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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사과 나선 대통령, '폭력시위'에 책임 미뤄

청장 파면요구에도 "권한 없다"

경찰폭력으로 사망한 고 전용철·홍덕표 농민의 죽음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했다. 하지만 허준영 경찰청장 파면 요구에 대해서는 '권한 밖'이라며 언급하지 않았고 사건의 한 원인으로 폭력시위를 지적하기도 해 농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27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으로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책임자를 가려내 응분의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 "폭력시위 정당성,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전제하고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경찰청장 파면 요구를 일축했다.

또 "폭력시위 문제에 관해서는 그것이 우발적으로가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준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들을 자주 본다"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정당성에 대해서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의식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고 홍덕표 농민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범대위)는 이날 논평을 내 "대통령은 여전히 이번 사태를 농민들의 불법시위 때문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두명의 농민이 사망한 것은 비록 유감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 아니었지 않았느냐 하는 투로 오히려 당일 농민대회를 진행한 농민단체를 비난하는데 급급해 하고 있다"며 "농민을 두 명씩이나 살해해 놓고 주최 측의 잘못으로 사태가 발생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어떻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또 "당일 집회는 이미 2명의 농민이 쌀개방 반대를 외치며 음독자살을 하고 하루 뒤 쌀협상안에 대한 국회비준 철차가 있기에 자칫 격해질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로 "유연한 대응이 요청되는 시점"이었다며 "경찰의 진압은 단순한 해산이 목적이 아니라 의도적인 유혈진압이었다"고 지적했다.

범대위는 "불법에는 불법적 법집행으로 대응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인식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대통령이 오늘의 발표로 이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잘못 판단하고 있음을 밝힐 뿐"이라고 경고했다.


경찰청장도 사퇴 거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허 청장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허 청장은 "경찰의 과잉 진압이 있었다는 국가 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권고 내용을 겸허히 수용하여, 불법사실이 확인되는 행위자와 지휘감독자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엄히 묻겠다"면서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임기제 청장으로서 거취는 내가 결정한다"며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허 청장은 대통령 사과 이후에도 "임기제 청장으로서 맡은 일을 다하는 게 국가공무원으로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고 국민에 대한 충성"이라며 "사퇴고려는 안한다"고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대위는 이날 논평을 통해 "경찰청장으로서 이 사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어떠한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다"며 "오히려 이 모든 책임을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 옹졸한 지휘관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최소한 사과의 진정성이 깃들여 있다면 이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지휘관의 모습"이라며 대통령에 대해 경찰청장 파면을 거듭 요구했다.

한편 이날 이기묵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서울청장은 내년 초 인사에서 용퇴할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어서 허 청장 파면 요구를 피해가려는 '계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