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기고] 폴리스라인을 걷어라!

"평택 시위, 진압봉도 죽창도 없었다."<한겨레>, "無충돌, 有평화"<문화방송>(MBC), "평화시위 첫발"<서울방송>(SBS)…… 지난 2월 13일 평택에서 진행된 3차 평화대행진을 보도한 언론의 헤드라인들이다. 이날 평화대행진의 의미와 내용은 간데없고, 평화 시위 이야기만 나온다. 이들이 말하는 '평화시위'의 내용은 경찰이 전경을 전진배치하지 않고 폴리스라인을 쳐서 시위대를 '인도'했고, 시위대는 '질서정연'하게 '협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경찰이 무장한 전경을 전진배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집회 행사장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대규모의 경찰 병력이 차량 일제 검문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집회 참가자들은 상당히 위축감을 느꼈음을 토로했다. 과연 이날 집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일제검문을 실시할 필요가 있었을 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시위대를 '인도'해서 시위대가 질서정연하게 '협력'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평화적인 행진은 주최 측의 애초 행사 기획이 들녘에서 대보름맞이 달집태우기, 연날리기 등의 행사를 통해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강제토지수용 저지, 한반도 평화 실현' 등의 요구를 알리기 위한 목적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지 경찰의 대응 방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도 "폴리스라인을 왜 쳤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3000여명이나 모인 집회가 폭력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잘 관리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생색을 내며 자신들이 사업으로 추진하는 폴리스라인의 효과를 선전하기에 바빴고, 언론 역시도 마치 이 시위가 무슨 평화시위의 모범인 양 기사를 내 놓았다. 한껏 고무된 경찰은 이후 폴리스라인 제도를 강화해서 최대한 전경은 줄이되 폴리스라인을 넘어올 시에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번 냉철하게 뒤돌아서서 우리의 시민·정치적 권리인 자유로운 집회의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이러한 권리가 그저 '공권력이 허락해준 한 평 땅 안에서 그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질서정연하게 시위할 권리'였던가? 아니다. 집회와 시위의 권리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외치고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행동의 권리가 아닌가? 경찰의 통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시위'는 이러한 자유로운 시위의 권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이런 식의 '평화시위'는 사실상의 '시위통제'이며, 결국 시민들의 민주적인 정치적 역량을 잃게 만든다.

'폭력시위'란 '폭력적인 시위대'가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정치적 역량을 잃어버리는 시민들이 어쩔 수 없이 벌이는 마지막 선택이다. △야간집회 금지 △80DB이상 소음 규제 △전국주요도로에서 시위 금지 등 웬만한 시위는 다 금지시킬 수 있을 정도로 '통제'만을 근간으로 하는 집시법을 만들어놓고, 여기에서 조금만 벗어날라치면 무조건 무장경찰을 동원해 진압을 시도함으로써 결국 폭력이 벌어지도록 유도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 그간의 정부와 경찰의 행태였다. 통제가 오히려 폭력을 조장했던 것이다. 아무리 무장경찰 대신 폴리스라인을 도입한다 해도 그것은 마치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얼굴만 바꾸었던 일제의 식민통치처럼 '통제주의'라는 내용은 전혀 바뀌지 않은 가면 쓰기에 불과한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이 정말로 민주공화국의 경찰이라면 집회·시위에 대한 통제주의를 포기해야 한다.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시위를 할 것인지는 시민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할 우선적인 권리 역시 그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다른 시민들에게 있는 것이지 경찰과 정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과도한 통제는 이러한 시민들의 판단의 권리를 빼앗는 행위이다. 우리 시민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공권력이 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나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한 민주주의는 자라날 수 없다. 민주주의 하에서 공권력의 개입은 최후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현행 집시법과 폴리스라인에 반대한다. 지금 당장, 폴리스라인을 걷어라!
덧붙임

김강기명 님은 인권단체 경찰대응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