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3일, 경남도청이 있는 창원에서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6.13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 시민 대행진>이 열렸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이유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태안 1호기에 이어 하동 1호기도 폐쇄를 앞두고 있고, 정부는 앞으로도 수십 기의 발전소를 순차적으로 닫겠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정부와 발전 공기업이 보여주는 전환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발전소 폐쇄는 필요하다면서도, 그 안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을 어떻게 책임질지,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공공적으로 확대할지에 대한 대책이 여전히 안 보이는 ‘반쪽짜리 전환’. 고용은커녕, 오히려 발전소 폐쇄를 빌미로 인력 충원을 하지 않는 등 위험이 더 커지게 방치하는 무책임한 전환. 여기서 발전소 폐쇄의 부담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겪는 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6월 돌아가신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의 죽음이 그 위에 있죠.
김충현과 같은 장소,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김용균을 다들 기억하실 테지요. 김충현의 죽음을 마주하며 바뀐 것 하나 없다고 분노하는 와중, ‘정말 지금이야말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마주하는 이 상황은, 단지 하나의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전환되는 ‘첫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이 전환이 한국 사회의 기준점으로써 앞으로 다른 산업 전환의 방향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전환이 누구의 참여로, 누구의 삶을 지키며 이뤄지는가. 우리가 먼저 그 기준을 세워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진에 앞서 6월 4일, 발전노동자와 정의로운 전환을 다룬 다큐멘터리 <빛을 만드는 사람들>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민주노총서울본부가 함께 준비한 자리였고, 한전KPS비정규직지회 김영훈 지회장과 녹색연합 황인철 전문위원을 모시고 다큐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큐가 담고 있던 시점 이후 태안은 이미 폐쇄가 시작됐고 하동도 폐쇄를 앞두고 있지만,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여전히 제자리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포스트잇에 다큐 후기와 질문, 응원과 연대의 말을 적어 나누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 <빛을 만드는 사람들> 상영회 당일 참석자가 찍은 현장 스케치 사진
“정규직 전환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직고용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지금은 어떤지” 묻는 질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은 폐쇄될 때마다 전원 재배치되어왔지만, 하청노동자들의 경우에는 폐쇄된 발전소들에서 재배치되지 못하고 떠난 이들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작년 정부는 태안 1호기 노동자 전원을 전환 배치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그 이후 폐쇄될 다른 발전소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왜 이 투쟁이 오래 지속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뼈아픈 후기 내지는 질문을 남겨준 와중, 이런 상황에서도 “이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진 어느 날, 보고 싶거나 겪고 싶은 장면이 있는지”와 같은 질문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써, 우리는 다시 창원으로 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참가 버스를 조직하며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같은 날에 서울에서 또 다른 중요한 집회들이 여럿 있었고, 왕복 10시간이라는 물리적 거리도 선뜻 참여를 결의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작동했을 텁니다. 그래도 3대의 버스를 채운 70여 명가량의 동지들과 함께 창원에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오갈 때 길도 막히지 않고, 날씨도 좋았습니다. (다만 날씨가 ‘너무’ 좋은 탓에 아스팔트 위에서 그대로 달궈질 뻔 했네요^^;) 사전 행사인 오픈 마이크와 부스, 본행사부터 행진까지 조금의 시간 지연을 제외하곤 원활히 끝났습니다. 창원에 사람도 차도 없을 거라며 우려했지만, 시장 안으로 들어가 행진할 때, 특히 시장 한가운데에 있던 공원에서 다이-인 퍼포먼스를 할 때 지역주민분들의 관심 어린(적대적이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종종 사진 찍는 분들도 보였구요. 이날 행진의 주요 요구안은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발전노동자 총고용을 보장하라는 것, 공공재생에너지법·정의로운 탈석탄법·한국발전공사법·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개정하라는 것, 고 김충현 협의체 합의를 이행하고 한전KPS 하청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것, 기후위기와 전쟁위기로 심화되는 차별과 불평등을 철폐하라는 것, 그리고 노동자·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를 구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께 드릴 유인물이라도 가져올걸 아차 싶더군요. 아무쪼록 행진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오픈 마이크에 있던 발언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요, 그중 일부를 소개해드릴게요. 하나는 주거와 불평등에 관한 발언입니다. 콘크리트는 100년을 간다는데 한국 아파트 평균 사용 연한은 30년이 안 된다고, 그건 사용의 기준이 아니라 이익의 기준으로 집이 지어지고 부서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불평등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으로 보자고 했습니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윤을 위해 집을 짓고 부수는 과정에서 자원과 쓰레기가 끝없이 소비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무한한 소비와 폐기의 논리는 결국 기후위기, 에너지 문제와 맞닿아 있기에 연대를 왔다는 것이었지요. 행진이 있던 6월 13일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있는 날이기도 했죠. 성소수자들에겐 그날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인 경우가 많아 ‘명절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날이었음에도 행진에 와준 트랜스젠더 동지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성소수자 전용 술집들도 노동자분들이 생산한 전기를 쓰면서 영업했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그런 면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함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힘이 있다,”고 하는데 콧잔등이 시큰해지더라구요. 두 발언을 들으며, 연대해온 이들의 마음을 이어받아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노동자를 포함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보다 도움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작년 <330충남노동자행진>과 작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대행진>에 이어서 올해 6월 13일의 대행진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거듭할수록 이건 발전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그다음은 다른 산업, 다른 노동자, 다른 지역의 차례가 될 뿐이겠죠. 그러지 않도록 우리는 에너지 빈곤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쪽방 주민들, 이동과 돌봄의 권리를 이야기해온 이들,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이들과 함께 이 자리를 지키며 미래의 가능성들을 넓혀가야겠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존엄을 함께 지키는 전환이어야 하기에, 우리는 재생에너지의 민영화를 막고 에너지 공공성을 지키는 이 싸움에 계속해서 함께하고자 합니다.

땅 바람 태양은 상품이 아니다!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공공재생에너지!
여기 모인 우리의 힘으로, 쟁취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