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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인권으로 그린 학교 지도

군림하는 학교? 인권으로 물든 학교!

요즘은 환경이 많이 파괴되어 가을이 없다고들 한다. 한국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하지만 난 이번 영주 청소년 인권교육을 통해서 두 가지의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는 소백산의 붉게 물든 경치,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그들이 생각하는 인권에서 무르익어가고 있는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날개 달기 - 자기 이야기로부터 출발하기

지난달 27일 영주시청소년위원회가 주최한 청소년인권학교에 인권교육을 다녀왔다. 24명의 꿈틀이들이 오글오글 모여서 우리를 맞이하며 밝게 웃는다. “안녕하세요? 오늘 인권교육을 함께할 쌤통이라고 해요” 나도 허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보통 청소년 인권교육을 가면 우왕좌왕, 난리 법석에 자기들끼리 수다 떠느라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웬 걸? 일제히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꿈틀이들이 생각하는 인권이란 뭘까? 오늘은 어떤 재미난 이야기로 이들과 인권을 이야기할까?’ 갑자기 신나기 시작했다.

인권교육을 준비할 때는 항상 대상에 대한 이해와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한다. 인권교육이 처음인지, 아동·청소년인지, 교사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누구인지. 그래야 꿈틀이들의 경험과 생각에서 출발해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럴 때 꿈틀이들도 인권이 책에서만 있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인권을 붉게 물들이기로 했다.

더불어 날개짓 - 사각형 학교를 인권으로 물들여봐

대부분의 학교 교육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청소년들은 ‘교육’하면 으레 수업 시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며 인권‘교육’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편견을 한 방에 날려줄 수 있는 것(다들 눈치 챘겠지만), 바로 ‘몸풀기 맘열기’다. 모둠별로 꿈틀이들이 비닐의 사방을 잡고 넓게 펼치면 그 위에 물감을 탄 물을 붓고 비닐 아래에 꿈틀이 한 명이 들어간다. 비닐을 잡은 꿈틀이들은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잘 조절하며 아래에 있는 꿈틀이가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움직인다. 다양한 물의 모양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험을 통해 물 형태의 다양성만큼이나 사람도 모두 다양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꿈틀이들과 열띤 토론을 나눌 수 있었던 프로그램은 바로 ‘인권 지도 그리기’였다. 우선 모둠별로 학교의 풍경을 큰 종이에 그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의 상황들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그 중에서 가장 의견이 많이 나온 인권 상황을 한 컷의 사진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둠별로 조잘조잘 그동안 억울하고, 답답했던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 풀어 놓는다. 사각형 학교 안에는 꿈틀이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인권침해 이야기들이 한 가득 찼다.





“우리반 담탱이는 맞아야 정신 차린다는 말을 자주해. 그것도 쓰자”, “대학가면 사람 된다. 왕 짜증”, “왜 검정 코트는 되고, 빨간 코트는 안돼요”, “입시가 우리들의 목을 졸라요”, “'교칙 어기면 맞는다', '니가 뭘 알아', 그런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인권이 뭔지 설명하지 않아도 꿈틀이들은 자신들의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인권을 족집게처럼 잘 집어낸다. 교사의 권위적인 태도, 체벌이나 따돌림 등 학교폭력, 두발 등 복장단속, 사생활 침해, 입시 등 꿈틀이들을 억누르고 있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꿈틀이들은 교사의 체벌을 한 컷의 사진으로 가장 많이 표현했다. “왜 학생을 때리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 해주지 않는 게 너무 화가 나요”, “학교에서는 학생이 중심이 아니라 쌤이 왕이예요~! 다 쌤 맘대로 하고, 쌤이 기분 안 좋으면 그날은 정말 초상집 분위기죠. 그래서 반장이 담임 기분 안 좋은 날은 미리 알려주고 그래요.” 학생 위에 군림하려는 학교 때문에 꿈틀이들은 자신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꿈틀이들은 진정으로 자신들이 존중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꿈틀이들이 인권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지만 교사들 또한 학생의 인권을 지켜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를 맞대어 - 쉬운 읽을거리 어디 없나…

인권교육을 마치려고 할 때 한 꿈틀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그런데 왜 인권이 뭔지 정의를 내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인권교육을 하다보면 A의 문제는 뭐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까지 답으로 제시해 주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 아마도 대부분의 교육이 답을 찾는 과정보다는 그저 답만을 제시해주고 지적해주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인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권이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에 대해 교육받고, 계속 인권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듯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렇겠지만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다 보니 인권교육을 접할 기회가 적기도 하다. 이럴 때 좀 품을 들여야겠지만 ‘인권의 길잡이’(가칭)와 같이 인권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책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아쉽다. 그러면서 준비해 가지 못한 미안함이 들기도 한다.

어느 집단보다도 청소년들과 인권교육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솔직히 내놓고 고민하는 자세가 주는 힘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들과의 교육은 언제든 반갑고 즐겁다.
덧붙임

◎ 쌤통 님은 경기복지시민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