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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전쟁기지 기공식과 인민의 자기결정권

지난 13일 대추리 평화공원 위로 요란한 폭죽이 터졌다. 김장수 국방장관,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관련자 등 그간 전쟁기지를 만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던 이들이 모여 기어이 평택미군기지확장 기공식을 감행했다. 기공식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던 대추리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전쟁기지의 첫 삽을 요란하게 알리는 재앙의 폭죽을 바라보며 또 한번 분노의 함성을 질러야 했다. 정부는 100년 가는 기지의 첫 삽을 떴다며 자찬하고 있지만 되돌아올 부메랑은 아직 모르는 듯하다. 설사 기지가 완공된다 한들 이는 결코 ‘치적’이 아니며 오히려 100년 동안 아니 그 이후에도 국민들은 전쟁기지에 대한 원망과 비판으로 참여정부를 기억할 것이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은 한반도에 무르익고 있는 평화체제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한미 두 정부는 기공식을 통해 ‘한미동맹’을 다시 한번 강조했지만 ‘한미동맹’이 과연 한반도 민중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미동맹이 과거에는 북한의 전쟁위협을 빌미로 한반도 전 민중의 인권과 자유를 옥죄어왔던 ‘냉전의 쇠사슬’이었다면, 미래에는 전 세계 분쟁과 전쟁에 언제든지 개입하고 필요에 따라서 전쟁도 불사하는 ‘전쟁동업자’ 관계에 불과하다. 기공식에서 김 장관은 "급변하는 국제안보 환경 속에서 미래전 양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보다 성숙된 동맹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어 주한미군사령관은 "앞으로 평택은 주한미군의 주 운영 기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택 미군기지는 북에 대한 전쟁억지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전에 대비하는 첨단 군사 기지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미국의 군사패권에 대한 의지는 한미 최고위급 군사협의기구인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대테러전에 대한 한국군의 지속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범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양국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킬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한다. 이는 평택 미군기지가 완성되는 2012년이 되면 평택이 미국의 침략전쟁의 발판이자 전진기지가 된다는 의미이다. 김선일 씨 살해 등 대테러전 참여가 국민의 생명까지 앗아가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 침략기지까지 갖다 바치는 참여정부의 충성심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평택 미군기지 기공식이 있기까지 국민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전이 확정될 때도, 땅을 빼앗길 때도, 기지가 어떤 용도로 만들어지고 비용이 얼마만큼 드는지, 모든 결정과 절차에 국민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한미 양국 고위급 당사자들’이 밀실에서 합의한 내용을 속수무책 듣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은 국민의 정당한 참여를 배제하고 공권력으로 밀어붙인 대표적인 국방정책이며, 이는 ‘안보’를 빌미삼아 인민의 자기결정권을 짓밟는 짓이다. 이 때 군대는 국민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점령군에 가깝다. 주민과 활동가들의 접근을 병력으로 차단하고 치러진 기공식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기공식은 그래서 ‘안보의 기틀’이 아니라 ‘점령군의 향연’에 다름아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이번 기공식은 한반도 평화에 전쟁의 재를 뿌렸다.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좌우하는 국방정책이 ‘고위급들’의 손에 달려 있을 때 우리의 권리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전략적유연성 합의와 파병에서 보았듯이 국회는 인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역할보다 거대 권력 미국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군사·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민중의 개입과 통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서 평화적 생존권을 획득하기 위한 적극적 참여와 기획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이것이 지금 한반도 민중들에게 필요한 ‘인민의 자기결정권’이다. 이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미 고위급 관료들의 손에서 좌지우지되는 평화적 생존권을 획득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권리’이다. 모임을 결성하고 집회를 통해 우리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 보장되고, 인민의 주장이 정책으로 확립될 때 군사·외교·안보의 철옹성에 갇혀 있는 평화적 생존권은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인민의 자기결정권을 획득하는 것, 그것은 평화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지금 우리가 되찾아야 할 정치적 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