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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잠들어 있던 신청권의 부활


“저는 음성 꽃동네에서 19년간 살았습니다. 꽃동네 와서 한 삼일은 밤마다 울었어요. 시설에서 살면서 좀 지나고 적응이 되니 ‘나 같은 사람이 살기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능력도 없는 내가 먹을 것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곳. 이 정도면 만족하고 살 수 있다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2004년도에 어느 장애인단체를 통해 자립생활도 알게 되었고, 여름캠프를 가게 되었는데, 충격이었어요. 다른 장애인이 지역에서 이렇게 살고 있구나. 나는 내가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거구나.”(꽃동네에서 살다가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을 한 당사자의 편지글 중)


1급 장애를 가지고 사회복지시설에서 10년 내지 20년을 살았던 세 명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게 해달라는 신청을 행정청에 냈다. 사회복지사업법이 인정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을 한 것이다.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

사회복지시설(거주시설)은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곳이다. 그런데 사랑으로 운영되어야 할 이 곳에서 각종 비리와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났다. 장애 때문에,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가족의 버림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장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볼모로 시설장들은 자신의 배를 채우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안타깝고 슬픈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가두고 폭행하는 일부터, 강제노동이나 심지어 강제불임시술까지. 숱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나쁜 복지시설에만 있지 않다. 장애인을, 노인을, 버림받은 아동을 지역사회와 분리하여, 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도록 하고, 오로지 보호의 대상으로만 살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이런 삶은 보편적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도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면서 친구도 사귀고, 재활이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러한 자립생활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에 시설 중심의 복지정책을 폐기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시설 중심의 정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예산을 핑계로 시설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나, 시설에 지원하는 예산이면 자립생활 지원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선진국의 경험이며 전문가의 연구결과다.

이번 신청은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당사자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제기하는 법적 신청이다. 10년 넘게 시설에서 보호대상자로 격리되어 보호를 받던 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다른 이웃들과 함께 생활할 권리를 법적으로 주장하였다.

‘탈시설, 자립생활’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터잡은 것이다. 사회복지사업법은 시설 중심의 복지정책이 아닌 지역사회, 재가복지, 자립생활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사업법에는 시설 입소에 우선하여 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명백하게 문구로 의무화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도 탈시설, 자립생활이 시설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여러 규정에서 명시되어 있다.

12월 16일(수)에 있었던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 기자회견'

▲ 12월 16일(수)에 있었던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 기자회견'


장롱에 처박혀 있던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의 부활

사회복지서비스는 국가의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다. 사회복지사업법은 2003년에 이미 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신청권을 인정하고, 당자자의 요구와 상황을 고려하여 개별화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세한 절차를 규정하였다. 즉 ①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자가 관할 기관에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을 신청하면, ② 관할 기관은 당사자의 복지요구를 자세히 조사한 후, ③ 복지서비스 제공 여부와 그 유형을 결정하고, ④ 대상자별 복지서비스 제공계획(보호계획)을 작성하며, ⑤ 그 보호계획에 따라 보호를 실시하여야 한다.

이번 신청은 장롱에 처박힌 이 조항들을 꺼내놓은 사건이다. 잠들어 있던 규정들을 깨워 사회복지서비스가 당사자의 관점에서, 당사자를 중심으로 실시되는 첫발이 된다는 것이 이번 신청의 또 다른 의의이다.

기자회견에서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처럼 인정받고 대접받으며 살고 싶어요'라고 편지를 보인 윤국진 씨의 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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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에서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처럼 인정받고 대접받으며 살고 싶어요'라고 편지를 보인 윤국진 씨의 글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지역주민으로 살고 싶다!

시설에서 먹여주는 밥 먹고, 주는 옷 입고 살면 그만이었던 그들이, 그래서 아무런 꿈도 가지지 않았던 그들이, 시설을 나오기로 마음먹은 뒤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인터넷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고, 다른 친구는 전파상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더 이상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시설에 살고 있는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에 살겠다는 선언은 한국 사회복지사에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꿈을 이루면 정말 좋겠다. 우리는 동네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니고, 우리는 노인이 함께 사는 공동가정을 이웃으로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들을 시골구석에 격리시키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돕고 살아가길 간절히 희망한다.


“매일 똑같이 먹고 자고하는 생활을 이제는 더 이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동안은 저 같은 사람들이 나가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일도 하고 활동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도 나가서 자립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성친구도 사귀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꿈이지만 저도 꿈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시설에서 나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을 한 당사자의 편지글 중)
덧붙임

임성택 님은 법무법인 지평지성에서 활동하시는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