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박석진의 인권이야기] 북인권, '선량한' 염려와 '고운' 연대의 마음과 손잡기를

"인권사랑방이죠? 저는 북한에서 살다온 사람도 아니구요, '조빠'('조선일보 지지자'를 의미)도 아니구요. 노가다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북한 금강산에서 현대가 공사할 때 갔었던 사람이에요. 북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 줄 아세요? 노가다 하는 사람이 손에 장갑을 끼고 안 끼고가 어떤 차이가 있는 줄 아세요? 짐작이라도 하시냐구요? 그 사람들 손에 장갑 하나 안 끼고 일해요"

난감했다. 지난 11월 30일 '북인권 문제의 대안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인권단체들과 공동으로 워크샵을 개최한 후 사무실로 '항의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오던 터였다.

"저희 역시 북한 인민들의 관점에서 인권문제에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저희는 북인권을 둘러싼 정치적 장막을 거둬내고 인민의 인권 그 자체에 다가서려고 한다는 점에서 같은 입장에 있는 것 같으니까 앞으로 저희 활동에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 짧지 않은 대화의 결론이었다. 그랬더니 그 분은 "처음엔 항의하려고 전화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까 같은 입장인 것 같네요"라는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북 인권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북에도 있는 인권문제에 대한 '선량한' 염려와 북 인민에 대한 '고운' 연대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그러한 '선량한' 염려와 '고운' 연대가 보수세력들에 의해 흑백의 냉전논리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인권'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의 입장에 서서, 내가 또다른 인권침해 당사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끊임없이 되묻는 자기 성찰적인 태도를 전제로 '인권'을 말할 때 비로소 '인권'은 사회를 진보적으로 밀어올리는 역사적 힘이 된다. 또다른 인권침해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기반성 없이 '인권'을 내세우는 것은 인권을 빙자한 말장난일 뿐이다.

그동안 '북인권' 관련한 우리의 활동이 '북인권'을 앞세운 보수세력의 대북 정치적 공격을 비판하는 내용에 아무래도 비중이 실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 의회가 제정해 북 체제 붕괴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북한인권법'이라든가 유엔 총회의 대북인권결의안 채택, '김정일 규탄 궐기대회'와도 같았던 북한인권국제대회 등과 같이 '인권'을 앞세워 북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고자 하는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이 우리의 주요 '북인권' 관련 활동이었다. 언젠가 한 사람이 물었다. "'북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미국을 비판하는 입장은 이해하겠는데, 왜 그렇다고 북한을 감싸고 도냐?" 그에 대한 다른 사람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힘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부당하게 때리고 있는 상황에서 힘 센 사람에게 때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단지 힘 센 사람에게 '때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약한 사람의 입장까지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것이었다. '흑백논리의 오류'에 대한 명쾌한 지적이었다. 이는 '북인권'을 둘러싼 논의를 끊임없이 왜곡시키며 냉전이데올로기를 선동하는 보수언론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에도 인권침해는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이 남쪽 사회에도 수많은 인권침해가 발생한다. 수많은 농민들이 쌀 시장 개방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고 심지어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경찰에게 맞아 죽기도 한다. 노동권을 현저하게 침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미 8백만 명이 넘는다. 인권선진국이라고 자임하는 프랑스에도 이주노동자와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 역시 미국의 동유럽 비밀정치수용소에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의 인권침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북에도 인권침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중대한' 인권침해도 있을 수 있다. 북에서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면 당연하게도 그러한 상황을 옹호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기도 전에 일부 사람들의 증언을 마치 '기정 사실'인양 호도하며 '맞는 사람'을 향해 '더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안되지 않겠는가. 물론 북의 인권상황을 확인하는 일이 현재로선 상당히 힘든 일임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북 역시 상호 신뢰에 기반해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면 자신의 인권상황을 좀더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가 남북 인권주체들이 만나는 '인권대화'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결국 '북인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을 통한 북 인민들과의 연대'이다. 그리고 '항의 아닌 항의전화'를 한 사람들과 같이 북 인민들에 대해 '선량한' 염려와 '고운' 연대의 마음을 갖고 있는 남쪽 사람들과의 연대다. '인권 주체들'과의 진정한 연대가 없는 국제적 '인권' 논의는 '인권'을 앞세운 정치적 간섭일 뿐이다. 우리가 70~80년대 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국제사회에 연대의 손길을 요청한 것은 억압받고 투쟁하는 이 사회의 주체로서 국제적인 양심세력에게 연대를 호소한 것이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간섭'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더 많은 '항의 아닌 항의전화'가 걸려오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더 많은 '선량한' 염려와 '고운' 연대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인권운동과 손잡을 수 있기를, 북의 인민들과 손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발도 디디기 힘든 서울의 '삐까뻔쩍한' 고급 호텔에서 '인권' 운운하며 '동포'와 '연대'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낮은 곳에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모든 소외받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장갑 한 켤레'를 남과 북에서 한 목소리로 요구할 있기를. 인권운동사랑방을 겨냥한 <조선일보> 한 간부의 비난처럼 '진짜 도덕적 파탄의 수렁에 빠진'게 누구인지 역사의 힘으로 보여줄 수 있기를.
덧붙임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