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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얼마나 일하는가'만 살피면 노동시간이 단축될까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노동시간 투쟁으로

오늘도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의 소식이 이어진다. 7월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과로사로 추정되는 청년노동자의 죽음이 뒤늦게 알려졌고, 9월 SPC 공장에서 야간조 근무를 하고 온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이 최근 전해졌다.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며칠 전 제주에서 쿠팡 택배노동자가 야간배송 중 운전사고로 사망했다. 장시간 노동은 한국사회의 오랜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로 실노동시간 단축을 제시하며 ‘주4.5일제’ 추진을 예고했다. 정부가 말하는 노동시간 단축 목표가 노동자의 삶에 가닿을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되짚어보자.

노동시간 유연화로 뒤바꿔온 노동시간 단축

노동시간 단축은 언제나 노동자 투쟁의 주요 요구였다. 1953년 제정 당시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 48시간, 연장근로 ‘합의’시 1주 최대 60시간을 명시했지만, 현실은 동떨어져 있었다. 매일 16시간 골방에 갇혀 일하며 일요일도 쉴 수 없던 청계천 피복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산화했다. 장시간-저임금에 붙박으며 국가가 할당한 ‘산업역군’ 자리를 부수며 노동자들은 싸워왔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1989년 법정노동시간을 주44시간으로 단축했다. 그럼에도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이어가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기에 주5일 40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장시간 노동의 역사를 끝낼 것을 촉구해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주5일제 도입 논의가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보다는 일자리 나누기에 의미를 두었던 주5일제는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당 법정노동시간은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짧아졌다. 1997년 IMF 위기를 이유로 업무량에 따라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가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주40시간제이지만 최장 노동시간은 주68시간까지로 늘어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 기조 속에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며 동시에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면서 사용자가 원할 때 더 많이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주5일제가 도입되었지만 주말에 쉴 수 있는 노동자는 일부였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주5일 40시간제를 68시간까지 연장가능하게 했던 것을 바로 잡고 주40시간, 연장근로 포함시 52시간까지만 허용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앞선 정부들과 다를 바 없었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고 촉진하면서 이를 도입한 사업장은 평균 주40시간만 맞추면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주지 않고 12주 동안 주64시간씩 일을 시켜도 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또한 주52시간 상한이 예외되게 특별연장근로제를 본격화한 것 역시 문재인 정부였다.

그동안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해 제도화를 주도해온 민주당 정부들은 모두 노동시간을 유연화시키며 단축 요구를 왜곡했다. 노동시간 길이를 줄인다며 정작 줄인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였다. 노동시간 제한과 초과근무수당으로 장시간 노동을 제어해온 장치를 무력화했다.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권한을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부여했고, 덜 주고 더 일 시켜도 되게끔 정부와 국회가 합작해 장시간 노동구조는 견고히 유지될 수 있었다. 노동자의 임금을 빼앗고 시간을 기업에 내어준 노동시간 유연화 속에 노동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달라진 일의 세계에서 노동시간

불안정노동의 심화는 법정노동시간이라는 기준의 의미를 와해시켰다. 근로계약을 통해 정한 노동시간에 따라 일하고 임금을 받는 ‘표준’적인 노동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모습인 노동이 일반화되고 있다.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며 근로계약 바깥에 존재하는 비임금노동자가 2023년 862만명,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에 이른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제한 등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데, 이들이 일하는 시간과 양을 스스로 ‘선택’해서 일한다는 이유다.

배달라이더들이 극한폭우를 뚫고서라도 오토바이를 타는 건 어떤 선택인가. 라이더는 배달플랫폼을 매개로 일감을 찾고 건당 수수료 방식으로 일한다. 한 건이라도 더 뛰는 게 그날의 소득과 직결되니 더 빨리 더 오래 일하려고 한다. ‘중개’할 뿐이라는 플랫폼 기업은 실시간으로 라이더의 수락률, 이동, 근무여부를 확인하고 관리한다. 이용자의 별점제도와 함께 라이더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며 그 결과로 배차를 달리해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일감을 좌우한다. 이러한 플랫폼 자본의 개입과 통제 속에서 배달노동자들은 일감을 둘러싼 경쟁,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일하는 조건에 뛰어들게 된다.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한다는 라이더의 응답이 즐비한 조건 속에서 올 상반기만 16명의 배달노동자가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주6일이 기본, 명절은 주7일이 당연, 하루 12시간을 일하며 쉬는 시간은 고작 30분. 특수고용직인 대다수 택배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실이다. 장례를 치른 뒤 추스를 새 없이 일하다 숨진 제주 쿠팡노동자, 그의 휴가 문의에 대리점은 그럴 거면 이직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해고와 같은 말인 계약해지를 쥔 채로 택배회사가 택배노동자의 일하는 강도, 일하는 시간을 실질적으로 통제한다. 쉬고 싶어도 수입과 연동되어 쉴 수 없다. 쉬거나 할당량을 못 하면 일이 끊긴다. 불가피 쉬어야 하거나 배송을 다 하기 어려울 때 대체인력 비용을 떠안는다. ‘자유로운’ 개인사업자라는 택배노동자들의 산재율은 매년 전체 업종 평균보다 크게 오르고 있다.

전일제로 일하기 어려운 조건에, 또는 주업과 함께 부가적 수입을 위해 ‘선택지’를 늘려준 것처럼 여기는 초단시간은 어떨까. 주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 역시 계속 늘어 작년 기준 250만명에 달한다. 취업난 속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힘든 10~20대 청년층, 노후 불안정으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 60대 이상 고령층의 비중이 높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유급휴일, 퇴직금, 사회보험 등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전일제 노동자를 쓰는 것보다 초단시간 노동자를 여러 명 쓰는 게 사용자에게는 비용을 절감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을 위해 투여하는 시간들은 셈해지지 않는다. 방문요양노동자의 경우 한집당 제공서비스를 3시간으로 제한하는 조건에서 두세집을 함께 맡는 방식으로 일한다. 이 과정에서 이동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오롯이 노동자의 몫이다.

제조업 일자리가 중심이던 시기에 기업이 노동시간의 길이를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하려 했다면, 신자유주의와 함께 달라진 일의 세계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기업의 통제는 비가시적으로 이루어진다. 노동의 유연화로 재편된 일의 세계에서 더 쉽게 노동자를 쓸 수 있게 되었고, 이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얻으면서도 사용자는 책임을 회피하기 더 쉬워졌다. 이제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시간에 대한 길이 규정만을 두고 이야기할 때 일하는 사람 모두의 요구나 목표가 아니라, 출퇴근시간이 명확하고 고용관계가 분명한 노동자만이 해당하는 과제가 됐다. 노동자의 권리로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요구가 의미 있는 진전을 만들어 내려면 불안정노동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권리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시간의 주인이 되는 투쟁으로

그동안 노동시간 길이에만 초점을 두어온 것에서 노동시간을 노동자가 스스로 통제하면서 실질적으로 줄여가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미 노동자들은 법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권리를 세우며 투쟁의 경험들을 쌓아왔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서 기계와 운명을 같이 해야 했던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당연시해온 것에 질문을 던져왔다. “밤엔 잠 좀 자자!” 외치며 자동차부품업체들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 낮이건 밤이건 12시간씩 일하던 주야맞교대를 주간2교대 방식으로 바꾸어 노동시간을 줄이고 야간노동을 폐지했다. 건강과 생계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온 것이다. 필수적인 노동이지만 보이지 않기를 강요받았던 거리 청소노동자들도 “밤이 아닌 낮에 일하자”는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일할 것인가를 두고 자본의 일방적 요구에 맞추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확인해야 한다.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투쟁도 같은 맥락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적에 따라 지급받는 수수료 방식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외면하며 과적과 과속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국가와 자본에 맞서 더 많이 싣고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구조를 바꾸자는 요구가 안전운임제였다. 자본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야 했던 노동에 대한 통제를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화물노조의 안전운임제 요구가 라이더유니온의 안전배달료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폭염 시 휴식 보장, 일요일 마트 휴무도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 속에서 만들어졌다.

얼마나 일하는가만이 아니라 언제 일하는가, 어떻게 일하는가에 대한 요구로 노동시간을 둘러싼 전선이 노동자 투쟁에서 다양하게 펼쳐져 왔다. 노동시간 투쟁은 자본의 입맛대로 시간을 배치하고 통제해온 것에 맞서 노동자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투쟁이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물리적인 시간(양)을 넘어 어떤 노동시간이 되어야 하는지 노동자들이 이야기하고 참여하며 함께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서로의 노동에 기대어 이 사회가 굴러가는 만큼, 언제/어떻게/얼마나 일할 것인가를 둘러싼 노동시간 논의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떠한지를 가늠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설정하는 방향키이기도 하다. 노동시간에 대한 숫자만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말할 수 없는 시대,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그저 노동시간 길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가 스스로 통제하면서 노동시간을 구성하고 조직해갈 권리 투쟁으로 연결되고 확장해야 한다.

‘새벽배송’ 논란이 쏘아 올린 노동시간의 문제는 그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심야노동이 사회적 문제로 지목된 지금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선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노동자를 연료로 태워온 24시간 생산-소비체제의 문제점을 살피는 일이다. 불필요한 생산과 위험한 노동을 함께 줄이는 방안을 찾고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돌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싶은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자가 노동시간의 주인이 되어가는 투쟁을 함께 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