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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왁자지껄 인권극장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인권침해의 사회적인, 구조적인 원인을 이해하면 좋겠어.”
제1회 청소년인권학교 ‘와삭와삭 인권서리’를 준비하면서 나왔던 이야기다. 사실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좀 논다는 ‘활동가’들은 청소년인권 침해의 구조적 원인은 뭐고, 교육여건이나 근대적 공교육과 가정이, 입시경쟁이 이렇고 저렇고 술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학교나 가정에서 직접 인권침해에 직면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그런 구조적 원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당장 내 인권을 짓밟는 가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교사들과 부모들에 대한 분노가 먼저이기 마련이다. 이런 분노는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지만 청소년들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다른 사회, 다른 세상에 대한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생활 여기저기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인권 문제들을 연관지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권침해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이해가 함께 되어야 한다. 과욕일지도 모르는 이런 목표를 갖고 ‘인권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날개 달기 : 미끼는 재밌어야 해!

무조건 주제를 던져주고 고민해 보라는 것이 아니라 꿈틀이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미끼’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야심차게 준비했다. 교장이 착하게 해보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개혁가의 죽음」이라는 만화를 보여주고, 돋움이 2명이 앞에서 이런 상황을 재현했다. 그리고 나서 정말 “인권침해가 개인의 성격이나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제 지난해 체벌 200대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대구시교육청에서는 교사들 정신감정을 하겠다며 청소년 인권침해를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들이 이런 인권침해 속에 숨어 있을까. 돋움이들이 미리 준비한 ‘인권극장’을 우선 보여준 후 모둠별로 주어진 상황에서 원인들을 찾아 상황극으로 만들도록 했다. 먼저 망가져야 그 뒤에 더 잘 망가져주는 법!

“자율학습 빠지고 싶으면 부모님 불러와! 그런 건 니네 부모님이랑 얘기해보고 정해야지.”, “아니 이 선생! 이 선생네 반은 왜 야자를 10명밖에 안 해? 안 되겠어, 이거?”, “야 차라리 야자하는 게 낫지. 학원에서는 한눈도 못 팔고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어휴 죽겠다.”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는 교사, 학교에 밤 늦게까지 남지 않으면 학원을 가야 하는 사회 분위기, 학교 방침대로 하지 않았다고 교무회의에서 깨지는 교사 등 ‘나쁜’ 교사 뒤로 어떤 사회적인 압력과 구조가 버티고 서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글쎄,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

더불어 날개짓 1 : 왁자지껄, 몰입 시간

돋움이들의 열연이 끝난 후 각 모둠별로 두발 등 용의복장, 휴대전화, 연애(이성애+동성애)를 주제로 인권극장을 꾸며보도록 했다. 정신없이 각자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어떤 캐릭터를 만드는 게 좋을지 이야기하고 대본을 만들다보니 시간이 뚝딱 흘러가버렸다. 제대로 연습도 못해보고 다가온 실연 시간.



교문지도에서 걸려 벌을 받은 한 꿈틀이는 친구랑 학생주임 교사 ‘뒷담화’를 하다 걸려 또 뺨을 맞는다. 울그락 불그락!
학생 : 도저히 못 참겠어. (드디어 결심한 꿈틀이, 교육청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우리 학교 학주가 뺨도 때리고 머리 길다고 교문에서 굴리고 장난 아니에요. 학교 다니기가 싫고 죽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ㅠㅠ
교육청 : 그 학교 누구누구라는 학생이 교육청 게시판에 글을 올렸더라구요. 네, 뭐 참 학생들 지도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신데 저희도 게시판에 올라온 거를 확인을 해야 해서요. 아 네, 그냥 혼만 좀 내신 거라구요. 물론 오해가 있었겠죠. 네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러나 돌아오는 건 교사의 체벌뿐이다. 풀이 죽어 집으로 오니
엄마 : 아니 애가 대체 학교에서 뭘 하고 다니길래 집에 전화가 와서 징계를 준다고 그래? 조용히 살아, 조용히 좀!
학생 : OTL(좌절)


청소년 동성애자가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어떤 식으로 차별을 받고 상처를 겪게 되는지 인권극장에 담아냈다.

친구들 : 쟤네들 변태인가봐!(뒤에서 쑥덕쑥덕. 여학생 둘이 서로 키스를 하자 친구들은 심지어 깡통을 던진다.)
당당하게 자기가 동성과 사귀고 있음을 밝히고 싶은 꿈틀이가 엄마에게 고백을 한다.
동성애자 청소년 : 엄마, 나 지혜랑 사귀고 있어.
엄마 : 응, 그래. 지혜랑 너랑 친구잖아?
동성애자 청소년 : 아니 나 지혜랑 사귀고 있다니깐.
엄마 : 어, 그래. 둘이 친하게 지내지?
동성애자 청소년 : 그러니까… 그냥 친구로가 아니라…
엄마 : 친구가 아니면 뭐? 친한 친구? 베프(베스트 프랜드)?
동성애자 청소년 : 친구가 아니라 서로 사랑한다구.
엄마 : 뭐?!(따라라단 다단 다단 다단, 따라라단 다단 다단 단-인간극장 배경음악)
너, 빨리, 지금 당장, 얼른 그만둬. 니가 레즈비언, 응 변태라는 소문이 나봐. 엄마 친구들, 너희 아빠 직장에서, 사람들이 대체 무슨 소릴 하겠니.

꿈틀이들은 인권서리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인권극장’을 꼽았다. 평소에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 자신의 이야기를 표출하는 기회 자체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날개짓 2 : 흔들흔들 위태위태

분명 인권극장이 순탄하게 진행된 건 아니었다. 초등학생에게 두발 등 용의복장에 대한 문제는 현실로 여겨지지 않거나 동성애를 주제로 한 모둠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청소년이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히려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서 모둠을 구성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인권교육을 할 때, 상황극을 통해 꿈틀이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모의로 실천해봄으로써 인권문제를 재해석하고 인권을 주장하는 것을 연습한다. 거기에 더해서 ‘인권극장’에서는 인권침해를 둘러싼 전반적인 사회 구조까지 다루려고 했다. 이번 인권극장에서 이런 전반적인 목표가 잘 이뤄지지는 않았다. 인권침해 상황을 재현하기는 했으나 이에 저항하여 인권을 주장하는 부분의 필요성을 간과했으며, 특히 모둠별로 다룬 인권극장에서는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은 생생하게 담아냈지만 입시경쟁체제나 교육여건, 자본과 국가와 언론의 압력 등 인권침해를 둘러싼 사회적인 관계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에 내용을 만들고 연습까지 해서 하려다보니 발생한 부실 공사일까? 아니면 상황극을 만드는 데 함께했던 진행자들의 역량이 부족해서였을까?

머리를 맞대어 : 욕심은 적당히

하지만 더 큰 깨달음은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돋움이 설정한 목표, 돋움의 욕심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권교육은 그나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조차 잃고 표류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걸 목표로 세우자니 얼마 없는 교육의 기회가 아깝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니, 참 갈등되는 문제다. 다음에는 좀 더 충분한 시간과, 많은 교육기회를 마련하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인권극장’이 되었으면….
덧붙임

윤종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