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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12월 반딧불 : 공권력, 농민을 삼키다

지난 11월 15일, 국회 앞에서 쌀개방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단체의 시위가 있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막무가내로 쌀개방을 하겠다는 '국민의 대표'들에게, 생존권을 박탈당하게 된 농민들이 항의하러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진정으로 국민의 대표였다면, 분노한 농민들 앞에 나와 최소한 변명이라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수천 명의 시꺼먼 진압경찰들이 나타났다.

늘 그렇듯, 경찰은 국회로 항의하러 가는 행렬의 앞을 가로막았고, 시위대가 가로막힌 전경차와 전경들을 두드려대자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행렬과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던 어느 순간, 사냥이 시작되었다.

먼저 매캐한 흰 연막이 살포되었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행렬의 허리 양 옆에서 진압경찰들이 방패를 휘두르며 쏟아져 들어왔다. 겁을 먹고 뒤로 도망가는 사람들의 '앞'에서 나타난 전경들은, 사람들의 목과 머리를 노려 방패를 날렸고, 쓰러진 사람에겐 곤봉을 내리쳤다. 부상자를 옮기느라 도망가는 속도가 느린 사람들은 좋은 목표가 되었다.

이것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한 것도, 연행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 기회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경찰의 의지는 뚜렷했다. 7월 10일 평택에서도 폭력 진압을 선동해서 문제가 되었던 악명높은 이종우 경무관이 지휘한 이 날의 경찰들은, 토끼몰이 하듯 농민들을 때려 밀어부치며 수백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쫓겨 들어간 농민들을 뒤쫓아 여의도 공원까지 진입한 경찰병력은, 심지어 부상자를 치료하던 사람들에게도 방패를 내리꽂았다. 줄지어 다니는 진압경찰들의 선두가 방패를 날려 사람이 쓰러지면, 뒤이은 자들이 짓밟고 지나가는 일들이 즐비하게 일어났다.

결국 사망자가 나왔다. 이 날 집회에 참가했던 전용철씨는, 머리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으로 인해, 끝내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혹자는 이런 일들이, 시위대의 폭력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지 아닌지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상물들을 몇 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비무장의 사람들에게 쏟아진 경찰의 무장 폭력은, 선두의 몇몇 시위대가 대치중인 진압경찰을 향해 막대기를 휘둘렀다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자의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폭력배와는 달리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받으려면, 설사 불법집회라 해도 정당한 해산 절차를 밟으며 최소한의 물리력만을 행사해야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날 경찰의 폭력진압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투성이었으며, 끝내 농민 사망자를 낸만큼 이는 폭력 사용을 적극적으로 선동한 현장지휘관들과, 이를 방조 내지 격려한 경찰청장의 책임일 것이다. 거기에, 농민들의 절규에 응답하는 대신 진압경찰 뒤에 숨어있던 것도 모자라, 국민을 살해한 공권력을 오히려 두둔하는, 소위 '국민의 대표'들의 책임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이번 12월 반딧불은 고 전용철 열사를 추모하며, 최근 부쩍 폭력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경찰진압의 문제점을 되새길 수 있는 영상물을 제작, 상영한다.

△ 때와 곳 : 12월 3일(토) 늦은 6시, 고 전용철 추모 촛불집회(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 상영작 : <공권력, 농민을 삼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