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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아펙반대 목소리 틀어막은 경찰폭력

[현장] 정상회의 첫날 2만여명 범국민대회

아펙정상회의 첫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노동자·농민들의 목소리가 부산 수영강변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경찰이 정상회의장으로 행진하는 시위대열을 가로막고 폭력을 휘둘러 부상자가 속출했다.

18일 오후 5시30분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아래 국민행동)은 수영3호교 근처에서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부시반대 범국민대회'를 열고 "전 세계를 전쟁으로 위협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민중을 강탈하는 주범인 부시와 그 동맹자들, 초국적기업의 총수들이 모여 민중들의 생존과 권리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아펙회의 중단을 요구했다.

광안사거리에서 열린 '쌀개방 저지, 아펙반대 부시방한반대 전국농민대회'

▲ 광안사거리에서 열린 '쌀개방 저지, 아펙반대 부시방한반대 전국농민대회'



이날 노동자·농민·빈민·학생 등 2만여명은 광안사거리·망미삼거리·토곡사거리 등 부산시내 곳곳에서 부문집회를 열고 행진을 벌여 대회장인 수영강변으로 집결했다. 1시 광안사거리에서 열린 '쌀개방 저지, 아펙반대 부시방한반대 전국농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우리는 자유무역을 앞세워 민족농업을 짓밟는 아펙회담을 단호히 반대하며, 이런 회담을 우리 땅에서 개최되는 것 또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부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수영강변으로 행진하고 있다.

▲ 부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수영강변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날 경찰은 아펙 정상회의장인 부산컨벤션센터(벡스코)가 강건너 보이는 수영1교와 수영3교 위에 경찰버스를 주차해 다리 통행을 막았고 다리 입구에는 3미터 높이 컨테이너 박스를 2층으로 쌓았다. 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간 경찰과 살수차량이 시위대를 향해 물을 뿌려 집회 참가자들의 분노를 샀다.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는 경찰

▲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는 경찰



이날 인권단체연석회의 경찰감시팀은 집회·시위 현장의 경찰폭력에 대한 대응방법이 적힌 '권리카드'를 집회 참가자들에게 배포한데 이어 오후 4시경 수영1교 앞에 쳐진 경찰의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 앞에서 'STOP 경찰폭력'이라고 쓰인 손수건을 들고 경찰감시활동 시작을 선언했다. 하지만 컨테이너에 올라간 경찰 지휘자는 "한사람씩 얼굴이 나오게 사진을 찍으라"며 공공연하게 불법채증을 지시했다.

수영1교 부근에서 경찰감시활동 시작을 선언하고 있는 경찰감시팀

▲ 수영1교 부근에서 경찰감시활동 시작을 선언하고 있는 경찰감시팀



경찰감시팀으로 참가한 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는 "헬기를 이용한 고공채증은 물론 (위법행위와는 상관없는) 집회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사진채증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프라이버시 침해이며 참가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집회·시위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침해하는 경찰의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폭력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는데도 불법시위자로 간주해서 채증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집회 참가자들은 무조건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위압적인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인권경찰이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인권경찰은 멀기만 하다"고 말했다.

오후 4시30분경 벡스코와 가까운 수영1교에서는 경찰과 대치한 집회 참가자들이 컨테이너 박스에 밧줄을 달아 6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무너뜨렸다. 경찰은 선무방송을 통해 "컨테이너 박스를 질서유지선으로 간주한다"며 "질서유지선을 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로 가담자들은 전원 연행하겠다"고 경고했다.


경찰폭력으로 중상자 속출

이날 수영3교를 봉쇄한 경찰은 범국민대회가 끝날 즈음인 6시30분경 갑자기 무대를 향해 난입해 참가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이 구성한 '현장진료팀'에 따르면 참가자 가운데 100여명이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았고 부상정도가 심각한 30여명은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또 학생 홍 아무개 씨가 전경의 방패와 진압봉에 맞아 이빨이 부러지고 노동자 박 아무개 씨는 전경이 휘두른 대형 쇠파이프에 맞아 코뼈가 내려앉는 등 중상을 입었다.

천주교인권위 김덕진 사무국장은 "주변이 어두워지자 경찰이 갑자기 해산작전에 나서 집회 참가자들이 많이 다쳤다"며 "정리집회가 마무리되고 참가자들이 돌아서고 있는 와중에 경찰이 진압에 나서 폭력을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수영3교 부근에서 쇠파이프와 대나무를 들고 집회장을 기습침탈한 경찰

▲ 수영3교 부근에서 쇠파이프와 대나무를 들고 집회장을 기습침탈한 경찰



특히 경찰이 방패와 진압봉 외에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뺏은 쇠파이프와 대나무를 들고 참가자들을 가격하는 모습이 목격돼 참가자들은 물론 주변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흥분한 전경들은 오히려 욕설을 내뱉으며 취재하던 기자들의 촬영을 막기도 해 빈축을 샀다.

경찰감시팀으로 참가한 원불교인권위 김치성 정책부장은 "진압 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의 불법행위를 촬영했다"며 "15일 여의도 농민대회에서 자행된 경찰폭력 자료와 함께 유형별로 자료를 묶어 국가인권위에 진정하거나 직권조사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회 전부터 시작된 경찰의 집회방해

국민행동에 따르면 이날 경찰은 △광주시농민회 △해남군농민회 △진도군농민회 △무안농민회 △순천농민회 등 전남 10여개 시군과 함안군·진주시 등 경남지역 곳곳에서 농민들의 집회 참여를 막아섰다. 경찰은 동광주·서광주 톨게이트와 진도대교 앞에 배치돼 집회참가 버스의 출발을 가로막았고 해남에서는 농민들이 탈 버스의 열쇠를 탈취해 물의를 빚었다.

이날 오전 국민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정부과 부산시와 경찰 당국은 이라크인 10만 명을 학살한 인류 '공공의 적' 부시를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입체 작전을 불사하고 호화판 환대를 서슴지 않"은 반면 "쌀 수입 개방과 경찰의 야만적인 탄압으로 가슴에 멍이 든 농민들한테 집회 참가 방해 범죄행위로 응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경찰은 지하철과 집회장소 인근에서 불심검문을 통해 참가자들의 집회장소 출입을 막아 서기도 했다. 농민들의 사전집회가 열린 광안사거리 인근 지하철 광안역에는 한때 경찰이 불심검문을 자행해 참가자들의 반발을 샀다. 민주노총 경기본부 참가자들은 지하철 서면역 부근에서 지하철 차량 안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이 신분증을 요구해 실랑이를 벌였고 이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지연됐다. 광안리 해수욕장 앞에서 열린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여성대회'에는 경찰이 참가자들의 가방과 집회차량을 수색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박진 상임활동가는 "비단 오늘뿐 아니라 아펙회의 준비과정에서 부산 시내는 준계엄상태와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했다.