학교)

▲ 2004년 겨울,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에 함께했던 간디학교 학생들과 최보경 선생님 (출처: 간디학교)


이런 분을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뭐다 하면서 괴롭히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런데도 그들이 보기에는 보경쌤이 빨간색으로 보이나봐. 하긴, 빨간 안경을 썼으니 그럴 수밖에.

이번 일로 깨닫게 된 것들

지금은 21세기야. 2008년이라고. 군사독재 시절도 해방 직후도 아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벌써 두 차례나 평화통일을 위한 정상회담까지 열렸는데 그건 그냥 쇼였나? 대통령이 평화통일을 말하면 좋은 거고, 교사가 통일교육을 하면 불온한 건가? 도교육청에서는 통일교육 잘하라고 북으로 보내주고 경찰에선 통일교육 한다고 압수수색하고….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게다가 이 일은 새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에 일어난 일이야. 마치 정권교체가 되었으니 이젠 우리 세상이 왔노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사람에겐 사상의 자유가 있고 교사에겐 자율권이 있고 학생에겐 교육받을 권리가 있어. 그런데 국가보안법 ‘덕분’에 난, 아니 우린 역사 선생님을 떠나보내게 될지도 몰라. 이건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교사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자유를 무시하는 짓이야. 죄 없는 사람 집과 학교를 뒤진 것도 모자라 보경쌤을 잡아가게 되면 우리 학생들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돼.

이번 일로 난 정말 큰 걸 깨달았어. 이 나라엔 헌법보다 위에 있는 무시무시한 법이 있다는 것. 어쩌면 이번 일로 대안교육이나 통일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무슨 피해를 입을지 몰라 눈치를 보게 되고 하고 싶은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국가보안법이 노린 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국가보안법은 막연하게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주변의 일이라는 것.

못된 국가보안법, 폐지되어 마땅한 법에 난,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을 거야. 이제 그만 좀 하시지?

[끄덕끄덕 맞장구]

무릎 사이에 이불 끼워놓고 뒹굴뒹굴, 잠에서 깨는 데 맘껏 여유를 부려도 좋을 일요일 아침. 일주일내 얼굴 마주칠 틈조차 없었던 식구들이 모처럼 속옷, 잠옷 바람으로 눈곱 떼며 밥상 앞에 모여앉아도 마냥 반갑기만 할 시간. 느닷없는 초인종 소리. 문을 열자마자 후다닥 밀고 들어와 집을 헤집어놓은 형사들의 발자국. 놀라 비명을 지른 할머니와 아이들. 2월 24일, 간디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계신 최보경 선생님 댁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비슷한 시각, 학교에도 형사들이 호송차량까지 끌고 떼 지어 나타나 교무실에서 온갖 자료를 압수해 갔다고 합니다. 이런 황망한 일을 겪은 가족들이나 간디학교 식구들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음을 졸이고 있을 사람은 최보경 선생님 본인이시겠지요.

최보경 선생님은 ‘테디 베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사람 좋은 인상에다 우리 역사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많은 자료를 발굴하고 문집 발간에도 힘쓰시는 분이라는 걸, 간디학교를 졸업하거나 현재 다니고 있는 이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어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이들의 한겨울 아스팔트 농성이 이어지던 지난 2004년 겨울, 진주에서 함양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서 이루어진 간디학교 학생들의 1인 시위 곁에도 최보경 선생님이 있었다더군요. 그런 분이 또다시 국가보안법이란 올가미에 엮여 생고생을 하게 되셨구나 생각하니 울컥 분노가 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집과 학교를 뒤지면서도 경남도경 보안수사대는 별다른 혐의를 제시하지 못했다지요. ‘일단 뒤지고 잡아들이고 나서 사건은 그 다음에 만들면 된다’는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수사 방식이 이번에도 되풀이된 셈입니다.

곰곰 돌이켜 보니 국가보안법이란 녀석이 전교조와 통일교육에 힘써온 교사들을 옭아매어 곤욕을 치르게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비판정신과 양심을 솎아내려고 만들어낸 억지 사건들이 줄줄이 사탕이었던 게지요. 전교조가 만들어지기 전인 전두환 정권 시절, 아람이라는 아이의 백일잔치에 모였던 이들을 잡아들였던 아람회 사건이나, 다섯 명의 교사가 학교 뒷산 소나무 아래 모였다고 해서 간첩으로 몰아세운 오송회 사건은 웃지 못 할 대표적 조작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전교조 창립 이후에도 빨갱이 교사라는 낙인은 단골 메뉴가 되었지요. 2000년대 들어서도 이화외고 박정훈 선생님을 반국가단체 가입 혐의로 구속시켜놓고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집에서 건진 유인물 하나로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를 물어 기소한 적이 있었지요. 최근에도 이런 일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과 올 1월에도 지부 통일위원장 역할을 맡았던 교사 2명이 연달아 구속되었습니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으로 교사들을 줄줄이 엮는 데는 교사들을 길들이면서 학생들의 영혼과 양심까지 길들이겠다는 노림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참에 대안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통제 명분까지 챙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요. ‘빨갱이 교사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자, 전교조를 몰아내자!’ 이런 마녀사냥이 빗발치는 교실에서 교사들이 다른 교육을 꿈꾸기 힘들 겁니다. 간디학교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노래 <꿈꾸지 않으면>에는 이런 노랫말이 나오지요.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교사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알아서 기게 만들면서 과연 희망을 노래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국가보안법으로 비판정신과 대안 교육을 실천하는 이들을 더 이상 옥죄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배경내]
덧붙임

찬욱 님은 간디학교 2학년에 재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