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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뛰어보자 폴짝] '마법'이 아닌 '월경'을 기념하며 보내는 편지

안녕, 나는 은결이라고 해. 나는 여자아이이고 고양이를 좋아하고 나이는 열두 살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 생리를 하고 있어. 나는 생리를 시작하면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편지쓰는 것을 좋아해. 그래서 내 편지를 읽어줄 누군가를 위해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응? 생리중이라는 것이 무슨 이야기냐고? 아, 너는 생리를 시작하지 않았나보구나. 아니면 남자아이일 수도 있겠다. 있잖아, 여자들은 어른이 되어 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해. 엄마말로는 월경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달거리라고 한다고 하더라. 여자아이들이 생리를 시작한다는 건, 우리 몸이 자라고 있고 우리가 건강하다는 증거래. 나는 작년에 생리를 시작했는데, 생리를 하는 날짜가 매달 달라서 이번 달에는 언제 생리를 하려나 하고 기다리곤 해. 혹시 "생리를 기다린다고? 그럼 너는 생리하는 것을 좋아하니?"라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좋아하냐고? 글쎄, 흠. 나도 물어보고 싶다. 다른 친구들은 어때? 생리하는 것, 좋아하니?


마술에 걸린 여자들, 벽돌을 주고 받다?

지난달에는 말이야 학교에 있을 때 생리가 시작되어버린 적이 있었어. 나는 그 날 생리를 시작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야. 화장실에 갔다가 생리가 시작한 걸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래서 내 짝꿍 보라한테 가서 말했지.
"보라야, 나 지금 생리 시작했어."
"뭐? 조용히 말해, 생리한다고 말하지 말고 마술에 걸렸다고 해."
보라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어.
'마술에 걸렸다고? 참 나, 지금 내가 비둘기로 변신하기라도 했나, 웬 마술?'
하지만 나는 생리대를 빌려야 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보라한테 이야기 했어.
"응, 근데 나 지금 생리대가 없어서 네 것 있으면 좀 빌려주라."
그러자 보라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주위를 둘러보면서 나한테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어.
"아이참, 조용히 말하라니까. 그리고 생리대 달라고 하지 말고 벽돌 달라고 말해."
"응? 벽돌?"
"그래. 남자 아이들이 듣잖아. 다음부터 사람들 있을 땐 벽돌 있냐고 물어봐."
그래서 난 그날 보라한테 빌렸단다. '벽돌'을 말이야.


수빈이가 하루종일 엎드려 있던 날

내가 알고 있기로는 우리 반에는 보라랑 나까지 합쳐서 생리하는 아이들이 다섯 명인데, 그 중에 수빈이가 생리통이 가장 심해. 나는 생리를 하면 배가 조금 아플 때도 있는데 아주 심하지는 않아. 보라는 머리가 아프고 몸에 힘이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수빈이는 생리를 시작하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허리랑 배가 너무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있기만 해. 그런데 얼마 전에 수빈이가 학교에서 엉엉 울었던 적이 있었어. 왜 울었냐고?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배랑 허리가 너무 아프니까.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어. 그날도 수빈이가 엎드려 있는데, 체육시간이 시작하기 전에 지나가던 민수가 그러는 거야.

"야, 수빈이 너 생리해서 이러고 있는 거지? 다 알어~ 여자들 몸은 이상해. 얼레리 꼴레리~ 히히"
그 말을 듣자 아무 말도 안하고 엎드려 있던 수빈이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어. 나는 화가 나서 말했어.
"여자들 몸이 이상하다고?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여자들 몸이 이상한 게 아니라, 여자들이랑 남자들 몸이 다른 거야. 여자들이 커가면서 몸이 변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민수는 내 말에 우물쭈물 거리면서 "아니, 난 그냥..신기해서 그런 거야."하더니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버렸어.
나는 알 것 같았어. 그 때 수빈이 마음이 어땠을지 말이야. 몸이 너무너무 아픈데 결석할 수가 없어서 엎드려 있는 게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말이야.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놀리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슬펐을지 말이야. 그리고 보라가 왜 생리하는 것을 숨기고 싶어했는지도. 그 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민수가 수빈이 책상에 딸기우유를 슬쩍 놓고 가더라. 수빈이가 보여 줬는데 우유 밑바닥에는 '미안해'라고 적혀 있었어. 우리는 피식, 웃었지 뭐.


학교에서도 생리하는 여학생들을 배려해주어야 해

그런데 며칠 전에 선생님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어. 그동안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는 생리통 때문에 결석하거나 조퇴를 하면 결석처리가 돼서 개근상을 못받았대. 그리고 시험 보는 날에 결석을 하면 이전에 봤던 시험 성적의 80%만 인정하고 말이야. 일부러 시험을 안 본 것도 아니고, 생리통이 너무 심해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못봤는데 성적이 깎였다니 정말 속상했을 것 같아. 선생님은 여학생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을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남학생만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하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어. 남학생과 다른 몸의 특성을 가진 여학생이 생리를 하고, 생리통을 겪는 것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여학생의 건강권을 위해 앞으로 수빈이처럼 생리통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할 때에는 결석으로 처리하지 않고, 시험 성적을 인정받는 방법을 학교가 마련해야 한다고 했대. 그래서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 학교에 가지 못할 때에는 부모님이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하고,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사흘이 넘게 학교에 가지 못하면 병원에서 주는 처방전을 가지고 가면 된다고 하셨어.

내가 처음에 말했던 질문, 생각나니? '생리하는 것, 좋아해?'라고 말이야.
아마 앞으로도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날에 생리를 시작해서 속옷을 버릴까봐 불안할지도 몰라. 수빈이도 생리통 때문에 힘들어 하는 날들이 있겠지. 하지만 나는 생리하는 것을 창피해 하거나, 생리대를 숨기고 싶지는 않아. 매달 생리가 찾아 올 때마다, 나는 조금씩 자라날 테니까 말이야. 다음 달에 생리를 할 때에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편지를 다 썼으니, 이제 나도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야겠다. 이만, 안녕!

2006년 1월 생리하는 세 번째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