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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 우리 좀 이해해 달라

-라파즈 한라 시멘트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최철규 씨-

<편집자주> [외침]은 한국사회의 인권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공 없이 그대로 담는 기획이다.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은 글쓰기 등을 통해 자기 얘기를 남기지만 인권현장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침’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


<수십년 만의 폭우가 몰아치던 날, 서울 강남의 아셈타워를 찾았다.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 한라 시멘트 하청업체(우진)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바로 위장폐업의 철퇴를 맞은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백일 가까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화학섬유노조 ‘우진산업지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최철규 씨를 만나봤다.>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라파즈 한라 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 <출처; 레이버투데이><br />

▲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라파즈 한라 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 <출처; 레이버투데이>

2004년 1월에 라파즈 한라 하청업체인 우진산업에 들어와서 일을 했다. 입사를 할 때는 진공청소차라고 라파즈 한라 내에 분진이나 시멘트 가루 청소하는 차가 있는데, 그걸 운전하러 들어갔다. 실질적으로 사장이나 소장이나 처음에 면담할 때는 임금문제에 대해서는 책정을 안 해주는 상황이었고 “일을 하게 되면 최소한 150, 170(만원)은 가져갈 수 있다. 노력만 하면은 가져갈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해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그런데 과다근무가 많아서 8시에 출근해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까 그 다음날 12시에 퇴근하든가, 아니면 32시간 계속 일을 해서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노사협의회에서도 얘기했고 조정해달라고 했는데 사장님은 앞으로 개선하면 되고 지금 실정이 회사가 많이 바쁘고 어려우니까 현 상황에서 유지를 해야 한다, 만일 힘들다고 하면 대체인력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6개월 되고 7개월이 되어도 개선이 안되었다.

노조설립 안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가 나 3~4개월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근무에 복귀했을 때에는 또다시 다치면 회사에 마이너스가 되니까 다른일을 하라고 해서 노면청소차를 시작했다. 그런데 따로 각서를 써야 했다. ‘일을 하다가 다치게 되거나 불상사가 생겼을 때 회사는 책임을 못 진다’는 각서를 써야 됐다. 각서를 쓰고 업무복귀를 해서 노면청소차를 했는데…거기도 모두가 자격증이 3~4개 되니까 노면청소차 업무 끝나고 가려 하면 “네가 덤프 자격증이나 용접자격증이나 있으니까 연장근무 좀 해라, 저쪽에 가서 정비 좀 해라”라며 일을 시켰다.…들어올 때는 과로나 불상사에 대해 회사가 책임 못 진다는 각서까지 쓰고 노면청소를 하는 것인데 과다근무를 하는 거는 똑같은 거다. 하던 일을 계속하는 과다근무도 아니고 해당 업무가 끝나고 나서 다른 업무를 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직원들 실정이 비슷했다. 그래서 그런 실정을 바꿔보기 위해서 노사협의회가 있으니까 반장, 소장 만나서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게 노사협의회 자체는 법적 근거도 없고 사장이 말로만 운영되는 것이라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거다. 업무조정, 과다업무 시간조정, 대체인력 문제, 업무분담 등과 같은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수차례 얘기를 했는데도 안 들어주니까 어쩔 수 없이 2006년 3월 7일, 26명의 직원이 모여서 이래서는 안된다, 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그 땐 임금도 시급 1350원, 최저임금 1300원에서 50원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더 많아봤자 250원, 350원을 더 받고 있었다. 투표를 해서 한 명의 반대도 없이 3월 7일 노조를 설립했다.

강원도에 있는 라파즈 한라 시멘트 공장<br />

▲ 강원도에 있는 라파즈 한라 시멘트 공장

이런 움직임이 사장 귀에 들어갔다. 사장이 불러서 “노동조합을 왜 만들려고 하느냐”고 물어서 “노사협의회에서 업무개선, 임금이랑 얘기 많이 했지만 안 들어주니까 노동조합 만들려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노사협의회가 형식적이었다고 사장님도 인정했고 앞으로 대화를 열어보겠다고도 했는데, 더 이상 대화도 없었고 임금도 최저임금에서 안 올라가는 상황이다. 2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고 4년 동안 거의 150원, 200원밖에 안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사장은 “노동조합을 만들지 말고 기다려라. 그러면 내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주겠다. 임금 문제는 할 수 없다. 라파즈 내에서 임금을 동결했고 임금인상을 안 해주기 때문에 내가 올려줄 수가 없다. 업무시간 조절은 회사가 어렵기 때문에 너희들이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정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 집에 가서 쉬는 게 편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사장님, 그거 말에 어거지가 있습니다. 저희 업무는 기본 8시간이고 연장근무란 게 보통 하고 싶으면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다. 사장은 계속 “임금문제 거론하지마라. 나는 라파즈의 심부름꾼밖에 안된다.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도 라파즈에서 동결시켰고, 업무조정도 라파즈에서 업무지시를 하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없는 거니 말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문제는 조금 기다려라. 지금 라파즈랑 업무조정 같은 것 얘기중이니까…노동조합 하면 우리 회사가 라파즈랑 계약도 못할 테니까 업무조정이 끝났을 때 제일 마지막에 노조설립을 해라”고만 말했다.

과다 업무를 하다 보니 안전사고가 많이 난다. 졸리니까 무감각해지고 사고도 많이 나고…사고 나면 ‘편한 걸로 끝내자’며 사고를 무마하기 위해 라파즈에 보고를 안하고 자체 내에서 알아서 보험처리 하려고 한다. 그렇게 무마해서 ‘무재해 1000일’.

노조 설립하자마자 위장폐업

3월 7일 노조 설립하자 바로 회사가 갈라진다고 했다. 설립과 동시에 사장 귀에 들어가 10일 바로 전직원들을 호출해서 업무 중단시키고 회사대기실로 모아 회사 얘기를 하는 거다. “회사가 갈라지게 된다. 노조를 깰 것이냐 말 것이냐 여기서 찬반투표를 해라. 노조를 깨라. 투표는 유기명으로 해라”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다.

임단협 하겠다고 공문을 띄웠다. ‘노조를 설립했으니 지회장, 사무국장과 상견례를 하자’고 공문을 띄웠는데 사장은 계속 거절했다. 3월 28일 3차 협상에 사장이 나와서 “나는 3월 31일자로 회사를 폐업할 테니까 당신들하고는 단협을 할 것도 없고 만날 필요도 없다. 알아서 해라. 노조를 탈퇴하고 다른 회사로 가든가 노조를 하든가 당신 맘대로 해라. 나는 회사를 폐업할 테니까.”라며 5분도 안되는 시간에 사장은 나가버렸다.

31일 게시판에 회사원가 절감 문제 때문에 페업을 하겠다고 공고만 내고…회사 측은 31일 폐업 전에 직원을 개인적으로 만나 “노조탈퇴하면 다른 회사 보내준다. 사직서를 쓰면 새 직원으로 하는 일 그대로 받는 임금 그대로 해주겠다. 사직서, 탈퇴서 써라.”고 회유했다. 그 와중에 많은 인원이 다른 회사로 이전해서 전화연락을 끊었다.

그 외 사람들에게는 핸드폰 문자로 31일자로 우진산업과 계약해지가 됐다는 문자메시지가 와서 황당했다. 그래도 4월 1일 출근을 하니까 라파즈 내에서 경비들하고 정직원들 100여 명이 정문 앞에서 출근 저지하려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출근도 못하고 4월 5일부터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강원도 동해시에 가까이 있는 사업 현장에서도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레이버투데이>

▲ 강원도 동해시에 가까이 있는 사업 현장에서도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레이버투데이>

라파즈의 반응

5월부터는 힘들지만 라파즈 상대로 상경투쟁을 하게 됐다. 라파즈 사장이 영업사가 있는 아셈타워 18층에서 업무를 보기 때문에 아셈타워 앞에서 1인시위를 한다. 우리는 적은 인원이라 할 수 있던 것은 1인시위 밖에 없었다. 5~6명이 로테이션으로 올라와서 하고 나머지 인원은 동해에서 천막시위를 한다. 회사는 처음에는 신경 안 쓰더니 회사 이미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면담에 응했다. 회사 측이 “무엇을 요구하느냐”고 하기에 “하던 업무 그대로 그 자리에 넣어 달라,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 과다업무시간을 조정해 달라, 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라파즈는 “당신들의 요구에 대해 할 말 없다. 당신들이 여기 와서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것이지 요구를 듣고자 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 왜 폐업을 시켰느냐”고 물어봤더니 “폐업하란 얘기 안했다. 나는 우진 사장이 계속 끌고 갈 줄 알았다. 내가 그만두란 얘기 한적 없다. 당신들에게 책임질 일 없다. 하청업체 일은 하청에서 해결하는 거다. 회사 이미지 있으니 1인 시위 접고 내려가라”고만 했다. 두차례 정도 면담했는데 그런 식으로…

마지막으로 7월 초에 만났는데 그쪽 최종안이 5명은 받아준다. 나머지 4명은 어쩔 수 없다. 2명은 하청업체 일자리로, 나머지 3명은 단계적으로…노동조합 문제도 거론됐는데 깨야한다고 했다.…이것은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 지금까지 같이 투쟁했는데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안 들어갈 수 없다. 노조자체를 깰 수도 없고…라파즈에서는 아직까지 대화의 창을 안 열고 “개인적으로 만나자, 노조를 끼지 말고 개인적으로 만나자”고만 했다. “그건 노조를 깨자는 얘기고 그건 안된다. 우리는 만날려면 공통문제를 갖고 안건을 갖고 좋은 방안이 있으면 그걸 갖고 나올 때 대화를 하자. 그러면 우리는 응하겠다”고 대응했다.

하청에 하청

우진산업은 아웃소싱이고, 그 외에 보통 사내하청이란 게 라파즈 한라 관리직들이 계속 인원 줄여가니까 라인을 줄이면서 그 사람들에게 협력업체를 만들어준다. 그게 15개 정도다. 50명이 넘게 되면 주5일 근무제가 되니까 인원을 제한한다. 우진산업도 48명으로 시작했는데 한 1년 지나니까 주5일 근무제 얘기가 많이 되니까 총무과에 있던 젊은 사장을 내보내서 청소용역 11명을 빼서 다른 회사를 만들어버리더라. 그래서 사내하청이 또 사내하청을 만드는 거다. 그래서 15개 정도가 사내하청인거다. 우진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다 하청이다. 정규직만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있고, 협력업체에 3개 정도의 노조 외에 다른 하청회사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처지다. 사내하청들도 노조를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우리 처지를 봤듯이 만들자마자 회사가 폐업을 해버리니까 어려워서 못 만드는 거다.

사내하청 직원들이 천막농성장에 오가면서 많은 얘기를 한다. “직접적으로는 못 도와주지만 뒤에서 돕겠다. 너희들이 이겨서 들어오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다”라고 얘기한다. 택시로 음료수 배달이나 라면박스 배달이나 전화를 해주거나 구좌에 후원금을 내준다. 그러면서 “너희들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이 된 것 있다. 임금이 300원 이상 올랐다” 우리가 (투쟁을) 시작하면서 최저임금에서 50원 정도 더 주다가 우리가 투쟁하는 몇 달 동안에 300원이 뛴 것이다. 그렇게 싸우니까 하청노동자들 문제가 나오고 우리가 뭐라 할까봐 미리 임금을 올려주는 게 있다.

세계 1위의 시멘트 다국적 기업에 저항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지만 정작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정말 힘들게 싸우고 있지만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이 너무나도 많다. <출처; 레이버투데이>

▲ 세계 1위의 시멘트 다국적 기업에 저항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지만 정작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정말 힘들게 싸우고 있지만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이 너무나도 많다. <출처; 레이버투데이>



진작 알았더라면

이 싸움 이전에는 노동조합을 몰랐다. 우리 모두에게 이번이 첫번째 경험이다. 우리 모두 기본적인 노동3권이라던가 근로기준법, 이런 거에 대해 몰랐었다. 계약서 쓰면서도 회사 사람들은 꼭 밑에를 가린다. 시급이라던가 밑에 조항은. 이번에 근로계약서를 보면서는 왜 그걸 가렸어야 했는지를 알게 됐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모르니까. 최저임금 3,150원 받으면서, 연장근로를 하면서도 한 달에 150만원도 못 찾아가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일했으니까 지금은 후회를 하는 거다.

왜 내가 몰랐나. 그때 처음에 우리가 알았으면 이렇게 됐을까. 우리가 근로기준법 알고 노동법을 알았다면 우리의 과다업무시간에 대해서 분명히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시키는 대로 지시한 대로 안하면 소장은 욕부터 나오고 ‘때려치워라. 집에 가서 애나 봐라’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회사에서 나가면 일자리가 없는데 월급이 그렇게 적더라도 고정적으로 나오니까 감지덕지라고 불만이 있어도 욕먹어가면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한거다.

다친 마음 어떻게 아물까

우리는 동해시에서 5분밖에 안되는 거리에서 일한다. 강원도에서는 시멘트업체가 주인데 정규직은 거의 없고 모든 게 사내하청이다. 여기서 (상경농성하면서) 자금이 쪼달리다 보니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잠은 농성장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동해에서의 천막농성은 100일이 넘었고, 서울 상경 농성은 5월부터 했다. 1인시위는 오전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고 있다. 상공회의소, 프랑스대사관, 아셈타워에서…

서울의 강남, 너무 낯설고…여기 땅값도 모르는데 근처에서 근무하는 경비가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데란다. 임대료가 몇 억씩 하는 데 라파즈가 있는데 우리가 일해서 벌어준 돈 갖고 얘네가 이거 하는 거 아닌가?

촌에서 순진하게 욕 한마디 못하고 말 한마디 못했는데 여기 와서 사람들이 막 대하고 ‘시끄럽다. 조용히 해달라’면서 욕부터 나오니까 우리도 감정이 쌓인다. 왜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욕을 해. 저 사람이 내 심정을 안다면 과연 그랬을까. 내가 설명을 해줘야겠구나. 그런데 설명을 해줘도 쉽게 와닿는 게 아니니까…

나도 여기 와서 많이 거칠어졌다. 그래서 진짜 안좋다.…살아가려고 하는 것이지만 마음이 많이 다쳤기 때문에 이거 끝나고 시골로 내려갔을 때 옛날의 순진했던 마음이 다시 돌아올까 걱정이다. 여기 와서 진짜 고생도 했지만 다친 마음이 옛날 마음으로 돌아갈까가 제일 걱정이 된다. 그 마음을 다스리고 내려가면 좋은데…이게 길어지면 더 거칠어질 것만 같고…내려가면 정말 마음을 다독여서 옛날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깨지더라도 당당하게

5월 13일에 결혼했다. 처음 만날 때는 ‘라파즈’라고 하면 크니까 사람들이 월급 많은 줄 안다. 내 아내도 그랬다. 내 월급이 110~120만원밖에 안되는 걸 알고 이 월급 받고 어떻게 살았냐고 하더라. 그래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고 하니 아내가 “만들어라. 요구할 수 있는 건 해라. 이렇게 부당한 것에 대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건 하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다보니 그 사람도 힘들어한다. 언제쯤 끝나냐고. 그래도 이 싸움을 멈춰서는 안되니까 시작을 했으니까 끝을 보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당당할 수 있어야지. 깨지더라도 당당하게 깨져야지, 나중에 우리 자식에게 당당하게 얘기해줄 수 있다. 중간에 그만두면 내 자식에게 뭐라 할까? 나도 하다가 중간에 포기했으니까 너도 하지마라? 조합원들이 다 힘들어 한다. 앞으로 당당하게 나갈려면 힘들어도 싸워야 한다.
덧붙임

어려운 여건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라파즈 한라 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후원 계좌번호 335096-51-143041 농협(예금주/최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