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선 거대한 산업, 이 세상이 전환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올 12월부터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을 하나둘 멈추기로 했는데요. 문제는 그 전환이 지역사회와 노동자를 위협하게 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제대로 된 고용안정/보장 대책 없이 발전노동자들은 대량해고의 위협을 매일같이 체감하고 있는데요. 올해 사랑방이 함께하고 있는 기후정의동맹에서는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발전노동자 총고용도 기후위기 대응도 함께 이뤄내는 싸움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5월 31일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 시민 대행진>은 말 그대로 그러한 싸움의 ‘시작’이었지요.
시작을 잘 끊기 위해서 더 많은, 다양한 이들과 이 싸움을 함께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역할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크고 작은 우여곡절은 있었지요. 첫째로, 사실 애초에 531대행진은 4월 12일날 열리는 ‘412행진’이었습니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며 날짜가 연기되었지요. 힘이 약간 빠지기도 했지만, 홍보하고 조직할 시간이 더 늘어서 다행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또 윤석열 탄핵 선고 이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조직을 시작하려고 보니, 곧바로 으쌰으쌰 하며 예열하기도 쉽지는 않더라구요. 돌이켜보면 탄핵 정국에 힘을 많이 쏟았던 탓일까 싶네요.
다행히도 많은 분이 531행진에 함께하자는 제안에 이미 가려고 얘기 중이었다거나 고려 중이라 응해주셨어요. 작년의 <330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과 <907 기후정의행진>, <체제전한운동포럼> 등에서 2025년 발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예정되어 있단 소식을 이미 접하고 기억하셨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531대행진의 내용을 공유하는 카드뉴스나 행진에 함께하는 자신의 이유를 담은 연속 언론 기고 등 다양한 홍보도 시도해보았구요. 그렇게 많은 이들의 노고, 관심과 참여로 처음 2-3대를 목표했던 서울버스는 (여유롭게 배치하긴 했지만) 5대가 출발했습니다. 서울버스만이 아녜요. 강원, 인천, 수원, 천안 아산, 청주, 대전에서 태안 대행진으로 향하는 이들, 광주, 대구, 부산, 울산에서 창원 대행진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참가자가 많지 않은 지역은 카풀로 함께했지요.
차가 예상보다 더 막히는 바람에 헐레벌떡 점심을 먹고 집회 현장 한켠에 자리했습니다. 사랑방은 태안 행진에 함께했는데요, 어쩐지 330충남노동자행진과 계속해서 떠오르더라구요. 같은 장소에서 진행해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노동자들은 고용 보장 대책을 세우라 요구하고 있는 이 상황이 여전한 거기도 할 테니까요. 그럼에도 제자리걸음은 아닙니다. 폐쇄 계획을 모르는 발전소 현장의 노동자들을 만나는 간담회도 꾸준히 가져왔고, 공공재생에너지와 노동자 고용 대책을 구체적으로 접목하는 법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고용불안 문제를 가장 최전선에서 마주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 싸움을 힘차게 이어나가고 있는 거겠지요. 531행진에는 동지들의 얼굴을 하나둘 보며 혼자 속으로 결의를 다져보는 시간이었던 것 가습니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행진 중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송상표 동지가 불렀던 노래입니다. 많이 웃으면서도 지금의 심경을 담아 직접 개사한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달까요.
각자의 지역으로 복귀하는 버스에서 오늘의 후기를 하나의 키워드로 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그때가 몸은 정말 피곤하면서도 경험이 가장 생생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연결과 연대, 마주침, 공생, 보람, 국민동의청원, 고생 끝의 낙… 다양한 키워드들 중에서 ‘공생’과 ‘삶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비인간 동물의 권리에도 많은 연대를 부탁하며 오리 옷을 입으셨던 분이 있었는데요. 그 더위에도 오리옷을 입고 행진을 하셨더라구요. 그 모습을 본 다른 분이 이런 다양한 이들이 함께하면서, 즉 ‘공생’하면서 이 싸움이 이어지는 거겠구나 생각하셨다는 후기였어요. (정작 오리옷을 입으셨던 분은 ‘더위’를 키워드로 말씀하셨던 재미난 스토리) ‘삶터’는 행진을 걷다 보니 아파트 단지가 보였는데, 그곳이 발전소 사원 아파트더라. 결국엔 노동자들에게 이 일터는 결국 이 지역, 삶터의 문제이기도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셨다고 하더라구요. 아, 다음번에는 본집회 참여에 앞서 ‘평등수칙’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531대행진은 이후 고민의 시간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2일, 531대행진이 있고 이틀 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꼬박 9년을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혼자 작업하다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위험한 작업은 2인 1조로 해야한다는 안전수칙은 여전히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현실과 더불어, 발전소 폐쇄를 핑계로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노동의 공공성을 정부가 충분히 이해한다면, 노동자가 최대한 안전하게 일을 이어가도록 공공이 직접 책임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이 들더라구요. 실제로 직접고용은 발전소노동자들이 수도 없이 이야기해온 겁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발전소 폐쇄가 정부, 사측이 노동자들을 책임지지 않는 명분이 되어버리는 지금. 지금 여기서 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데, 과연 그 전환이 정의로운 걸지 질문할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분명한 건 광장에서, 대행진의 현장에서 만난 우리가 바라는 전환의 모습은 아니겠지요.
앞서 언급했듯, 531대행진은 ‘시작’이었습니다. 8월쯤에는 발전노동자들의 파업이 예정되어 있고, 9월 기후정의행진에서도 공공재생에너지, 보다 넓게는 공공성을 중요한 의제로 내세우는 시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공공재생에너지법안도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관련하여 6월 24일부터는 입법청원에도 돌입할 예정이구요. 뒤이어지는 투쟁들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픈데,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쉽고 직관적인 언어? 삶에 와닿는 이야기?
330행진과 또 다른 얼굴을 마주했던 531행진을 떠올려봅니다. 이번에 서울버스팀을 조직하며 어떠한 단체와의 연고 없는 개인들이 함께하고 싶다고 문의 연락을 주시기도 했거든요. 공공재생에너지도 노동자 고용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 기후위기가 걱정되어 왔다가 더 넓은 범주에서 사안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사람도 떠오릅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동료들과 머리 맞대고 고민하며 나아가보려 합니다. 후원인 여러분께도 소식을 갖고 부지런히 찾아뵙겠습니다.
정의로운 전환을 좀 더 깊게 살펴보고 싶다면 531행진 때 준비했던 자료집을 참고해보셔요!
☞ 자료집 링크 : bit.ly/531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