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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평택 강제철거와 함께 무너질 평화

대추리, 도두리에 강제철거가 임박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달 13일 경 정부는 이제까지 벼려왔던 칼을 뽑아들 예정이라고 한다. 주민들과 마찰을 줄이고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사실 궁색한 둘러댐에 불과했다. 주민 대표를 잡아 가두고 진행한 대화란 주민 개개인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뿐, 주민들이 요구한 ‘구속자 석방’과 ‘정부의 사과’에는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김지태 이장의 보석마저 거절해 버린 재판부 뒤에는 ‘미군기지 이전 확장’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의지가 도사리고 있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정부는 주민의 가슴을 내리쳐 얻어낸 폐허더미를 미국에게 진상할 선물꾸러미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5월 4일 대추초교를 무너뜨린 후 정부는 주민들을 말려 죽이려는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멀쩡한 논밭을 철조망으로 둘러쳐 ‘군사시설’이라 정하더니 마을 입구에 이중 삼중의 검문소를 설치해 통행의 자유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내쫓는 것은 다반사며 주민들마저 등하교, 출퇴근길에 수십 번도 넘는 검문으로 녹초를 만들곤 한다. 수시로 들락거리는 국방부 직원, 용역업체는 주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킨다. 이는 인간적 주거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짓이며 국가권력을 남용하는 폭력이다. 주민과의 협의는커녕 ‘사람답게 살고 싶거든 이 땅을 떠나라’는 협박을 일상화해왔다.

정부는 이번 철거가 ‘빈 집’을 대상으로 할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빈 집을 철거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닌가? 비어 있는 집은 마을 안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그 가운데는 오랫동안 주민과 함께 해 온 평택지킴이들의 집도 있다. 대추초교의 철거가 주민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외상을 안겨준 것을 떠올린다면 이번 강제철거는 그와 버금가는 충격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마을을 파괴하는 것은 마을공동체와 함께 집이 담고 있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짓이다. 철조망과 검문소에 갇힌 마을에 을씨년스럽게 쌓여 있는 폐허더미는 마치 대기하고 있는 집달관처럼 주민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안길 것이다. 정부의 사업이 아무리 공익에 준한다 할 지라도 이와 같이 공포를 조성해 주민을 쫓아내는 것은 국제인권기준이 명백히 금하고 있는 인권침해이다. 하물며 전쟁기지 확장에 반대하며 끝까지 남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에게 이같은 공포작전을 감행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국가폭력이 될 것이다.

대추리, 도두리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70대 노인부터 갓난아이, 농부와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집을 보금자리 삼아 아침을 맞고 저녁을 마무리한다. 정부가 지난 5월 ‘황새울의 여명’이라는 끔찍한 군사작전으로 이들의 삶터를 잔인하게 할퀴고 간 것도 모자라 전혀 필요치도 않고 서두를 필요도 없는 강제철거를 위해 또다시 굴착기의 날을 세워서는 안된다. 정부는 공포를 조장해 사람들을 몰아낼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고 용산 미군기지이전협정의 재협상을 추진하여 평화적 생존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잘못된 정책, 일방적인 행정 집행 때문에 빚어진 모든 잘못을 사과하고 대추리, 도두리를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돌려주라. 그것만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