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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뛰어보자 폴짝] 버스 타는 거 처음이에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낯선 말이겠지요? '시설생활인'이라니…. 너구나 어린 동무들은 이런 말을 처음 들을 것 같아요. 누구나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살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저는 20년이나 시설생활인으로 살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답니다. 어린이 여러분에게 제가 살았던 시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20년 동안 제가 살던 시설에서는 수 백명이 함께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 방을 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어요. 여러 명이 방을 써야 했고, 당연히 개인 생활을 위한 공간은 없었답니다. 모두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에 밥을 먹고 12시에 점심 먹고, 5시30분에 저녁 먹고, 8시에 자고. 이런 생활을 1년 동안 똑같이, 20년 동안 했던 것이지요.

시설에서는 머리 모양조차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워요. 제가 살던 곳에서도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 감겨주기 어렵다고 남자나 여자나 모두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어요. 어렸을 때 한번은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는데, 생활지도교사가 '너 같은 애가 머리는 길러서 뭐하냐'며 허락하지 않았어요. 내 머리카락인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무시당하는 게 속상했어요. 그후로는 다시는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다고 말할 수 없어요. 시설에서는 자신의 일이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머리 모양도, 옷도, 취미도, 하고 싶은 일도 모두 마찬가지랍니다. 사는 곳을 떠나서 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마음대로 구경을 다닌 적도 없어요. 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해야 할지 생각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냥 먹고 잠자고 일어나서 다시 하루를 보내며 시간을 보냈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친구를 만나서 놀면 되지.' '부모님한테 가면 되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하지'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시설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생활인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나 나이든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돌보는 사람이 없거나 또는 가족들이 돌 볼 수 없는 형편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시설에 오거나, 억지로 시설에 온 사람도 있어요. 가족이 돌볼 수 없는 형편이고, 달리 갈곳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시설 밖에 나와 본적도 없는 사람이 많아서 시설을 나오기란 쉽지 않아요.

저 같은 경우도 시설에서 나와 스스로 생활을 꾸리기로 결심하면서 20년만에 처음으로 버스를 타봤어요. 어린이 여러분은 버스를 타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저는 처음엔 정말 낯설었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언제 벨을 눌러야 하나? 돈을 내면 거스름돈은 주는 것인지? 여러분은 버스를 타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당연한 것조차도 물어볼 수밖에 없답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하나 다 새로운 것이잖아요. 저한테 시설 밖의 생활은 전부 그렇습니다.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는 일, 미용실에서 예쁜 머리모양을 부탁하는 일,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친해지는 일 등등.

비록 낯설고 어려운 것이 많지만, 내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고민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살아 있는 느낌이랍니다. 저는 시설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나쁜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조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수 십명, 수 백명이 공동생활을 하려다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간으로 대우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런데 시설은 하루 이틀 임시로 지내는 곳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오래 동안 생활하며, 살기 위한 집이잖아요. 그렇다면 인권을 침해하는 조건인 '시설'은 사람이 살기에 알맞지 않은 집이 아닐까요? 나중에는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나 노인들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시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어요. 시설에서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를 알리려고 해요. 왜냐면 장애인이나 노인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직 있거든요. 20년의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답니다.


*시설은 수 십명 혹은 수 백명씩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장애인이나 노인, 돌보는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시설에는 이들의 생활을 관리하고 지키는 사람이 있고, 대부분 규칙이나 정해진 시간에 따라 생활해요.
*시설생활인은 시설에서 사는 사람을 말해요.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실태조사 길라잡이](조건부신고복지시설생활인인권확보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2005. 8) 에 소개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