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국민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이들과 함께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전국의 AI 데이터센터 건설 그리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4,700조원의 투자계획을 밝혔고, 정부는 이를 위한 전력, 용수, 토지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총력지원’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빅테크 CEO들을 초청해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을 개최했다. 삼성, SK, 현대차 총수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 이재명 대통령은 엔비디아, 브로드컴, 앤스로픽, 오픈AI CEO와 함께 ‘우리는 식구다’를 외쳤다. 한국이 미국 AI 자본과 한 배를 타서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250조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거둔 이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업이익과 투자규모에 한국사회 전체가 압도당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투자브로커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 AI와 반도체 산업에 사회의 모든 자원을 ‘올인’하겠다고 한다. ‘AI 혁명’이라며 장밋빛 성장 전망에 모두가 들떠 있다. AI가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인데, 한국이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AI 산업에 대한 비이성적인 낙관이 사회를 뒤덮을수록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AI 혁명’, 우리는 10년 전에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다
AI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벌써 10년 전 이세돌을 꺾었던 구글 ‘알파고’ 신드롬이 있었다. 특히 2016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주창되었는데, 4차 산업혁명의 6대 분야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자율주행, 3D 프린팅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주장들은 결국 ‘자동화 담론’으로 수렴되는데, IT-디지털 혁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기계가 엄청난 생산성 혁명을 이뤄내며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게 자동화 담론의 공통된 전망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이 세계의 작동원리인 ‘자본주의’를 괄호친 채, 과학기술의 발전이 노동을 대체할 것을 전제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 SF일 뿐이다. 자본주의를 이전 시대와 구분짓는 큰 특징 중 하나는 ‘기계의 도입’을 통한 ‘생산성 혁명’이다.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화석연료나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증기/내연기관과 모터가 동력원으로 생산현장에서 폭넓게 활용되면서 노동생산성이 대폭 향상되는 것이다. 비싼 기계를 도입해 상품을 대량생산 했다면,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충분히 큰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본은 기계를 도입할 수 있으며, 기계의 일반화는 다시 기계 도입비용을 낮춘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세계시장과 2차대전 이후 열린 국민경제의 대중소비시장의 형성이 그 역할을 했다.
전후 호황 속에서 이뤄진 노동생산성 향상과 기술진보는 1970년대 이후 ‘장기불황’ 상태인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사뭇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다. 장기불황 상황에서는 기술진보에 따른 점진적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최대한의 비용절감과 고용률 감소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본주의 전략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효율성을 앞세우며 ‘비용절감, 노동강도 강화, 외주화, 지구적 공급사슬망, 불안정 노동 일반화’라는 깊은 변화를 사회 전체에 확산했다. 이는 자본주의 혁신이 아니라 불황과 저성장기에 제한된 시장을 두고 벌어진 제로섬 게임이었다.
농업과 제조업에서 먼저 벌어진 제로섬 게임은 1990년대 이후 온라인/디지털 기반 서비스 시장을 두고 다시 벌어졌다. MS, 구글 등 디지털 기업들은 유통 서비스 산업을 온라인으로 재편하며 시장 독점을 향한 지대추구경쟁에 돌입했다. 2000년 닷컴버블로 주식시장 거품은 일찍 꺼졌으나, 이들 기업이 가져온 디지털 혁신의 변화는 작지않았다. 하지만 이는 생산성 폭발과 풍요의 시대가 아닌 사회 전체로 일반화된 불안정 노동과 플랫폼 노동의 확산이자 불평등과 양극화의 다른 버전이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AI 혁명’은 이러한 구조와 흐름 아래 빅테크들이 온라인에서 쌓아온 독점과 정보 기반 아래 등장한 혁신이다. AI의 산업전반 적용이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도 불확실하지만, 만약 그렇다하더라도 이를 소화할 수요가 장기불황 상태의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
AI 산업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호들갑보다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자동화/기술혁신’의 궤적을 돌아보며 우리가 놓여 있는 조건을 확인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먼저 197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장기불황’이라는 세계적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조업 과잉생산으로 인한 이윤율 하락으로 자본투자는 금융시장으로 향했고, 이는 금융시장 팽창과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런 조건에서 AI 산업도 1990~2000년대 디지털 혁신처럼 장기불황과 저성장 국면에서 디지털(유통) 시장을 둘러싼 독점을 향한 경쟁, 즉 지대추구형 경쟁에 가까울 것이다. AI는 노동력 대체보다는 온라인 검색/자료 가공 서비스 시장을 둘러싼 또 다른 경쟁에 가까우며, 피지컬AI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더라도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자동화/기계화’의 한 국면이다. ‘AI 혁명’이라지만 새로운 성장동력과 시장이 열리는 게 아니라, 새롭게 재편되는 기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AI 거품이 금융시장과 만나면 ‘위기’가 시작된다
AI 산업과 과거 디지털 산업의 가장 큰 차이는 AI 데이터센터가 동원하고 소비하는 막대한 양의 자원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대량의 AI 칩과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며, 이를 구동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있어야 한다. 유엔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 전세계 데이터센터는 연간 945TWh(현재 프랑스 전력의 2배), 연간 9조 3000억리터(사하라 이남 13억명 연간 생활용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에 사용될 반도체 생산을 위한 전력과 용수는 별개의 문제다. 이렇게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다.
MS, 아마존, 구글, 메타가 데이터센터 설비투자에 쏟아붓는 돈이 2025년 4,000억 달러에서 2026년 7,0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 AI 산업 전반의 관련 지출은 2조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해 대비 44% 늘어난 수치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은 바로 이렇게 급증한 AI 산업의 설비투자 때문이다. AI 산업은 자본 투자 규모와 방식에서 기술산업보다는 초거대 인프라 산업에 가깝다. 장기간 거대한 규모의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며, 투자수익의 회수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디지털 독점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빅테크조차 막대한 AI 설비투자에 보유현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6개 빅테크 기업이 올해 발행한 회사채는 2,440억 달러인데 이는 이들 회사가 작년에 발행한 회사채의 2배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펜데믹을 경과하며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막대한 국채발행으로 화폐를 찍어내고 제로금리로 이자부담을 낮췄다. 그 결과 금융시장은 더욱 팽창했고, 투자처를 찾아다니는 금융자본은 넘쳐나게 됐다. 사상 최대의 설비투자가 이루어지는 AI 산업에 금융자본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현금압박에 시달리는 빅테크들은 금융시장이 제공하는 신용(부채)을 통해 AI 데이터센터 설비투자 경쟁을 이어갈 것이다.
문제는 막대한 자본투자만큼의 이윤을 만족시킬 정도로 AI 산업이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보았듯이,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것이 아닌 디지털 지대(제한된 시장)를 둘러싼 빅테크 간 시장점유경쟁으로는 이미 투입된 수 조달러의 자본투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바로 이러한 AI 산업의 거품이 금융시장의 부채상환과 결합하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2000년 닷컴버블과 달리 AI 버블은 주식 투자자 사이의 이익배분과 가격조정에 그치지 않고, 2008년 금융위기처럼 부채위기로 전화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구나 AI 거품여부와 별개로 이렇게 막대한 자본이 엄청난 전력과 물, 자원들을 소모하고 파헤치는데 사용된다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와는 다른 차원의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심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기대하는 반도체 수요 대부분은 미국 빅테크들로부터 나오며, AI 데이터센터 건설도 마찬가지다. 향후 10년 이상 진행될 메가프로젝트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과 낙관적인 전망 아래 추진되는 사업인지 알 수 있다.
자본과 한 몸이 된 국가
현재 AI 산업의 확장이 과거와 다른 중요한 점은 바로 국가권력과의 관계다. 앞서 보았듯이 AI 산업이 놓여 있는 조건과 구조는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장기불황 상황에서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세계이다. 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지대추구 경쟁과 금융시장의 팽창이 그것이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미국 패권이 제공하던 신자유주의 제도와 규칙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선진국들도 국가산업전략과 자본이 적극 결합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AI 산업이 국가안보화되면서 국가와 자본이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한국과 같은 중간 고리 국가에서 더욱 극심하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권의 ‘진짜 성장’은 이전 정권들의 ‘친기업-경제성장주의’와는 다르다.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정부는 국제질서가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체제로 재편되었다며, 이제 국가가 대자본의 자본 축적 위험을 함께 떠안고, 필요한 시장과 인프라까지 직접 조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변화에서 가장 먼저 버려진 게 ‘기후위기 대응’이다. 실리콘밸리 자본은 디지털 혁신을 앞세우며 재생에너지 확대를(RE100) 주도하는 듯했지만, AI 산업 확장으로 이를 뒤집었다. 이재명 정부는 메가 프로젝트가 날려버린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서는 해명조차 하지 않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요구하는 추가 전력은 무려 40GW에 달한다. 현재 한국 전체 사용 전력의 40%에 해당한다. 이를 공급하기 위해서 정부는 신규핵발전 건설과 수명연장, 가스발전소 건설, 재생에너지 확대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한다. 메가 프로젝트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며, ‘속도전-거점전-선도전’을 외치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선언했다.
메가 프로젝트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열광은 마치 전쟁 전야의 열기 같다. AI 산업이 국가안보화되면서 100년 전 제국주의 경쟁처럼 국가와 자본은 한 몸이 되어 파괴적인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메가 프로젝트는 그동안 한국사회가 만들어온 사회적 규범과 제도들을 무력화하면서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 특구 특별법’에는 기간제, 파견노동, 장시간 노동의 확대 등 노동권을 파괴하는 조항들이 포함되었고, 꼭 필요한 규제와 절차들조차 속도전을 외치는 대통령이 최소화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국익-국가안보 정치’가 강화된다면 농업용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농민, 노동권 파괴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온실가스 감축과 탈핵을 요구하는 기후정의운동까지도 모두 ‘국익과 국가안보’를 해치는 세력으로 탄압받게 될 것이다.
메가 프로젝트가 아닌 우리가 만들 풍요의 세계
오랜 장기불황과 암울한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 ‘AI 혁명’이라는 화려한 도박장이 갑자기 열렸다. 메가 프로젝트는 이 도박장에 반도체 칩을 대는 장사를 시작하겠다는 또 다른 도박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규모의 자본투자가 계속해서 발표된다. AI 산업의 거품여부와 별개로 이정도 규모의 자원이 동원되고 실제 사업이 추진된다는 것은 기후생태 위기를 앞당기는 불구덩이를 온 힘을 다해서 파겠다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 힘은 우리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사회적 힘이기도 하다. 정부와 자본가들이 오직 자신들의 권력과 이윤축적을 위해 사회적 자산을 거대한 도박장에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생산한 저 힘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기는커녕 지구를 불태우며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저 힘에 고삐를 조이고, 우리가 생산한 힘을 우리가 통제하기 위한 사회화에 나서야 한다. 메가 프로젝트가 고된 삶에 지친 이들에게 희망과 풍요를 약속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거짓 약속을 폭로하고 대안사회를 그리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다가오는 9월 19일 기후정의행진에서 투쟁의 시작을 알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