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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홍덕표 농민 결국 운명

농민대회 경찰폭력으로 사지마비…고 전용철 씨 이어 2번째 죽음

경찰폭력으로 또 한명의 농민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5일 농민대회에 참석했다 경찰폭력으로 한달 넘게 사경을 헤매던 전농 전북도연맹 김제시농민회 홍덕표 농민이 18일 0시 40분경 원광대병원에서 운명했다. 사지마비로 한달 넘게 입원해 있던 홍 씨의 사인은 '목뼈 손상에 의한 폐렴에 따른 패혈증'으로 알려졌다.

고 홍덕표 농민의 영정

▲ 고 홍덕표 농민의 영정



홍씨는 농민대회에서 진압 경찰에게 맞은 뒤 여의도공원 화단 근처에 쓰러져 있다 같은 마을 주민에게 발견돼 현장에서 구급차에 실려 서울 성애병원으로 후송됐다가 18일 익산원광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원광대병원 의사소견서에 따르면 홍 씨는 '경추 제3∼6번 척수손상, 경추 제6번 후궁 골절, 경막 열상'으로 경추(목뼈)가 손상되면서 뇌와 신체를 연결하는 척수(신경)가 다쳐 사지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홍 씨는 21일 10시간 넘게 수술을 받았으나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고 두 팔도 자유롭지 못한데다 폐에 물까지 차는 등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농민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전용철범대위) 진상조사단이 이달초 취합한 주변의 증언에 다르면 홍 씨는 대회당일 연이어 자행된 3차·4차 진압에서 시위를 관망하던 중 경찰의 진압봉과 방패에 맞아 부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경찰은 오후 5시 20분경 산업은행 앞에서 시작한 3차 진압에서 반원꼴 대형으로 농민들을 공원의 좁은 입구로 몰아넣었고 공원 옆의 차도에서도 전경들이 들어왔다. 이어 5시 40분경 4차 침탈에서 경찰은 신고된 집회장소인 공원 안으로 밀고 들어와 해산위주 작전이 아니라 공격적 검거작전으로 전환했다. 당황한 농민들은 입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난간을 넘는 등 부상자가 다수 발생한 바 있다.

대회당일 부상한 홍 씨를 발견한 마을주민 박성섭 씨는 "경찰의 강제진압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가고 있는데, 홍씨가 안 보여 뒤를 돌아보니 화단 근처에 홍씨가 피를 흘린 채 엎어져 있었다"며 "내가 부축하자 전경들이 몰려와 진압봉으로 내 어깨 등을 마구 때렸다"고 증언했다. 홍 씨를 구급차로 후송한 정철근 김제농민회 부회장은 "머리, 입, 코 등에서 피가 많이 났다"며 "(경찰이) 무방비 상태로 있는 노인들도 막무가내로 때렸다"고 증언했다.

진상조사단 조사에서 홍 씨의 부인은 "원광대 병원으로 옮겨온 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남편이 '전경들에게 방망이 같은 것으로 뒷목 부위를 4대 맞았다'고 답했다"고 증언했다. 아들 홍성귀 씨는 "아버지가 '전경이 때려 맞았다'고만 거듭 말씀하신다"며 "지게질을 할 정도로 정정하셨는데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희생됐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으로 함께 집회에 참가했던 문인성 씨는 "(홍씨는) 농민 시위대가 국회 진출을 시도할 때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뿐 대나무를 들고 앞에서 경찰과 싸운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14일 경찰도 홍 씨의 부상에 대해 "집회 현장에서 진압경찰로부터 가격을 당하여 부상했을 가능성이 현저하므로, 당시 구체적 상황 등 관련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경찰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지만 현장 지취핵임자인 이종우 기동단장의 직위해제 정도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전농은 18일 오전 성명서를 내고 "우리농업을 살리고, 나라의 미래와 민족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타살당한 고 홍덕표·전용철 열사 사망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앞에 사죄하고, 이 땅 농업의 근본적 회생대책을 내놓지 않은 이상 우리는 노무현정권퇴진투쟁의 기치를 단 한순간도 놓지 않을 것이며 더욱 더 높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농은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이종우의 구속처벌 △허준영 경찰청장과 관할부처인 행정자치부 장관 오영교 파면 △서울경찰청 1기동대 즉각 해체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