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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민주주의 가로 막는 집회·시위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극장 앞에서 공사대금을 지불하라며 시위를 하고 있는 노동자, 붐비는 거리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사람들, 광장에서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며 집회를 여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는 소음과 경찰의 질서유지 방송에 묻힌다. 까치발을 서도 뺑뺑 둘러쳐진 전경 버스 안쪽에 갇혀 있는 그들의 모습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에이! 왜 길을 막고 난리야!’ 때마침 경찰은 “길을 막고 서 있는 저들이 당신의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고 ‘시위’를 한다. ‘데모 못하게 해야지!’ 한순간, 집회·시위는 교통 혼잡의 모든 원인이 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도심 집회 불허’ 주장이 바로 이런 꼴이다. 지난 7일 경찰청이 교통 혼잡이 예상되는 대규모 도심 집회를 불허한다고 발표한 이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는 불허되었다. 지난 8일에는 전국빈민대회를 진행하던 중 교통체증에 불만을 품은 운전자가 집회 참가자를 차로 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교통 혼잡의 주범으로서 집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난은 극대화되었다. ‘폭력 집회’ 논쟁이 사라지자 ‘교통체증 집회’ 논쟁이 또다시 등장했다. 경찰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집회·시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교나 가정에서의 교육 속에서 집회·시위는 과격하고 불순한 ‘골칫거리’일 뿐이다. 경찰은 끊임없이 집회·시위에 대한 경계심을 조장하고, 언론은 이에 장단을 맞추어 부추긴다. 집회·시위에서 터져 나오는 ‘주장’이 아니라 집회·시위의 양상과 관련된 문제만 항상 부각되는 모습은 집회·시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눈높이를 확인하게 한다. 전국빈민대회에서 발생한 운전자와 집회 참가자 사이에서의 충돌은 집회·시위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통념의 결과다. 사회 권력층과 언론이 집회·시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는 사이, 사회적 약자들은 분열되고 서로 충돌한다. 이는 이미 그리 낯선 시나리오가 아니다.

경찰과 사법 권력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옭죄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음규제, 법원 앞 100미터 이내 집회금지, 서울 도심 주요도로 집회금지 등 입법과 사법 권력은 전방위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 심지어 집회·시위 때 경찰의 채증을 불편하게 하는 마스크와 같은 ‘시위용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어처구니없는 개정 법안이 제출돼 있는 상황이다. 최근 교통 혼잡을 이유로 한 ‘대규모 도심 집회 금지’ 역시 공권력의 일관된 집회·시위 제한 조치이다. 경찰이 ‘허가’한 장소에서 경찰이 ‘허용’하는 복장으로 경찰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집회·시위를 하는 것이 ‘집회·시위의 자유’인가.

집회·시위는 기본적 권리다. 미뤄두었다가 가능할 때 보장해주고, 때때로 금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가 최후의 수단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민중적 방식이 바로 집회·시위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시위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요소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의 소통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는 가치이다. 다소 시끄럽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다양성과 배려·연대의 정신 속에서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